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예의 관심법과 폭정으로 새로운 왕을 추대하려고 장수 4명이 왕건의 집을 찾아 갔습니다.
아무리 무도하다지만 신하의 입장으로 그럴 수 없다는 왕건이었지만 부인이 왕권을 다시 일으킨 것은 역사에도 있다며 갑옷을 입혀줍니다.
왕건이 궁에 입성하자 1만여 명의 백성들이 환호했고
무혈입성한 왕건은 마침내 918년 고려 건국을 선포합니다
피신한 궁예는 보리쌀을 훔쳐 먹다가 살해 당합니다.
왜 우리는 궁예를 폭군으로만 기억하는 것은 고려 건국의 정당성 확보를 위하여 과장된 면도 있다고 합니다.
고려 건국 후에도 궁예 지지 세력이 있었으니 말입니다.
미륵불이라 자처했지만 변변한 무덤도 없이 쓸쓸한 말로였습니다.
강원도 철원에 궁예의 울음 소리를 간직한 명성산이 있습니다.
죽기 전 궁예가 토한 울음 소리가 퍼졌다는 전설의 산을 울음산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 옆에 있는 한탄강은 궁예가 운명이 다함을 한탄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궁예의 마지막 숨결이 남아 있는 이 곳도 가 본지 오래되었습니다.
궁예의 관심법이 허무맹랑하고 아집과 독선에 불과했다 하는 것은 가깝게 지낸 왕건의 마음조차 읽어내지 못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눈과 귀를 열고 더 나아가 성한 다리를 움직여 전설의 그 곳을 다시 가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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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야기
가 보기는 멀어도 궁예의 울음 소리가 퍼졌다는 산과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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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언제가시나유
혼자가지말고
한마음친님들
차에다태우고
승려군주궁예
절하고옵시다
차가 없어서 가고파도
못 가는 이 마음 아실랑가요?
관심법으로 홍사장을 보니
차 가져올 확율이 반반같은데
가고픈 맘은 100%같소이다
직접 주관하심이 어떠헐런지오?
@전기택(거북이) 날 샜소이다
지난 가을. 명성산 억새 축제때 다녀왔어요
올가을엔 같이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