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이 월급을 받는다나?'
그렇다.
요즘 농가에서 주목받는 '농업인 월급제' 얘기다.
이 제도는 연간 농업소득을 일정 기간으로 나눈 금액을 매달 농가에 先지급하고,
농가는 가을 수확 후 받은 농산물 판매 대금으로 이를 갚는 방식이다.
월급이 적게는 30만 원, 많게는 200만 원 가량 된다.
해당 지역농협이 월급을 내주고, 이에 따른 이자 등은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한다.
명칭에 '월급'이란 단어가 들어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농산물 매출채권을 담보로 잡고 원 단위로 쪼개 지불하는 '무이자 대출금'이다.
경기 화성시가 2013년 처음 도입한 이후 충북 청주시, 전북 완주군, 전남 나주시 등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대상 농가도 벼에서 체소.과수.화훼류 등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어찌보면 '무늬만 월급제'인 이 제도가 농민으로부터 호응을 얻는 이유는 뭘까.
농민.지자체.농협 등 '3角 편대' 모두에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정책이기 때문이다.
수확기에만 소득이 쏠리는 농민은 영농자금이네 뭐네 하며 만날 농협에 얽매이는 중압감을 덜 수 있다.
당연히 경영도 안정된다.
지자체도 큰돈 안 들이고 생색낼 수 있다.
저금리 시대 자금 운용이 어려워진 농협으로서도 '거저먹는 장사'다.
20대 총선에 출마할 농촌 지역 예비후보들도 '농업인 월급제 공약'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비판도 적지 않다.
'농산물 시장의 전면 개방으로 흔들리는 農心을 달래기 위해 월급제란 이름을 붙여 본질을 호도하려 한다'는 지적이 그중 하나다.
이상기후 등으로 흉년이 들거나 失農할 경우 미리 월급이 농가에 고스란히 부채로 남을 수밖에 없는 한계도 있다.
특정 농가를 대상으로 한 임시방편이라는 일침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중시하고,
이를 지키는 농민에게 기본 소득을 보장해주는 방책만이 최선의 농정이라는 주장도 사설득력 있게 들린다.
중용에 '登高自卑(높은 데 오르려면낮은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첫술에 배부르라'라는 속담과도 같은 의미다.
농업인 월급제는 아직 미흡하지만, 그나마 지자체가 모처럼 발굴해낸 '신선한' 농정이라는 평가가 대세다.
이 제도가 날로 진화해 만든 돈가뭄에 시달리는 우리 농민에게 한줄기 단비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박학용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