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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에 따라 샤티엔의 검은 머리카락도 춤추듯 찰랑였다.
허리께까지 오는 긴 머리가 잠잠해진 바람을 따라 얌전해졌을 때
샤티엔은 낮고 느긋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봐. 그만 좀 인정하지 그래."
"아냐! 난 죄지은 것따위 없단 말이다! 왜들 이러는 거야! 너,너희들 뭔데 자꾸..커억..!"
"거참. 시끄럽네."
"꼭 죄지은 놈들이 말이 많은 법이지."
"죄지은 게 없다니까! 저리 꺼져!!"
"헤에. 꺼지라는데요, 아가씨?"
어깨까지 오는 금발의 청년이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으며 샤티엔을 돌아봤다.
샤티엔은 붉은 눈동자를 차갑게 빛냈다.
창백하다고 할 수 있을만큼 하얀 피부와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만큼의 뛰어난 외모를
지녔지만 인형처럼 감정없이 차갑게만 빛나는 눈동자에 샤티엔의 인상은
그저 차가울 수 밖에 없었다.
섬뜻하기까지한 샤티엔의 두 눈을 보며 여태까지 죄가 없다며 발악하던 남자는
새파랗게 질려 벌벌 떨기 시작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살기가 그를 짓누르고 있었던 탓이다.
"너..너희들은 도대체 누구냐..!!"
철퍼덕, 자리에 주저앉으며 남자가 물었다.
그에 금발의 청년...아니 젠은 싱긋 웃으며 친절히 설명에 들어갔다.
"아가씨와 난 말이지. 사신(死神)이라고 들어봤나 모르겠네. 당신같이 못된 사람 잡아가는
녀석들이라고만 알아둬. 어차피 이제 죽을건데 알아서 뭐해, 아저씨."
방긋방긋 웃고있지만 두 눈은 감정없이 차갑게 빛나는 젠을 마주하며
남자는 결국 울기 시작했다.
아까전만 해도 죄가 없다던 남자는 울며불며 사정했다.
"자...잘못했습니다! 다,다신 그러지 않을테니 하,한번만! 딱 한번만 봐주십......크어..억...컥."
추한 모습을 보이며 사정하는 남자의 왼쪽가슴을 뚫고 나온 식칼.
피에 젖어 붉게, 붉게 물들어갔다.
"식칼은 어디서 난거야, 세인?"
"고맙게도 부엌에 떡하니 있지 뭐야. 그것도 아주 날이 날카롭게 선 게 말이야."
세인이라 불린 여자가 칼 맞고 쓰러진 남자의 뒤에서 느릿느릿 여유롭게 걸어왔다.
갈색의 머리를 틀어올리고 붉은 기모노를 입은 여자는 매혹적인 미소를 흘리며
아래에 쓰러진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하여간. 인간들이란."
"세인. 너도 한때는 인간이었잖아."
"그건 19년 전 일이고."
"이것부터 지옥으로 흘려보내고 우린 이만 돌아가지."
"아. 네, 아가씨."
샤티엔이 뒤돌아서자 젠과 세인도 그 뒤를 이었다.
물론 죽어버린 남자를 지옥으로 모셔다주고 말이다.
"어서오너라. 이번 일도 잘 해결하고 온게냐?"
"사신 일 한두번입니까, 할머니."
"그렇기야 하다만은. 샤티엔. 의뢰가 또 들어와있다. 이번엔 여중생이 의뢰를
해왔더구나."
예쁘게 꾸며진 이층집.
사신들의 집이었다.
사신 이미지에 좀 맞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현재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이
마게가 아닌 인간계이므로 인간들에게 맞춰갈 수 밖에 없었다.
굳이 인간계에서 일하지 않아도 되지만 할머니와 젠의 고집이었다.
인간계도 살만하다며 여행차원에서 인간계에서 일해보자고.
그래서 지금 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인간계에서도 한국의 수도 서울이었다.
"이름이... 강희영이라고 하는데. 이 근처 태안고등학교를 다닌다더구나.
뭐, 학교문제는 아니고... 자기 아버지 되는 녀석이 요 2년동안 성희롱에 구타까지
난리가 아니라더구만. 어떻게 좀 해달라고 의뢰 들어왔다."
"하여간 인간들이 더 무섭다니까. 딸 가지고 그러고 싶나 몰라."
"그렇다고 사신에게 의뢰해서 죽이려드는 딸도 무섭지."
할머니, 젠, 세인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샤티엔은 그저 침묵.
그런 샤티엔에게 할머니가 의아한 듯 물었다.
"무슨 일 있는게냐?"
"마계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마계에서?"
"...별건 아니고..."
"응?"
뜸을 들이는 샤티엔을 재촉하는 세 사람....아니, 세 사신.
"할머니가 지금 필요하다고 마계로 올라오랍니다. 이무래도 무슨 문제가 있는 듯 합니다."
"마계로? 이때동안 한번도 안찾던 놈들이 왜 갑자기?"
"그쪽 말로는 지옥에 있던 놈이 탈출을 감행했다던데요."
"간 큰 놈이로군. 나중에 어떻게 되려고."
"일단 가보시죠. 의뢰 받는 건 우리끼리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러지, 뭐. 쯔쯧. 간큰 놈 하나 보내게 생겼구만."
"천계에서도 이미 와있다고 하니 빨리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았어."
간단히 대답하던 할머니가 모래처럼 흩어져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셋은 익숙하다는 듯 다른 것에 신경을 쏟고 있었다.
"강희영이라... 어떻게 좀 해달라니 정확히 죽여달라는 거야 아니면 그냥 따끔히
혼내주란 말이야?"
젠이 투덜거리듯 말하자 샤티엔은 단호하게 말했다.
"죄지은 놈에겐 죽음 뿐이다."
어느새 해가 뜨려하고 있었다.
"좀 자두는 게 좋을 것 같군. 강희영양 만나보는 건 오후정도로 하지."
"아아~ 피곤하다."
"니가 뭘 한게 있다고 피곤해?"
"시끄러워."
젠과 세인이 티격태격거리며 각자 방에 들어갔다.
샤티엔도 곧 그 뒤를 따라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사신들의 집은 아침이 밝아오는데도 불구하고 조용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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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는 지옥이란 의미와 같고 천계는 천국이란 의미와 같아요.
판타지처럼 마족이나 천사같은 인물들은 아니고..
제 나름대로의 인물들을 넣었답니다.
마계에 속한 사신이란 자들은 인간이었을 적 자살을 한 사람들이구요.
하는 일은.. 뭐 읽으면서 느끼셨듯이 의뢰를 받거나 아니면 직접 나서서
죄지은 자들을 벌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직접 나서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대부분 인터넷 같은 통신수단으로
의뢰를 받아 일을 처리하곤 합니다.
(직접 나서서 죄 지은 인간들 처치하고 다닌다면 범죄는 일찍이 사라졌겠죠.)
미리 이런 것들을 알려드리고 소설 이어갑니다.
(주인공인 샤티엔의 이름은 중국어로 여름이란 뜻입니다.)
좋은 하루 되시고 리플... 감사히 받아먹겠습니다(?)하하하하.
불펌은 사절이에요.// |
첫댓글 재밌어요 담편 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