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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는 소위 “묻지마 범죄”가 한 건씩 터질 때마다 반복되어 나타나는 “묻지마 반응” 패턴이 있다. 범죄 용의자가 정신질환의 병력을 가졌었거나 가지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부터 범죄 발생의 모든 원인을 곧바로 정신질환으로 치환시키는 사회적 반응이다.
‘묻지마 범죄’의 ‘묻지마’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 용의자의 행위 특성에 못지않게, 아니 오히려 “다른 건 묻지 말고 무조건 정신질환!”이라는 우리 사회의 반응 특성을 묘사하는데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폭력에 대한 충격과 불안감에 싸인 대중들에게 정신질환은 언제나 이해하기 쉽고도 명쾌한 타겟이다.
정신질환자와 정신장애인을 사회의 안녕을 해치는 시한폭탄, 예측할 수 없는 잠재적 범죄자, 강제입원과 시설을 통해 사회적으로 격리시켜야 하는 괴물로 낙인 또 재낙인 찍어버리기만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손쉬운 해법 제시에 언제나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은 언론이었다. 언론은 대중들에게 정신질환이라는 먹잇감을 던져주고 불안의 집단적 감정을 한껏 쏟아내어 물어뜯도록 부추기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로 최근의 ‘서현역 사건’ 이후 작성된 머니투데이의 8월 7일자 기사를 보자. <“정신질환 인권 찾다간” 4년 전 이미 경고....범죄만 늘었다>라는 기획 기사에서 기자는 대뜸 제2의 안인득이 나온다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의 4년 전 ‘예감’이 서현역 사건으로 적중했다며, 그 원인을 2017년에 시행된 「정신건강 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 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정신건강복지법)으로 돌리는 정신과 의사들의 주장을 아주 친절하고도 자세하게 실어주었다.
정신건강복지법의 개정으로 정신질환자들의 강제입원이 이전보다 까다로워졌고, 그로 인해 치료받지 않은 혹은 치료에 방치된 정신질환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에 ‘안인득 사건’과 ‘서현역 사건’의 발생은 피할 수 없는 “예견된 일”이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이며 유일한 논거로 기사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전후의 정신장애 범죄자 통계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그것도 독자들이 한눈에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아주 큼지막한 그래픽으로 처리해서 보여준다.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전인 2015년도에 정신장애 범죄가 총 6,980건이었는데 법률 개정 후인 2019년도에는 총 8,850건으로 6년 사이에 26.8%가 증가했고, 특히 폭력범죄는 2,218건에서 2,917건으로 무려 31.5%나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렇게 강제입원 요건을 강화해놓고 정신질환자들의 인권을 찾다가 치료의 사각지대를 만들었다는 의사들의 “진심 어린” 우려와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정신질환자들의 인권이 더욱 강화된 정신건강복지법이 발의되었다는 소식으로 기사는 마무리된다.
이 기사뿐만이 아니다. 소위 ‘묻지마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의사라는 전문가의 ‘입’을 빌려 선택적인 통계과 왜곡·과장된 팩트를 기반으로 결국 강제입원만이 정신질환자들이 벌이는 이 충격적인 ‘묻지마 범죄’로부터 사회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대중들을 선동하는 언론 기사는 어김없이 나타난다.
독버섯 같은 이들 선동 기사의 논리 전개는 대부분 이렇게 진행된다. ①정신건강복지법 개정으로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 절차가 까다로워짐 → ②치료받지 않은 혹은 치료에 방치된 정신질환자가 늘어남 → ③정신질환자들의 범죄 행위가 증가함 → ④‘안인득 사건’이나 ‘서현역 사건’과 같은 충격적인 ‘묻지마 살인범죄’의 발생을 피할 수 없음 → ⑤정신질환자의 인권 강화보다 오히려 강제입원을 강화해서 정신질환자의 범죄 발생을 막아야 함
제대로 된 저널리즘이라면 설사 이런 식의 주장들이 우리 사회에서 횡행한다고 해도 논리 전개의 각 단계에서 과연 그것이 타당한 주장인지를 객관적으로 검증해보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저널리즘은 소위 ‘묻지마 범죄사건’에 관한 한 그 흔한 팩트 체크의 작은 노력조차 없이 강제입원! 강제입원!만을 목소리 높여 설파하고 있다.
거짓 주장의 출발점에서부터 하나씩 따져보기로 하자.
①“정신건강복지법 개정으로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 절차가 까다로워졌다.”
▶이 주장은 사실이다. 비자의적 입원 가운데는 가족 등의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이 주를 이루는데, 2017년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의 시행으로 입원치료의 필요성과 자·타해 위험성의 두 조건을 모두 충족시켜야 하는 것으로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의 요건이 강화된 것은 사실이다.
②“법 개정에 따라 강제입원 절차가 까다로워지면서 치료받지 않은 혹은 치료에 방치된 정신질환자가 늘어났다.”
▶이 주장은 명백하게 거짓이다. 법 개정 이후 치료에 방치된 정신질환자가 증가했다는 주장의 근거로 항상 제시되는 통계가 조현병 환자의 입원 치료 통계이다. 예의 머니투데이 8월7일자 기획 기사에서도 이 통계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조현병으로 입원 치료를 받은 환자 수가 법 개정 전인 2016년 2만3131명에서 법 개정 이후 매년 줄어서 작년에는 1만8212명으로 6년간 무려 21.3%나 감소했다는 것이다.
‘묻지마 범죄’의 충격과 불안에 휩싸인 대중들에게 강제입원이 까다로워지면서 불과 몇 년 사이에 조현병 입원 치료 환자 수가 이렇게나 급격하게 줄어들었다는 사실이 어떤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상상하기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2016년과 2022년의 조현병 입원 환자의 수가 거짓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이 숫자는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사실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 시행 전후 10년간의 조현병 환자 수 추이 통계를 보면 왜 법 개정 이후 치료받지 않은 혹은 치료에 방치된 정신질환자, 특히 가장 문제시되고 있는 조현병 환자가 늘어났다는 주장이 거짓인지가 확연히 드러난다.
조현병 입원 환자의 수는 지난 10년 사이에 점차 감소하는 추세이고 2017년 개정 정신건강복지법 시행 전후의 5년의 평균치를 비교해보아도 2만3398명에서 1만9976명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것은 입원 환자만을 놓고 보았을 때 감소한 것이지 외래 환자의 추이는 입원 환자와 정반대로 증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조현병 환자 전체의 환자수 추이를 보면 지난 10년간 치료를 받는 환자수가 점차 증가해왔으며, 특히 2017년 개정 정신건강복지법 시행 전후 5년의 평균치를 비교하면 약3000명 가량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의료권력과 그 의료권력의 나팔수 역할을 자처하는 일부 언론은 10년 간의 통계에서 오직 조현병 입원 환자수만을 뽑아내서 법 개정 이후에 치료에 방치된 정신질환자가 늘어났다는 가당치 않은 왜곡된 주장을 벌여왔다.
그러나 통계가 말하고 있는 진실은 감소된 수만큼의 입원 치료 조현병 환자들이 외래 치료로 옮겨갔으며, 조현병을 치료받는 전체 환자수는 오히려 법 개정 이후 확연하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조현병 환자가 굳이 입원하지 않고 외래를 통해 진료를 받고 증상을 관리하는 것은 바람직한 추세이고 더욱 권장되어야 할 일이지 이것을 두고 어떻게 치료에 방치된 조현병 환자가 늘어났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제 언론은 법 개정으로 강제입원이 까다로워져 치료에 방치된 정신질환자가 늘어났다는 의료권력의 허튼 주장을 더 이상 앵무새처럼 반복 재생해서 대중들을 현혹하고 정신질환을 향한 사회적 불안감을 증폭시켜서는 안 된다.
③“법 개정 이후 강제입원이 까다로워지고 치료에 방치된 정신질환자가 늘어나면서 정신질환자들의 범죄 행위가 증가했다.”
▶ 이 주장 또한 법 개정 이후 치료에 방치된 정신질환자가 늘어났다는 주장만큼이나 거짓이다. 물론 예의 머니투데이 8월7일자 기획 기사에서 인용하고 있는 경찰청의 범죄 통계 수치, 즉,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전인 2015년도에 비해 법률 개정 후인 2019년도에 26.8%가 증가했고, 특히 상해·폭행 등의 폭력 범죄는 같은 기간 31.5%나 늘어났다는 통계치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통계 수치도 앞서 조현병 환자 수 통계와 마찬가지로 거짓 주장에 잘 맞아떨어지는 범죄 통계의 일부만을 활용하였을 뿐이다.
기사는 정신장애인 범죄 통계 가운데 오직 2015년과 2019년이라는 특정 연도의 전체 범죄와 폭력 범죄의 통계치만을 제시한다. 그 이유는 소위 ‘묻지마 범죄’와의 연관성에 비추어 정신질환자 범죄가 증가했다는 주장의 근거로 제시하기에 그 두 통계치가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 간의 전체 통계를 살펴보면, 살인, 강도, 강간 등의 강력 범죄의 발생 추이는 지난 10년간 오히려 점차 감소해왔고 법 개정 전후 5년을 비교하여도 평균 약 16%가 감소했다.
또한 전체 범죄 건수가 늘어난 폭력 범죄의 경우에도, 세부유형 가운데 폭행은 평균치로 37%가 증가한 반면에 상해는 오히려 6%가 감소하였고, 가중처벌이 되는 가장 심각한 폭력행위의 경우에는 무려 91%가 감소하였다.
소위 ‘묻지마 범죄’의 맥락에서 정신질환자에 의한 강력 범죄 발생 빈도가 법 개정 이후 오히려 감소해왔다는 중요한 사실은 의도적으로 숨긴 채 발생 빈도가 증가한 폭력 범죄의 일부 통계치만을 교묘하게 활용하여 대중들에게 정신질환자에 의한 ‘묻지마 범죄’가 늘어난다는 거짓 정보를 끊임없이 머리에 각인시키는 일부 황색 언론들의 행태는 마땅히 크게 지탄받아야 할 것이다.
④“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의 증가로 ‘안인득 사건’이나 ‘서현역 사건’과 같은 충격적인 ‘묻지마 살인범죄’의 발생을 피할 수 없다.”
▶이 주장은 말할 것도 없이 거짓이고 허위이며, 정신질환자들을 향한 거의 저주에 가까운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기사의 제목 <“정신질환 인권 찾다간” 4년 전 이미 경고....범죄만 늘었다>를 보라. 법 개정으로 강제입원 요건이 까다로워진 시점부터 이미 정신질환자들에 의한 ‘묻지마 살인범죄’의 발생은 피할 수 없는 예정된 결과라는 암시이다.
‘서현역 사건’의 범인은 ‘조현형 성격장애’의 진단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현병도 아니다. 진단 후 어떤 치료를 어떻게 받았는지, 사건을 일으키기 전 그의 삶은 어떠했는지, 왜 그런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는지 사실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일부 의사들과 언론에게는 신통력이 있다. 범인에게 정신질환의 병력이 있다는 단 하나의 사실에 기반하여 이 범인을 미리 강제입원 시켜서 치료하지 않은 것이 사건의 발생원인이라는 기묘한 점괘를 서슴치 않고 내놓는다.
‘서현역 사건’과 같은 ‘묻지마 범죄’가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의사들의 “4년 전의 경고”는 정신질환자들을 향한 아주 고약하고도 악랄한 저주이다. 왜냐하면 모든 정신질환자들이 강제입원을 하지 않는 이상 결코 이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말하는 ‘강제입원이 필요하지만 하지 않은 정신질환자’의 수가 0이 되는 사회는 현실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정신질환 병력이 있는 사람에 의한 ‘묻지마 범죄’가 앞으로 3년 동안 일어나지 않다가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일 4년째에 일어난다면 “4년 전의 경고”는 다시 “8년 전의 경고”로 자동적으로 업데이트되고 이 저주의 경고는 지속된다. 그리고 의사들과 언론은 다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가 8년 전에 분명히 경고했었다!”
그렇다면 대중들을 가장 불안케 하는 정신질환자에 의한 살인 범죄는 과연 한 해 얼마나 일어나고 있을까? 경찰청의 범죄 통계를 보면 아래와 같다.
정신건강복지법 시행 이후 2018년에서 2022년의 5년 간 살인 범죄는 평균 21건으로 그 이전 5년에 비해 무려 30%나 감소하였고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에 있으며, 특히 작년은 15건으로 지난 10년 간 역대 최저의 수치를 기록하였다.
물론 단 한 건의 살인 범죄도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더욱 분발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정신질환자에 의한 살인 범죄 건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해가는 긍정적인 추세에도 불구하고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 요건이 까다로워져서 범죄만 늘어나고 결국 ‘묻지마 살인범죄’의 발생을 피할 수 없다는 근거 없는 저주의 악담을 의사들과 일부 언론들이 계속 퍼붓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⑤“정신질환자의 인권 강화보다 오히려 강제입원을 강화해서 정신질환자의 범죄 발생을 막아야 한다.”
▶ 결국 의료권력과 그 의료권력에 빌붙은 일부 언론이 하고 싶은 주장은 이것이다. 정신질환자의 인권 강화보다 강제입원을 강화시키라는 주문. 보다 쉽게 강제입원을 할 수 있게 해서 입원 병상이 늘어나게 해달라는 주문. 입원 병상이 늘어나서 병원 수입이 늘어날 수 있게 해달라는 주문.
이 주문을 성사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주장에 맞추어 통계를 선택하고 논리를 왜곡시켜 대중을 상대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혐오와 공포를 증폭시키는 프로파간다를 벌이는 것이다.
이러한 프로파간다가 고약하고 악질적인 이유는 정신질환자들을 위해 의술을 행한다는 의사들이 나서서 오히려 대중들을 상대로 자신들의 의료고객인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혐오와 공포를 부추긴다는 웃지 못할 패러독스에 있다. 그리고 일부 언론은 기사를 통해 이 악질적인 프로파간다의 훌륭한 보조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이제 언론은 의료권력의 이 악질적인 프로파간다의 대중 홍보 창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의사라는 전문가의 ‘입’만을 통해서, 그들이 던져주는 지극히 편향된 정보만을 통해서,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공포와 혐오를 확대·재생산해내는 황색 저널리즘의 행태를 지속해서는 안 된다.
우리 언론이 정신질환 너머의 소중한 삶들을 온전히 통찰하고, 강제입원과 사회 격리가 아닌 사회 참여와 통합을 고민하며, 사람에 대한 공포와 혐오가 아니라 신뢰와 협력과 연대를 제안하는 올바른 정론의 길을 걷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2023년 8월 29일
사단법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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