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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3년]한국 여자탁구
유고 사라예보서 세계 제패
1973년 4월 유고 사라예보. 19세 소녀
이에리사는 이상할 만큼 가라앉은 기분
으로 테이블에 섰다. 상대는 아무도 넘볼
수 없었던 중국. 그러나 자신이 있었다.
이에리사에겐 드라이브라는 비장의 무기
가 있었다. 남성들의 전유물이던 파워
드라이브를 여성들도 배우는 시기였고
이에리사는 그 선봉이었다.
이에리사가 중국선수 2명을 잇달아 꺾어
종합스코어 3대 1. 한국은 모든 이의 예상
을 깨고 1973년 4월 8일 만리장성을 넘
었다.
이어 벌어진 헝가리와 준결승,이튿날 일본
과 가진 결승서도 파죽지세. 여자탁구팀은
1973년4월9일 세계탁구선수권 여자 단체
전에서 건국 이후 첫 구기종목 우승의 쾌거
를 이루며 영광의 코르비용컵을 안았다.
가난에 찌든 국민들은 밤새 지직거리는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고, 현장 취재기자는
국제전화로 낭보를 전하다 끝내 목이 메고
말았다.
귀국한 공항엔 30만 시민이 선수단을 환
영 나왔고 오색 꽃종이로 덮인 하늘 아래
선수단은 오픈카로 시내를 누볐다. 동네
탁구장은 제2의 이에리사, 제2의 정현숙을
꿈꾸는 코흘리개들로 넘쳤다. 전국은 탁구
열병을 앓기 시작했다. 가히 탁구는 국기가
되었다. 사라예보는 아직도 살아숨쉬는
한국탁구의 신화이다.
▶2014년 북한최고인민회의 제13차1차
회의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 위원장을 재추대.
▶2014년 인도네시아 총선에서 투쟁
민주당 이 19%득표율로 원 내 제1 당으로 등극.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 서비스팩이
설치 되지 않은 '윈도 7’ 지원 중단.
▶2013년 이란 부세르 주에서 규모6.3의
지진 발생37명 사망, 850명 부상 .
▶ 2012년 조현오 경찰청장,경기도수원
시 20대 여성 납치살인사건과 관련하여
안이한 대처에 대한 비난이 일자 대국민
사과 발표 및 사의 표명.
▶ 2011 년NH농협 2010 ~ 2011 V-
리그 포스트시즌에서 대전 삼성화재 블루
팡스와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가 우승.
▶2010년 대한민국시인 고은의 연작시편
《만인보(萬人譜)》, 총 작품 수식에
4001 편, 전 30권으로 완간.
▶ 2010년 북한 제12기 최고인민회의
2차 회의가 평양 만수대 의사당 에서 개최.
▶2010년 서울중앙지법, 수뢰 형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해1심 재판
에서 무죄 션고.
▶2008년제18대 국회의원 총선 실시
▶2005년영국 찰스 왕세자,
카밀라 파커볼스와 재혼
찰스왕세자와 카밀라 파커볼스
영국의 ‘챨스’ 황태자가 이혼녀인 카밀라 카퍼볼스에게 정신이 빠져 미친 짓을 하였다. #다이애너_황태자비를 돌보지 않고 독수공방의 세월을 보내게 하고는 그녀에게 영국 왕실 특유의 권위만을 강조하고 요조숙녀의 미덕만을 강조하였다.
견디다 못한 다이애너는 주변을 기웃거리던 근위병 소속 모 인사와 염문이 생기는가 싶더니 영국의 헤롯 백화점을 소유한 이집트 출신의 거부의 장남인 ‘토티’와 좋은 사이가 되었다. 이어서 황태자비의 격(格)을 내던지고 그와 결혼을 하겠다고 하였다.
영국의 왕실은 비상이 걸렸다. 하찮은 중동의 돈 많은 사내와 결혼하는 다이아나를 눈뜨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교통사고를 가장하여 그녀를 죽이기로 하고, 비밀작전을 감행하여, 초고속으로 터널을 통과하면서 벽을 들이받는 사상 초유의 교통사고로 죽게 해 버렸다.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는 음모를 꾸민 자와 실행에 옮긴 극소수만이 알고 있다. 그 이외의 인사들은 모른다. 그리고 망각의 늪 속으로 사라졌다.
▶2003년전직 미국 FBI 요원, 내연의 관계에 있는 이중 스파이에게 국가 기밀정보 누설한 혐의로 체포
▶2003년이라크 바그다드 사실상 함락
2003년 4월 9일 이라크의 바그다드 시내 중심부 ‘천국의 광장’에 서 있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동상이 미군 특수장비로 끌어당겨져 쓰러져 있다. 이 동상은 처음 바그다드 시민들이 밧줄을 걸어 쓰러뜨리려 했으나 잠시 후 미군 특수 장비가 동원돼 시민 수백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쇠사슬을 걸어 당겨 쓰러뜨렸다.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 대한 공격을 펼쳐온 미·영 연합군은 전쟁 시작 21일째인 9일(현지 시각) 바그다드 전 지역을 완전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날 바그다드 함락에 대해 “아직 완전한 승리는 아니며 위험한 전투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라크전쟁을 반대해온 대부분의 아랍 국가들은 바그다드가 미군에 함락되자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후세인 정권의 핍박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간 이라크인들과 이스라엘은 환영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영국 인디펜던트지는 10일 “요르단 암만의 커피숍 등에서 TV를 지켜보던 아랍인들이 눈물을 흘렸다”면서 “아랍인들이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특히 “후세인에 반대한 아랍인들조차 독재자의 몰락을 본 게 아니라 외국 군대의 이라크 정복을 목격했다”고 덧붙였다. 해방 전쟁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 신문은 또 “후세인 동상에 성조기를 두른 미국은 신(新)제국주의 국가”라고 팔레스타인 주민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라크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아랍인들도 많다. 요르단 암만의 택시 운전사 다오우드 살만(34)씨는 “젊은이들이 매일 바그다드로 태워달라고 요구한다”면서 “아랍 땅에서 미군이 물러날 때까지 이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미시간주 디어본에 거주하는 시아파 이라크인들은 바그다드 함락을 일제히 반겼다. 후세인 정권의 핍박을 피해 미국에 이민한 이라크 동포 1000여명은 9일 디어본 시내에서 이라크 전쟁 지지 시위를 갖고, “마침내 독재자가 무너졌다”면서 부시 대통령을 열렬히 연호했다. 한 참석자는 “바스라로 돌아가 조국을 둘러볼 생각”이라고 말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포스트는 사설에서 “오늘은 평화가 승리한 날”이라고 밝혔다.
▶1999년호스니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방한
▶1999년80년전 임시정부 요인 130여명 사진 첫 공개
▶1994년국민 고충처리 위원회 (위원장 김광일) 출범
▶1994년우루과이 라운드(UR) 비준반대 집회 - 전국 3만여명 가두행진
▶1993년청와대 앞길 개방해 관광코스로
▶1993년32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 국내 첫 개발
▶1993년북한 최고인민회의,
김정일을 국방위원장으로 추대
▶1992년알바니아 첫 비공산계 대통령 살리 베리샤 피선
▶1991년신민주연합당(약칭 신민당) 정식 출범
▶1988년전 부천경찰서 경장 문귀동, 성고문혐의로 구속
30년 전 오늘 경향신문 1면에는
‘#부천서_성고문 사건’의 가해자인 #문귀동 경장의 구속 소식이 실렸습니다. 당시는 많은 대학생들이 학업을 그만두고 위장취업으로 노동운동에 투신해 전두환 독재정권에 저항하던 시기였습니다. 서울대 의류학과 학생이던 권인숙씨는 부천시 지역의 한 가스배출기 제조업체에 위장취업했지만 신분이 들켜 공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부천경찰서 문귀동 경장은 1986년 6월6일과 7일 두 차례 권인숙씨를 성고문했습니다.
권씨는 문 경장을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성모욕 행위는 없었다’라며 문 경장을 무혐의 처분합니다. 이때 문귀동 경장은 “권양의 ‘성적모욕’의 허위사실 유포는 운동권이 성마저도 혁명의 도구로 쓴다는 증거”라고 권씨를 매도했습니다. 권씨는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습니다. 상황이 바뀐 것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입니다. 사회가 민주화되자 대법원은 2월9일 재정신청을 전격 수용했고 결국 문귀동 경장에게 징역 5년의 실형이 선고됐습니다. 이 사건은 역사상 처음으로 ‘특별검사(특검)’가 임명된 사건이기도 합니다.
이날 경향신문은 “문 전 경장이 9일 상오 인천지법에 전격 구속됐다”라며 “문 전 경장의 구속은 이 사건 특별검사로 지정된 조영황 변호사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이날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문 전 경장은 부천 시내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법원 직원 6명에 의해 구인됐습니다. 문 전 경장은 “이미 각오한 일이다. 담담할 뿐”이라며 취재진의 플래시 세례를 받았습니다.
권인숙씨는 이후 2003년부터 명지대학교 교육학습개발원 교수가 돼 여성학을 가르쳤고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인 ‘울림’의 초대 소장을 지냈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법무부 성희롱·성범죄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1999년호스니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방한
▶1999년80년전 임시정부 요인 130여명 사진 첫 공개
▶1994년국민 고충처리 위원회 (위원장 김광일) 출범
▶1994년우루과이 라운드(UR) 비준반대 집회 - 전국 3만여명 가두행진
▶1993년청와대 앞길 개방해 관광코스로
▶1993년32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 국내 첫 개발
▶1993년북한 최고인민회의,
김정일을 국방위원장으로 추대
▶1992년알바니아 첫 비공산계 대통령 살리 베리샤 피선
▶1991년신민주연합당(약칭 신민당) 정식 출범
▶ 1988년 4월9일,
‘부천서 성고문’ 문귀동 구속
30년 전 오늘 경향신문 1면에는
‘#부천서_성고문 사건’의 가해자인 #문귀동 경장의 구속 소식이 실렸습니다. 당시는 많은 대학생들이 학업을 그만두고 위장취업으로 노동운동에 투신해 전두환 독재정권에 저항하던 시기였습니다. 서울대 의류학과 학생이던 권인숙씨는 부천시 지역의 한 가스배출기 제조업체에 위장취업했지만 신분이 들켜 공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부천경찰서 문귀동 경장은 1986년 6월6일과 7일 두 차례 권인숙씨를 성고문했습니다.
권씨는 문 경장을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성모욕 행위는 없었다’라며 문 경장을 무혐의 처분합니다. 이때 문귀동 경장은 “권양의 ‘성적모욕’의 허위사실 유포는 운동권이 성마저도 혁명의 도구로 쓴다는 증거”라고 권씨를 매도했습니다. 권씨는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습니다. 상황이 바뀐 것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입니다. 사회가 민주화되자 대법원은 2월9일 재정신청을 전격 수용했고 결국 문귀동 경장에게 징역 5년의 실형이 선고됐습니다. 이 사건은 역사상 처음으로 ‘특별검사(특검)’가 임명된 사건이기도 합니다.
이날 경향신문은 “문 전 경장이 9일 상오 인천지법에 전격 구속됐다”라며 “문 전 경장의 구속은 이 사건 특별검사로 지정된 조영황 변호사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이날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문 전 경장은 부천 시내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법원 직원 6명에 의해 구인됐습니다. 문 전 경장은 “이미 각오한 일이다. 담담할 뿐”이라며 취재진의 플래시 세례를 받았습니다.
권인숙씨는 이후 2003년부터 명지대학교 교육학습개발원 교수가 돼 여성학을 가르쳤고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인 ‘울림’의 초대 소장을 지냈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법무부 성희롱·성범죄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1988년쿠웨이트 여객기 납치 사건
▶1987년한국-과테말라, 경제기술협력협정 체결
▶1985년일본 대외시장개방정책 발표
▶1983년대학 여름학기 신설
▶1983년해저유물단, 충남 태안군
태안반도 앞 해저에서 1000여점의 자기류 발견
▶1982년아르헨티나
10만 예비군에 동원령(포크랜드 관련)
▶1979년고리원자력발전 3호-4호 착공
▶ 1975년 인혁당 사형판결 18시간만에 사형 집행.
국제법학자회에서는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지정하였다. [동아일보]
1972년 12월의 유신 체제 발족발족과 1973년 8월에 있었던 김대중 납치사건은 박정희 정부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불러 일으켰고, 1973년 10월부터 시위 등을 통한 박정희 정부의 유신 체제에 대한 반대운동이 본격화되었다.
이러한 와중에 1974년 4월 3일 저녁, 박정희 대통령은 '민청학련이라는 지하조직이 불순세력의 배후조종 아래 사회 각계각층에 침투해 인민혁명을 기도한다'는 요지의 특별담화를 발표하고, 민청학련과 관련된 일체의 활동을 금지하는 긴급조치 제4호를 공포했다.
4월 25일, 중앙정보부는 민청학련 사건 수사상황발표에서 #민청학련을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학생을 주축으로 한, 정부를 전복하려는 불순 반정부세력'으로 규정했다. 이와 관련하여 긴급조치 제4호 및 국가보안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1,024 명이 영장 없이 체포되고, 그 중 253명이 군법회의 검찰부에 구속송치되었다. 5월 27일, 비상보통군법회의 검찰부는 민청학련 사건 추가발표에서 민청학련의 배후에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가 있으며, 이들이 인민혁명당을 재건해 민청학련의 국가 전복 활동을 지휘한 것으로 발표했다. 소위 인혁당 재건위(제2차 인민혁명당) 사건이다.
7월 11일, 민청학련(1심판부), 인혁당 재건위(2심판부), 일본인(3심판부)으로 분리하여 재판을 진행한 비상보통군법회의 재판부는 7월 8일 군 검찰부가 구형한 그대로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 21명 중 서도원, 도예종 등 8명에게는 사형, 김한덕 등 7명에게는 무기징역, 나머지 피고인 6명에게는 징역 20년을 선고하였다. 7월 13일에는 7월 9일 구형과 같이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 32명 중 이철, 유인태 등 7명에 사형, 7명에 무기징역, 12명에 징역20년, 6명에 징역 15년이 선고됐다. 2명의 일본인에게도 징역20년이 선고됐다. 다만,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들은 대부분 1975년 2월 15일 대통령특별조치에 의한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1975년 4월 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의 상고가 기각되어 사건 관련자 23명 중 서도원 등 8명에게는 사형, 김한덕 등 7명에게는 무기징역, 나머지 피고인에게는 징역 15~20년의 중형이 확정되었다.
1975년 4월 9일 새벽, 사형 선고를 받은 8명에 대한 사형이 판결이 확정된 후 불과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 사건의 판결은 "사법살인"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으며,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법학자회(International Commission of Jurists)는 사형이 집행된 1975년 4월 9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다.
김형욱은 이 사건을 회고록 《혁명과 우상》에서 "박정희와 이후락의 지령을 받은 신직수 그리고 그의 심복 이용택이 10년 전에 문제 되었다가 증거가 없어서 석방한 사람들을 다시 정부 전복 음모 혐의로 잡아넣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1995년 4월 25일 MBC가 사법제도 1백주년을 기념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판사 315명에게 실시한 《근대 사법제도 100주년 기념 설문조사》에서 인혁당 사건 재판이 '우리나라 사법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재판'이었다고 응답함으로 이 사건이 정상적이지 못했음을 법조인들도 인정했다.
2002년 9월 12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인혁당 사건이 중앙정보부의 조작이라고 발표하였다.
▶1974년유엔(UN)자원특별총회 개막
▶1973년한국 여자탁구 유고 사라예보서 세계 제패
▶1973년네덜란드, 베트남과 국교 수립
▶1972년우간다, 이스라엘과 단교
▶1972년잔지바르섬에서 키르메 피살
▶1967년진해 제4 비료공장 준공
▶1965년한국과 서독 무역협정 체결
▶1964년최두선 총리, 맥아더 원수 사망
장례식 참석차 존슨 미국 대통령과 회담
▶1962년한국-이스라엘, 국교 수립
▶1961년서울 창신동 화재로 230동 소실
▶1954년흥사단 금요강좌 개강
▶1953년폴란드 공화국의 제2대 대통령
뵈치에호프스키 사망
▶1952년일본 여객기 추락 - 37명 사망
▶1951년노르웨이의 기상학자.
물리학자 비에르크네스 사망
▶1949년캐나다 한국 승인
▶1945년독일의 천재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 사망
▶1940년2차대전중 독일, 노르웨이와 덴마크 침공
▶1927년최악의 사법살인 사코와 반제티 사형선고
▶1923년저축 장려한 첫 극영화
‘월하(月下)의 맹서(盟誓)’ 상영
▶1919년세계최초 컴퓨터
`에니악`을 개발한 프레스터 에커트 출생
▶1918년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설계한 우드손 출생
▶1915년디프테리아균을 발견한
독일 세균학자 뢰플러 사망
▶1915년영국.프랑스군 갈보리반도 작전 실패
▶1898년최초의 일간지 매일신문 창간
▶1865년미국 남북전쟁 종식(남군 장군 로버트 리, 북군 장군 율리시즈 그랜트 장군에 버지니아서 항복)
▶1864년영국 전기공학자 페란티 출생
▶1855년한말의 의병장 손영각 출생
▶1821년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 출생
▶1785년서학의 옥(獄) 발생
▶1626년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 사망
https://youtu.be/1znJY5H2O_g
출처 네이버지식백과, 솦트리종려나무, 반가운의hi스토리
편집 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