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국 외 2편
이음
우리가 기도할 때
그것이 종교가 아니고
염원이 아니고
하나의 형태일 때
두 눈 꼭 감고
기도하는 너의 모습을
곁눈질로 보고서
너라는 사람이
성실하고 숭고한 것임을
배워야 했지
나의 구원은
감은 눈과 작은 손
중얼거리는 입술
너의 진실에서 흘러나온
경구를 믿고 몸짓을 믿고
마음을 믿으면 나는
어느 세계에 도착해 있을까
교정과 초여름의 작은 교실들
교정을 걷는 우리가
몇 년도 몇 학기 사람들과 비슷할진 모르겠어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내가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면
비행하는 목련 잎과 그 순간을 밑줄 치려는
초여름 그리고 작은 과실들
눈부시게 틔워진 마음이 있다면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았다면
너를 듣고 있었다고 대답해 줄게
변하는 건 없어
너는 내가 듣는 유일한 계절 학기야
느리게 걷고 느리게 대화하고
느리게 서로를 껴안지
가능하면 느리게 감각하고 싶어서
도서관에선 달고 오래된 냄새가 난다
봄밤
텐테이블에서 한 여름의 분위기가 돈다
어제는 능소화가 발아하는 꿈
매일 같은 시간 골목을 지나가는
자전거 탄 소녀
소녀의 정수리 위로
햇빛이 피고 저문 자국이 선명하다
헤드셑이 밤의 온도를 더듬는 중에
능소화는 태양을 닮은 기지개 켤 준비를 하고
소녀는 페달을 힘차게 구른다
턴테이블이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다정하고 일정하게 인사한다
같은 시간 같은 기분으로
내일이라는 재즈풍 희망은
골목 곳곳을 순회하며 울려 퍼진다
소녀의 가벼운 옷차림을 떠올리는 일과
언젠가의 오르막길에서 흘릴 땀을 응원하는 일
전부 봄밤의 일이다
― 이음 시집, 『복숭아 판타코타식 사랑 고백』 (꿈공장플러스 / 2022)
이음
1993년 전주 출생.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다. 전주에서 카페 및 글쓰기 교습 공간 〈반영들 @reflections.space〉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