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 밤에 [한만수]
문득. 지난해 추석날 밤에 뭘 했는지 기억을 더듬게 됐습니다. 집안에서 차남이라 차례를 지내지 않아도 항상 차례 음식을 모두 장만합니다. 덕분에 추석날에는 차례 음식을 중심으로 대충 한 끼를 때운다는 개념으로 저녁을 먹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처럼 가족끼리 둘러앉아 윷놀이를 하거나, 과일을 먹으며 담소를 하며 밤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여느 날처럼 저는 서재로 들어와서 글을 썼습니다. 아이들과 아내는 거실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텔레비전을 보며 밤을 보냈습니다.
추석날은 어렸을 때도 다른 날보다 오히려 더 무료하게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느낌이 든 것은 ‘추석’은 평범한 날이 아니고 명절이라는 관념에 특별한 날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저는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일어난 일들도 비교적 생생하게 기억하는 편입니다. 6남매나 되는 형제들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건이나 일들을 이야기하면 모두 그런 일이 있었냐고 반문합니다.
추석이 되기까지는 며칠 전부터 무슨 잔치를 기다리는 것처럼 손꼽아 추석이 오길 기다립니다. 막상 추석날이 되면 평소보다 무료한 낮을 보냈습니다. 오전에는 친척 어른들과 산소에 다녀오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는 구멍가게에서 파는 장난감 같은 것을 구경하거나, 만화책을 빌려다 보기도 하고, 틈틈이 정지를 오가며 이것저것 먹은 탓에 종일 배는 그득합니다.
라디오도 없던 때라서 초저녁부터 일찍 잠을 자거나, 이미 몇 번이나 읽은 만화책을 뒤적거리거나, 창문 밖으로 보이는 보름달을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추석으로 기억합니다. 종일 술을 드신 아버지가 안방에서 주무시면서 코를 고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끙!” 하며 어머니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만홧가게에서 빌려 온 만화책을 몇 번이고 다시 보고 있다가 깜짝 놀라서 안방으로 갔습니다.
아버지는 아랫목에서 술에 취해 벌게진 얼굴로 요란하게 코를 고시며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어머니는 막내를 껴안고 웅크린 자세로 주무시면서 가끔 신음을 토해 내시고 계셨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어린 나이였지만 더럭 겁이 났습니다. 저와 형이며 동생은 나이가 어려서 어머니 혼자 차례 음식을 만드셨습니다. 그저께는 산에서 솔잎을 따 오시고, 작은 추석 전날 아침에는 방앗간에 물에 불린 쌀을 이고 가셔서 떡쌀을 빻아 오시는 것부터 시작해서 어제 밤늦게까지 음식을 만드셨습니다. 게다가 막내는 젖먹이라서 쉴 시간도 없이 움직이셨습니다.
추석날도 새벽같이 일어나셔서 가오리며, 조기, 문어 따위를 솥에 찌거나, 탕국을 끓이시랴 차례상에 올릴 음식들을 접시에 담으랴 정신없을 정도로 움직이셨습니다. 차례가 끝난 후에는 친척분들이 드실 밥상을 따로 차리고, 산소에 가지고 갈 송편이며 시루떡이며 부침 등을 챙기시느라 밥도 제대로 못 드셨다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엄마! 아파?”
어머니가 너무 힘들어서 많이 아프실 것이라는 생각에 어깨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누가?”
어머니가 습관처럼 막내를 보듬어 안으시며 반문하셨습니다.
“엄마, 지금 아프다고 했잖아?”
“내가 언제? 어여 가서 자라. 엄마 대간하다.”
잠이 묻어 있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습니다. 저는 그때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윗방으로 갔습니다.
잠을 자다가 일어난 남동생은 송편을 그릇에 담아와서 먹고 있었습니다. 형은 놀러 갔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죙일 먹고도 배에 아직도 들어가냐?”
잠을 자다 일어나 송편을 먹고 있는 동생이 이유를 알 수 없이 미웠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의 남동생이 씩 웃으며 송편 한 개를 내밀었습니다. 저는 무심결에 송편을 받아서 먹었습니다. 갑자기 엄마가 돌아가시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불쑥 들어서 벌떡 일어나 안방으로 갔습니다.
어머니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방문을 열고 서 있어서 찬바람을 느끼셨는지, “애기 감기 들겠구먼. 들어올라믄 들어오고, 나가려면 어여 문 닫아라…” 잠결에 말씀하시며 이내 돌아누우셨습니다.
나이가 들어 군대에 갔습니다. 첫 휴가를 받아서 집에 왔는데 부모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빈집 마루에 앉아서 빨랫줄에 걸린 흰색 빨래를 무심히 바라봤습니다. 빨래가 기저귀처럼 보이면서 초등학교 2학년 추석날 밤에 본 어머니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추석날 밤에 주무시는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군인으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컸던지 모르지만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때마침 어머니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들어오셨습니다. 마루에 걸터앉아 소리 없이 울고 있는 저를 보고 깜짝 놀라서 달려오셨습니다.
“도망 나왔냐?”
“엄마두 참! 휴가 나왔단 말여. 첫 휴가!”
“그람 왜 우냐? 엄마 봉께, 반가워서 우냐?”
어머니의 말씀에 저도 모르게 어머니를 꽉 껴안았습니다. 눈물을 그쳐야 하는데 주책없이 눈물이 자꾸 났었습니다. 눈물 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에는 흰 구름이 무심히 떠가고 있었습니다.
오늘 칼럼을 쓰기 시작할 때는 원래 추석 전 날인 ‘작은 추석’에 대해서 쓸 생각이었습니다. 소설 쓰던 것을 중단하고 칼럼을 써야겠다고 자세를 바로잡는데 문득 추석날 밤이 떠올랐습니다.
아버지도 명절이 되면 다 큰 자식들을 바라보면서 종일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쓸쓸함을 달래려고 술을 드셨을 겁니다. 저도 그러한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