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혼의 가을 길
홍 재 석
가을은 만물이 영글고 수확의 풍요로움을 맛보는 계절이 아닌가. 국화향기 그윽한 산야의 아름다운 풍광은, 많은 사람들에게 손짓을 하면서 산과 들로 불러 모으며 마중을 가고 오게 한다. 우리네 인생도 청춘시절에 꽃을 곱게 피우고 성실하게 살았다면, 세상의 사리 분별(私利 分別)도 자신의 나이와 성숙만큼 할 수 있으리라.
희망의 꿈을 키우던 젊음의 만족한 기쁨인 만열(滿悅)도 세월 따라 둥글둥글하게 변하고 있지 않을까.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도 더욱 따뜻하게 느껴질 것이다. 남들이 나를 보는 눈과 내가 나를 보는 눈은 다르게 비추어 지리라.
올해도 처서의 계절이 지나고 가을 수확의 기쁨인 중추가절 만월심의 추석은 어느새 우리들 곁으로 다가서고 있다. 누구나 분주하며 자난 날의 가을빛을 뒤돌아보게 한다. 팔순의 노학을 하는 나도 이제는 왠지 서글픈 생각이 들고, 주책으로 여겨지며 부끄러운 마음에 주춤거려진다.
황금빛 들판에서 빈병을 들고 다니며 메뚜기 잡던 소년시절이 생각난다. 한마리라도 더 잡으려고 쌍 붙어있는 메뚜기를 먼저 잡았다. 지금 같은 내 마음이라면 쌍 붙은 메뚜기는 아예 잡지 않았을 터인데 !
외로워서 울고 있는 귀뚜라미와 풀벌레 소리도 더 측은스럽게 들었을 것이다. 우리 집 밭둑 감나무에 달린 빨간 홍시를 따서 친구와 나누워 먹었을 터인데, 지나간 추억이 새롭고 후회스러움이 더 밀려온다. 젊은 시절에는 앞뒤를 뒤돌아볼 여념도 없이 가을철에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바쁘게 살아왔다.
그 와중에서도 아내와 힘겨운 나만의 노후터전을 키우고 매년 가을이면 푸짐한 수확의 즐거운 맛도 보았다. 하지만 공직퇴임 후 귀향(歸鄕)하고 아내의 병수발과 간호의 마지막 선물이 된, 수필등단은 희수의 나이에 한국문인 에서다. 그해 가을에 말도 못하고 홀로 신인문학상을 타로 간 나의 심정을 누가 알리요.
한편 50여 년간 이 고장에서 살아온 인연으로 나는 푸른 솔바람의 덕을 많이 보았다. 팔순의 문턱에서 7인공저의 첫수필집을 함께 펴내었다. 졸작이지만 노력 끝에 얻은 정은문학상과 작년에 제1회 우수작가상을 받은 사연은, 누가 머라고 하더라도 나에게는 보람으로 꿈만 같다.
또한 나의 팔순의 첫수필집 책이 중매를 서더라. 지난 초가을에 허전한 외로운 마음에서 벗을 만난 우연한 인연은 칠갑산 단풍처럼 곱게 물들이고 싶었다.
그래서 작년 가을이 나에게는 아름다운 낙조처럼 내일의 황홀한 꿈이 닦아 오더라. 올해에도 황혼의 가을 길은 더도 말고 작년 같았으면 한다.
글도 다작을 하다보면 대표작도 나올 것이다. 처음부터 수작을 창작한다는 것은 보통사람으로서는 은감불원(殷鑑不遠)이 아닌가. 우리네 인생도 살다보면 희로애락이 있는 법이다. 어찌 항상 즐겁고 기쁘기만 할까?
하늘과 땅은 조화를 이루고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듯이, 우리네 인생도 변해가는 계절과 환경에 따라 묵묵히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남녀 간 서로의 만남도 조화로우면 노소를 막론하고, 꿀맛 같은 사랑의 기쁨으로 세상을 보다 즐겁게 보낼 수 있으리라. 누구는 별수가 있는가. 가을 바람에 홀로 있는 외로움의 쓸쓸한 황혼 길은 마음고생과 삶의 짐이 된다. 모든 사물과 세상을 보는 눈이 긍정적이며 너그럽게 관용(寬容) 하라 넓은 마음으로 허물을 다 포용해 줄 수 있으리. 잔잔한 호수의 물결처럼 기쁨의 감동을 안겨다 주리라. 그래서 만사종관(萬事從寬)이면 기복자후(其福自厚) 라 했다.
가을 날씨의 풍광은 언제고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간다. 이성간에는 지난날 시골 사랑방의 화롯불처럼 쑤석거리지 말고 다독거려 주어야한다. 따뜻한 보람을 고맙게 여기며 여생을 포근한 마음으로 보낼 것이다. 멋도 부리고 상량한 목소리도 자주 들려주며 자신감을 가지고 노력해야만, 황혼의 가을 길 같은 소망도 얻을 수 있는 법이다.
오늘날의 젊은 남녀들을 바라보라. 우리들이 경험하지 못한 발랄한 생각으로 세상을 온통 곱게 장식하고 있지 않는가. 어찌 보면 부럽고 쑥스러우며 한스럽기도 하다. 나이를 먹었다고 소외되고 기죽지 말고 세상을 바로보자. 60이던 70이던 80이라도 돋진 개진이 아닌가. 다 청초하며 현숙하다.
우리네 삶도 가을 길 같은 인생이 지나가고 나면, 끝자락에서 노망으로 벽에 칠하는 한설(寒泄)만이 예고 없이 찾아온다. 세월의 수레바퀴는 절대로 우리들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나약해진 육신은 추풍낙엽이 떨어지듯이 나목이 되기 전에, 촌음의 시간과 여생에서 말동무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 누구나 남은 여정(餘情)을 가지고 위풍당당하게 황혼의 가을 길을 찾아야 한다. 나 자신이 현실에 맞추면서 살아가야만 노인대접을 받는다. 노년의 인생도 더욱 보람 있고, 만추의 단풍 길처럼 곱게 물들어지면 아름답게 보이며 더 즐거운 여생이 되지 않을는지.
첫댓글 "만추(晩秋)의 단풍처럼 곱게 물들어지면 아름답게 보이며 더 즐겁게 여생을 살아가리라." 즐겁고 보람된 여생을 순항하소서. 글 잘 읽었습니다.
가을빛의 아름다움을 봅니다 그리고 그 빛이 건네는 의미에 동감하며 읽엇습니다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요
황홍의 가을맞이 주저하지 않으시고 과감하게 행복을 쟁취하신 선생님의 글 보면서 우선 대단하신 분이라 생각하옵고 젊은이 못지않은 싱그러운 삶의 추구를 갈구 하신대로 거침없이 용기를 내심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매끄럽고 잘 정리된 글 솜씨에 감동하며 감상 잘하고 배우고 갑니다. 홍 회장님 감사합니다.
잔잔한 호수의 물결처럼 기쁨의 감동을 안겨다 주지 않을까.~ 감사합니다.
문우님들 고맙습니다. 추석이 닥아오니 왠지 서걸퍼 노년의 부그러운 늑두리를 올렸습니다. 감사합니다.
만추의 단풍 길처럼 곱게 물들어지면 아름답게 보이며 더 즐거운 여생이 되지 않을는지.<---열심히 운동하고 즐겁게 살면 여든이 대수겠습니까. 잘 읽고 갑니다.
멋지고 아름다운 황혼을 사시는 선생님! 내내 건강하시고 행복하소서...
국화향기 따라 아름다운 노 향의 꽃향기가 외로운 내 가슴속에 찾아들었다. 우연의 사연은 실타래 같이 술술 풀리고, 벗과 대화를 나누니 측은지심의 정 바람이 먼저 일더라.
멋지고 아름다운 황혼을 사시는 선생님 짝짝 박수를 드립니다. 건강하세요.
멋도부리시고 향기넘치는 이야기 주고받으면서, 건강하시게 생을 즐기시는 위풍당당한 노익장이십니다.
좋은 글, 즐겁게 부러움 감추며 읽고 나갑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