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수다] 지도인으로서 준비할 요법 ① 지도인에게도 ‘배우는 자세’ 필요하다
원기109년, 교단 제4대 시작의 첫해가 절반을 지났다. 올해는 세계적으로도 각종 선거가 많이 치러지는 해이고, 원불교 교단 역시 종법사 선거와 수위단원 선거가 예정돼 있어 어느 때보다 ‘지도자’에 대한 관심과 바람이 높다.
이에 원불교신문사에서는 소태산 대종사가 대각 후 처음으로 설한 최초법어에 담긴 ‘지도인으로서 준비할 요법’을 바탕으로 좌담을 진행했다. 본 좌담은 교단 구성원들 스스로 각자의 위치에서 어떤 지도자로 역할 해야 하며, 아울러 원불교가 세상을 선도하는 지도자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등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추진됐다.
7월 12일 줌(Zoom)으로 진행된 좌담에는 심기현 교도(서울교당, 숙명여대 교수), 이성일 교무(장성교당), 강동현 교무(군종교구사무국), 고혜경 교무(남중교당)가 함께했다. 본 내용은 총 2회에 걸쳐 게재된다.
(좌측 상단부터 시계 방향) 심기현 교도, 이성일 교무, 고혜경 교무, 강동현 교무.
교단 제4대의 첫해에 대한 소감과 다짐을 전한다면.
고혜경: AI시대, 탈종교시대라고 표현되는 미래사회가 원하는 종교로서 원불교가 어떻게 발맞춰 갈 것인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소태산 대종사께서 대수를 나눈 것에 대한 인지가 없다면, 3대든 4대든 5대든 중요하게 와닿지 않을 것이다. 역사의식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면 정체성을 잃을 것 같다.
이성일: 교단 제4대를 맞이하면서, 전산종법사님이 강조하시는 ‘상시훈련’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잘되지 않고, 만족스럽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나 소태산 대종사께서 법으로 밝혀주신 데에는 분명한 비전이 있을 것이다. 구호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시골 작은 교당에서도 해결점을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한 시기 아닌가 싶다.
강동현: 교단 제4대 설계특별위원회가 추진되고 여러 어젠다를 만들어낼 때 제1과제를 ‘교법 정신 회복’으로 설정한 것이 만족스러웠다. 현재 군종교구는 교단 4대에 ‘일원대도 교법으로 군 정신문화를 바꿔보자’는 방향 아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교단 제4대는 실질적으로 교법으로 더욱 체질화되고 드러나는 시기일 것 같다. 교단적으로 교법정신이 회복되고, 나아가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에 평화가 깃들길 염원하는 올해가 되길 바라고 있다.
심기현: 저는 4대 설계특별위원회를 준비하는 위원이었고, 현재 3대 평가위원을 하고 있고, 마침 제가 다니는 서울교당이 올해 3월 100년을 맞았다. 4대의 시작이 여러 가지로 인연이자 업이었다는 생각이다. 교단 제4대의 시작인 올해에 맞이하는 서울교당 창립 100년을 어떻게 뜻깊게 기념할까 고민할 때, 가장 먼저 근본적인 질문부터 했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안목을 가지고 서울에 오셨을 테니까. 덕분에 평생 잊지 못할 교단 제4대의 출발을 맞이했다.
‘지도인으로서 준비할 요법’은 소태산 대종사께서 대각 후 처음으로 설한 법문(최초법어)에 담겨있다. 그 의미를 살펴본다면.
강동현: 인간사에는 어떤 분야든 지도인이 있고 사람은 누구나 어떤 분야에서 지도인의 역할을 한다. ‘지도인’이라는 규정이 특정 소수를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라, 나를 포함해 우리 전체를 포함한 것이라 생각하면 이 법문이 지향하는 방향이 와닿지 않을까. 또, 최초법어에서 지도인으로서 준비할 요법은 가장 수식어가 적다. 하지만 짧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원불교인들이 마음공부를 하는 이유는 여래위에 오르기 위해서다. 여래위는 지도인이다.
이성일: 소태산 대종사께서 말씀하신 ‘지도인’은 〈정전〉 개교의 동기에 나온 것처럼 파란고해의 일체 생령을 낙원으로 이끌려고 할 때 지금처럼 어려운 상황이 있을 때 교무로서, 교도로서 스스로의 역할과 입장을 돌아보라는 말씀이 아닐까 생각한다.
심기현: 소태산 대종사께서 당시에 최초법어에 지도인으로서 준비할 요법을 담은 것을 저는, ‘낙원 세계 건설을 해나가는 데 꼭 필요한 자세’를 밝힌 것으로 생각한다. 낙원 세계 건설, 중생제도를 해나갈 때 당시는 교세가 매우 약했으니 일당백 해야 한다는 의미였을 수도 있고, 우리가 모두 부처라는 지도인이 될 때 중생제도를 할 수 있다는 당부도 담겼으리라 본다.
고혜경: 종교뿐 아니라 나라와 가정에도 지도자가 있는데 그 지도자가 바른 진리에 합당한 지도를 하지 않는다면 혼란해질 것이다. 종교는 사이비가 될 수 있고, 단체나 나라는 혼탁해지다가 결국 망하는 길로 가게 된다. 청소년들이 바로 알아듣든 알아듣지 못하든 소태산 대종사님의 가르침을 계속 전하는 이유는, 반복해 듣다 보면 의식하게 되고 결국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지도인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 어지러운 시국 상황 속에서 이 법문을 해주셨다고 생각한다.
‘지도인’의 자세와 태도에 대하여.
고혜경: ‘지도인’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뛰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뛰어난 지도인들이 모였을 때는 거기에서 또 수승한 사람이 지도인이 되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는 ‘나를 일깨워주는 사람’을 지도인으로 여긴다. 소태산 대종사께서 최초법어로 ‘지도인으로서 준비할 요법’을 밝혀주신 이유는, 지도인이라면 미래를 예단하고 전망할 수 있는 식견을 가져야 하기 때문 아닐까. 지도인은 지도받는 사람에게 ‘미래 세상은 이렇게 된다’는 확실한 깨침, 그리고 그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성일: 사람들은 ‘그런 게 없다’고 하면서도 은연중 마음속 기대나 바람을 갖고 산다. 그런 면에서 보면, 세상은 우리가 희망을 주길 바라고, 원불교 교무님과 교도님들이 세상에 감화와 비전을 제시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러지 못할 때 지도인으로서 불신받게 된다. 아직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족하게 대처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책임을 묻는 상황에 대해서도 충분히 응하지 못하는 점도 분명히 있다.
지도인으로서 준비할 요법 1조 ‘지도받는 사람 이상의 지식을 가질 것이요’에 대하여.
심기현: 솔직히 대학에서 학생을 지도하려면, 특히 박사과정 학생들을 지도하려면 좀 알아야 가능하다. 그래서 저도 상당히 많은 공부를 한다. 소태산 대종사께서 지도인으로서 준비할 요법 첫 번째에서 ‘지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는데, 저는 여기서의 ‘지식’을 ‘지도할 능력’으로 이해한다. 개교표어에서도 나타나듯,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당시 물질이 개벽되는 사실을 알아야 함을 전제하고 정신개벽을 이야기한다. 뭔가가 바뀌고 새로운 게 등장하는 걸 알아야 한다는 것 때문에 ‘지식’이라고 표현하신게 아닐까. 그런데 사실 사람들의 능력은 모두 다를 수 있다. 지도받는 사람 이상의 지식을 가져야 한다는 건 물리적인 능력을 더 갖춰야 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나를 낮추고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이 당연히 충분치 않다’는 자세도 필요하다는 의미 같다. 지도인에게도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성일: 마찬가지 의견으로, 단편적인 지식에 한정되는 조목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지도받는 사람 이상의 지식’이라는 표현을 ‘시대를 선도해야 한다’는 말과 매칭하며 돌아봤다. ‘우리는 지금 시대를 선도하고 있는가, 그냥 시대를 따라가고 있는가.’ 가까운 예로 <원불교교전>만 봐도 그렇다. 교전에 담긴 내용을 쉬운 세상의 언어로 제시하고 있나 생각해 보면, 반성이 된다. 그런 면에도 ‘지도받는 사람 이상의 지식을 갖춰야 한다’는 말씀이 적용된다. 또 하나, 혹 ‘지식’이라고 하는 범위에 고착돼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고혜경: 지도인이 왜 지도받는 사람 이상의 지식을 갖춰야 할까. 한 예로 QR코드 활용이 떠올랐다. 요즘 QR코드를 많이 활용하고, 전무출신훈련 평가서도 QR코드로 제출하게 한다. 하지만 그 사용법을 모르는 교무님들이 많다. 사소한 예이지만, 시대를 따라 학문을 준비하고 연마해야 지도받는 사람에게 이러한 지도를 해줄 수 있다. 사실 시대를 따라 학문을 준비하는 것은 어떤 기점에서 끝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지도인에게 있어 ‘지식’은 죽을 때까지 놓지 않아야 하는 무엇이다. 또, 시대를 따라 물질, 문화, 정신은 끊임없이 변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를 통해 미래 사회 진단을 배우고, 이를 바탕으로 아이들에게 미래 세상을 전망해주면서 마음공부나 신앙·수행의 필요성을 이야기해야 통한다.
강동현: 어떤 법문이든, 첫 조목은 해당 법문의 빌드업이라서 중요하다. ‘지도인으로서 준비할 요법’1조에서 우리는 ‘지식’이라는 말에 묶이면 안 된다. 소태산 대종사께서 말씀하신 ‘지식’은 ‘지식+지혜’다. ‘지도인은 지도받는 사람 이상의 지식과 지혜를 갖춰야 한다’는 말씀이다. 이 조항은 수신의 요법과 맞춰 해석하면 와닿는다. 수신의 요법 1조에서는 과학, 2~4조에서는 도학(삼학)을 말씀하신다. 실제로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도학은 모든 학술의 주인이고 모든 공부의 근본’이라고 명료히 정의했다. 지도인은 의사결정을 한다. 지도인이라면 먼저 대소유무의 이치에 걸림이 없어야 하고, 원불교의 지도인이라면 확실하게 삼학공부의 지자여야 한다. 군대에서 장군이 되기 전에는 보병, 기갑, 포병, 방공, 정보 등 여러 가지 병과 마크를 단다. 하지만 장군이 되면 병과 마크를 뗀다. 모든 분야에서 지자라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도학과 과학을 병진하되, 도학을 주 과학을 종으로 놓고 지도인으로서 실력 쌓는 노력을 해야 한다. (다음 호에 계속)
진행·정리=원불교신문사
기록=이현천 기자
[2024년 7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