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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야호♬ (lil_ili@hanmail.net)
친정 ★ 야호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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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법칙>
법칙 45. 내껀 나만 욕할 수 있다.
“딸은 어디에 두고 외로운 기러기 신세야?”
산나물이 제법 듬뿍 담긴 바구니를 들고 있는 퉁퉁한 몸매의 여인이 넉살 좋게 웃으며 초하 엄마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바구니를
건네받으며 가볍게 가재미 눈을 치켜 뜬 초하 엄마가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 가마솥 옆에 기대 섰다.
그 포스는 ‘나 학창 시절에 좀 날렸던 여자야.’라는 걸 스스럼없이 드러내듯 과감하고 또 초하와 닮아있었다.
“몰라, 여기까지 고게 직접 와줘서 좋긴 한데 풀 죽어서 내 딸년이 맞긴한지 의심스러울 정도야.”
“얼씨구? 단박에 달려나와 부둥켜 엉엉 울던건 어디에 누구더라?”
“그, 그거는! 에이, 뭐 어쩔 수 없잖아. 4년만에 만나는 건데.”
“엑? 4년? 진짜? 아휴, 심했네 심했어. 어쩌다가 얼굴도 한 번 안 봤어?”
“그야 뭐…아이 참, 뭘 자꾸 그런 걸 물어! 여기에 사정 없는 사람이 어디있어? 에헤 거참.”
사기꾼이었다는 걸 대부분이 알고 있으니 굳이 숨길 필요는 없지만, 여차저차 사정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탓에 딸이 퇴학을
당했다는 얘기까지 꺼내야하니 도로 입을 다물어버리는 초하의 엄마였다.
퉁퉁한 몸매의 여인은 꽤 궁금한 눈초리였으나 초하 엄마의 말대로 이곳에 사정 없는 사람이 어디있겠냐며 더이상 캐묻지 않았다.
쏴아아, 하고 산에서 시작 된 물줄기가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가마솥 물을 끓이던 초하 엄마가 저멀리로 시선을
옮겼다.
“얘기는 좀 나눠봤어? 4년만이면 할 얘기도 많고, 들어줘야 할 얘기도 많을 거 아냐.”
“도통 자기 얘길 잘 안해. 내가 못미더운 건지…”
“어허 이 사람이 김강리 답지 않게 왜이래?”
“속세의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지, 이 콩자반 같은 여자야.”
김강리, 김강리 불릴 때마다 교도소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고 그러면 연이어 초하의 퇴학이 생각나 인상이 험악해지는 초하의
엄마였다.
콩자반 같은 여자라며 퉁퉁한 여인의 멱살을 장난스레 붙잡은 초하 엄마의 행동에 여인이 푸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곧이어 초하의 엄마도 멱살 쥔 손을 놓으며 푸하하 기다렸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고 한동안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터트린 웃음 소리에 모두들 힐끔힐끔 시선을 돌렸다.
“어이, 속세의 이름을 버렸다고 해도 딸 새끼 둔 김강리는 변할 수 없는 법이야.”
잔웃음이 살짝 남아있는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어나간 건 퉁퉁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그리운 것을 보고있는 듯한 표정으로
너무 진지하지 않게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지. 내 배 아파 낳은 새끼야, 열 달을 끙끙거리며 안고 있었다구. 애비없는 새끼라 욕 먹을까 얼마나 잘 키웠는데.”
“성격도 널 꼭 빼다박았더라.”
“맞아, 날 얼마나 잘 닮았는지 욱하는 성격도 똑같다니까. 글쎄 퇴학 당할 때도 친구를 죽사발 내고 퇴학 당했다지 뭐야.”
“뭐? 푸하하! 그건 정말 널 닮았다, 꼭 닮았어!”
“얼마나 닮았는지 몰라. 어린 게 얼마나 영악한지 지도 날 닮은 걸 잘 알아서 거짓말은 절대 내뱉지도 않더라니까.”
“똑똑한거지. 그래, 그런 딸 있으니 열 아들 안 부럽고 얼마나 좋아.”
진심으로 내뱉은 이야기지만 어딘가 알게 모르게 상처가 느껴지는 목소리에 초하의 엄마가 고개를 돌렸다. 퉁퉁한 몸매의 여인은
가마솥 안에서 끓는 물을 힐끔 확인하고는 마른 나무 가지를 조금 더 밀어넣으며 덤덤하게 말했다.
“나도 애들 전부 살아있었으면 지금쯤 제일 큰 놈이 네 딸하고 비스무리 할 텐데.”
“있었으면 결혼이나 시켜버릴 걸.”
“얼씨구, 난 싫다. 너 같은 년 장모로 두면 내 아들 기가 쪽쪽 빨려 죽고 말 걸? 네 성격 닮은 딸이라니 예뻐도 무서워.”
초하 엄마가 박수까지 치며 ‘그래, 그건 맞다!’하고 깔깔 웃었다. 어깨까지 떨어가며 한참을 웃던 두 사람이 천천히 웃음을 멈췄다.
이내 물끄러미 퉁퉁한 여인을 바라보던 초하의 엄마가 괜히 나물 바구니를 뒤척거렸다.
“애들 잃고 어땠어?”
“눈물이 앞을 가렸지. 돈 벌겠다 악착같이 나가선 그 새벽에 애들을 불기둥에 잃었으니 세상이 곱게 보일 리 있었겠어? 난 말야,
조금 더 안아주지 못하고 조금 더 사랑해주지 못한 게 평생의 한으로 사무칠거야. 강리 이 사람아, 자네는 나같은 실수를 반복마.”
“잘 될까? 4년만인데.”
“4년만이어도 새끼 부모 인연인데 그게 어디 달아나? 가서 그냥 얘길 들어주고 시덥잖은 잔소리 늘어놓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래, 그럴까?
초하의 엄마가 히죽 웃었다. 퉁퉁한 몸매의 여인도 히죽 웃으며 초하의 엄마 등을 팡팡 두드렸다. 가을 날씨가 성큼 다가온 듯
낙엽은 보이지 않지만 바람이 많이 시원해졌다.
쏴아아, 하고 흘러내리는 물줄기 소리가 작은 절 곳곳에 숨어들듯 울려퍼졌다.
*
핸드폰은 절에 도착하자마자 과감하게 꺼버렸다. 아주 잠깐, 혹시라도 연락이 올지 모르니 켜둘까 하는 마음이 비집고 나왔지만
그대로 전원버튼에 힘을 주어버렸다.
만약 켜두어도 연락이 오지 않으면 그 비참함과 절망감을 모두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절은 무척 단조롭지만 편안한 곳이었다. 쑥덕거리는 사람들도 없었고 딱히 나와 독고산하의 스캔들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설령 알고 있더라도 부정 기사와 우리 엄마의 눈초리 때문에 묻지 못하는 것 같고)
시원하게 쏟아져내리는 물줄기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내가 정말 헤어진 건가 하고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헤어졌구나.
독고산하는 지금 뭐하고 있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촬영 중이겠지 하고 혼자 피식 웃어버렸다.
다솔이가 일을 잘 해결해줬을까, 쓸데없이 입이나 열어 망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아, 다솔이가 내 머리속을 읽을 수 있다면 당장 날아와 배은망덕하다며 목을 졸라버릴거야. 하하, 그러도고 남지 남아.
“딸 뭐해?”
“응, 구경.”
엄마와는 별로 거리감이 없다. (엄마는 무척 거리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4년동안 떨어져지내면서도 연락은 꾸준히 주고받았고 딱히 엄마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어린애도 아니었기 때문이겠지.
그래도 핏줄은 못 속인다고 힘들다고 꺽꺽 울어대자 다정하게 달래주던 엄마의 손길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아, 정말 여기 오길 잘했어.
“구경할만한 것도 없는데 가만히 앉아있으면 엉덩이 커질 걸?”
“구경할 게 없다니. 여기저기 전부 감탄나오는 것뿐인데.”
“며칠 있으면 지루해질거야.”
엄마는 단조롭게 말을 내뱉으며 내 옆에 자리를 트고 앉았다. 절에서 가지고 나온 돗자리는 너덜너덜해서 사실 돗자리로써의
기능은 상실하고 있었지만 어쩐지 소풍 나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 데이트로 놀이공원 따위에 가는 게 아니라 작고 조용한 시골 동네에 돗자리를 깔고 앉을 걸 그랬어. 독고산하한테 도시락
한 번 제대로 준비해주지 못했는데.
“나 자연 다큐 찍는 사람들 되게 한심하다고 생각했어. 연예계에 비하면 재미없고 단조롭잖아. 근데 내가 틀린 것 같아.”
이 순간에도 생각과 모든 신경은 엉뚱한 곳에 있으면서 위선자처럼 번지르르하게 말만 내뱉는 내 자신에게 질린다.
그런데도 괜찮은 척 웃으며 말을 내뱉고 있다.
이건 정말 모순덩어리고 생각한다.
“지루할 틈이 없어. 봐도봐도 감탄이 나오고 마음이 편해. 몸이 둥실 떠있는 것 같고 입맛도 좋아.”
“딸?”
“게다가 엄마가 4년이나 나 없이 지낸 곳이잖아. 여기저기에서 엄마가 보여서 재미있어. 진심이야.”
“…….”
“나 아예 눌러앉을까? 여기서 나물도 캐고, 밥도 하고……”
“딸, 근데 왜 울어?”
그러게, 나도 잘 모르겠어.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전부 바보 멍청이가 된다더니 정말 그짝이다. 독고산하가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날 멍청이라고
놀린 탓에 난 정말 멍청이가 되어버렸나봐.
나지막이 내뱉어진 엄마의 물음과 걱정스러운 표정을 보며 베시시 웃는 얼굴로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마주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응, 슬퍼서.”
우는 데 다른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단지 슬프니 우는 것뿐인데.
*
“민 감독님하고 스타일 자체가 다르잖아요! 이건 관객한테도 실례라구요!”
촬영장 분위기가 어수선하다는 건 이미 초하와 산하의 일이 붉어지면서 스멀스멀 느껴지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굉장히 노골적으로
드러나있는 상태였다.
유진태 감독은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물끄러미 촬영팀 스탭들을 쳐다보았다.
처음엔 초하를 촬영 감독으로 삼는 걸 이 악물고 결사반대 외치더니 이젠 민초하 데려오라며 어린아이 떼쟁이가 되어버렸다.
“그럼 자금 조달은 촬영팀에서 할 겁니까?”
“자금 조달이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투자자를 설득해야죠! 이런 식으로 나가다간 영화가 흥행을 못한다구요!”
“감독으로서의 내 자질을 의심하는 건가요?”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퍼스트가 신경질적으로 유진태 감독의 말을 맞받아치더니 쓰고있던 모자를 바닥에 내던졌다. 큰 마찰음도 없고 파편도 없는
행위였지만 어수선한 분위기에 불을 지피기엔 충분했다.
쑥덕거리는 스탭들의 음성이 점점 커졌고, 유진태 감독은 피곤한 표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새로 온 촬영 감독에게 사과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긴 했지만 새로 촬영 감독이 된 사람의 표정도 썩 좋진 않았다.
“부, 분위기가 좀 많이 나쁘네.”
“당연하죠. 이게 누구 탓인데.”
독고산하의 매니저가 어쩔 줄 몰라하며 내뱉은 말에 표정을 굳힌 채 독고산하의 의상을 체크하던 다솔이가 콧방귀를 흥하고 뀌며
대답했다. 다솔이가 가리키는 그 ‘누구’가 ‘독고산하’라는 건 묻지 않아도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눈을 감은 채 자는 것처럼 앉아있던 산하는 마치 남 얘기하듯 나지막이 말했다.
“미안하군.”
“알면 됐…”
“속셈이 있는 줄 알았다면 나도 새카만 피노키오랑 사귀진 않았을 텐데.”
퉁명스레 대답하던 다솔이가 입을 다물어버렸다. 독고산하가 지칭하는 속셈 있던 새카만 피노키오가 초하라는 건 잘 아니까.
하지만 아는 것과 억울한 건 다르다. 독고산하가 믿고 있는 사실과 진실이 다른 것처럼.
다솔이는 당장이라도 독고산하의 뺨을 열 번 연속으로 때려주고 정강이를 세게 찬 다음 ‘이 머저리 같은 새끼야!’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그건 초하가 원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 머저리 같은 놈 때문에 초하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끌어 안으며 숨어버린 것인지 알고 있으니까.
“파혼이랑 스캔들 기사 완전 묻혔어. 기부 한 번 하면 판도가 바뀐다더니 진짜네.”
“…….”
“아예 정기적으로 달마다 조금씩 기부를 할까? 나중에 액수가 좀 크다 싶을 때 터트리면 되잖아. 나쁜 일도 아니고.”
“됐어 귀찮아. 이번 기부건도 대체 돈이 어디서 나와서 한거야? 초상권 배당금으로 보기엔 너무 크잖아?”
“어? 어, 어 그게…”
매니저가 말을 살짝 얼버무리며 다솔이를 쳐다보았다. 다솔이는 초하 이름이 나오면 죽여버리겠다는 시선으로 매니저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산하도 다솔이의 표정이 심상찮다는 걸 어렴풋 느꼈지만 설마 민초하가 자신을 도왔을 리 없다는 생각에 피식 웃어버렸다.
악착같이 이용하려던 여자다, 도와줬을 리 없지.
“소, 소속사에서 냈지! 아무래도 이번 일은 확실하게 묻으려면 액수가 커야할 것 같아서.”
“흐응.”
산하는 관심없다는 듯 심드렁하게 대꾸하고는 세트장으로 옮기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의 옷 매무새를 마지막까지
꼼꼼하게 다듬어주는 다솔이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산하가 나지막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원래 친구는 끼리끼리 어울린다던데, 넌 일 안때려치냐?”
“뭐?”
“네 친구는 때려쳤잖아. 책임감도 없이 거짓말만 지껄이고.”
명백한 도발이라는 걸 알고 있다. 헤어진 건 초하랑 헤어져 놓고 왜 자신한테 화풀인지 어이 없는 기분에 다솔이가 헛웃음을
내뱉으며 독고산하를 올려다보았다.
멍청한 놈.
입 안에선 수십 번도 더 그 말이 맴돌았고, 싸대기를 몇천 번 날리는 상상이 리플레이 되었지만 다솔이는 꾹 눌렀다.
참아야 한다고 몇 번을 곱씹고 곱씹으며.
“곽하주가 자르지만 않았어도 일은 끝까지 했을 애야. 그런 식으로 매도하지마.”
“하, 가재는 게편이고 초록은 동색이라고 꼴에 친구라고 편드냐? 민초하가 책임감에 일을 계속했다고 해도 민 폐야.”
“뭐?”
“거짓말 투성이잖아. 영상도 거짓말로 촬영했을 거 뻔해. 민초하가 촬영한 부분들 재촬영 하고 싶을 정도야.”
“야, 어디서 뺨 맞고 지금 누구한테 화풀이냐? 초하랑 헤어졌으면 거기서 끝내. 구질구질하게 이렇게 물고 늘어지지 마.”
정말 때려버리기 전에 저 밉살맞은 주둥이를 꼬매버리든지 해야지, 라고 생각하며 다솔이는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독고산하가 입은 의상의 허리를 줄이느라 들고있는 바늘에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갈 정도였다.
더 말해 무엇하리, 내 입만 아프지 라고 투덜거리며 다솔이가 뒤돌아섰을 때였다.
피식 하고 바람 빠지는 웃음 소리가 묘하게 신경을 거스른다 싶더니 킥 하는 명백한 비웃음이 들려왔다.
“어머, 죄송해요. 엿 들을려고 한 게 아니라 바로 옆에 있으니 다 들려서요.”
새로 합류한 신인 여배우였다. 독고산하가 파혼 한 사실을 알자마자 얼마나 달라붙던지 스탭들 사이에선 저러다 둘이 눈 맞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그것만으로도 얄미워 죽겠는데 비웃음까지 날리다니, 다솔이의 분노는 최대치를 아슬아슬하게 누르고 있었다.
가만히 돌아서서 여배우를 쳐다보는 다솔이의 눈에 독기가 서려있었다. 마치 화풀이 샌드백이라도 발견한 듯이 말이다.
“이봐, 아가씨. 지금 비웃으셨나요?”
“네? 어머 그렇게 들리셨어요? 귀는 정말 정확하게 밝으시네요. 친구 사귀는 눈이 없어서 귀도 없는 줄 알았더니.”
“뭐, 뭐라고?”
담배를 한 손에 쥔 채 후-하고 연기를 내뱉는 여배우의 모습에 다솔이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인기 초절정을 달리고 있는
배우라고 하니 담배 피는데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리 없다만 신성한 촬영장에서 이렇게 담배질이라니.
초하가 알았다면 거품 물었을 거야 라고 생각하자 다솔이는 입 안이 껄끄러워지고 괜히 화가 치밀었다.
초하만 있었더라면 당장 달려와 담배 끄라며 벼락 같이 혼구멍을 내줬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민 감독님이 너무 웃겨서요. 거짓말이나 지껄이면서 분수도 모르고 남자를 꼬시다니. 결국 꼴 좋게 됐네요.
근데 그 절친이라는 사람이 산하 선배님 옷 매무새를 봐주고 있다니 너무 묘하지 않아요? 끼리끼리 논다더니.”
“뭐야? 이게 진짜 듣자듣자 하니까. 야! 네가 뭘 안다고 초하에 대해 함부로 지껄여?”
“뭐 아마 세상 사람들만큼은 알 걸요? 저도 민 감독님이 잘리는 거 현장에서 봤으니까요. 애초에 너무 다른 사람끼리 만났잖아요.
그쵸, 산하 선배님.”
산하는 그다지 다솔이와 신인 여배우의 말싸움에 흥미있어하는 눈치가 아니었지만 건성으로 고개만 까딱거려줬다.
뭐라고 지껄이는지 듣지도 않았으면서.
독고산하의 태도에 다솔이는 머리 꼭대기에서 스팀이 오르는 걸 천천히 느꼈다.
하? 이것 봐라? 너무 다른 사람끼리 만났다는데 고개를 끄덕거려줘? 초하가 널 위해 뭘 어떻게 했는데! 라고 지금 당장 외치고
싶은 걸 느끼면서.
“그래, 다른 사람끼리 만나긴 했지. 멍청한 허접 연기자 나부랭이랑 우월한 우리 초하랑. 초하가 아깝긴 훨씬 아까웠지.”
다솔이는 이걸로 끝낼 생각이었다. 더이상의 심각한 도발이 아니면 ‘어린 애들이란~’하고 웃어넘길 생각이었다.
그래, 더이상의 심각한 도발만 아니었다면.
“우월? 요즘은 쓰레기라는 단어가 우월로 바뀌었나? 사회를 위해 기꺼이 기부하는 남자가 멍청한 허접 연기자 나부랭이라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랑까지 이용한 여자는 쓰레기 아닌……!”
「짜악!」
마찰음이 스튜디오를 냉정하게 가로질렀다. 찰싹도 아닌 짜악! 하고 울려퍼진 소리에 어수선하던 스탭들의 모든 시선이 한 순간
같은 곳으로 쏠렸다.
촬영팀과 촬영감독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던 유진태 감독도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선이 닿은 곳에 초하의 절친한 친구인 윤다솔이 서있는 것을 안 순간, 어찌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초하가 어떤 기분으로 떠났는데, 어떤 마음으로 버렸는데!”
이미 다솔이에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았고, 얼얼하게 아파오는 손바닥의 통증은 아무래도 좋을 뿐이었다.
자리에 없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떠맡은 이유만으로, 너무 사랑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절친한 친구의 고귀한 사랑이
쓰레기로 변하는 순간을 참을 수 없었다.
“이, 이게 하찮은 코디 주제에!”
느닷없이 뺨을 맞았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잠깐, 수치스러움과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힌 신인 여배우는 질 수 없다는 듯
다솔이를 향해 손을 올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다솔이가 먼저였다.
「짜악!」
“난도질 당해 너덜너덜한 사랑을 품어본 적 있어? 모든 죄값을 네가 치루겠다며, 무거운 짐덩어리 짊어본 적 있어? 없잖아.
너 사랑이 뭔지도 모르잖아. 그냥 잘생긴 선배 배우 옆에 있으니까 어떻게든 알랑거려 사귀어보려는 속셈이잖아!”
한쪽 뺨으로도 부족해 다른 쪽 뺨까지 맞은 신인 여배우는 이미 굳은 상태였다. 흥미없다는 얼굴로 세트를 향해 걸음을 옮기려던
독고산하도 놀란 듯 걸음을 멈춘 채 다솔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유진태 감독이 이러다가 초하가 악착같이 지켜온 비밀이 모두 밝혀지겠구나 싶어 깜짝 놀라 달려와 다솔이의 팔을 붙잡았다.
하지만 다솔이는 이미 뿌옇게 변한 시야로 세상을 쳐다보는 다솔이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다솔씨!”
“이거 놔요! 어차피 내뱉은 거 할 말은 다 해야겠어. 야, 넌 네가 초하보다 낫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착각하지마. 너 독고산하랑
스캔들 한 방이면 뜰 테니까 어떻게든 달라붙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나 너보다 이 바닥에서 더 오래 굴렀어. 근데 너 그거 아니?
넌 뜨기 위해 독고산하를 이용하려고 하는 거지만 초하는 독고산하의 연기를 위해서 자신의 일을 포기했어!”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하게 가라앉았다. 스탭들은 침묵했고, 눈물을 뚝뚝 흘리던 다솔이는 그제야 자신이 독고산하를 앞에두고
일을 저질렀다는 걸 깨닫고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유진태 감독의 입에서 천천히 한숨이 내쉬어질 무렵, 신인 여배우가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낀 듯 악을 쓰듯 외쳤다.
“우, 웃기지마! 그런 허접한 거짓말로 날 속일 수 있을 것 같아? 하, 끼리끼리라고 정말 친구끼리 둘다 거짓말…”
“시끄러워 죽겠군.”
나지막이 내뱉어진 한마디였다. 모든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산하가 내뱉은 말에 스탭들의 시선이 쏠렸고 다솔이가 흠칫하고
몸을 떨었다.
초하의 이야기를 물어오기 전에 차라리 얼른 사라져버리자 라고 생각한 다솔이가 슬금슬금 뒤로 걸음을 내딛으려는 찰나,
독고산하가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더니 다솔이의 어깨를 꾹 누르고 신인 여배우 앞으로 다가갔다.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신인 여배우의 앞으로 향했지만 다솔이는 산하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리는 것만 같았다.
‘튀는 순간 죽는거다.’
순간, 다솔이는 정말로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튄다면 독고산하가 죽일 거고, 튀지 않으면 초하한테 죽을 테니 말이다.
‘에이씨, 나도 몰라! 이판사판공사판이랬어.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초하 위해서 죽을 테다!’
다솔이는 허리를 곧게 펴고 자리에 선 채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순간 유진태 감독과 시선이 마주쳤다. 딱히 말을 섞은 것도
아닌데 유진태 감독은 다솔이와 시선이 마주치자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촬영장에 감독님도 계시고 스탭분들도 계신데 어디서 큰 소리야?”
산하가 무표정한 얼굴로 신인 여배우를 내려다보더니 손을 뻗었다. 순간 때리는 건가 싶어 다들 헉! 소리를 냈는데, 산하의 손은
여배우가 쥐고 있는 담배로 향했다. 불 붙인 지 얼마 안된 것 같은 담배를 집어 물끄러미 쳐다보던 산하가 그대로 손에 힘을
풀었다.
담배는 힘 없이 스튜디오 바닥으로 떨어졌고 산하는 구둣발로 천천히 담배를 짓눌렀다.
“여기가 네 응석 받아주는 집인 줄 알아? 피부 망칠 거면 혼자 망치고 목소리 상할 거면 혼자 상해. 죽을거면 혼자 죽고.”
“…서, 선배님.”
“난 너처럼 연기 못하는 사람을 후배로 둔 적 없어. 치근대는 거 귀엽다 봐주니 봬는 게 없었겠지.”
산하가 살짝 허리를 숙여 신인 여배우의 얼굴쪽으로 가깝게 다가섰다. 스탭들 사이에서 몇몇이 뽀뽀하는 거 아니냐며 수근댔지만
산하는 여배우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일 뿐이었다.
“고맙다 해야하나? 네 덕에 민초하가 날 사랑한다는 게 밝혀졌으니.”
“…으으……죄, 죄송…”
“누드화보 몇 장 찍고 수면 아래로 쳐박히기 싫으면 앞으로 제대로 하는 게 좋을 거야. 적어도 연기만큼은.”
피식 웃으며 신인 여배우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산하가 몸을 돌렸다. 분위기가 심상찮은 스튜디오에서 유일하게 태평하게 앉아
녹차를 마시고 있던 김수옥씨가 안절부절 못하는 자신의 매니저를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저럴 때 보면 지 아빠랑 똑같다니까.”
“예? 예에?”
“우리 아들은 정치를 해도 잘 했을 거야.”
“서, 선생님.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왜? 자기의 소중한 것을 진흙발로 짓밟으니 열받아서 저러는 거야 저거. 연기? 웃기고 있네, 지가 언제부터 남 연기를 챙겼다고.
쟤 왜저러는 줄 알아? 저 꼬마가 초하씨 욕해서 그래.”
“하지만 산하씨도 초하씨 욕…하지 않았습니까?”
“아아, 그건 말이지…”
빙긋 웃으며 녹차를 여유있게 한모금 마신 김수옥씨는 우스워죽겠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지꺼 지가 욕해도 남이 욕하는 건 싫다 이거지.”
“예에?”
“원래 그렇잖아, 사람 심보라는 게. 후후, 정말 지 아빠랑 판박이야.”
*
“전부 다 알고 있었던 거네요. 나만 빼고.”
산하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요새 좀 뒤척거려서.’라며 가볍게 웃는 산하의 얼굴엔 며칠이나 잠을 제대로
못 잔 것인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별로 놀란 표정이 아니네.”
사실은 날 사랑한거였구나! 우리 사랑은 끝난게 아니야! 바보같이, 내게 상담하지! 따위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 너무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산하의 모습에 다솔이가 의외라는 듯 중얼거렸다.
다솔이의 중얼거림에 나지막이 ‘아아.’하고 반응을 보인 산하가 가볍게 피식 웃었다.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뭘?”
“민초하가 날 사랑하지 않을 리 없잖아?”
뭐냐규, 재수없는 저 단호함은- 이라고 다솔이가 질린 듯한 표정을 지으며 독고산하를 쳐다보았다.
“뭐 연기자라서 연기를 알아봤다, 그건가?”
“흐음, 글쎄. 아마 갓난아기가 봐도 민초하가 날 사랑하는 건 눈치챌 수 있었을 걸? 처음엔 너무 상황이 잘 맞아떨어져셔서
깜빡 속을 뻔 했지만.”
“에? 그럼 왜 속다말았어?”
“그거야 당연하잖아? ‘사랑하는’ 날 쳐다보는 민초하의 시선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데, 내가 고작 ‘말’ 따위에 속을 리 없잖아?”
산하는 그러면서 장난스레 ‘이래봬도 거짓말 하는 직업이라고.’ 덧붙인다. 너무 덤덤하게 내뱉는, 아니 오히려 여유있는 산하의
모습에 다솔이가 졌다는 듯 두 손을 가볍게 들어보였다.
“쳇, 뭐야 처음부터 나 일부러 도발한 거지? 나 도발해서 폭발시키면 내가 주구절절 쏟아놓을 테니까.”
“응, 오늘은 생각지도 못한 어떤 텅텅이 도와줬지만.”
산하의 대답에 다솔이가 텅텅? 하고 되묻자 산하의 매니저가 가볍게 웃으며 ‘그 여자애 머리가 비어서 텅텅 소리가 난대.’라고
설명해주었다.
친절하면서도 진지한 그 설명에 얘기를 듣고 있던 유진태 감독과 다솔이를 비롯 주위에서 엿듣던 스탭들까지 풉-하고 웃었다.
“그래서.”
뜬금없이 내뱉어진 산하의 말에 모두들 응?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산하는 그들의 시선따윈 아무래도 좋다는 듯
무덤덤한 얼굴로 다솔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초하는 왜 떠난 거야?”
사랑하니까.
라고 자신도 모르게 대답할 뻔 한 다솔이었다.
“나 지금 무진장 재수없는 대답 할 뻔 했다규.”
“사랑하니까, 지켜주고 싶어서 그런 건 얘기 안해도 알아. 내가 묻는 건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냐는 거다. 머저리야.”
초하는 멍청이고 다솔이는 머저리인가. 덤앤더머 프렌즈입니까.
너무 당당하게 머저리라 내뱉는 산하의 말에 반박할 기력조차 잃은 다솔이가 이제와 무얼 숨기겠냐는 표정으로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당장이라도 초하를 ‘나쁜 여자’ 이미지에서 구해주기 위해.
“뭐…어렴풋 짐작하겠지만 널 계속 연기하게 해주기 위해 초하가 모두 뒤집어쓴거야. 게다가 그 멍청이는 지가 받아야 할 돈까지
네 이름으로 돌려서 기부했어.”
“기부? 그럼 이번에 초상권 배당금 말고…”
“소속사 어쩌고 하던 건 모두 초하가 촬영감독으로서 받아야 할 돈이었다규.”
뒤이어 매니저가 초상권 배당금의 기부도 초하가 알려준 아이디어라는 걸 차분히 얘기해주고, 다솔이가 곽하주와 얽힌 얘기를
전부 해주자 산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초반엔 꽤 진지하고 무거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던 산하였지만 들을 수록 초하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 구구절절 와닿는지
자꾸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초하는 지금 어디있어? 오피스텔?”
당장 만나야겠어 라는 표정으로 벌떡 일어난 산하의 모습에 다솔이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더니 고개를 가볍게 가로저었다.
재수없고 짜증나긴 하지만 초하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알아줘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다솔이는 심드렁히 말했다.
“숨었어. 은둔자거든.”
“뭐?”
“하지만 난 초하의 절친한 친구니까 ‘네가 모르는’ 것까지 전부 알거든. 그래서 어디있는지 좀 알 것 같아.”
“그거 시비냐?”
“아니, 난 그저 단순하게 내가 ‘너보다’ 초하를 오래 사귀었고,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얘기했을 뿐이야.”
내가 고이고이 곁에두고 예뻐한 우리 초하를 날름 드시겠다? 흥이다 이자식아. 라고 생각하며 다시 한번 호호 웃는 다솔이었다.
이내 다솔이는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대충 확인하고는 산하를 향해 물었다.
“옷 빼입고 선물 사서 출발해도 많이 늦진 않을 것 같은데, 갈래?”
“어딜?”
“초하가 있는 곳.”
“알려줄거냐?”
마음 같아선 이걸 빌미 삼아 꼭꼭 숨겨두고 마음껏 약올리다가 알려주고 싶지만, 초하가 보고싶어할 테니 참아야지- 라고
다솔이가 눈으로 말하는 듯 했다.
산하는 가볍게 피식 웃으며 졌다는 표시로 두 손을 살짝 들었다.
“내가 졌다, 졌어. 빨리 알려줘. 보고싶으니까.”
“핸드폰도 꺼뒀으니 우리가 가면 깜짝 놀라겠지? 완전 서프라이즈잖아.”
“나보다 네가 더 들뜬 것 같은데.”
“쫌 짜증나긴해도 초하가 널 보면 기뻐할테니까 어쩔 수 없지. 가자, 초하는 지금 마미랑 같이 있을거야.”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던 산하가 멈칫하고 놀란 표정으로 다솔이를 쳐다보았다.
다솔이는 왜그러냐는 듯 의아한 표정으로 산하를 쳐다보았고 산하는 버버걱거리며 입을 열었다.
“마, 마미? 마미라면 엄마잖아!”
“응, 엄마. 초하네 마미 절에 계시거든.”
“장모님 만날 마음의 준비까진 안해뒀다고! 으으윽!”
“지랄하고 있네. 나 오피스텔가서 주소 적인 우편물 찾아볼 테니까 넌 옷 쫙 빼입고 선물 사서 기다리라규.”
말릴 새도 없이 후다닥 뛰어나간 다솔이의 그림자를 보며 산하가 ‘자, 장모님이…’하고 중얼거리며 어떤 옷과 어떤 선물을
준비해야 할지로 갈등했다. 그 모습에 스탭들이 가볍게 웃었지만 산하는 들리지 않는 듯 당장 선물을 사러 갈 기세로 몸을
돌렸다.
하지만.
“뭡니까?”
“나랑 얘기 좀 해요. 산하씨.”
가볍게 산하의 손목을 타악- 잡은 것은 무거운 표정을 지은 유진태 감독이었다. 의외라는 듯한 얼굴로 유진태 감독을 쳐다보던
산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무슨 얘기요?”
“주아에 관한 이야기요.”
“아아, 그거라면 뭐 민초하가 한 거짓말…”
“아니요.”
유진태 감독이 단호하게 말을 가로지르며 대답했다. 유진태 감독의 목소리에 산하도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낀 듯 진지한 얼굴로
그와 마주했다.
이내 유진태 감독은 산하의 손목을 붙잡았던 손을 풀며 나지막이 말했다.
“제가 주아의 친 오빠가 맞습니다. 그리고 산하씨에게 진지하게 사과와 감사를 하고 싶습니다.”
민 감독님 돌아오시면 파티하자고 소란스러운 스탭들의 목소리 사이에서도 유독 유진태 감독의 목소리만큼은 또렷한 힘을
가지고 산하에게 닿았다.
산하가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유진태 감독을 바라보는 사이, 유진태 감독은 가벼운 웃음을 내쉬며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주아를 사랑해줘서 고맙습니다. 그걸 몰랐던 나를 용서해주시겠습니까? 우리 주아는 자살이 아니었다고 하더군요.”
그 순간, 산하의 표정이 굳었고 스튜디오 앞에서 아른거리던 그림자 하나가 사라졌다.
*
“잘생겼어? 착했어? 귀여웠어? 어땠어?”
“엄마, 방금 다솔이 같았어.”
“궁금하니까 그렇지! 우리 딸의 진실한 사랑이었다는데 엄마가 궁금한게 당연하잖아.”
“알았어, 알았어. 우리 엄마를 누가 이기겠어.”
“어떤 사람이었어?”
“음, 엄마도 아는 사람일 걸?”
내가 촬영 감독이 되었다는 걸 편지로 전했으니 엄마도 영화에 대해 알아봤을 터였다. 그렇다면 적어도 주연배우 쯤은 알겠지.
싱긋 웃으며 엄마를 향해 말하자 나물을 무치던 엄마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엄마도 아는 사람? 그게 누구야? 설마 옆 집에 배 나온…”
“미쳤어? 그 아저씨 나이가 쉰이야! 어휴, 내가 정말 엄마 망상엔 못당하겠다. 독고산하야, 이번 영화 주연 배우.”
“뭐어? 야! 걔… 엄청 잘생겼잖아.”
응, 정말 잘생겼어. 근데 잘생긴게 은근 자상하기도 해.
엄마의 말에 부정도 긍정도 않고 가볍게 웃으며 반찬을 준비했다. 바쁘게 손을 움직일 수록 향긋하고 고소한 냄새가 절 곳곳에
퍼져나갔다. 엄마 친구분인 똥똥한 몸매의(본인은 뚱뚱과 통통 사이의 퉁퉁이라지만) 아줌마가 나와 엄마의 수다 떠는 모습에
모녀가 신이 났다며 깔깔깔 웃으셨다.
엄마는 어깨가 으쓱해져서 마치 사춘기 소녀처럼 떠들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딸 키우는 재미가 있다고 하나봐, 아들이었어봐. 엄마랑 이런 상담 하겠어?”
“아들도 아들 나름이야, 독고산하는 말만 잘하던데.”
“어머, 너 독고산하 엄마도 봤어? 뭐야? 그럼 시엄마?”
“독고산하 엄마도 배우잖아. 김수옥씨 몰라? 김수옥? 이번에 우리 영화에 독고산하랑 같이 주연 맡으셨잖아.”
“어머! 모자가 나란히? 멋있다. 아니, 가만. 김수옥? 어머어머! 그 김수옥?”
“응, 그 김수옥.”
엄마는 내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김수옥은 엄마 시대때 우상이었다며, 그 사람 온전한 결혼생활 잘 하고 있냐며 호들갑이었다.
그리고는 엄마를 위해 싸인 한장 받아다달라는 소리까지 했다.
아니, 엄마 내 얘길 듣긴한 거야? 나 김수옥씨 아들 독고산하랑 헤어졌다니까? 나참.
“하여튼 엄마 이러는 건 변함이 없다. 예나 지금이나.”
“엄마가 뭐얼?”
“어어, 지금도 다솔이 같았어. 어휴, 내가 엄마를 만나러 온 건지 다솔이를 만나러 온 건지 모르겠다니까. 나물 더 가져올게.”
우리 엄마는 내 엄마가 아니라 윤다솔 엄마가 분명해.
가볍게 키득거리며 부엌을 나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쇠망치로 한대 얻어맞은 사람처럼 가만히 멈춰서서 앞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네, 네가 여길 어떻게……”
동요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미 커진 눈은 껌뻑거리고 있었고 나도 모르게 내쉬던 숨까지 멈췄다. 어색한 공기가 흐르는 것을
느끼며 어떤 말이라도 내뱉기 위해 입을 벙끗거렸으나 쉽사리 말이 터지지 않았다.
내 앞에 서있는 사람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딸, 바구니를 가져가야 나물을 담…… 초하야!”
엄마가 바구니를 떨구는 소리와 함께 다급하게 내게 다가와 날 확 감싸안는 것이 느껴졌다. 날 껴안은 엄마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느끼며 아, 엄마는 아직도 내가 퇴학 당한 과거에 멈춰있구나 하고 혼자 결론지었다.
“엄마, 나 괜찮아.”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엄마의 손을 꼭 잡은 채 품에서 벗어났다. 피식 웃는 얼굴로 날 쳐다보는, 두 번 다시 볼 일 없다 생각했던
상대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곽하주,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아니, 왜 왔어?”
엄마와 맞잡은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심장이 불쾌하게 뛰었다.
***
제가 지금 정신적으로 몹시 황폐한 상태랍니다.-.,- 초조하고 불안하고. 아악아악. 하지만 <거짓말의 법칙>은 49편에서
완결나는 것이 확정되었어요.
아, 그동안 연재하던 녀석이 곧 완결이라니ㅜ.,ㅜ 황폐한 내 정신에 상실감마저 으어으어으어.
읽어줘서 고맙고 꼬리말 달아줘서 사랑스러운 예쁜이들, 황폐한 정신상태의 야홍에게 히, 힘을..........................털썩.
야호♬ 올림.
(+ 가상이미지 게시판에서 <거짓말의 법칙> 가상이미지를 만나보실 수 있답니다. 으홍홍.)
첫댓글 넘 재밌어요!!!이제 완결이 얼마안남았다니...많이 아쉽네요ㅜㅜ담편도 기대할게여~!!
오 재밌어요.. 드디어 비밀이 밝혀지네ㅋㅋ
역시나 산하는 속지않았어! ㅋㅋㅋㅋ 이제 모든게 다 밝혀졌는데 ; 저 불여시는 왜 온거야 - -
아진짜너무재밋구요ㅎㅋ 완결딱4편남은건가............................
곽하주 싫어요 ㅠㅠ
헉;; 곽하주가 왜...
설마 곽하주가 ~~~~여기까지 웬일로ㅜㅜ 진짜 싫어지네요.^^
헐.. 곽하주 무섭다. -_-;;;;
무슨일이 생길것 같은! 긴장되네요
헐?그 그림자가 곽하주엿나요..아 한참 입가에 웃음이 맴돌앗엇는데...마지막에 산하가 온줄알앗는데...흐구흐그흐구규...완결이 다가오는데 하주가 착해져서 돌아왓음 좋겟어요ㅋㅋㅋ
야곽하주너주거!!!!!!!!!!!!!!!!!!!!!!!!!!!!!!
에라이 미린년. 빨리 꺼져버령 곽하주. ㅋㅋㅋ.
아아악 역시 우리 산하는 머리가 돌은 아니었군여ㅠㅠ 곽하주 저건또왜나타났는지..........흑흑 벌써 완결이다가온다니 아쉬워죽겠어여ㅠㅠ얼른 초하랑 산하랑 만났으면 좋겠다ㅠㅠ
이젠모든게밝혀졌으니까곽하주좀아주그냥!!!!!!!
그 그림자는 누굴까요?? 곽하주??? 다음편 궁금해 죽겠어요 ㅋㅋㅋㅋㅋ
곽하주 진짜 진심으로 너무 싫어요.
곽하주 왜 또 나타났을까요!!!!ㅠㅠ 재미있어요~
곽하주 왜 나타났을까요!!!
아! 곽하주...ㅋㅋㅋㅋ 이제 곽하주랑 초하랑 싸우다가 주아이야기가나오는ㄴ데 그때 이제 산하가 싹!도착해야죠!! 그리고 이제 하주는 영영 빠이빠이빠이빠이야....... 아....근데 벌써완결이라니요....... 안되는데 ㅜ.ㅜ ...........
곽하주........ 저분 진심으로 무섭네여... 세상에, 어떻게 초하네 엄마 집까지 알고 조사해서 온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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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눈물이계속 ㅠ.ㅠ??? 곽하주뭐니너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