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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과일향♡
관용하면 잘 됩니다 (고전 9:19-27)
에이미추아 작품으로 ‘제국의 미래’ 라는 책이 나와서 신문에 소개된 것을 보았습니다. 이 책의 중요한 줄거리는 고대 페르시아나, 로마나, 당나라, 몽골,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가장 크고 강대한 국가들도 관용을 잃어버리면 몰락한다는 그런 내용입니다. 큰 나라, 큰 사람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큰 나라가 땅이 아무리 넓고 군사력이 뒷받침 되어도 그 국민들의 마음이 관대하고 넓고 순한 국민이어야만이 계속 발전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 못한 나라는 신속하게 망했다는 겁니다. 아무리 나라가 크고 개인이나 민족이 크고 잘 된다 할지라도 마음이 넓어서 포용하고 이해가 많고 관용이 많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복을 받고 기업도, 국가도, 개인도 잘 된다는 말씀입니다. 관용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하폴로테스라는 말입니다. 온순하다는 뜻입니다. 온유하고 순하다는 말이 이 안에 있습니다. 친절하다, 참을성이 있는 이런 관용하는 뜻을 이 말이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관용하고, 참을성 있고, 온유하고, 순하고, 친절하고 또 모든 사람을 품어주는 이런 마음을 갖고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야고보서 3장 17절에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지혜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잘 사는 것이 지혜가 아닙니까? 슬기롭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지혜가 아닙니까? 지혜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지혜로운 삶은 관용하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온유하고, 이해하며 포용을 잘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참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런 책 외에도 성경에는 놀라운 고대의 나라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로마시대 전의 세계 강대국들은 성경에 거의 다 나옵니다. 지중해 연안의 세계를 통치하던 나라들이 오래가지 못했던 그 이유가 어디 있느냐? 성격이 난폭하고, 잔인하고, 정책이 잔인하여 긍휼을 베풀지 못하는 그런 권력과 국가는 오래 갈 수 없었다는 것이 선지서, 예언서에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아모스서를 읽어드리면서 여기에 나오는 몇 개 국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아모스를 모두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구약성경의 후반입니다. 아모스 1장 9절부터 봉독하겠습니다. 여기에는 짧은 곳에 여러 나라들이 멸망한 이유를, 하나님이 왜 이 나라를 망하게 하셨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이시지 않습니까? 축복의 하나님이신 것과 함께 그 축복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 하나님이 주신 선을 넘어설 때 하나님은 그 민족을 심판하셨습니다. 왜 심판하셨느냐? 첫째, 두로에 대한 심판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두로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그 형제의 계약을 기억지 아니하고 모든 사로잡은 자를 에돔에 붙였음이라” 여러분, 전쟁도 그냥 전쟁이 아닙니다. 전쟁이든 싸움이든 사람이 어떤 룰, 비공식적인 국제적인 룰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로라는 나라는 항구가 있었는데, 지금의 레바논에 옛날부터 이 나라가 있었는데 번영하던 이 나라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은 전쟁을 해서 사로잡은 포로를 또 남의 나라에 팔아먹었다는 겁니다. 이건 아주 나쁘다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애인을 사귀다가 싫다고 해서 헤어지는 것만 해도 나쁜데, 애인을 윤락촌으로 팔아먹는 일들이 신문에 보면 얼마나 많이 나옵니까? 이건 정말 나쁜 겁니다. 자기가 사귀었던 그 애인을 어떻게 그렇게 팔아먹습니까? 그건 나쁘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쟁에 이기는 것도 그냥 막 이겨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이기는 자의 예의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기는 자의 어떤 원칙을 가지고 이겨야지 사로잡은 자를 또 팔아먹는 이런 짐승 취급을 하는 나라는 하나님 앞에, 큰 나라가 될 수 없고, 복 받을 나라가 될 수 없다고 두로를 심판하셨습니다. 그래서 두로의 궁궐들을 모두 사르지 않습니까? 11절, 에돔을 왜 심판하느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에돔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가 칼로 그 형제를 쫓아가며 긍휼을 버리며 노가 항상 맹렬하며 분을 끝없이 품었음이라” 이 나라는 왜 이렇습니까? 아주 극악한 사람입니다. 사람이 도망을 치면 봐주고 항복을 하면 살려주고 해야 할 텐데, 도망을 쳐도 끝까지 따라가서 끝까지 잔인하게 잡아 죽이는 것이 네 나라는 안 된다는 겁니다. 에돔은 잔인하다는 겁니다. 깡패들도 싸움을 하다 져서, ‘형님’ 그러면 봐주고 하는 게 있거든요, 청도의 소싸움도 져서 돌아서면 소도 그만 봐주고 더 이상 뿔로 받지 않습니다. 동물들도 그런 게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졌다하고 나 이제 너한테 항복한다 하면 봐주어야지 졌는데도 끝까지 따라가서.. 보십시오. 맹렬히 끝까지 따라 붙이니 너는 안 된다, 못 쓴다는 겁니다. 그 다음 13절에 암몬을 왜 망하게 했느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암몬자손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자기 지경을 넓히고자하여 길르앗의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랐음이니라” 너희들은 잔인하다는 겁니다. 노약자와 임산부는 특별히 봐주어야 하는데, 아무리 이겼어도, 적이라 할지라도 봐주어야 하는데,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랐다는 것은 이긴 자로서, 강대국으로서, 큰 나라로서의 자격이 없다라는 겁니다. 성공을 하고 잘 살고 복을 받았으면 사람이 그만큼 마음도 온유하고 순해야지 마지막까지 가는 극악한 방법은, 너희들은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모압이나, 에돔이나 이런 나라들을 심판하시는 겁니다. 그 다음에 2장 1절을 또 보십시다. 모압을 왜 버렸느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모압의 서너 가지 죄를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가 에돔 왕의 뼈를 불살라 회를 만들었음이라” 보세요. 잔인하다는 겁니다. 그 나라의 임금을 죽여가지고 불태워서 뼈를 갈은 겁니다. 회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악하다는 겁니다. 아무리 적이라도 사람이 지면 불쌍히 여기고 그래야지 그런 마음도 관대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적이라고 해서 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나라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 나라는 안 된다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어떤 구원에 대한 책만 있는 게 아닙니다. 역사 속에서 강대국이 버림을 받고, 강한 권력을 갖고 부유한 사람들이 심판받는 이유를 어떤 하나의 원칙을 가지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벨론도 626년에서 539년에 망했는데 바벨론을 심판한 것도 하나님께서 너희들이 너무 잔인하다는 겁니다. 너희가 세계를 지배했으면, 너희 마음이 온유해야지, 예레미야 52장에 보면 바벨론이 예루살렘에 쳐들어오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남쪽 유대나라가 BC586년에 바벨론에 망하는데 그 마지막 왕이 시드기야라는 왕입니다. 바벨론 왕이 시드기야의 눈을 빼버립니다. 임금의 두 눈을 빼고, 그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다 죽입니다. 그리고 다 그 앞에서 잔인하게 죽이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애굽은 잔인하지 않기 때문에 그 나라는 봐주는 겁니다. 그래서 애굽이 지금까지 있는 이유는 그 민족이 그렇게 잔인한 것이 성경에 안 나오는 겁니다. 그러나 바벨론은 잔인하다는 겁니다. 앗수르도 잔인했다는 겁니다. 이 북쪽 이스라엘은 BC722년에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을 했는데, 앗수르가 악랄하거든요. 모두 불태우고, 없애버리고, 모두 사로잡아가고 전쟁에 이기면 잔인하게 사람을 가죽을 벗겨 죽이고, 떡볶이 집에 가면 있는 어묵처럼 사람을 죽이면, 사람끼리 창으로 찔러가지고 모두 세워 죽였다는 겁니다. 잔인한 방법을 쓰는 민족이 지금도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이 너 앗수르는 안 된다, 지상에 너희 같은 나라는 복 받아서 세계를 지배할 자격이 못된다고 보는 겁니다. 세계를 지배하는 것도 하나님이 다 허락해 주시는 것인데 축복을 받은 자로서의 마음이 열려 있고, 마음이 관대해야 세계 사람에게 존경을 받고, 사랑을 받는 것이지 그렇게 모든 민족에게 고통을 주고야 너희가 어떻게 복을 받을 수 있겠느냐 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개인이나 민족을 쓰시거나 축복하실 때, 그 성품을 달아보시는 겁니다. 아브라함을 왜 축복하셨습니까? 아브라함이 물론 믿음이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좁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기독교같이 관용하는 종교가 없지만 기독교같이 좁은 종교도 없다고 합니다. 교인들을 만나보면 어떤 교인은 안 믿는 사람보다 더 좁다는 겁니다. 우리는 관대한 은혜를 받아가지고 삶은 아주 인색하게 살아가는 것, 이건 하나님 앞에 좋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잘 믿을 뿐만 아니라 마음이 얼마나 넓습니까? 자기를 배반한 롯을 기어이 건져내어서 눈물로 기도하여 자기 배반자를 살려주지 않습니까? 이삭도 얼마나 마음이 관대합니까? 요셉이 얼마나 마음이 관대합니까? 자기를 팔아먹은 그 형님들을 창세기 45장에 보면 “형님들이여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형님이 나를 판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가족을 구원하시고 축복하시려고, 나를 축복하시려고 애굽에 보낸 겁니다.” 형들을 통하여 보냈다는 겁니다. 가깝다고 잘 푸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부부간에 제일 풀기가 어렵고, 형제간의 문제를 제일 풀기 어렵고, 부모?자식 간의 문제를 더 가까울수록 풀기가 더 어려운 겁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기를 열일곱 살 어린 나이에 애굽에 팔아먹고 죽으라고 보냈지 않습니까? 그래서 애굽에 가서 감옥생활을 하고 고생을 한 그 원통함을 생각하면, ‘네가 형이냐? 이 자식아’ ‘나를 어떻게 남의 나라에 팔아먹느냐?’하고 복수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형들이 저질렀지만 요셉은 푸는 겁니다. 풀어야 하는 사람이 풀면 풀려지지만, 형들이 아무리 풀려고 해도 안됩니다. 복 받은 사람이 풀면 모두 풀어지는 겁니다. 그 피해 입은 사람이 풀어야 하는 겁니다. 모든 것은 축복 받은 분이 풀어야 하고, 은혜 받은 분이 풀어야 합니다. 오늘 이 세상을 살면서 누가 풀어야 되겠어요? 예수 믿은 사람이, 은혜 받은 사람이, 성령 받은 사람이, 구원함을 받은 사람이 모든 일에서 풀고, 앞에 서서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긍휼을 베풀고, 사랑을 베풀고 희생하면서 나아갈 때에 우리 가정에도 천국이 찾아오고, 우리 사회도 밝아지며 이 민족도 하나님 앞에 큰 민족으로 쓰임 받을 줄로 믿습니다. 모세는 얼마나 온유합니까? 민수기 12장 3절에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다”고 말했습니다. 누나가 모세를 배반하지 않습니까? 당을 지어서 수군거리고 모세를 궁지에 몰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누나 미리암에게 문둥병이 들게 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간절히 빕니다. ‘하나님, 우리 누나가 썩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용서해주세요.’ 하니까 하나님이 모세의 기도를 듣고 누나를 살려주는 겁니다. 불쌍히 여겨주시는 겁니다. 다윗은 얼마나 온유합니까? 예수님은 얼마나 온유하십니까? 모든 원수를 사랑하고 다 사랑하지 않습니까? 끝까지 사랑합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분도 모두 사랑하지 않습니까? 베드로가 배반했지만 전부 용서해주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오늘 온 세계를, 우주를 다스리시는 주님이 총, 칼로, 힘으로 다스리는 줄 아십니까? 주의 나라가 수천 년 이렇게 흥하고 일어나는 이유는 우리를 힘과 능력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온유와 사랑과 긍휼과 자비와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다스리는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나니 3일 만에 제자들이 모두 도망쳤지 않습니까? 갈릴리 바다에 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예수님이 거기까지 따라갑니다. 배반자를 찾아서 가니까 모두 주님을 멀리하고, 이미 3일 만에 도망을 치고, 말이나 됩니까? 주님은 그들을 모두 모아 놓고 고기를 구워서 같이 먹습니다. 저 같으면, ‘이놈들아 너희들이 인간이냐?’ 하면서 머리를 양쪽으로 박을 텐데, 전부 용서를 해 주시는 겁니다. ♬주님의 사랑은 영원하시도다♬ 주님의 사랑은 무한한 사랑, 영원한 사랑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이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모든 모양이 되어 모든 사람을 받아주고, 품어주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내가 예수 믿는 믿음은 하나를 지키지만, 사람을 사귀는 것은 유대인에게는 유대인같이 내가 들어가서 유대인이 되고, 율법아래 있는 사람에게는 자기도 율법아래 들어갔다는 겁니다. 그래서 할례를 행하고, 바울이 예수 믿으면서 율법아래 있는 사람을 건지려고 율법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율법으로 들어가고, 이방인에게 가서는 별의별 곳에 또 적응하는 겁니다. 우리가 나 혼자 구원 받았다고 안 만나야 되겠다, 너 나쁜 사람이다, 너 죄인이다, 너같은 사람은 들어오지 말라고 문을, 창을, 커튼을 닫아 버리면 우리는 복음을 한 사람에게도 더 이상 전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러나 바울은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남에게 대해서는 관대하지만 나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자기를 채찍을 휘두르면서, 남의 죄는 용서하지만, 내 죄는 용서하지 않고 채찍을 맞으면서 거룩하게 살고, 남은 불쌍히 여기고 남은 칭찬하지만, 자기에 대해서는 인색하게 자기의 잘못을 책임지고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섰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은 자기에 대해서는 너무 관대합니다. 자기 허물은 태산 같지만 이건 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으로 전부 받아 주고, 이해하고, 남의 허물은 눈의 티만 있어도 잡아가지고 못 살게 하는 것이 현대인입니다. 이것은 바뀌어야 하는 겁니다. 오히려 자기에 대해서는 철저해야 하고 남에 대해서는 관대한, 사도바울 같은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저는 잘 했는지는 모르는데, 사실 제가 결혼할 때 우리 처가댁에 예수 믿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모두 안 믿는 사위를 보았고, 그런 가정에서 예수를 믿어도 그냥 믿는 게 아니라 전도사를 사위로 보았으니, 장인어른은 사업도 하시고 술을 그렇게 좋아하시는데 사위 때문에 술을 한 잔 못 잡수시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전도사로 있으면서도 사실, 장인을 찾아갈 때는 그 때에 정종이라는 걸 받아가지고 가서 따라 드리면서 ‘예수믿으세요’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가야 제가 알겠지만, 저는 평생 입에도 술을 안 댔습니다. 그러나 제 장인어른이 믿는 사위를 봐서 우리 집에 오셔도 술 한 잔 대접을 못하고 그러면 ‘내가 맞는 걸까?’하고 저대로 누구한테 물어 볼 수도 없고 해서 장인어른한테 술 한 잔씩 대접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 장인어른이 나중에 저에 대해서 굉장히 감동을 받고 우리 집에도 오셔서 여러 번 주무시고 그런 일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술 마시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고 하고 술 마시는 사람과 전부 관계 끊으면, 우리 교인들은 일절 전도할 길이 막혀버리는 겁니다. 모든 사람에게 우리는 넓게 포용하고, 만나주고, 사랑해주고, 이해해주는 주님의 사랑을 우리가 실천할 때에 하나님의 나라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나라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지난날에 대한 모든 일에 조금 관대해야 됩니다. 우리는 너무 과거에 매여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날의 아픈 역사가 너무 많습니다. 남의 나라 지배를 받으면서 내려온 우리의 역사는 사실 들추어내면 부끄러움이 너무 많습니다. 상처입니다. 사람이 상처는 덮어두어야지, 이걸 전부 들추어내면 안됩니다. 옛말에서 잘 알고 있듯이, 상처를 자꾸 긁으면 부스럼이 나고 피만 나는 겁니다. 우리의 과거를 들추어보면 우리는 너무너무 상처가 많은 사람입니다. 일본이 우리를 36년이나 지배했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운 상처입니까. 그 때 내가 일본에게 절대로 협조하지 않고 살겠다는 사람이 몇 명 나오겠습니까, 이 3천만 가운데에, 2천만 가운데에 몇 명이 나오겠습니까. 그거는 이해를 해야 됩니다. 그때 무슨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데 일본 정부에서 그리라 그러면 그려야지 ‘나 이거 안그리고 할복 자살 하겠다!’ 그럴 사람이 몇 명 있겠느냔 말입니다. 작가는 작가대로 인정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말 앞잡이 서서 형사노릇해서 우리를 잡아 붙들어가고 이런 악한 사람이야 나쁜 사람이지요. 그러나 선량한 사람, 그의 뜻과 동기가 선하게 살아가려고 하는데 어쩔 수 없어서 그러는 사람들은 우리가 품어주어야 하는 겁니다. 일본 시대 때 공부했다고 전부 나쁜 놈으로 몰고 일본 시대 때 뭐라도 하면 모두 나쁜 놈으로 몰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또 그런 일이 있어도 정말 국가를 위해서 좋은 일 하면 우리는 그 좋은 점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경에도 기생 라합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오지 않습니까! 밧세바라는 그 여인이 족보에 들어옵니다. 룻이라고 하는 이방 여인이 족보에 들어오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 자손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시려고 하다가, ‘나 이런 족보에 안나올란다.’ 하고 가셨으면 큰일 날 뻔 했습니다. 그런 족보도 받아들이신 주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조금 의로운 것은 의로운 것이 아닙니다. 조금 잘난 것이 잘난 것도 아니고 조금 애국하는 것이 그게 애국이 아닙니다. 조금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오늘, 있는 대로 받아주고, 품어주고, 용서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겁니다. 그 이후로도 자유당 때 있었다고 해서 전부 나쁘게 몰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모두 자유당 독재다 군사정부 독재다, 그 역사는 그 역사대로 긍정적인 게 있고, 그래서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들도 이 민족이 앞으로 가는 길은 전부 뒤의 것 보고, 뒤를 돌아서서 뒤를 들추어내는데, 우리가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어른들도 풀고, 계층간에도 풀고, 이념도 풀고, 지역도 풀고, 모든 분들이 서로 이렇게 양보하면서 나아가야 우리가 살고, 좋은 나라도 되고, 큰 나라도 될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모압과 에돔과 암몬과 두로와 앗수르와 바빌론과 메데와 페르시아를 전부 못쓰겠다 그러시면서 내가 너희를 얼마나 축복했는데, 너희들이 교만해가지고 너희들끼리 그렇게 잔인하고 악랄하니까, 하나님이 그 민족을 없애버리시는 겁니다. 우리 민족이 하나님 앞에 너무 큰 은혜를 받아서 지난날의 상처만 뜯어내는 데, 전 국민의 힘이 그 쪽으로 가면 이 민족은 앞으로 발전할 수 없는 겁니다. 나는 요사이 노태우 대통령이 편찮으시다는 얘기를 듣고, 전두환 대통령이 그분하고도 화합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날 생각하면, 자기를 백담사에 좇은 걸 생각하면, 잘 죽어라 잘 가라 그럴 수 있지마는, 누군가 큰 분이 있어야 되니까 먼저 풀고, YS, DJ도 서로 만나고, 노무현 전대통령과 우리 이명박 대통령도 만나고, 서로 자꾸 만나서 참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잘 계셨습니까, 이런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YS도 DJ도 대통령 되었으면 됐지, 대통령 되려고 싸웠으니, 전부 지나가고 나면 더 뭐 바랄 게 있느냐는 겁니다. 온 국민앞에 조금 더 잘했겠죠, 조금 더 의롭겠죠, 그러나 그 의로움은 사도바울처럼 지고 그를 받아주는 이런 관용과 사랑과 아량과 긍휼로 바뀌면, 이 나라 전체가 힘을 얻고 살아날 줄로 믿습니다. 이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바울서신 외에도 신약성경에 항상 너희끼리 긍휼을 베풀어라, 온유하고 사랑하고 친절하게 살 것을 얼마나 말씀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그래야 남북의 화합도 이루어낼 수 있고, 세계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는 부드러운 민족이, 세계를 향하여 큰일을 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화합을 빨리 만들어 내야지 일본이 보통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독도 또 내놔라 하고 있고, 서울 내놔라 대전 내놔라 할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못할 일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저사람들이 무서운 민족입니다. 중국 보세요, 중국은 지금 14억 가운데 잘사는 사람이 1억정도 된답니다. 1억인데도 1억이 먹어치우니까 세계의 치즈가 동이 나는 겁니다. 1억이 잘살아도 세계 석유값이, 1억이 자가용 타니 어떻게 감당해요, 기름 값 올라가고, 1억이 건설하니까 그걸 감당을 못하는 겁니다. 자재 값이 올라가고, 철근이 얼마나 올라가고, 막 올라가는 겁니다. 앞으로 십년 이내에 5억 정도가 잘 사는 시대가 온다고 합니다. 5억이 만약에 회를 먹어치우면 한 마리씩만 먹어도 5억마리, 동해안 서해안의 고기가 다 끝나버리는 겁니다. 5억이 먹어봐요. 유럽하고 미국 몽땅 다해도 5억밖에 안되는데, 중국 한 나라가 5억이 해치워봐요, 우리는 먹을 게 없어요. 농산물이고 뭐고 앞으로 큰일나는 시대가 온다는 겁니다. 우리가 힘을 합해야 합니다. 빨리 우리끼리 힘을 모아서 나아가야 나라가 살고 세계와 경쟁도 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주신 좋은 기회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특별히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긍휼을 베푸는 사람이 더 잘하는 사람이요, 온유한 사람이 더 복받은 사람입니다. 모든 생명의 세계는 온유한 사람들이 잘되게 되어있고 그 생명이 발전하게 되어있습니다. 물고기도 온유한 물고기가 잘되고, 짐승도 온유한 짐승들이 잘되고, 나는 새도 온유한 새들이 번성하고, 온유한 사람들이 복을 받습니다. 오늘 우리는 참으로 온유한 사람이 되어서 가정에도 축복, 나라에도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옛날 초해왕이라고 하는 분은 아침을 먹는데, 음식 속에 거머리를 발견했답니다. 임금님이 거머리를 발견했으니, 야단났지 않습니까. 이 임금님은 참 지혜로운 분입니다. 거머리를 보는 즉시 김치에 싸서 말아가지고 먹어버렸답니다. 왜? 이걸 누가 이랬냐? 그러면 최소한 몇 명이 바로 죽으니까. 그 요리사가 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자기가 먹고 전부를 살려준겁니다. 얼마나 긍휼이 많습니까? 왕이라도 덕이 많은 왕이 있고, 덕으로 치세하는 분이 있습니다. 중국에 오패의 초장왕은 잔치를 베풀어서 신하들과 술을 먹는데 촛불이 꺼졌답니다. 그 옆에 양쪽에 애첩들이 있는데 그 사이에 그 예쁜 여인을 보고있던 신하가 그만 불꺼진 틈을 타서 입을 맞추고 갔습니다. 키스를 했어요. 그 순간 그 여자가 자기한테 키스하는 사람의 갓끈을 잡아당겼습니다. 그리고는 폐하, 누가 내 입을 맞추었습니다, 내가 그 갓끈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임금이 얼마나 지혜로운지요, 잔치마당이 피바다가 될 수 있으니까, 여봐라 갓끈을 다 잡아당겨라 이래가지고 모든 갓끈을 다 잡아당겨서 임금님 앞에 가져가고 불을 켜니까 모두 갓끈이 없는 겁니다. 나중에 그 나라가 진국과 초국이 싸웠는데, 한 장수가 나라를 다 건졌습니다. 후에 그 장수가 와서 폐하, 그때 제가 바로 그 여자와 키스를 했는데 임금님 덕택에 내가 살았습니다. 내가 임금님을 위해 생명을 바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는 잘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할렐루야. 징기스칸도 알지 않습니까. 징기스칸, 지도를 보십시오, 인도를 제외하고는 거의다 점령합니다. 지중해, 터키도 모두 징기스칸 안에 들어옵니다. 인도 일부만 제외하고는 필리핀까지 몽골에 다 들어갑니다. 이런 강대국이 공연히 되는 게 아닙니다. 징기스칸이 얼마나 마음이 넓은지 모릅니다. 초기에 그는 힘이 없을 때 전쟁을 했는데, 자기 아내를 잃어버리는 겁니다. 몇 년 지나서 힘을 길러서 전쟁에서 이기고 그 아내를 찾아왔는데, 그 아내가 적장의 씨를 가져서 배가 만삭이 된 겁니다. 징기스칸은 데려다가 당신이 임신한 것은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내가 힘이 없어서 내가 져서 당신이 붙들려간 거지 당신이 걸어간 게 아니라고, 그러면서 그 여자를 위로해 주고 그 아이를 낳아서 자기 아들로 만들어서 훌륭하게 길렀다고 그러지 않습니까? 용서해 주는 겁니다. 상처받은 여인을 위로해주는 겁니다. 이 더러운게, 그러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렇지않아도 거기 가서 받은 상처가 너무너무 큰데 남편이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가 마음만 넓으면 누구든지 안아줄 수 있고, 위로해줄 수 있고, 사랑해줄 수 있고, 더럽기는 뭐가 더럽습니까? 내 마음이 더럽지. 내 마음만 깨끗하면 되는겁니다. 자기만 깨끗하게 관리해야지 남에 대해서 하나하나 너 더럽지? 너 침뱉었지/ 그러면 안된다는 겁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너무 자기 관리는 철저하게 못하면서 남의 더러운, 요만한 티 하나를 찾아내고 남의 허물을 찾아내니 우리의 가정과 사회가 편할 날이 하루도 없다는 겁니다. 다윗은 적의 손자를 데려다가 자기와 같이 있게 했습니다. 한 상에서 먹고 살았다는 겁니다. 오늘 우리는 믿음 안에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관용하고, 용서해주고, 유연성있게 이렇게도 해주고, 저렇게도 해주고, 말 들어주고, 집에서도 애들 말 잘 들어주고, 남편 잘 받아주고 아내 잘 받아주고, 부모님 잘 받아주고, 유연성 있게, 연세가 많으면 저럴 수 있지 그러고 연세 많은 분에게 가서 또 연세 많은 척 하고 앉아있고, 애들하고는 또 애들이 이런거 좋아하니 애들 좋아하는 걸 즐기면서 애들과 같이 되고, 이러는 것이 예수님의 삶이라는 겁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적응하는 삶을 사신 겁니다. 목수의 집에 가서 예수님은 일하면서 사셨습니다. 우리 모두 적응하며 살아갈 때 이 사회는 좋아질 수 있습니다. 난 그럴 수 없어 내가 누군데, 뻣뻣하면 그게 아직 덜 된 겁니다. 좀 배웠다고 뻣뻣하고, 좀 가졌다고 뻣뻣하고, 좀 힘 있다고 뻣뻣하고, 그러면 안된다는 겁니다. 곡식을 길러보면 덜 익은것이 뻣뻣합니다. 익으면 다 고개를 숙입니다. 과일도 익으면 잎 속으로 다 들어갑니다. 익은 과일은 겉으로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새파란게 나 잘났다고 그러는 겁니다. 그건 초보입니다. 힘이 들어갈수록 힘이 없습니다. 자전거 배울 때 얼마나 힘줍니까? 저는 초보운전 안붙여도 초보운전은 금방 압니다. 기계 돌아가듯이 그게 초보지요, 유연성 없으면 그게 초보입니다. 가정에서도 유연성 있게 교회에서도 유연성 있게, 오늘 이 사회를 우리가 성숙한, 이런 온유한, 포용하고, 관용하고, 사랑하며 긍휼 베푸는 문화로만 나아가면 우리나라는 진짜 하나님 앞에 큰 복 받습니다. 왜? 이게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큰 민족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관용하면 큰 복 받습니다. 관용하면 큰 은혜 받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여러분 관용하는 일에 앞장서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삼환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