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장식품이 된 엄마의 반닫이에 나비경첩 달려 있다 그렇다면 꽃잎에 앉은 나비는 꽃 피는 일과 꽃 지는 일 사이를 지키는 생물의 경첩일까 한참 앉았던 나비가 날아가고 활짝 열린 꽃의 내부 꽃과 나비는 같은 계절 엄마에게 나는 꽃이었는지 몰라 날개에 못을 박아가며 지키고 싶었던, 환하게 피우고 싶었던 꽃 이 꽃에서 저 꽃으로 가볍게 옮겨 앉는 나비처럼 이승에서 저승으로 속절없이 자리를 바꿔 앉던 서른아홉 살의 엄마, 그 날 반닫이의 나비도 날아오르려 했을까 꽃 한 송이에 나비 한 마리 임시로 꼭 닫고 있는 문처럼 한 쌍의 계절 나비들이 떠난 후 여름은 분분해지고 다시 가을이 차곡차곡 접힌다 나비가 날아간 반닫이 속 접힌 채 낡아가는 옥빛 치마저고리 한 벌
명절이 지나갔다. 가족들이 모이는 날이면 없는 사람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지고 아프다. 내겐 영원히 늙지도 않으시는 어린 엄마가 있다. 많이 그립고 보고 싶다. 모든 사람들에게 엄마는 집이고 고향이고 안식처이다. 나비경첩처럼 날개에 못을 박더라도 지키고 싶은 것이 자식이란 걸, 자식을 키워보니 알겠다. 엄마가 살아계신 사람은 우주를 얻은 것보다 든든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오늘은 엄마에게 전화 한통 어떨까? 사랑한다고, 건강하시라고, 오래 사셔야 한다고, 잘 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쑥스러운 고백을 해 보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