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어 예능프로서도 맹활약하는 탤런트 한상진
가수 현미가 이모인 '예능 집안'… 무명 시절엔 김밥 배달원 등 고생
"연예인, 드라마·예능 가리면 안돼"
한때 김밥 배달에 여행사 광고지를 붙이러 다니던 청년 백수가 이제 드라마와 예능을 넘나드는 '제대로 된 연예인'이 됐다. 주말극 시청률 1위의 KBS2 TV '결혼해주세요'의 싱글파파 한경훈과 MBC TV '일요일 일요일밤에-뜨거운 형제들'의 수다쟁이 캐릭터로 주말 저녁 안방극장을 휘젓고 있는 이 남자, 탤런트 한상진(33)이다.2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별관에서 만난 그는 속사포처럼 첫 인사를 쏟아냈다. "'뜨거운 형제들'처럼 저 얘기하는 거 정말 좋아해요. 술·담배는 못하지만 밤새도록 이야기할 수 있어요."
반듯한 외모지만, 그는 사실 뿌리부터 예능인이다. 드라마 홍보차 출연한 몇몇 예능 프로그램에서 구수한 입담을 자랑한데다, 그의 이모는 가수 현미, 사촌누나는 노사연이다. 그런 그를 올 초 '일밤' 제작진이 찾았다.
"한 달 넘게 고민했어요. 처음엔 '예능에서 내가 뭘 보여주겠어?' 했죠." 하지만 3시간 넘는 제작진과의 면담은 그의 생각을 바꿨다. "출연자 뜻을 100% 존중한다고 하더라고요. 다시 한 번 조건을 걸었죠. '강요하지 말 것'."
- ▲ 드라마와 예능을 넘나들며 활약 중인 탤런트 한상진. 그는“전엔, 날‘하얀거탑에서 김명민 말고 그 의사’‘솔약국집 아들들에서 그 셋째아들’로 기억하던 사람들이 이젠‘한상진’이름 석 자로 알게 됐다는 게 예능 출연의 가장 큰 수확”이라고 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뜨거운 형제들'의 대본은 달랑 두 장이다. 덕분에 1회(70분) 녹화시간이 다른 예능 프로그램의 두 배인 18시간이 넘는다. "힘들 때면 생방송으로 드라마를 찍었다는 1960년대를 떠올려요. 그러면 예능이랑 드라마가 다르지 않게 느껴지죠."
'하얀 거탑'(2007) 이후 '이산' '솔약국집 아들들' '천사의 유혹' 등 출연 드라마마다 히트했다. 하지만 그는 "2007년부터 인생이 풀리기 시작했을 뿐"이라고 했다.
19살부터 대학로 연극 무대에 선 그는 2000년 SBS 톱탤런트 선발대회에 입상하며 '화려한 톱스타'를 꿈꿨다. 하지만 몇년 동안 돌아온 건 단역뿐. 그나마 1년에 한 작품도 안 됐다. "제일 싫었던 게 인터넷 사이트 가입할 때 써야 하는 '직업란'이었어요. 탤런트가 무슨 작품을 해야 탤런트라고 하죠! 우리 가족만 아는 탤런트인데. 하하하."
그래서 생계를 위해 안 해본 일이 없다. 김밥집 배달원부터 전화 상담원, 남산터널 통행량 조사요원, 버스전용차로 통행량 조사요원 등 거쳐 간 직종만 100여개가 넘는다. 오디션에 떨어질 때마다 '저것들(PD-합격자) 무슨 검은 커넥션이 있는 거 아닌가' 했다.
2006년, 결국 연기를 포기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런데 그때 받은 '하얀 거탑' 출연 제의가 그를 구했다. "그 드라마에 얼마나 죽기 살기로 매달렸는지 몰라요. 이거 아니면 난 진짜 끝이다는 생각이었죠." '진짜 의사 같다' '신들린 연기'라는 찬사가 쏟아지면서 데뷔 7년 만에 신인상을 받았다.
"'하얀거탑'은 절 잉태해준 작품이고, '이산'은 절 낳아준 작품이에요. 이제 '뜨거운 형제들'로 옹알이를 시작한 셈이고요." 그래서 그는 일부 네티즌이 쏟아내는 '재미없다' '하차하라'는 악플에 무신경하다. "'김·탁·수(김구라·탁재훈·박명수)'는 그런 시절이 없었나요? 전 이제 막 걸으려고 하는데, 그 전에 뛰어보라고 하는 격이잖아요."
2004년 스물일곱에 장가간 그의 부인은 알려진 대로 농구선수 박정은(33)이다. 힘든 시절을 견뎌준 고마움이 각별하다. '뜨형'에서 한상진은 "3점 라인에서 던지는 농구공, 안 맞아보면 얼마나 아픈지 모른다"며 공처가 흉내를 내곤 한다.
'딴따라'로 살아갈 인생, 드라마·예능 가리지 않는 게 의무라고 생각한다. "즐거움을 주기 위해 분칠을 하고 망가지는 걸 망설이지 않겠다"고 했다. "파스칼이란 철학자가 그랬죠? 8시간밖에 살 수 없는 듯 살아라. 전 그 8시간을 연기하거나 웃기면서 죽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