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내려온 진이는 계절이 바뀐 어느 여름날 다시 지족암으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직성이 풀리지 않아 어젯밤을 꼬박 뜬 눈으로 샜다.
“중놈 주제에 내가 제자로 들어가겠다는데 거절을 해?”
생각만 해도 분통이 터졌다.
“천천히 가자! 나는 너의 발걸음을 따라 갈 수가 없구나...”
사실 진이도 숨이 턱까지 치밀어 올라왔다. 하지만 지난봄에 지족선사에 당한 모욕을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은 더 관능적으로 춤을 추려한다. 마침 연못엔 연꽃이 절정이다. 연꽃이 만발한 연못에 진이가 풍덩 빠졌다. 고혹적 춤을 한바탕 추면 지족선사도 물에 빠진 중생을 그냥 하산하라 매몰찬 말을 못할 것을 노린 계략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 했듯이 진이는 기어코 지족선사를 자신의 품으로 오도록 하는 꿈을 접지 않는다.
진이에게 포기는 없다. 그녀가 사대부집 딸에서 서녀의 신분으로 바뀐 충격에 장님이 된 역경을 거치면서 사내들에 대한 분노로 기생의 길을 택했으며 그 같은 생각은 어머니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일종의 복수이기도 하다.
모녀는 똑같이 장님이 되었다. 어머니 현학금은 끝내 세상을 다시 보지 못했으나 진이는 기적적으로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낫다는 이승을 다시 볼 수 있는 광명을 찾았다.
지금 진이는 아버지 황진사 집에서 자유인으로 선언한 이후 숱한 역경 속에서도 남성위주 사회에 도전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지금 지족선사 앞에서 승무를 추는 것도 그 전략의 하나다. 승무는 독무(獨舞)로 고혹적인 동시에 예술성도 높다.
그 춤을 지금 진이가 춘다. 춤을 추는 주인공의 역량에 따라 춤의 예술성과 내용이 달라진다. 진이의 승무에선 그녀의 삶과 예술의 세계가 농축되어 나온다. 붉은 가사에 장삼을 걸치고 백옥 같은 고깔에 버선코가 유난히 돋보이는 차림으로 염불·도드리·타령·굿거리·자진머리 등의 장단 변화에 따라 일곱 마당의 춤이다.
신음하듯 움틀 거리는 초장의 춤사위에서부터 열반의 경지까지 범속을 벗어날 수 있다는 법열(法悅)이 불변의 진리와 더불어 표상된다는 말미의 춤사위에 이르기까지 뿌리고 제치고 엎은 장삼의 춤사위가 혼화(渾和 : 순수한 온화로움)로 소쇄(瀟灑:기운이 맑고 깨끗함)속에 신비로움과 정교로움의 조화의 극치야말로 정중동(靜中動)의 고혹적 매력이라고 하겠다.
진이가 결국 이겼다. 지족선사의 30년 벽면 수행을 버티다 하룻밤 사이에 무너졌다. 도로 아미타불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정복자인 진이의 가슴이 뻥 뚫어진 느낌을 받으며 당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689~740)의 《만산담에서》를 번개처럼 떠올렸다. 그리고 갑자기 자신이 미워졌다. 30년이나 벽면하며 극락왕생을 꿈꾸었을 한 사내의 영혼을 울린데 대한 자책감과 옹졸함에 울고 싶어졌다.
‘낚시 드리우고 넓은 바위에 앉으니/ 물 맑아 한가롭기 그지없다./ 고기들은 연못가 나무 아래로 모이고/ 원숭이는 섬에 자란 등나무를 타고 논다./ 그 옛날 여인의 허리의 옥을 풀어 주었다는 얘기가/ 바로 이 산에서 전해졌던가./ 그녀를 만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달빛 타고 노래하며 노 저어온다.’
인간은 누구나 삶의 목표가 있다. 어떤 삶의 목표를 이루는 순간 인간은 또 다른 목표를 세운다. 목표가 없는 삶은 망각의 바다에 떠 있는 조각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진이가 지족선사의 30년 벽면 수행을 하룻밤에 도로 아미타불로 만들어 놓고 당나라 시인 맹호연 시를 떠올린 것은 의외다. 30년 벽면 수행의 지족선사를 뜨거운 하룻밤의 운우지정으로 접수했으면 통쾌하여 춤을 추며 콧노래를 불렀을 터인데 진이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맹호연은 화가이며 시불(詩佛)로 불리는 왕유와도 친교가 두터운 도연명을 존경하는 전원주의 시인이다. 그런데 유독 진이가 맹호연의 시를 떠올렸음은 좀 더 지조를 갖고 버텼으면 자신이 뜨겁고 향기로운 가슴으로 품기를 포기 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알레고리(풍자하거나 의인화하여 이야기를 전달하는 표현 방법)한 것은 아닌지 보여지는 시다.
지족암에서 진이와 화촉동방의 뜨거운 밤을 보낸 지족선사는 그 후 종적을 감추었다. 조계(曹溪)에 부끄러웠을 것이고 스스로도 맑은 정신으론 대명천지 하늘 아래 고개를 들 수 없었을 것이다. 한낱 기생으로 인해 30년 벽면 수행이 물거품이 되었으니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세상 사람들을 맨송맨송한 정신으로 대할 수 있으면 그 또한 제 정신이 아닌 수도승이었을 터다.
아무튼 성리학 나라 조선의 사대부 사회에서 진이의 명성은 하늘을 찌른다. 양곡 소세양·종실의 후예 벽계수 등 내로라하는 남정네들은 그녀의 품에 들어오면 힘을 못 쓰는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세상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이 명월(진이 妓名)의 신비다. 세상 사람들이 겪어 보지도 않고 알고 있다면 그것은 신비가 아니다. 명월의 신비는 겪어본 사람도 품을 떠나면 다시 그 신비함에 아리송해 하는 것이 바로 명월의 신비함이다.
진이는 지족암에서 하산 한 후 오늘로 열흘째 몸져누웠다.
“이 미음이라도 먹어야 하느니라.”
옥섬이모의 간곡함이다. 옥섬이모는 어머니 현학금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옥섬의 말엔 어머니가 딸의 건강을 염려하는 정서가 고스란히 담겼다.
“알았어요... 거기 놓고 나가 보세요...”
진이의 눈엔 지금도 지족선사가 자신의 음부에 들어와 천둥번개를 맞듯이 놀라움과 기쁨을 동시에 표시했던 얼굴 표정이 생생하다. 맹수가 사냥하여 먹이를 한입 크게 물은 그런 표정이었다. 그런데 그 표정이 놀라움과 경이로운 감흥이 함께 섞인 울음의 분위기였다.
진이는 그 표정이 가여웠다. 그리고 지족선사의 의 말이 새삼 귓가에 생생하다.
“이 작은 절이 움직인다 하여 세상이 달라지겠소이까?”
다시 진이는 맹호연의 《국화담 주인을 찾아가서 만나지 못하고...》를 떠올렸다.
‘국화담에 다다르니/ 마을 서편으로 해 이미 저물었네./ 주인은 높은 곳에 오르러 떠났고/ 닭과 개만 남아서 집을 지킨다.’
진이가 지족선사를 처음 지족암으로 찾아 갔을 때 위의 시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진이는 옥섬이모의 애정 어린 간곡함에 그날 오후 흰죽 한 그릇을 먹은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진이는 언제 자리에 누워 있었느냐는 듯이 그녀 특유의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어디에 쓰려는지 거문고 연습에 밤낮이 없다. 그런데 거문고 음률이 기쁨과 환희의 소리가 아닌 처연하고 가슴이 시린 황량한 음률이었다.
첫댓글 진아.진아.
네 소행이 부끄러움 모르는구나?
어찌하여 지족선사의 30년 불심을 망가뜨리는고.
아, 진이의 저 방탕한. 마음을 어이잡을꼬?
시대를 잘못 타고난 기구한 운명이여.
ㅎ.ㅎ.
진이는
화무는십일홍이라른 뜻도 잘알터이니 ...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