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공성의 증득은 붓다의 견지에 이르렀을 때 가능한 것
오늘 이 ‘견성은 공부의 시작이다’ 하는 제목,
이건 선불교(禪佛敎)에서 들으면 죽는 거예요.
내가 이것을 아마 내 책 쓰기 전에 생각해보니까 부산 대한불교신문에
첫 번째 내가 쓴 거예요. 한 10년 전이지요.
그러면서 책이 나오고 내가 TV에 나가니까 조계종에서 죽이려고 한 거예요.
눈의 가시가 문제 아니어요.
그래서 이 제목 가지고는 지금까지 내가 별로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안 했는데, 이제부터 말을 해야 되요. 이제는 할 말을 해야 되요.
아! 그래야지 스님들이나 우리 신도분들이 죽을 함정으로 안 가지.
지옥 갈 중생을 막아야지. 이게 중생을 오도(誤導)하고 있는 말인데요.
왜 견성은 공부의 시작인가?
견성에서 아라한 보살 붓다, ‘견성‧ 깨달음에서 붓다까지’라고 하는 책을
내가 아마 금․명년 간에 쓰고 싶습니다.
이미 나왔지만 우리 연구소에서 쓴 책인데 그것은 너무 약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폐기하고 다시 쓸 거예요.
오늘 한 시간 ‘견성은 공부의 시작이다’고 하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드리겠지만
이건 책 한 권 감이어요. 그래서 오늘은 대략 말씀을 해드리겠습니다.
자! 견성, 견성 하는데 그러면 견성이란 뭐냐?
깨달음, 깨치는 것을 말해요. 절
에 가면 스님들이 가부좌를 해서 벽을 보고 참선(參禪)하고 있잖아요.
TV를 통해서 보시기도 할 거예요. 다 공부감이 있어요. 화두를 들고 하는 거예요.
화두타파, 이게 견성이어요. 화두타파를 하게 되면 성품자리를 보는 거예요.
성품자리가 뭐냐? 이것을 자기의 본성이라고도 해요.
자성(自性), 불성(佛性), 본성(本性)을 본다 그 말이어요.
달리 우주 본체를 가지고도 말해요. 우주 본체를 본다 그거예요.
삼라만상(森羅萬象) 이 우주를 낸, 우주가 나온 근본(根本) 모체(母體), 본체(本體),
이것을 본다는 거예요. 이거 대단한 거예요. 이게 견성이어요.
그러나 이 견(見)자는 본다는 것인데, 그 경지에 가버리면 ‘나(我)다, 남이다’ 하는
관념이 없어져버려요. 그러니까 여기 견(見)자는 뜻으로는 드러날 현(見)자예요.
거기가 드러난 거예요. 나(我)도 없어져버려요. 그건 좋아요. 그건 바람직해요.
과거생에 많은 선근공덕이 있어야 그 경지에 가는 거예요.
공부인들이 천(千)에 하나, 만(萬)에 하나 나옵니다. 그런 사람이요, 나오지요.
그런데 그 후가 문제예요. 그렇게 공부한 사람들이 ‘마음이 부처’라고 하니까.
선불교에서는 마음이 부처라고 하거든요.
시심시불(是心是佛) 혹은 시심즉불(是心卽佛) 그럽니다.
마음이 부처라고 해, 마음을. 이 ‘마음’이 바로 본성이어요.
본체. 불성. 자성. 이것을 선에서는 마음이라고 해요.
깨쳤으면 부처되었다는 거예요. 자성을 깨쳤으니까 부처가 되어버렸다 그 말이어.
그래가지고 법상에 이렇게 올라가가지고 법문을 한다고 합니다만,
그 선법문(禪法門)은 좀 특별합니다.
주장자를 타~악 잡아 내리고 일단 게송을 읊고 하는데, 법문하다가 꼭 이런 얘기를 합니다. ‘마음이 부처이지 마음 밖에서 부처를 이야기하는 것은, 찾는 것은 외도다’ 그래요.
‘극락 지옥? 마음의 즐거움 혹은 고뇌의 그 자리가 지옥이고 극락이다’ 그래요.
극락 지옥이 마음 속에 있다고 이야기해요.
영산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것?
부처님의 그 몸뚱이의 불가사의한 삼신(三身)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선불교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아요. 마음 속에서 이야기해요.
마음 속에 있다고 말해요. 이건 아니어요. 이건 절~대 아닙니다.
《법화경》〈비유품〉에 있어요. 그거 아닌 거예요.
공성(空性), 공(空)을 봤다? 아~직 멀었어요.
보림을 정말 잘하면 공성을 증득한다고 하지요.
그러나 완전한 공성의 증득은 붓다의 견지에 이르렀을 때 가능한 거예요.
공(空)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버리는 거예요.
이게 부처님 수준에서 그렇게 되는 거예요.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몸뚱이 때문입니다.
무량광이라고 하는 그 빛으로 자성광, 우주 본체의 그 빛을 먹어버려요. 흡수해버린다고요. 그래가지고 우주 본체와 하나가 되어버리는 거예요. 그것이 청정법신이올시다.
그것이 청정법신이어요. 그 경계에 가야 공성을 완전히 증득했다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저~기 절대계에 상적광세계에 내 불신(佛身)이 생기는 거예요.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불신이 생기는 거예요.
이렇게 되는 것이지, 그 사람들은 마음 속의 성품자리, 이것을 청정법신이라고 하거든요.
그리고 또 보신(報身)은 무엇으로 말합니까?
보신은? 참~착한 성품, 또 화신은, 천백억화신은?
온갖 경계에 때에 따라서 생각이 들쭉날쭉 일어나는 것을 화신이라고 그래요.
한참 멀었지요. 정~말 공부를 많이 해야 돼.
마음 속에서 삼신을 설명한다고.
출처:2013년 자재 만현 큰스님 법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