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갑자(?)
이신애
1년의 마지막 날을 강원도 속초의 장사항에서 보냈다. 다음 날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해를 보았다. 지구상의 어떤 것보다도 오래된 별 이니 새로울 리 없건만 해맞이하러 온 사람이 많았다. 일출을 누구보다 먼저 보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바람이 사나워 바다를 보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서울 가는 나들목으로 향했다. 차가 좀 많긴 했지만 돌아 나가는 길도 없고 어차피 가야 하기에 저녁은 집에서 먹을 수 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차창으로 보이는 보자기만 한 하늘이 몇 시간째 그대로이다. 물도, 간식도 준비하지 않았는데ᆢ. 이럴 때 차에 날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차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몸과 달리 생각은 하늘 아니 우주, 그보다 더 먼 공간으로 가버린 지 오래다.
우리는 곡률 반경이 0인 평평한 우주에 살고 있다고 한다. 공 모양이나 C형의 우주가 존재한다고 하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수학적으로 증명되지도 않았다. 과학보다는 신화와 동화가 편하기에 거기서 답을 구하기로 했는데 어쩌면 종교에 더 많은 게 있을지도 모른다
기독교에는 천국과 지옥이 있고 사람은 엄마 뱃속에 잉태되기도 전에 신의 자녀가 될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하니 믿기만 하면 된다.
그리스 신화는 신은 맨 위에. 중간에는 인간, 땅속엔 지옥이 있다고 한다. 경계가 모호했는지 신이 그 사이를 넘나들다 인간 여자와 아이를 낳기도 했다나. 클림트는 제우스가 다나에한테 황금비로 내리는 것을 그림으로 그렸다
불교는 허공이 33개나 되며 생물은 감각적인 욕망이 존재하는 욕계에 살고 있는데 잘하면 그걸 넘어서 범천에 갈 수도 있단다. 더욱이 신神도 노력을 해야 승급할 수 있다니 자유로운 영혼의 마음에 든다
일순간 앞차가 멈춘 것 같다. 속도가 같다는 말이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가슴께가 저리는 것처럼 아프다. 100년 전에 태어났으면 괴나리 봇짐을 메고 산을 넘거나 종자가 이끄는 말을 타고 가다 쉴 텐데... 나는 내리고 싶다. 도대체 산에 굴을 몇 개나 뚫은 것일까? 구멍에서 나올 때 마다 산에 홀이불처럼 걸린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중간에 두 개의 굴이 나란히 있는 것을 보았는데 괴물이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용용' 하고 놀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 속으로 들어갔다. 용감해서가 아니라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엄마 뱃속, 이 세상, 죽어서 간다는 저세상까지 3개의 세상만 경험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많은 하늘을 보아야 하다니? 터널에서 나 올 때마다 경기도 어디쯤이기를 간절히 바랐건만 가도 가도 강원도였다. 산 구멍에 기억을 지우는 힘이 있는지 터널의 개수를 세다가 잊어버렸다 넓적하고 볼록한 우주 저 끄트머리 태양계에서 3번째 벌인 지구에서 빠르게 다른 곳으로 가려면 비행기나 자동차를 타야 한다.
예전엔 출세한 사람일수록 이동한 거리도 길고 속도도 빨랐다는 기록이 있지만, 앞으로는 AI를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가 좌우할 것 같다. 눈떠서 잘 때까지 손전화에 코를 박고 있으니 부모나 친구보다 가까운 존재이다. 개인사는 물론이고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일까지 모두 맡겨놓고 기계라 자발적인 행동을 못 할 거라고 무시한다. 그건 정말 착각인 게 100여 년 전에 나온 올더스 헉슬리의<멋진 신세계>를 보면 엄마 대신 자신이 태어난 배영병培嬰甁을 노래한다. 미래에는 애 낳는 일도 기계에 맡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