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기 등장인물
등장인물: 사십대 중반의 평범한 소시민 2명
장 소 : 서울 영등포의 프리스머스 시네마
시 간 : 10:10분~12:20분
때는 바야흐로 금요일 오전, 얼마전 화려한 휴가의 맛보기 화면을 보고 감동을 받고, 기어이 봐야겠다는 신념이 들끓어, 일산에 사는 친구를 영등포로 불러내어 함께 영화를 관람했다.
김지훈 감독과 안성기, 김상경, 이요원, 이준기의 연기가 돋보였던 화려한 휴가는 1980년 5월 18일부터 광주에서 있었던 10일 간의 재구성이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무고한 광주 시민들을 폭도를 몰고 진압해간 군부와 허망한 죽음 앞에서 일어선 광주 시민들의 모습을 대치점으로 영화는 촉촉한 시선으로 그 시절의 광주를 추억한다.
줄거리는...
더 없이 따뜻한 오프닝과 함께 시작되는 영화의 전반부는 주인공 민우, 진우 형제와 신애의 풋풋한 로맨스와 광주 소시민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통해 웃음을 유발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렇게 맘껏 웃음짓게 하던 전반을 넘어 공수부대원들와의 대치와 대립이 격해지는 중반부터 영화는 5.18 광주의 광기와 처절함을 담아내기 시작한다.
내게 5.18은... 1980년 당시... 내 나이 열일곱살의 영주 중앙 고등학교학교 1학년의 평범한 고딩소년-_-; 그렇기에 내게 5.18은 고작해야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들은 단편적인 이야기나 TV 등을 통해 회고된 과거의 흔적들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5.18 민주항쟁을 바라보는 내 시각은 적당히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편인데 대통령이 되어보겠다고 나선 한 인물 때문에 무고한 인명이 쓰러졌다는 이야기에 아무리 군인이라도 설마 민간인을 상대로 그런 가혹한 진압을 할 수 있었을까라는 허탈한 물음을 가졌던 시절을 보내왔었고...
얼마전 광주에서 5.18당시 한 평범한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단지 평소 책을 좋아하던 그가 책상위에 몇권의 책이 있다는 이유로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다가 병을 얻어 반신불수가 되어서 고통과 아픔속에 하루하루를 살다가 뼈아픈 고통을 주었던 광주를 더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안산의 성포동에 위치한 예술인아파트로 이사를 와서 집에서 멀지않은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의 삶을 회자하는 자리에서 다시 한번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그때의 아픈 추억을 고스란히 보는듯 했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어느새 강산이 세번 뒤바뀔 정도의 시간이 흘렀지만 오랜만에 대면한 영화 속의 5.18은 당시의 처절했던 광주를 고스란히 스크린으로 재현하고 있었다. 이주일의 흘러간 영화나 포니 택시와 같은 향수어린 소품들을 통해서...추억속에 사로 잡혀 보기도 한다.
다큐멘터리보다 아픈 현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실적으로 그리기 위해 애썼다고는 하지만 영화는 영화. 영화적인 재미와 드라마를 위해 덧입혀지고 채색될 수 밖에없다는 이야기인데... 이미 화려한 휴가를 본 사람들 중에 의도적으로 눈물을 끌어내기위해 애쓰는 모습이 아쉬웠다고 지적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 이야기에 일견 동감하기도 하고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기도 한데...
영화 속에서 그려진 모습들이 적잖은 눈물을 요구하고 영화에 몰입해서 지켜봤다면 몇번 눈물을 지을 포인트도 준비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당시 현장에 있었다면 그 공포와 슬픔이라는 것이 두 시간의 영화 속에 담긴 그것보다 부족하진 않았을 것이다.
형제와 자매... 내 가족과 이웃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그 상황이 언제 끝날지도 몰랐을 그 사람들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폭라는 오명을 쓴채 고립되어 죽음을 기다려야 했던 그들... 그런 평범한 시민들에게 군부의 강제 진압은 너무나 잔인했고 무기력한 언론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영화 정보를 찾아보니 영화 속 인물의 대부분이 드라마를 위한 가상의 인물이긴 하지만 실제 당시 광주에서 쓰러져갔던 시민들을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인물들이 충분히 그러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할만큼 흔히 만날 수 있는 내 주변의 이웃들이라는 이야기다.
사실 화려한 휴가에서 내가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이야기의 얼개나 감정선을 자극하는 연출이 아니라...
지나간 과거를 추억하고 현재로 되돌려 놨을 뿐 영화가 주는 카타르시스가 없다는 점이라고들 한다. 영화를 보면서 눈물짓고 그들의 처연한 모습을 지켜봐줄 수는 있지만 안타까운 죽음과 가족을 잃은 슬픔을 간직한 채 살고 있는 광주 시민들과 달리 전재산 29만원으로 떵떵거리면서 살고 있는 '그'라는 현실이 찝찝하기만 한 것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지만 엄연히 진실이었던 과거에서 출발한 화려한 휴가는 그렇게 못내 아쉬운 뒷맛을 남기고 눈물과 함께 내 머릿속에 자리잡았다.
멀쩡한 얼굴의 김상경이 하는 어눌한 말투의 연기가 약간 부자연스러웠고, 이요원의 너무 정갈한 외모가 솔직히 아쉬웠고, 안성기의 틀에박힌 국민배우적 선량한 연기는 시민군 수장이 되는순간 실미도를 보는것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지만, 왕의남자 "육갑, 칠득, 팔복"의 화려한 3인방의 훌륭한 조연들 열연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없는 박철민, 박원상의 "인봉"과 "용대" 기막힌 코믹 콤비연기는 화려한휴가를 보러온 일반관객들에게 극중에서 웃음을 주는 포인트로 맛깔스런 연기를 뽐냈다.
정치적이지도, 엄청난 감정이입을 몰고와서 적개심을 들끓게 하고, 그래서 처음은 이랬고, 중간은 이랬고, 말미는 이렇게 끝났다는 친절한 안내는 없었다.. 아직도 정확한 집계는 아니지만, 희생자는 몇명이고, 5.18이 발생하게된 시대적, 정치적 설명을 영화상에서 배제해버림으로 인해서 전라도출신도 아닌 경상도 출신의 평범한 사람이 나와 친구가 5.18을 이해하기는 역부족인 부분이 있었다.
화장지를 가지고 앞뒤에서 여인네들의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수 없어 연신 코를 숨으로 들어쉬다가, 그래도 감당하지못해 손등으로 훔치며 훌쩍훌쩍 대는지...마음이 찡했다.
나는...극중 여주인공 신애의 광주시민들에게 가두방송하는 모습만 나오면 가슴으로 삼키는 눈물이 소낙비처럼 내렸으니, 생각해본다...영화보고 이토록 슬픈 영화가 있었는지... 화려한휴가에 대한 영화전문가들과 개봉후 이미 100만을 돌파해버린 일반관람객들의 리뷰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한국영화가 힘든시기이고, 100억을 투자한 대작이며, 5.18을 다룬 영화이기에, 착한 국민배우 안성기가 나온 영화이기에....봐줘야한다는 강박이 있긴 하지만, 꽤 들어줄만한 청이라 보였기에 응답해줄것을 당부하며 마친다... 오늘도 전재산 29만원 그사람은 발 뻗고 자고 있겠지?
내가 이정도의 눈물을 흘릴 정도라면, 실제 1980년 그때 그곳에 계셨던 광주시민들이 이영화를 보며 가슴아파 흘릴 눈물은 얼마나 많았을까? 가슴 한편 무섭게 다가오는 당시 아픔의 여운을 삼키면서....
나와 친구도 복받치는 감정으로 인해서 더이상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나누지 못하고 그저 영화를 마치고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무언의 감정을 공유했다.
안산남정네 강순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