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 논설위원 6·29 선언 34주년에 출사표 분열로 패한 야당의 反面敎師 이젠 실력으로 증명할 시간 反文 빅텐트는 혼자선 역부족 정당의 중요성 망각하면 패착 野와 결합 늦추면 위기 올 수도 1987년 6월 29일 오전 9시 서울 관훈동 민정당사. 당시 노태우 대표는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직선제 개헌과 김대중 사면복권 등을 골자로 하는 8개 항의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회의장은 충격과 놀라움으로 침묵이 흘렀고, 일부 의원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대통령 간선제였다면 당연히 차기 대통령은 노태우 대표였지만 직선제가 되면 정권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 대표는 자신의 주장을 전두환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모든 직책에서 사퇴하겠다고 배수진을 쳤고, 전 대통령은 마치 각본을 짜기라도 한 듯이 곧바로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야당은 ‘6·29 항복선언’이라고 들떠 있었고 이후 3김 씨는 각각 대선에 출마하게 된다. 당연히 야당이 승리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4자(者) 필승론’ 등 낙관적인 전망이 난무했다. 그러나 분열한 야당은 자멸하고, 노 후보는 고작 36.6%의 득표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공교롭게도 6·29선언 34년이 되는 날 정치 참여 선언을 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비롯한 야당에서는 대선 낙관론이 팽배하다. 윤 전 총장, 최재형 전 감사원장 등 주자들이 있고, 당 지지율도 40%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마치 34년 전 6·29선언 때 야당처럼 자신감이 충만하다. 반면 문재인 정권은 부동산 실책을 연발하고 레임덕 조짐도 보인다. 하지만 선거는 어떤 드라마를 연출할지 아무도 모른다. 끝까지 국민의 마음을 얻는 자만이 승리의 축배를 들 수 있다. ‘검사 윤석열’은 권력의 부당한 압력과 수사 방해에 맞서 법치와 헌법 정신을 지키는 이미지로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이젠 ‘정치인 윤석열’ ‘대권 후보 윤석열’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때 홍명보 감독이 경기에 패한 뒤 “선수들이 월드컵에서 좋은 경험을 했다”고 말하자 당시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월드컵은 경험하는 무대가 아니다. 월드컵은 최고의 실력으로 증명해 보이는 대회다”고 지적한 바 있다. 내년 3·9 대선도 마찬가지다. 최고의 실력으로 증명해 보여야 한다. 윤 전 총장은 이날 정치참여 선언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위대한 국민의 상식으로부터 출발하겠다”고 했다. 1987년 이후 정치는 상생(相生)이 아니라 상극(相剋)으로 치달았다. 권력을 잡은 측은 5년 내내 상대방 죽이기에 골몰했고, 반대로 야당은 정권 끌어내리기에만 힘을 쏟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갈등의 정점이었다. 문재인 정권은 이런 갈등을 해소하기는커녕 더 부추겼고, 이제 임기를 1년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 상처만 남겼다. 오죽했으면 문 대통령이 한 인사 중에 가장 잘했다는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이 중도에 사퇴하고 야권의 대선후보로 나서겠다고 하겠는가. 화합은 말은 쉽지만 현실정치에서 구현되기란 별 따기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지금 윤 전 총장을 지지하는 국민은 문 정권의 죄상을 다음 정권에서 철저히 단죄해 달라는 요구가 많다. 더욱이 윤 전 총장은 문 정권의 ‘적폐청산 수사’를 이끌었던 원죄 아닌 원죄가 있다. 보수와 중도뿐만 아니라 진보에서 반문으로 돌아선 이들까지 모두 엮어 ‘반문 빅텐트’를 치겠다는 것인데 난관이 많다. 이런 일을 혼자서 이루긴 어렵다. 이준석 대표 취임 이후 정치의 새바람을 주도하는 국민의힘과 함께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현실적이다. 친문처럼 친윤(親尹) 그룹도 만들어야 한다. 윤 전 총장이 ‘공정’의 가치를 등에 업었듯 지금 정치권의 화두는 ‘공정한 정치’다. 이 대표가 시작한 대변인 토론배틀이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오는 것도 처음으로 새 정치의 모델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학벌·지연·돈이 없어도 누구나 공정한 과정을 거쳐 정치권에 들어올 수 있다는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이제 검찰의 공정을 넘어 정치의 공정을 직접 보여줘야 한다. 안철수·반기문·고건 현상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기득권을 버리지 못했고 정당의 가치를 경시했기 때문이다. 높은 지지율만으로 정권교체를 달성하긴 어렵다. 그러기 위해선 정치의 영역에서 윤석열식 공정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당원들과 의원들의 지지와 공감을 끌어내고 국민 앞에 당당히 자신의 실력을 보일 때 지지율은 표로 현실화된다. 대선 과정에 부전승(不戰勝)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