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만 나와라’ 승무원 지시에 집 열쇠도 못챙겨”… 90초룰이 379명 살려
JAL, 1985년 참사로 안전교육 강화
확성기로 “전방으로 탈출” 안내
탈출 승객들 기체서 멀리 떨어뜨려
3일 일본 하네다공항 활주로에 하루 전 해상보안청 항공기와의 충돌로 전소된 일본항공(JAL) 여객기의 잔해가 남아 있다. 여객기 전체가 완전히 그을려 참혹한 당시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아직 정확한 충돌 원인이 알려지진 않았으나 일각에서는 관제사의 실수를 거론하고 있다. 아사히신문 제공
2일 오후 5시 47분경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으로 들어오던 일본항공(JAL) 여객기는 ‘설원’으로 이름난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출발한 비행기답게 스키 여행객이 가득했다. 회사원 A 씨(47) 역시 즐거웠던 여행을 곱씹으며 좌석 모니터로 착륙 장면을 구경하고 있었다고 한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닿기 직전, A 씨는 “갑자기 ‘쿵’ 하고 큰 소리가 나더니 여객기 날개가 화염에 휩싸였다”고 요미우리신문에 말했다.
2일 발생한 하네다 공항 여객기 충돌은 자칫 대형 참사로 번질 수 있는 사건이었다. 승객 367명과 승무원 12명이 타고 있던 JAL 여객기는 14명이 다쳤지만 모두 목숨을 건졌다. 기적 같은 탈출에 대해 미국 CNN은 “1985년 최악의 사고를 겪은 JAL이 ‘피로 쓴 교과서’를 40년째 잊지 않은 결과”라고 조명했다.
‘피로 쓴 교과서’란 1985년 8월 12일 도쿄에서 오사카로 가던 JAL 123기가 후지산에 추락해 520명이 사망했던 최악의 항공 사고를 일컫는다. 당시 한국인 6명도 목숨을 잃었다. 보잉 측의 수리 불량이 원인으로 알려진 이 사고에서 살아남은 이는 4명뿐이었다.
이후 자체 안전기준을 강화한 JAL은 엄격하게 훈련받은 승무원들이 사고가 발생하면 착륙 90초 내에 승객을 기내에서 탈출시키는 ‘90초 룰’을 엄격하게 이행해 왔다. 2005년에도 도쿄 본사에 사고 잔해 전시관을 마련하는 등 안전 교육을 잊지 않았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사고 당시 여객기 내부도 연료 타는 냄새가 밀어닥친 뒤 순식간에 열기와 연기로 가득 찼다. 하지만 승무원들은 “일단 침착하게 코와 입을 가려라”라고 안내한 뒤, 확성기를 사용해 “전방으로 탈출하라”고 외쳤다. 기내 방송은 문제가 발생해 작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부 승객은 선반에서 짐을 꺼내려 시도했지만, 승무원들이 나서서 제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원 조지프 하야시 씨(28)는 “승무원들이 ‘여행가방을 두고 나오라’고 외쳐 몸만 빠져나왔다. 집 열쇠도 챙기지 못했다”고 아사히신문에 말했다.
탈출한 승객들은 안내에 따라 여객기로부터 재빨리 떨어졌다. 곧이어 폭발음이 들리더니 여객기는 빠르게 화마에 휩싸였다. 승객 B 씨(59)는 “전부 대피하는 데 약 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닛케이아시아에 말했다. 탈출구와 가장 먼 기체 뒤쪽에 앉아있던 C 씨(49)는 “1분만 늦었어도 어떻게 됐을지 생각하면 몸이 떨린다”고 요미우리신문에 말했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2일 밤 브리핑에서 사고 발생 경위에 대해 “활주로에 진입해 착륙하던 JAL 여객기와 이륙하기 위해 활주로에 진입하던 해상보안청 항공기가 충돌한 것”이라고 밝혔다. 관련 당국이 3일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한 가운데, NHK는 “관제사와 해상보안청 항공기 기장이 활주로 진입 허가 여부를 놓고 엇갈리게 진술하고 있다”는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