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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생명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
고린도전서 3장 5~9절에 “그러므로 아폴로는 무엇 파울은 무엇이냐, 각자에게도 주께서 주신 것처럼 그들을 통하여 너희가 믿은 하인들이라. 나는 심었으며 아폴로는 물을 주었으나 그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노라. 심는 자와 물을 주는 자도 아무것도 아니나,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나. 각자가 그 자기 자신의 수고를 따라 그 자기 자신의 보상을 취할 것이니. 우리는 하나님의 함께 일하는 자들이며 너희는 하나님의 집임이라”라고 하였습니다.
파울은 그 자신이 봉사하는 하인과 집사에 불과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마르다가 예수님을 시중들었던 것과 같이 시중드는 것입니다(룩 10:40). 식사하도록 준비하고 먹고 마시기까지 봉사한다는 의미입니다(룩 17:8).
아폴로나 사도 파울은 모두 믿게 하려는 임무를 받은 하인들일 뿐이며 하나님께서 파울과 아폴로의 봉사를 통해 교회를 자라게 하신 것입니다. 교회 직분을 맡은 자들은 자신들을 하인들로 여기고 봉사하여야 합니다.
1. 목회는 건축으로써 비유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0~15절에 “나에게 줌을 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지혜로운 건축업자와 같이 기초를 내가 놓았으나 다른 자가 위에 세우나 각자 어떻게 그가 위에 세우는지 보라(be careful). 이는 놓인 것 외에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음이니, 그것은 크리스트시나. 어떤 사람이 그 기초에 금, 은, 보석들, 나무들, 풀, 짚을 위에 세운다면. 각자의 행위(work)가 명백하게 될 것이니, 이는 그날이 밝힐 것이기 때문이니 불에 그것이 드러냄을 받기 때문이고 각자의 행위가 어떠한 종류인지를 불, 그것이 테스트하리라. 만일 어떤 자의 행위가 그가 위에 세운 바가 머무르면 상을 취할 것이고. 만일 어떤 자의 행위가 태움을 받을 것이면 그는 손실을 받게 될 것이나, 그는 구원함을 받을 것이나 불을 통하여와 같은 방식에 될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파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그 은혜에 따라 지혜로운 건축업자와 같이 그가 기초를 놓았으나 다른 자가 위에 세우나 각자 어떻게 그가 위에 세우는지 보아야 합니다(고전 3:10).
파울은 앞에서 심는 비유를 통해 그가 기초를 놓은 것을 표현하였는데 이제는 건축업자가 기초를 놓는 비유를 통해 그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파울은 지혜로운 건축업자처럼 기초를 놓았고 다른 자가 위에 세우나, 각자는 어떻게 그가 위에 세우는지 주의하여 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아무도 놓인 것 이외에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which) 예수 크리스트십니다(고전 3:11).
파울이 건축업자처럼 기초를 놓아 “놓인 것”은 예수 크리스트십니다. 이후에 사역자들은 재료를 “예수 크리스트”라는 놓인 것 위에 세웁니다.
이미 놓인 예수 크리스트 이외에는 어떤 것도 기초가 되지 못합니다.1) 예수 크리스트 위에 세워지지 않으면 교회가 아닙니다.2)
크리스트 외에 다른 기초를 놓지 못한다는 주장은 일반적 원리입니다. 코린트 교인들은 이미 확고하게 놓인 하나의 토대 위에 세워졌습니다.3)
아무 다른 이 안에(in no one else) 구원이 있지 아니하니, 구원되어야 하는 바에 주어진 다른 이름이 있지 아니함입니다(행 4:12). 그를 통하여서 아니면 아무도 하나님을 향하여 가지 못합니다(요 14:6).
누군가가 그 기초에 금, 은, 보석들, 나무들, 풀, 짚을 위에 세운다면. 각자의 행위(work)가 명백하게 될 것이니, 이는 그날이 밝힐 것이기 때문이니 불에 그것이 드러냄을 받기 때문이고 각자의 행위가 어떤 종류인지 그 불이 검사할 것입니다(고전 3:12~13).
금이나 은이나 보석들은 쉽게 불타지 않는 것들입니다(고전 3:12).4) 나무들, 풀, 짚은 사람의 지혜를 가르치는 거짓 교훈을 비유합니다.5) 이 구절은 두렵고 떨림으로 교회를 세우도록 권고하기 위함입니다.6)
만일 어떤 사람의 행위가 그가 위에 세운 바가 머무르면 상을 취하나. 만일 어떤 사람의 행위가 태움을 받을 것이면 그는 손실을 당할 것이나, 그는 구원되나 불을 통하여와 같은 방식에 될 것입니다(고전 3:14~15).
각 사람은 건물을 짓는 것에 대한 기여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됩니다.7) 이 세상 지혜를 추구하는 자들은 손실을 당할 것입니다(고전 3:15).8)
2. 목회는 성전으로써 비유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에 “너희는 하나님의 성소(temple), 하나님의 그 영(the Spirit)이 너희 안에 거주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냐? 누군가가 하나님의 성소를 파괴한다면 하나님께서 이를 파괴하시겠으니 이는 하나님의 성소는 구별됨이니 너희가 그러한지라”라고 하였습니다.
16~17절은 “하나님의 성소”인 교회를 파괴하는 자들을 경고합니다.9) ‘교사들에 대한 심판’을 경고합니다.10)
“헛된 것”이라는 히브리어(엘릴)는 “우상”(idol)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몇 개의 용어 중 하나입니다(레 26:1). 헛된 것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손으로 만들어진(made with hands)”이라는 말로 번역되었습니다.
손으로 만들어진 성소는 “헛된 것”에 불과합니다(막 14:58, 행 7:48). 주께서는 손으로 만들어진 성소 안에 거주하지 아니하십니다(행 17:24). 만일 성소에 주께서 거주하지 않으신다면 그것은 실상 성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소”가 이제 건물이 아닙니다. 건물이 아닌 우리가 하나님의 성소입니다(고전 3:16). 하나님께서는 ‘우리’라는 믿음의 공동체 안에 거주하십니다.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가 하나님의 성소인 것입니다.
앞 단락은 교회를 집으로 비유하였는데 이 단락은 성소로 비유합니다. “하나님의 성소”는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거주하고 계신 곳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가운데 거주하시므로 교회가 “하나님의 성소”입니다.
성령님께서 그들 안에 거주하심으로써 그들은 성소가 된 것입니다.11) 성령님께서 거주하신 “신성(神聖)한 장소(場所)”가 “성소(聖所)”입니다.
누군가 하나님의 성소를 파괴한다면 하나님께서 이를 파괴하시겠으니 이는 그 하나님의 성소는 구별됨이니 우리가 그런 것입니다(고전 3:17).
“파괴하다”라고 번역한 헬라어(프떼이로)는 “파괴하다”(destroy), “부패시키다”(corrupt), “더럽힌다”(defile)를 뜻합니다.
같은 말을 앞에는 “더럽히다”로 뒤에는 “멸한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성소를 대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행한 것과 같이 그 사람에게 똑같이 돌려주십니다. 성소를 더럽힌 사람은 파괴한 사람이며 그를 하나님께서 파괴하십니다.
교회 파손에 책임이 있을 때, 똑같은 방식으로 심판을 맞게 됩니다.12) 터는 크리스트시고(고전 3:11), 성소는 우리입니다(고전 3:16~17).13)
3. 목회는 인간적으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8~23절에 “누구든지 그 자신을 속이지 않도록 하라 누구든지 이 시대에 지혜롭게 여기면 미련하게 되라 지혜롭기 위해서라. 이는 이 세상의 그 지혜는 하나님의 앞에 미련함임이니, ‘지혜로운 자들을 그들의 교활함 안에 붙드시노라’라고 기록되었음이고. ‘주께서 지혜로운 자들의 생각이 헛됨을 아시노라’라고 그러하였음이라. 그 누구도 사람을(in) 자랑하지 않도록 하라 모든 것이 너희의 것임이라. 파울 또한 아폴로 또한 베드로 또한 세상, 또한 생명 또한 사망, 또한 현재의 것들, 또한 곧 오려는 것들, 모든 것들이 너희의 것임이나. 너희는 크리스트의 것이나, 크리스트는 하나님의.”라고 하였습니다.
이 시대에 지혜롭게 여기는 자는 미련하게 되어야 합니다(고전 3:18). 진리의 말씀을 자기 지혜에게 맞지 아니한다고 생각하여 받지 아니할 때 그 지혜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고전 1:21).
하나님의 지혜 앞에 겸손하게 자기 지혜를 내려놓고 미련하게 되는 때 세상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를 얻음으로 참으로 지혜롭게 됩니다. 지혜롭게 되기 위해서는 자기 지혜를 내려놓고 미련하게 되어야 합니다.
이는(For) 이 세상의 그 지혜는 하나님의 앞에 미련함임이니, ‘지혜로운 자들을 교활 안에 붙드시노라’라고 하였습니다(고전 3:19).
욥기 5장 13절에 “지혜로운 자를 교활함 안에 붙드시노라”라고 하였고 그는 지혜로운 자들을 그들 자신의 교활함에 붙잡으십니다. 교활하고 교묘하고 능란하여도, 하나님께서 잡으십니다(catch).
‘주께서 지혜로운 자들의 생각이 헛됨을 아시노라’라고 기록되었는데, 이것은 시편 94편 11절에 기록되었습니다(고전 3:20).
시편 94편 11절에 “그가 인류의 생각들이 헛됨인 것을 아시노라.”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어떤 것을 아는 것은 창해일속(滄海一粟)에 불과할 뿐입니다. “창해일속”이라는 한자어는 “차가운 바다의 좁쌀 하나”라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이 아는 것은 넓은 바다 안에 있는 좁쌀 한 알 정도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이 지혜는 이렇게 무한한 지혜 가운데 하나의 지혜에 불과합니다. 이와 같은 사람이 자기 생각에 안 맞는다고 하나님의 지혜를 배척한다면 그는 그 자신을 지혜롭게 생각할지라도 실상은 미련한 사람일 뿐입니다. 자신의 지혜가 작은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께서 지혜로운 자들의 생각이 헛됨을 아시노라’라고 기록되었으며, 사람들 안에 자랑하지 않아야만 하나니 모든 것들이 우리의 것임입니다. 파울에 속하였느냐 아폴로에 속하였느냐는 문제로 자랑하면 안 됩니다.
파울이든 아폴로든 양쪽 모두가 믿는 자들의 유익을 위한 자들입니다. 교회에 심는 자도 필요하고 물을 주는 자도 필요하며, 모두 유익합니다. 심는 자 편과 물을 주는 자 편으로 나뉘어 당파를 짓는 것은 미련합니다.
파울이든 아폴로든 베드로든 모두 믿는 자들을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사람만 아니라 또한 이 세상, 또한 생명이나 사망, 현재나 미래의 것들, 모든 것들이 우리의 것이며, 모든 것들이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들은 크리스트의 것이고, 크리스트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만물이 신자들의 것이 되려면 신자들이 크리스트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크리스트께 온전하게 복종할 때에, 만물도 우리에게 그러합니다.
고린도전서 4장 1~5절에 “이 방식에 사람이 우리를 크리스트의 고용인들과 하나님의 신비의 청지기들처럼 간주하라. 그것이 청지기들에서 찾아지니 누구든지 믿을 수 있게 발견되는 것이나. 나에게는 그것이 가장 작은 것 안으로니 너희에 의하여서 심사된 것이고 나조차도 나 자신을 심사하지(judge) 아니하나니. 나 자신에게 내가 의식하지 아니하나 내가 옳다고 함을 받지 아니하노라 나를 심사하시는(examine) 분께서는 주(the Lord)시라. 그래서 시간 전에 주께서 오셨기까지 어떤 대상을 판단하지 않도록 하라 그가 그 암흑의 은밀한 것들을 밝히고 마음들의 뜻들을 나타내실 것이고 그때 칭찬(praise)이 각자에 하나님에서부터 생겨날 것이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사람이 설교자들을 하나님의 신비의 청지기들처럼 간주하여야만 하니 사람이 설교자들을 연설이나 세상의 지혜로 판단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설교자들은 하나님의 신비를 잘 관리할 수 있는 청지기들이어야 합니다. 설교자가 강단 위에 올라가 화려한 말솜씨로 청중을 설득한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신비 말씀을 전하지 아니한다면 그는 바른 설교자는 아닙니다.
바른 설교자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말을 하는 자가 아닙니다.14)
청지기들이 믿을 수 있게 발견되는 것이 그들에서 찾아지는 것입니다. 청지기들은 믿을 수 있게 발견되어야 하며 믿을만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청지기들은 신실하고 신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믿을 수 있게 발견되는 것이 청지기들에 찾아지는 것입니다. 파울에게는 그것이 가장 작은 것 안으로니 그들에 의하여 심사된 것이고 그도 그 자신을 판단하거나 심사하거나 분별하지 아니합니다.
파울은 그 자신도 심사하지 아니하였습니다(고전 4:3). 아첨하는 사람들의 칭찬이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적대하는 사람들의 훼방이 나를 더 나쁜 사람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15)
나 자신에게 내가 의식하지 아니하나 내가 옳다고 함을 받지 아니하며 나를 심사하시는 분은 주십니다(고전 4:4).
나는 사람에 의해 심사되지 아니하며 사람이 나의 시험관이 아닙니다. 여기서 “사람”에는 “너희” 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도 포함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말할지라도 개의치 아니하여야 하니 주(the Lord)께서만 나를 심사할 자격을 가진 심판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께서 오실 때까지 어떤 대상을 판단하지 아니하여야만 하니, 그가 그 암흑의 은밀한 것들을 밝히고 마음들의 뜻들을 나타내실 것이고 그때에는 칭찬이 각자에게 그 하나님에서부터 생겨날 것입니다. 사람의 심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판단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4. 목회는 개인적으로 자랑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6~7절에 “나 자신과 아폴로 안으로 비유로 적용하니, 우리 안에 기록함을 받은 바들을 넘어서 아님을 너희가 배우기 위해서니 하나를 위하여 다른 자에게 대항하여 거만하게 되지 아니하기 위해서니. 그 이유는 누가 너를 구별함이냐 너의 받지 아니한 바의 무엇을 가지냐 또 너도 받았다면 받지 아니한 것과 같이 자랑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6~13절은 ‘사도들이 십자가의 지혜에 대한 모델’이라는 것입니다.16)
파울은 그 자신과 아폴로 안으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여 말하였는데 일반적인 양식과는 달리 겉으로 드러난 모양을 바꾸어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 안에 기록함을 받은 바들을 넘어서 아님을 우리가 배우기 위해서니 하나를 위해 다른 자에 대항하여 부풀어 오르지 아니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아무도 마음이 부풀어 올라서 거만하게 되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이유는 내가 받지 아니한 아무것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파울은 7절의 질문들로 올바른 관점을 도우려고 합니다(고전 4:7).17) 파울은 “누가 너를 구별하냐(makes differ)”라고 질문합니다.
만일 내가 받았으면, 무엇을 받지 아니한 것처럼 자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것을 처음부터 내가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자랑하는 것은 세상의 논리로도 맞지 아니한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고전 4:7).
악마가 중생한 마음에도 교만의 씨를 던지면 교만이 뿌리내립니다.18)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들은 은혜를 완전히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격 있어 받은 것도 아니고, 노력으로 얻은 것도 아닙니다. 그들의 자랑은 그들이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19) 다른 사람을 멸시한다면 그를 만드신 창조주를 멸시하는 것입니다.20)
부자라면 그 재물 얻을 능력을 주신 이가 하나님이십니다(신 8:18).21) 내가 열심히 일했지만, 일할 수 있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받은 것인데 받지 않은 것처럼 자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받은 것을 가지고 자랑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훔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찬미하는 때에 왕들의 왕께서 받으실 찬미가 줄어듭니다. 우리가 자신을 자랑하면 그만큼 하나님을 존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22)
받은 것을 가지고 감사하여야지 자랑하고 교만하여서는 안 됩니다.23)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아는 것이 큰 위로를 가져다줍니다.24) 우리는 다 빈손을 펼치고 빈 마음을 열고 은혜를 받는 자가 됩시다!25)
고린도전서 4장 8~13절에 “너희가 만족하고 부유하고 지배한 것이라 너희가 지배했으면 좋겠다고 여기니 우리도 함께 지배하기 위한 것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음으로 선고한 자들처럼 증명하셨다고 추정함이니 우리가 세상과 천사들에게와 사람들에게 극장이 되었노라. 우리는 크리스트 때문에 미련하나 너희는 크리스트 안에(in) 지혜로우며 우리는 무력하나 너희는 강하며, 너희는 영광스러우나 우리는 미천하며. 현시점까지도 우리가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맞고 정처 없이 떠돌고. 수고하며 모욕함을 받는 우리가 축복하며 박해함을 받는 우리가 참으며. 비방함을(slander) 받는 때에 우리가 격려하나니 세상의 오물들, 모든 것의 폐물들과 같이 되었노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만족시킴을 받고 이미 부유하고 사도들 없이 지배합니다. 그들이 지배하면 좋다고 여기니 사도들도 함께 지배하기 위한 것입니다. 모든 믿는 자가 함께 지배할 때는 아직 오지 아니하였습니다(고전 4:8). 지금은 왕처럼 지배할 때가 아닌데도 그들은 이미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지배할 것이나 사도들이 경험한 바처럼 지금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죽음으로 선고한 자들처럼 증명하셨다고 여기니 그들은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마치 극장과 같이 되었던 것입니다. 원형극장 안에 맹수들의 먹이가 되는 것을 구경거리로 지켜본 것입니다.
“극장”이 되었다는 말은, 마치 드라마 주인공처럼 되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이 그 광경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원형극장 안에서 구경거리는 단순한 연기나 CG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맹수들과 목숨을 걸고서 싸우다가 찢겨 죽었습니다. 절대 이 믿음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왕처럼 지배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설교에 생명력이 있지 않는다면 교인들이 떠돌아다닐 수 있습니다.26) 목회자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는 진심의 설교를 하여야 합니다.27) 설교자는 훈장처럼 가르치기보다 설교에 혼(ethos)을 담아야 합니다.28) 파울이 전도하면서 “극장”의 구경거리가 된 것과 같습니다(고전 4:9).29) 설교자가 청중들을 감동하게 하려면 애절함과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30) 목회자들은 청중에게 감동을 주는 하나님의 광대처럼 되어야 합니다.31)
사도들은 크리스트 때문에 미련하나 그들은 크리스트 안에 총명하며, 파울은 무력하나 그들은 강하며, 그들은 영광스러우나 파울은 미천하며. 현시점까지도 파울은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맞고 정처 없이 떠돌고. 수고하며 모욕함을 받는 파울은 축복하며 박해함을 받는 파울은 참으며. 파울은 그가 비방된 때에 격려하였으니, 마치 세상의 오물들, 모든 것의 폐물들처럼 되었습니다(고전 4:10~13).
파울은 크리스트 때문에 살고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파울은 그 자신의 처신 문제에서 어떤 술책도 사용하지 아니하였습니다. 파울의 이런 처세는 사람들이 보기에 미련하였습니다.32)
파울은 크리스트 때문에 바보 취급을 당하였으나. 코린트 교인들은 자신들이 크리스트 안에 지혜롭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파울은 크리스트 때문에 힘이 없는 자가 되었으나 그들은 강하였으며, 그들은 영광스러운 반면에 그는 미천하며 명예 없는 불명예를 가집니다. 파울은 크리스트 때문에 굴욕을 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와 그들의 대조를 통해 어느 쪽이 참된 믿음의 삶인지 알 수 있습니다. 파울은 명예와 칭찬은 고사하고 모욕을 받고 비방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는 마치 세상의 오물들, 모든 것들의 폐물들과 같이 취급된 것입니다.
5. 목회는 본보기로써 본받을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14~16절에 “자식처럼 경고하며 이것들을 기록하니. 일만 가정교사를 크리스트 안에 가지나 많은 아버지를 그러지 아니하니, 이는 크리스트 예수 안에 그 좋은 소식을 통해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권면하니 너희는 나의 본받는 자들이 되어라”라고 하였습니다.
4장 14~21절은 고린도전서 1~4장의 결론(peroration)입니다.33)
그들이 일만 가정교사를 가지나 많은 아버지를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파울은 그들을 영적으로 낳은 까닭에 단순한 스승이 아닌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로 그의 사랑하는 자식들과 같이 훈계하는 것입니다.
그가 그들을 낳았으니 그는 자신의 본받는 자들이 되라고 훈계합니다. 누군가를 본받고 모방하기 위해서는 본받을 본보기가 필요합니다. 파울은 “모범”이었고 “모델”이었고 “본보기”였는데, 파울은 미련하며 무력하며 미천한 삶을 산 그를 본받으라고 훈계합니다.
고린도전서 4장 17~21절에 “이것 때문에 너희에 디모데를 보내었고 크리스트 예수 안에 나의 길들을 그가 너희를 생각나게 할 것이니, 어디에서나 모든 교회 안에 그가 가르치는 것에 따라서나. 너희를 향하여서 내가 가지 아니하는 것처럼 누군가는 부풀어 올랐으나. 급히 너희를 향해 가고 부풀어 오른 자들의 말이 아닌 그 능력을 알리니. 이유는 그 하나님의 왕국은 말 안에 아니나 능력 안에 있음이라. 너희가 무엇을 바라느냐 막대기 안에 내가 너희를 향하여 가겠느냐 아니면 사랑과 온유의 영(spirit) 안에 그러할 것이냐?”라고 하였습니다.
파울은 이러한 훈계 때문에 그들에게 디모데를 보냅니다(고전 4:17). 디모데가 크리스트 안에 파울의 길들을 생각나게 할 것입니다. 어디에서나 모든 교회 안에 그가 가르치는 것에 따라서입니다.
디모데 역시 주 안에서 그의 사랑하는 자녀로 여겨집니다. 파울의 사랑하는 자녀들인 고린도 교인들과 같은 위치에 있습니다. 디모데는 그의 아버지를 신실하게 본받는 모범이 되는 자녀입니다.34) 파울은 그들에게 디모데를 보내었습니다.
그들을 향하여 그가 가지 아니하는 것처럼 누군가는 부풀어 올랐는데, 그들은 마음이 부풀어 올라서 거만하게 되었습니다(고전 4:18).
그 거만하게 된 자들은 부풀어 오른 공허한 바람일 뿐입니다.35)
파울은 만일 주께서 바라신다면 그들을 향하여 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가서 그 부풀어 오른 자들의 말이 아닌 능력을 알 것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말 안에 아니나 능력 안에 있음입니다(고전 4:19~20).
여기 “능력”이라고 함은 어떤 초자연적인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죄인이 예수 크리스트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이 하나님의 능력은 바로 “복음”입니다(롬 1:16).
파울은 사람들에게 주 예수님을 믿게 할 능력을 그들이 갖추고 있는지 그들이 전하는 복음이 참된 복음인지 가서 알아보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파울은 거만한 자들의 허언이 아니라 능력을 알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하나님께서 왕으로서 통치하시는 왕국을 말하는데 그를 왕으로 인정하는 자들이 많아지는 때 하나님의 왕국은 확장됩니다. 하나님의 왕국 확장은 복음이 전파되는 결과로 회개와 함께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복음을 듣고서 회개하게 만드는 능력 안에 있습니다. 이런 능력은 말과 연설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에 있지 아니하고 참된 복음이 전파되는 것에 있습니다.
파울은 막대기를 가지고(with) 그들을 향하여(to) 갈 수도 있고, 아니면 사랑과 온유의 영(spirit)을 가지고 그러할 수도 있습니다. 그는 둘 중 “너희가 무엇을 바라는 것이냐”고 물은 것입니다(고전 4:21).
1) Gordon D. Fee, 『NICNT 고린도전서』, NICNT 성경주석, 최병필 역 (서울: 솔로몬, 2019), 201.
2) Charles Haddon Spurgeon,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스펄전 설교전집 28, 모수환·김원주 옮김 (고양: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11), 72.
3) David E.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BECNT 성경주석, 조호영 옮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9), 167.
4) Craig L. Blomberg, 『고린도전서』, NIV 적용주석, 채천석 역 (서울: 도서출판 솔로몬, 2012), 88.
5) 박윤선, 『고린도전후서』, 성경주석 (서울: 영음사, 1981), 49.
6) 권연경, 『오늘을 위한 고린도전서』 (서울: 한국기독학생회 출판부, 2022), 150.
7)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169.
8) Fee, 『NICNT 고린도전서』, 205.
9) Fee, 『NICNT 고린도전서』, 208.
10)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154.
11) Fee, 『NICNT 고린도전서』, 211.
12) Fee, 『NICNT 고린도전서』, 212.
13) Kenneth E.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김귀탁 옮김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7), 195.
14) 박영선, 『도전받는 고린도교회』 (서울: 도서출판 엠마오, 1994), 8.
15) 박윤선, 『고린도전후서』, 58.
16)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186.
17) Fee, 『NICNT 고린도전서』, 240.
18) Spurgeon,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스펄전 설교전집, 88.
19) Fee, 『NICNT 고린도전서』, 241.
20) Spurgeon,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스펄전 설교전집, 93.
21) Spurgeon,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스펄전 설교전집, 95.
22) Spurgeon,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스펄전 설교전집, 100.
23) Spurgeon,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스펄전 설교전집, 103.
24) Spurgeon,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스펄전 설교전집, 105.
25) Spurgeon,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스펄전 설교전집, 107.
26) 소강석, 『포스트 코로나 한국교회의 미래』, 185.
27) 소강석, 『포스트 코로나 한국교회의 미래』, 187.
28) 소강석, 『포스트 코로나 한국교회의 미래』, 189.
29) 소강석, 『포스트 코로나 한국교회의 미래』, 191.
30) 소강석, 『포스트 코로나 한국교회의 미래』, 193.
31) 소강석, 『포스트 코로나 한국교회의 미래』, 198.
32) 박윤선, 『고린도전후서』, 61.
33) 서인선, 『고전 수사학과 고린도전서 15장』 (도서출판 한국성서연구, 2014), 116.
34)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209.
35)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211.

첫댓글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 27:1).
💖행복은 남에게 나눠 줌으로써 비워지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을 나눔으로써
채워지는 신비로운 것입니다. 베푸는 만큼 행복의 양도 그만큼 많아 집니다.
오늘 하루도 주위 사람들에게 베푸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