인생은 아름다워(860) - 청정자연의 철원 한여울길을 걷다
산과 들에 녹음 짙어가는 6월, 초목 울창한 자연의 숨결과 온몸으로 맞닥뜨리는 하루하루가 쾌적하고 활기차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들판의 벼처럼 우리네 일상도 생기와 활력 넘치라.
지난 토요일(6월 12일), 북한과 마주한 DMZ접경지대 강원도 철원에서 열린 걷기행사에 다녀왔다. 행사내용은 강원도관광재단이 주관한 ‘강원 20대 명산 인증챌린지’의 첫 번째인 철원 한여울길 생태탐방. 이 행사는 10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화천, 양구, 인제, 고성 등지의 대자연을 품은 명산 탐방으로 이어진다.
(사)한국체육진흥회는 한 달여 전에 이 행사의 내용을 공지하고 30명 규모의 참가희망자를 모집하였다. 집결일시와 장소는 6월 12일 오전 7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대절버스에 오른 일행은 정시에 서울을 출발하여 오전 9시 경 행사장인 철원군 동송읍 금학산 입구의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주최 측의 안내에 따라 등록을 마치고 오전 10시부터 걷기 및 산행의 행사에 참여, 한국체육진흥회 참가자는 대부분 걷기행사 쪽이다. 오전 행사는 철원 한여울길 1코스 11km 구간 중 일부를 왕복하는 5km 걷기, 광활한 철원 평야를 조망하며 한탄강 유역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살필 수 있는 탐방코스다. 오전 10시에 걷기 시작점 까지 버스로 이동, 넓은 주차장에서 한탄강을 끼고 고석정까지 2km쯤 거리를 왕복한 후 한탄강을 가로지르는 은하수다리를 둘러보는 것으로 짜여졌다. 한탄강의 강폭은 200여 미터로 넓지 않지만 계곡의 높이가 국내의 다른 강들에 비하여 훨씬 깊은 특이한 지형이다. 고석정은 조선 초기 의적 임꺽정의 활동무대로 알려진 국민관광지, 사람만 통행할 수 있는 길이 180미터의 은하수 다리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된 한탄강의 경관을 한 눈에 살필 수 있는 명품이다. 다리 중앙의 80미터는 투명 강화유리로 되어 있어 다리를 건너며 강바닥을 내려다보는 장면이 아찔하다.
한탄강을 옆에 끼고 철원 한여울길 1코스를 걷는 일행들
오전 걷기가 끝난 후 버스를 이용하여 동송읍내로 이동, 각기 식당을 찾아 점심을 들고 오후 1시 넘어 행사장에 다시 모였다. 주최 측의 행사는 오전 걷기로 종료하고 오후 걷기는 한국체육진흥회가 자체적으로 진행, 철원 한여울길 3코스 14km 중 8km쯤을 걷는 일정이다. 오후 1시 반에 행사장을 출발하여 동송 읍내를 지나 철원평야를 옆에 끼고 북쪽으로 길게 뻗은 뚝방을 따라 도피안사 거쳐 노동당사에 이르는 코스다.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이기도 한 이 길은 평원지대에 우뚝 솟은 금학산을 바라보며 금계국 활짝 핀 천변에 낚시꾼들이 곳곳에 진을 친 청정자연지역, 옛날 금강산과 경원선이 만나는 교통요충지 철원읍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분단의 상징인 노동당사와 천년고찰 도피안사(865년 신라 경문왕 때 창건)에서 전쟁의 상처와 역사의 흔적을 되새긴다. 8km 남짓 걸어 목적지인 남노당사에 도착하니 오후 4시, 건물 앞에 새긴 철원 노동당사의 설명문은 이렇다. ‘철원 노동당사는 1946년에 북한 노동당이 철원과 그 인근 지역을 관장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지역주민의 노동력과 자금을 강제로 동원하여 지었으며, 주민을 통제하고 사상운동을 억압하는 구실을 하였다. 이곳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모든 건물이 파괴되었지만 철근구조에 벽돌과 시멘트로 벽을 쌓아 매우 견고하게 지어진 건물인 노동당사는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 분단과 전쟁의 참상을 증언하고 있다.' 그 옆 시비에 새긴 철원시인 정춘근의 시 지뢰꽃 한 구절,
‘저 꽃의 씨앗들은 어떤 지뢰 위에서 뿌리 내리고
가시철망에 찢긴 가슴으로 꽃을 피워야 하는 걸까
흘깃 스쳐가는 병사들 몸에서도 꽃 냄새가 난다.’
아! 자연은 아름답고 산천은 평화로운데 전쟁의 상흔은 아직도 아물지 않았구나.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철원 노동당사의 모습
오후 4시 20분, 버스에 올라 노동 당사를 출발하여 서울로 향하였다. 차 안에서 배낭을 정리하니 올 때보다 묵직하다. 주최 측이 챙겨준 음료와 환경용품, 지역특산인 철원 오대쌀 봉지 등이 고맙고 현지에서 통용되는 소액상품권도 요긴하게 사용하였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도착하니 저녁 7시, 일행들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고 청주로 향하였다. 집에 도착하니 저녁 10시, 몸은 피곤하지만 정신은 맑다. 분단의 상처와 넉넉한 인심이 공존하는 철원탐방, 뜻깊어라!
웅장한 산세와 풍요로운 들판이 돋보이는 철원평야를 지나며 옛 태봉국의 도읍지인 것을 새긴다
* 지난 4월에 걸으며 기록한 ‘조선통신사 옛길 서울~부산 걷기 기행록’을 일본어로 번역한 나카니시 하루요 씨가 며칠 전 다음과 같은 메일을 보내왔다.
‘김태호선생님! 안녕하십니까. 기행록 일본어판이 완성되었습니다! 저의 한국어와 일본어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가나이 상이 이를 인터넷 블로그에 올리는 일을 하시고 히다이 상이 인쇄하고 계십니다. 히다이 상이 인쇄한 책자를 한국체육진흥회와 김태호 선생님에게 air mail로 보내 드릴 것입니다. 일본어판 PDF를 첨부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날씨가 많이 더워졌습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한글로 쓴 기록의 지명과 역사적 사실 등을 인터넷과 메일을 통하여 꼼꼼하게 확인하면서 완역한 나카니시 하루요 씨의 노고와 이를 널리 보급하기 위하여 힘쓴 가나이 미키오 씨, 히다이 씨의 열정에 감사의 뜻을 표한다. 이런 일들이 한일 간의 교류와 우정을 돈독히 하는 촉매가 되었으면!
일본어판 PDF로 보내온 '어려움 이겨내고 걸은 조선통신사의 길' 기행록의 표지와 목차 일부
첫댓글 안타까운 이야깁니다.
철원에 '노동당사'라는 건물이 아직 남아있다는게 놀랍네요.
전쟁같은 인생이지만 오늘, 평화로운 일상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