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가 쓴 책
오완수_'철에서 삶을 본다’
(월간현대경영 2024년 1월호)
국제시장 노점에서 대한제강으로 오완수 회장의 인생 이야기
현대경영사史이 ‘큰바위얼굴’들이 쓴 책을 모아 한국경영의 대하 시리즈를 올린다. 27세에 대한상사에 입사하여 ‘종교가 공장’이었던 철저한 현장주의자 ‘오반장’이 ‘철이 인생론’이 나왔다. 오완수 회장이 어떤 인생 가치관을 가지고 대한제강을 이끌어왔는지 살펴보자.
고통 없이 여무는 열매는 없다
오완수 회장이 아버지 오영수 회장은 돈이 노는 것을 못 보는 분이시라 돈을 통장에 가만히 두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회사 수익은 물론이고 부족한 자금을 은행 대출로 메우면서 계속 공장시설을 확장해왔기 때문에 대부분의 자산이 은행에 담보로 설정돼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오 회장이 기업을 물려받으면서 2억 6천만 원 가량의 상속세를 내야 할 형편이었다. 오 회장은 모든 게 막막했지만 상속세를 3년 분할로 납부하기로 하고 회사일에 매달렸다. 은행에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사정했지만 선친이 살아 계실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고 한다. 회사가 곧 넘어간다는 소문을 듣고 회사까지 찾아와서 대출해 간 돈을 갚으라며 소란을 피우는 은행 지점상도 있었다. 세무서장으로부터 “이런 재무상태로 회사를 정리하지 않고 계속 끌고 가는 것은 양심이 없는 짓이 아니냐”는 모욕적인 말을 듣기도 했다. 그때 오 회장은 ‘어떻게 남의 사업을 놓고 함부로 말할 수 있느냐, 사업하는 사람은 희망적인 미래를 내다보면서 회사를 경영하는 것이니 서로의 잣대가 달다.”고 응대했다. 회사를 정상화하기 위해 오 회장이 가장 중점을 둔 일은 품질관리였다. 대표이사 직속기구로 별도의 팀까지 구성하고 불량이 발생하면 생산라인을 멈출 수 있는 권한을 줄 정도로 품질관리팀에 힘을 실어주자 품질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1년 후에는 철근콘크리트 용 봉강부분에 대한 KS마크를 획득하는 성과로 나타났다. 회사의 매출은 비약적으로 증가했고, 철강제품을 미국과 중동으로 수출하는 기회를 얻게 되면서 회사 사정도 나아졌다.
오 회장은 기업의 경영자는 시련이 닥칠 때마다 남이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하지만 고통스러울 때 많은 것을 배우고 더 크게 성장한다고 말한다. 백 번의 담금질을 해야 만들어진다는 쇠, 기업인 뿐 아니라 우리의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