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붓꽃
2021년 4월 21일(수), 맑음, 서울식물원
지난 3월 17일에 올린 ‘매혹적인 꽃향기 속에서(238)’에 이사(李斯, BC ? ~ BC 208)의 「간축객서(諫逐客書, 외
국 출신 관리의 추방에 대해 간언한 글)」을 함께 올린 바 있다. 이에 대간거사 님이 다음의 댓글을 달아주셨다.
“진시황의 편협함을 질타한 이사가 정작 자신은 한비자를 모함해 죽였으니 아이러니합니다. 나를 포용해주길
바라듯 남을 포용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요. 세상 잘 살기 참 어렵습니다.”
나도 대간거사 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는데, 우연한 기회에 중국 드라마 「대진제국 4」를 보게 되고, 허이
(何憶)의 『중국역사암호 44』(은행나무, 2010, 서아담 옮김)를 읽게 되었다. 여기에서 한비의 죽음을 자세히 다루
기에 그 내용을 소개한다.
2. 붓꽃
3. 붓꽃
4. 붓꽃
중국 드라마 「대진제국 4」에서는 한비의 활약과 한비와 이사와의 관계, 그의 죽음을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다음은 이 드라마 내용의 요약이다.
진왕은 한비를 흠모한 나머지 만나보고 싶어 진나라에 초청한다. 한비는 진나라에 왔다가 오래 머무는 동안 조
국인 한나라가 위태롭게 되자 간첩행위를 하고, 그 죄로 옥에 갇히게 된다. 진왕도 어쩔 수 없이 대신들의 의견
을 받아들여 진나라 법대로 한비를 거열형에 처하도록 하고 옥에 가둔다. 이사는 진왕에게 진언하기를, 한나라
는 곧 망할 텐데, 그러면 한비가 오갈 데가 없으니 대왕께서 중용하시면 된다고 한다.
그러나 한비를 거열형에 처하고자 하는 진왕의 의지가 변함이 없음을 알아차린 이사는 옥으로 한비를 찾아가
참혹한 거열형을 당하느니 독주를 마시게 한다. 뒤늦게 진왕은 지난날 이사가 한비를 죽이지 말라는 진언을 깨
닫고 사면령을 내렸으나 이미 한비는 죽은 후였다. 상경 요고와 정위 이사는 서로 자기가 한비를 죽게 했다고
한다. 요고는 한비가 살아서는 한나라를 멸망케 하기 어려우며, 이사는 자기가 한비의 재능을 시기해서 죽게 했
다고 한다.
5. 붓꽃
6. 붓꽃
7. 모란
8. 스트렙토칼푸스 삭소롬(Streptocarpus saxorum)
9. 테트라토니아 다크 프린스(Tetratonia Dark Prince)
허이(何憶)는 『중국역사암호 44』에서 ‘진시황의 진짜 아버지는 누구일까?’로 시작하여 ‘간신의 대명사 화신의
몰락’ 등 44개를 다루며, 그중 24번째로 ‘한비는 왜 살해당했을까’를 다루고 있다. 다음은 그 내용을 요약하였다.
한비(韓非, 대략 기원전 280년 ~ 기원전 233년)는 한(韓)나라 귀족이었고 걸출한 사상가다. 형명과 법술의 학문
을 좋아했다. 후대 사람들은 그를 한비자라 불렀는데, 그와 이사는 순자(荀子)의 제자였다고 한다. 진왕은 측근
에게 ‘과인이 이 사람과 교유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진나라를 방문
한 한비는 진왕의 대접은커녕 도리어 옥살이를 하다가 끝내는 죽음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그의 사망 원인에 대
해서는 서한 시대부터 의론이 분분했지만 지금까지 학계의 정설로 인정되는 것은 없다.
10. 루엘리아(Ruellia)
11. 매발톱(원예종)
12. 튤립
일설에서는 한비의 죽음이 이사의 시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사기≫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의 기록에 따르면, 한비는 눌변이었지만 명문으로 이름나 있었다. 이사
도 한비의 글이 자신보다 낫다고 스스로 인정할 정도였다. 진왕이 한나라를 공격하게 되자 한왕은 한비를 진나
라에 사신으로 파견했다. 한비를 얻은 진왕은 매우 기뻐했다. 그 모습에 이사는 질투를 느꼈으니, 자신의 자리
를 한비에게 빼앗길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급기야 이사는 요고(姚賈)와 함께 진왕의 면전에서 한비의 험담을
하며 그를 사지에 몰아넣었다. 한비는 옥에 갇히게 되고 얼마 후에 음독자살을 해야 했다. 그에게 독을 가져다
준 사람은 바로 이사였다.
≪사기≫ 〈진시황본기〉에도 ‘한비가 진나라 사신으로 파견되자 이사가 계략을 꾸며 한비를 억류하여 운양(雲
陽)에서 죽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컨대 사마천은 한비가 이사의 질투로 모함을 받아 죽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13. 튤립
14. 튤립
15. 병아리꽃나무
16. 봄맞이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상술한 견해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사기≫의 기록은 역사의 진실을 왜곡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사 등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고 있다고 보았다. 그 근거는, 한비의 글을 읽은 진왕이
‘이 사람과 교유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말할 때 한비를 진왕에게 추천한 사람이 바로 이사였
다는 점이다.
만약에 자신보다 현명하고 능력 있는 한비를 시기하는 마음이 이사에게 있었다면, 왜 굳이 그런 쓸데없는 짓을
했겠는가? 심지어 한비가 감옥에 갇혔을 때조차도 여러 차례 ‘한비의 말’을 인용하며 그의 책략을 수용하라고
권했다. 이사가 한비를 계속 존경하고 있었다는 걸 증명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음해설은 터무니없는
말이다.
17. 모란
18. 분홍할미꽃
19. 분홍할미꽃
20. 분홍할미꽃
21. 분홍할미꽃
또 다른 설은 한비의 죽음이 비록 이사나 요고와 관련되어 있지만 결정적인 원인은 진왕의 의심 때문이었다는
주장이다. 진왕은 ‘인정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고 호랑이와 이리 같은 마음을 지녔다’고 했다. 비록 진왕이 한
비의 학설에 경도되었다고는 해도 그를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진왕은 한비의 방문에 의혹을 품었
고, 그래서 악랄할 수단을 썼을 것이다.
또 ≪사기≫에는 한비가 죽은 뒤 진왕이 매우 후회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진왕은 한비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
지도 않았을 뿐더러 이사와 요고의 무함에 대해서도 추궁하지 않았다. 당시 이사를 죽인 것인 진왕의 뜻이었다
는 것을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진왕은 한비의 저작을 줄곧 극찬해 왔다. 진왕은 한비를 얻기 위
해 부심했으며, 군사를 동원하여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불사했다. 한비를 넘겨주도록 한나라에 압력을 넣고서
야 원하는 인재를 얻을 수 있었다. 진왕이 겉으로만 한비를 좋아했고, 곁에 두게 되자 의심이 생겨 중용하지 않
았을 뿐 아니라 사지에 몰아넣었다고는 볼 수 없다.
22. 닻꽃(Halenia corniculata (L.) Cornaz)
23. 튤립
24. 튤립
세 번째 설은 한비의 죽음이 당시 진 ․ 한 양국의 정치적 투쟁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다. 결코 이사의 질투와
모함에 의한 죽음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한비의 죽음은 일종의 자업자득으로, 진나라의 통일 대업을 백방으로
방해한 탓에 죽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비는 진나라의 군신 관계를 이간질 시키고, 초, 연, 조 등의 나라를 연합해 진나라에 맞서게 하였다. 한비는
진왕의 면전에서 외국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던 요고를 험담했다. ‘왕의 권세와 국가 보물로 사사로이 제후들과
친분을 쌓고 있다, 진나라의 재물로 4개국 군왕에게 뇌물을 주었고, 양나라의 대도요, 조나라에서 쫓겨난 신
하’라고 비난했다. 진왕이 요고를 불러 힐문하자, 요고는 청산유수로 답변했다.
네 명의 군주에게 뇌물을 준 것은 국익을 위한 거였다고 누누이 강조하면서 만약에 사사로이 친분을 쌓았다면
구태여 진나라로 돌아올 필요가 있었겠느냐고 되물었다. 요고는 자신의 출신에 대해서도 조금도 숨기지 않았
다. 또한 강태공, 관중, 백리해 등을 예로 들면서 출신이 미천하고 평판이 나쁘다고 해서 ‘명군’에게 충성을 다하
지 못하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이에 진왕은 요고의 말을 믿고 한비를 없앤 것이다. 중국 드라마 「대진제국 4」
는 이 견해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25. 흰제비꽃
26. 붓꽃
27. 앵초
상반된 의견을 주장하고 있는 논자는 이 설의 결함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첫째, 유향의 《전국책 》은 잡
다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어 이곳저곳 허점이 드러나 있는 반면, 사마천은 성실하고 신중한 태도로 사료를 감별
하여 《사기》에 기록했다는 점이다. 둘째, 한비는 말더듬이라서 말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한나라에 있
을 때 ‘누차 글을 올려 한왕에게 간했다’던 그가 어떻게 진왕의 면전에서 그처럼 격렬한 변론을 펼 수 있었을
까? 그러므로 한비의 죽음이 자업자득이었다는 설은 미덥지 않다.
그밖에도 몇 가지 신선한 견해도 있지만 역사적인 근거는 없다. 일설에는, 한비의 죽음은 이사와의 권력투쟁에
서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한비를 애국자라고 보면서 ‘한나라를 존속시키기’ 위해 죽은 거라고 생
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한비와 이사는 모두 전국시대 유세객이었고, 진나라에 가서 이사와
권력투쟁을 벌이다가 한비가 패배한 것이라고 한다.
또 다른 견해에 따르면, 한비의 죽음은 문인의 성격 때문이었다고 한다. 중국 지식인의 최대 결점은 문장마다,
심지어는 글자마다 정치적인 심오한 뜻을 담아내는 것이다. 정치를 할 때와 글을 쓰는 것을 동일시하여 경전
의 어구나 고사를 인용해 장광설을 늘어놓을 줄만 알았지, 인간의 본성, 이해관계, 권력구조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한비는 자신의 저서에서 특정 기준이나 법령에 따라 아무개는 죽어 마땅하고, 아무개는 유배해야 한
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지식인의 의기였을 뿐 구체적으로 특정인물을 겨냥한 것은 아니었다.
정치가로서 진왕은 한비의 학설에 경도되어 있었지만 그를 의심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진왕이 필요했던 것은
자신의 통치 야심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도구였다. 그런 도구가 될 수 없는 인물은 제아무리 학문이 깊어도 존
재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비의 죽음은 중국 봉건 역사에서 문인이 정치에 참여한 비애라고 볼만하다.
28. 인디언앵초
29. 인디언앵초
30. 쥐오줌풀
세 번째 견해에 따르면, 한비가 죽은 것은 유세객의 도의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자(楊子)는 《법언(法言)》
에서 한비가 죽은 게 ‘도에 맞지 않은 말을 했기’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도는 천지자연의 법칙, 예의, 인덕
등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한비가 진왕에게 유세했지만 그의 사상은 도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사마광(司馬光)은 한비의 죽음에 대해 평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군자는 자신의 육친을 가까이한 후 남의 육
친을 가까이 하고, 조국을 사랑한 연후에 남의 나라를 사랑한다고 들었다. 이 때문에 그 공로가 크고, 평판이 좋
으며, 천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한비가 진나라를 위해 계책을 올린 것은 조국을 멸망시켜 자신의 주장을 증
명하려는 것이다. 이런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은 백 번 죽어 마땅하니, 동정할 가치가 있으랴!’.
한비의 죽음에 관한 논쟁은 예부터 격렬했다. 어쩌면 진실된 역사는 늘 줄이거나 삭제한 갖가지 글 속에 숨어
있기 때문에 그 진상을 영원히 알아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한비의 죽음, 천고의 현안이다.
31. 딸기꽃
32. 디바리카타플록스 ‘챠타후치’(Phlox divaricata subsp. laphamii 'Chattahoochee'
33. 흰제비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