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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생명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
고린도전서 1:10~6:20은 “고린도 교회 소식에 대한 답변”입니다.1)
고린도전서 1:10~4:21은 “고린도 교회의 파당과 분열”을 말합니다.2)
이 단락은 파울과 반대 세력의 갈등을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이 단원은 고린도 공동체 내의 내적 경쟁들을 다룹니다. 그는 그들에게 그들이 어려움에 부닥친 것을 이해시키려고 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분열되어 있었습니다.3)
1. 파울은 고린도에 있는 교회 형제들을 권고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10~17절에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고하니 너희가 모두 같은 것을 말하고 너희 안에 분열들이 있지 아니한 것이나, 너희가 같은 정신(mind)과 같은 의견 안에 완전하게 되는 것이라. 이유는 그것이 나에게 너희에 관하여서 분명하게 함을 받았기 때문이니, 클로에의 자들에 의하여 다툼들이 너희 안에 있는 것이 그러하였음이라. 너희 각자가 이야기하기를, ‘나는 파울의 것이라’ 그러나 ‘나는 아폴로의’ 그러나 ‘나는 베드로의’ 그러나 ‘나는 크리스트의 것이라’라고 말하나니. 크리스트께서 나누어졌느냐 파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매달렸느냐 혹은 파울의 그 이름 안으로 너희가 세례를 베풂을 받았느냐? 두 사람을 아니면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하였음을 하나님께 감사하니. 너희가 나의 이름 안으로 세례받았음을 말하지 아니하게 하기 위해서나. 어떤 다른 자에게 내가 세례를 베풀었는지 아닌지를 알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세례를 베풀게 파송되지 아니하고 복음을 전도하게 그런 것임이니, 말의 지혜에 아니니 십자가가 무효로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서라”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파울은 그들을 “형제들아”라고 부르면서 권고합니다(고전 1:10). 우리의 주 예수 크리스트(Christ)의 이름을 통해 권고하였습니다. 그들이 같은 것을 말하고 그들 가운데 분열이 있지 아니하기를 권고하며 그들이 같은 정신과 같은 의견 가운데 완전하게 되기를 권고하였습니다.
파울은 주 예수 크리스트의 이름에 의해 고린도 교인들을 권고하는데, 파울이 권고한 내용은 그들 가운데 분열이 있지 아니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분열(division)”이라고 번역한 헬라어(스키스마)는 “쪼개기”(split), “잡아 찢기”(tear), “분열”(division)을 의미합니다.
“분열(分裂)”은 “나눌 분(分)”과 “찢을 열(裂)”입니다. “찢을 열(裂)”에 “옷 의(衣)”자가 들어갑니다. 옷을 찢어 나누는 것이 “분열(分裂)”입니다. 옷을 찢으면 이쪽도 못 쓰고 저쪽도 못 쓰는 것처럼 분열이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파울은 분열되지 말고 같은 것을 말하라고 권고한 것입니다. 같은 것을 말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동의하여야 합니다. 서로가 자신의 주장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같은 정신을 가지고 같은 의견을 가져야 완전하게 결합하는 것입니다. 완전하게 하나가 되려면 같은 정신과 같은 의견을 소유하여야만 합니다. 같은 정신과 같은 의견 가운데 완전하게 맺힐 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교파를 초월해 하나로 통합하려는 세계 교회주의 운동은 저들과 같은 정신과 같은 의견을 가지지 못하기에 불가능한 운동입니다. 같은 정신과 같은 의견은 올바른 교리까지 양보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정신과 의견이 일치될 때에 교회도 하나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올바른 교리 안에서 상대방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을 통해 나누어지거나 찢어지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그의 권고 이유는 그에게 그들에 관해 알려진 까닭입니다(고전 1:11). 클로에의 자들에 의하여 다툼들이 그들 가운데 있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그는 지도자들을 치켜세우는 분열주의를 꾸짖었습니다(고전 1:12).4) 그들은 자신이 속한 대상을 주장하면서 분열되었습니다.
그들의 각자가 말하기를 ‘나는 파울의 것이라’ 그러나 ‘나는 아폴로의’ 그러나 ‘나는 베드로의’ 그러나 ‘나는 크리스트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각자 누구의 것이며 누구에게 속하였는지를 두고 다툰 것입니다.
파울이 고린도를 떠나고 난 후 아폴로가 고린도에 와서 가르쳤습니다. 둘은 같은 크리스트를 가르쳤으나 고린도 교회 안에 다툼이 생겼습니다. 파울에 속하였다는 사람들과 아폴로에 속하였다는 사람들이 다투었으며 베드로에 속하였다는 파와 크리스트께 속하였다는 파도 있었습니다.
크리스트께서 나누어졌는지 파울이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 매달렸는지 혹은 파울의 이름으로 그들이 세례를 받았는지 질문합니다(고전 1:13).
파울은 그가 그 아무에게도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였으니, 그는 다만 크리스포스와 가이우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고전 1:14).
그들이 그 이름으로 세례받았다고 말하지 않기 위해서며(고전 1:15), 파울은 어떤 다른 자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고전 1:16).
파울이 직접 세례를 베푼 크리스포스는 유대교 회당의 통치자였는데, 회당의 통치자는 회당을 지은 사람 혹은 유지비를 제공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그의 온 집과 함께 주께 믿었으며 고린도의 많은 자가 믿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로마서 16장 23절에 나오는 “가이우스”와 똑같습니다. 파울은 고린도 가이우스의 집에 있을 때 로마서를 대필시켰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17절에 “이는 내가 복음을 전도하게 파송된 것임이니 말의 지혜에 아니니 십자가가 무효로 되지 아니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17~2:2에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인 십자가”가 언급됩니다.5) 지혜로운 말과 지혜로운 자들은 부적합합니다(고전 1:17~20).6) 파울은 지혜로운 말에 의해 복음을 전도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이 찬송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크리스트를 선포하는 문구로 시작되며, 크리스트께서는 중앙에 또 진술되시고 끝에 또 반복되시고 계십니다.7)
파울은 세례를 베푸는 사람이 아니라 복음을 전도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의 지혜와 십자가의 지혜는 화합할 수 없습니다. 파울은 이것들을 언급한 것과 역순으로 논합니다.8)
파울은 1장 18절에서 2장 16절까지에 십자가의 지혜를 다루고 있으며 그는 3장 1절에서 4장 13절까지 그의 사도의 역할을 다루고 있습니다.9)
그가 세례를 베풀게 파송되지 아니하고 복음을 전도하게 그런 것이니, 말의 지혜에 아니니 십자가가 무효로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2. 파울은 미련함과 지혜에 대하여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십자가의 말씀(word)이 멸망할 자들에 미련함이나 구원되고 있는 우리에게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1장 18절~2장 15절은 복음이 인간 지혜와 모순된 것을 말씀합니다.10) 십자가의 말씀을 수락하는 자와 거부하는 자가 대조되어 나옵니다.11)
1장 18~25절은 십자가의 메시아가 하나님의 미련함이라고 합니다.12)
십자가의 말씀이 하나님의 능력이어도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합니다. 이유는 십자가의 메시지가 사람들의 범주에는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13)
복음의 메시지가 청중의 대부분에게는 미련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인간적 지혜는 멸망하게 되어 있습니다.14)
“그 십자가의 그 말씀”에서 “그”의 반복은 강조를 위해 사용된 것이며, “십자가에 대한 말씀”을 뜻합니다.15) “십자가의 말씀(word)”이 한국어 개역에는 “십자가의 도”라고 번역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특별히 잔인하고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구원하러 온 바로 그 백성에 의해 거절당하셨고, 관계 당국에 의해 십자가에 달리게 되셨습니다.16)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 또는 심판자라고 말하는 것을 교양이 있는 사람이라면 주제넘은 짓이라고 생각한 것이 분명합니다.17)
크리스트교는 어린 시절을 비참한 패배처럼 보이는 것 가운데 자랐고, “십자가” 메시지 설교자는 경멸을 받는 슬픔을 겪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파울의 설교에 중심을 차지한 것입니다.18)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의 방식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그 고난을 함께 짊어져야 합니다(롬 8:17). “십자가의 말씀”은 인류의 자기 영광에 대한 해독제입니다.19)
“십자가의 말씀”은 야망이 있는 자를 위한 메시지가 결코 아닙니다. 복음은 공포의 상징을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의 상징으로 바꿉니다. 그리스-로마의 수사학은 그 청중을 굴복시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반면에 파울의 수사학은 그 독자를 이해시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20)
파울은 십자가가 무효로 만들어지지 아니하기를 바랐는데(고전 1:17), 이는 그 십자가의 그 말씀이 멸망하는 자들에게 미련함이나 구원되고 있는 우리에게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임입니다(고전 1:18).
“멸망하는 자들”은 현재 멸망되는 중인 자들을 뜻합니다. “구원함을 받는 우리”는 구원되는 중인 우리를 뜻합니다.21)
복음을 받지 아니하는 불신자들은 멸망하고 있는 과정에 있습니다.22) 불신자들에게는 십자가의 말씀, 즉 십자가의 메시지가 미련함입니다. 반면 구원되고 있는 우리에게는 십자가의 설교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아직 완료되지 아니하였고 현재진행 시제 중에 있습니다.
십자가의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23)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에 의해 우리의 죄를 속하셨습니다.24)
파울은 크리스트의 십자가 말씀이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전도하였으며 십자가가 무효로 되지 않도록 말의 지혜로 전도하지 아니하였습니다.25)
주 예수 크리스트를 믿는 자만이 영생, 즉 영원한 생명을 가집니다.26) 구원영생은 오직 주 예수 크리스트를 믿는 자들에게만 주어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요 3:16).
십자가에서의 단번의 희생이 기쁘게 헌납되었고 속죄가 완성되었으며 죄가 제거되었고 화목의 사역이 성취되었습니다.27)
이제는 피를 흘리는 창이 없으며 (No more the bloody spear,)
이제는 그 십자가와 못이 없으니, (The cross and nails no more;)
이는 지옥 그것이 그 이름에 떨고 (hell itself shakes at his name,)
모든 하늘이 숭배하기 때문입니다. (And all the heavens adore.)
(Isaac Watts, Come, all harmonious tongues 6절)
사람은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 크리스트의 속죄를 믿어야 합니다.28)
이유는 그 십자가의 그 말씀이 확실히 멸망하는 자들에게 미련함이나, 구원되는 우리에게는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고전 1:18).
멸망하는 자들은 십자가의 말씀을 “미련함”이라고 말합니다.29)
찬송가 258장 “샘물과 같은 보혈은”은 윌리엄 쿠퍼가 작사한 것인데, 원 후렴은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돌아가신 것을 나는 믿고 믿을 것이네, 나를 해방하시려고 십자가에서 그 피를 흘리신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존중합니다.30) 육체에만 관심 있는 자들은 “십자가의 말씀”을 “미련함”이라고 하는데 이와 같은 자들은 내세에 별 관심 없고 현세에 관심 있기 때문입니다.31)
정작 미련한 자들은 그들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처음(beginning)이기 때문입니다(잠 9:10).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은 지혜의 처음을 가지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들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구명정을 비웃고 있는 것입니다.32) 찬송가 500장처럼 물 위에 생명줄 던지어도 그들은 미련하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19절에 “내가 현명한 자들의 지혜를 멸망시킬 것이고 내가 이해력 있는 자들의 이해력을 헛되게 할 것이라”라고 하셨습니다.
파울은 십자가의 말씀이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고린도전서 1장 19절과 같이 기록되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은 이사야 29장 14절에 기록된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33)
주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백성이 그 입에 접근하고 그 입술에 존경하고 그 마음은 나에게서 멀며 나를 그 경외는 가르침 받은 인간의 계명이라. 그러므로 보라 그가 이 백성을 기이하게 하기에 기사에 더하게 하겠으며 지혜로운 자의 지혜가 멸망하고 이해하는 자의 이해가 숨겨지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사 29:13~14).
구약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사람의 지혜가 반대됨을 가르쳤습니다.34)
시편 33편 10절에 “백성의 계획을 헛되게 하시노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계획을 헛되게 하십니다.
19절에 미래시제가 사용되었는데 미래 행동에 대한 예견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의 지혜를 멸망시키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자신을 지혜롭게 여기는 자들은 십자가의 말씀을 미련한 것으로 여겨 십자가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멸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0절에 “지혜로운 자가 어디에 학자가 어디에 있느냐 이 시대의 토론자(the debater)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께서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만들지 아니하셨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지혜로운 자가 어디, 서기관이 어디, 시대의 토론자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만드십니다.
“토론자”(쉬제테테스)는 그리스의 학자일 수 있습니다.35)
지혜로운 자, 서기관, 토론자들은 직업상의 전문가로 인식됩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지성적인 엘리트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이것을 거절하고서 자신의 허풍을 받아들입니다.36)
자신들을 지혜가 있다고 여기는 자들의 정신 상태에 있는 것으로 인해 이들은 자기기만에 빠지기가 쉬우며 하나님의 계시에 적대적입니다.37)
자신을 지혜롭게 간주하여 십자가를 거부하는 자들은 실패합니다.38)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만드신 까닭입니다. 세상의 지혜를 가지고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방법을 찾지 못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21~25절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in) 세상이 그 지혜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까닭에 그가 그 설교의 미련함을 통하여 믿는 자를 구원하셨기 기뻐하셨음이라. 유대인들은 표적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는 까닭이라.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크리스트를 전도하니, 유대인들에게 장애물이나 이방인들에게 미련함이나. 부름을 받은 그들에 크리스트께서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시니. 하나님의 그 미련한 것이 그 사람들의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그 무력한 것이 그 사람들의 강한 까닭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지혜에 세상이 지혜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설교의 미련함을 통하여 믿는 자를 구원하셨기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알지 못하였다”라는 결과적인 부정과거시제입니다(고전 1:21).39) 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알지 못하였다는 의미입니다.40)
세상은 자기 지혜를 통하여 하나님을 아는 것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것에 열쇠가 될 수 없습니다.41)
“구원하셨다”라는 구원이 순간적으로 이루어짐을 보여줍니다.42) 인류는 죄를 범하여 자기의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습니다.43) 하나님께서는 전도를 통하여 신자를 구원하시기에 기뻐하십니다.44)
유대인은 표적을 요구하고, 그리스인은 지혜를 찾습니다(고전 1:22). 그리스인들은 지혜와 철학을 찾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요구하고 찾는 것은 현재시제의 지식적인 용법에 해당합니다.45) 그리스 사람(Greek)들이 찾는 철학은 하나님과 관계없습니다.46)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크리스트를 전도하나니 유대인들에게 장애물이고 이방인들에게 미련함입니다(고전 1:23).
“십자가에 못 박힌”은 완료시제로 현재 그 결과가 지속적입니다.47) 신명기는 나무 위에 달린 자를 저주받은 자라고 합니다(신 21:23).48)
“전도하다”라는 현재시제로, 계속된 행동의 양식을 가집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행동을 묘사합니다.49)
파울은 이 단락의 첫 부분인 17절에 십자가를 전도한다고 말하였는데, 중심부인 23절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크리스트를 전도한다고 말합니다.
“이방인”은 특별히 앞 절 22절에 언급된 “그리스인”을 가리킵니다.50)
부름을 받은 그들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지혜가 되시니(고전 1:24), 유대인들에 장애물이시고 이방인들에게 미련함이신 분께서 그러십니다.
23절은 거부하는 자들, 24절은 수락하는 자들에 대하여 말합니다.51) 21절의 “믿는 자들”이 24절에 “부르심을 받은 자들”로 언급됩니다.52) 21절의 “전도의 미련함”이 24절에 “하나님의 지혜”로 언급됩니다.53) 주 예수님께서 부름을 받은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지혜가 되십니다.
하나님의 그 미련한 것(foolishness)이 사람들의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그 무력한 것이 사람들의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고전 1:25).
물론 하나님께서는 미련하시지 아니하시고 무력하시지 아니하십니다. 설사 그가 그러하셔도 그는 사람들보다 더 지혜로우시고 더 강하십니다. 사람의 지혜에 의존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지혜에 의존하여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크리스트를 거부하는 대적들은 실패할 것입니다.54) 그 이유는 지혜로운 자들도 미련하고 강한 자들도 무력하기 때문인데, 크리스트를 거부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방법을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말씀”이 “하나님의 능력”인 사실을 믿어야 하겠으며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여야 하겠습니다. “십자가의 말씀”이 전도됨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55)
믿지 않는 자들에게 유일한 구원영생의 길인 십자가의 말씀을 전하는, 복된 구원영생교회 성도가 다 됩시다!
1) Gordon D. Fee, 『NICNT 고린도전서』, NICNT 성경주석, 최병필 역 (서울: 솔로몬, 2019), 87.
2) David E.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BECNT 성경주석, 조호영 옮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9), 65.
3)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66.
4)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74.
5) Kenneth E.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김귀탁 옮김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7), 103.
6)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105.
7)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73.
8)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87.
9)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87.
10) Fee, 『NICNT 고린도전서』, 111.
11)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129.
12) Fee, 『NICNT 고린도전서』, 113.
13)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95.
14)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95.
15)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96, n. 1.
16)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97.
17)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98.
18)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98.
19)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98.
20)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98.
21) 지종엽, 『헬라어 성경해석 구문론으로 하라』 (서울: 비블리아, 2010), 155.
22) 박윤선, 『고린도전후서』, 성경주석 (서울: 영음사, 1981), 22.
23) 권연경, 『오늘을 위한 고린도전서』 (서울: 한국기독학생회 출판부, 2022), 78.
24) C. H. Spurgeon, 『고린도전후서·갈라디아서』, 스펄전 설교전집 28, 모수환·김원주 옮김 (서울: CH북스, 2020), 11.
25) Spurgeon, 『고린도전후서·갈라디아서』, 스펄전 설교전집, 12.
26) Spurgeon, 『고린도전후서·갈라디아서』, 스펄전 설교전집, 15.
27) Spurgeon, 『고린도전후서·갈라디아서』, 스펄전 설교전집, 17.
28) Spurgeon, 『고린도전후서·갈라디아서』, 스펄전 설교전집, 18.
29) Spurgeon, 『고린도전후서·갈라디아서』, 스펄전 설교전집, 19.
30) Spurgeon, 『고린도전후서·갈라디아서』, 스펄전 설교전집, 20.
31) Spurgeon, 『고린도전후서·갈라디아서』, 스펄전 설교전집, 22.
32) Spurgeon, 『고린도전후서·갈라디아서』, 스펄전 설교전집, 25.
33) 박윤선, 『고린도전후서』, 22.
34) 박윤선, 『고린도전후서』, 22.
35)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116.
36)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102.
37)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102.
38)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129.
39) 지종엽, 『헬라어 성경해석 구문론으로 하라』, 156.
40) 지종엽, 『헬라어 성경해석 구문론으로 하라』, 144.
41)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105.
42) 지종엽, 『헬라어 성경해석 구문론으로 하라』, 156.
43) 박윤선, 『고린도전후서』, 23.
44)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105.
45) 지종엽, 『헬라어 성경해석 구문론으로 하라』, 156.
46) 박윤선, 『고린도전후서』, 23.
47) 지종엽, 『헬라어 성경해석 구문론으로 하라』, 147.
48)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107.
49) 지종엽, 『헬라어 성경해석 구문론으로 하라』, 126.
50)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124.
51)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129.
52)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124.
53)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124.
54)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129.
55) Spurgeon, 『고린도전후서·갈라디아서』, 스펄전 설교전집, 28.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잠 24:12).
💖지혜가 깊은 사람은 자기에게 무슨 이익이 있음으로 해서 누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군요,
누구를 사랑한다는 그 자체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 이랍니다.
어머니에 조건 없는 사랑, 우리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조건 없이 누구를 사랑하는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