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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호화스러운 룸에 있는 건 단 두사람.
남, 녀의 짙은 신음소리만 섞여 맴도는… 호텔에서 제일가는 꼭대기층 VIP룸.
남자의 큰 손 안에 가득잡힌 여자의 말캉한 가슴이 기분좋은지, 남자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깊숙히 들어오는 남자의 것에 찌릿- 해져오는 꼬리뼈.
그저 침대보만 잡을 뿐인 그녀, 한나련.
더럽다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 더러운 성행위로 인해 신음이 터져나온다.
몸은 솔직하다.
말은 싫다, 더럽다 해도 몸은 솔직히 반응하고 있었다.
관계를 마치고 옷을 챙겨입는 나련의 얼굴에 대고 담배연기를 뿜어대는 남자.
자욱한 흰 연기에 표정을 구기는 나련을 본건지, 그저 피식- 웃어대는 남자였다.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랑은 안자면서, 난 왜 된거야?"
"그쪽은 필요할 거 같으니까"
"참 신기해. 그냥 쌓인 것 만 풀 생각이었는데도, 몸을 섞고나면 거짓말처럼… 너한테 빠져버려"
"착각일 뿐이야. 내 몸에 대한 욕구를 사랑에빠졌다- 라고 착각하는 것 뿐. 그럼, 난 먼저 갈게"
"아, 니가 부탁했던 애가… 유해진?"
"잘 좀 부탁해. 잘 봐주는 거 같아보이면 한 번 쯤은 DC 해줄게"
뒤도 돌아보지않고 룸을 빠져나가는 나련을 바라볼 뿐인 남자.
조각상을 데려다놓은 것 처럼 후광이 빛나는 이 남자를 보고도 멀쩡한 여자는 나련 뿐이었다.
대한민국의 남녀노소, 이 남자의 외모에… 이 남자의 매너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그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가지고 노는 한 여자, 나련.
그야말로… 여왕 자체였다.
닿을 듯, 닿지않는 고귀한 존재인 여왕.
천하디 천한, 더러운 여자 나련.
그런 여자 나련에게 붙여진 '여왕'이란 칭호는… 조금은 모순적이지 않을까.
*
시내 이곳 저곳에선 크리스마스 준비로 한창이었다.
가게 내부를 치장하느라 바빴고, 사람들은 꾸며지는 시내를 구경하고.
부쩍 많아진 사람들 사이를 뚫고 걸어가는 낯익은 남자 하나.
몇 일 전 나련을 도와줬던 남자였다.
조금은 늦어진 퇴근길에 사람들이 많아 앞으로 나갈 수 없으니… 짜증날 만 하지.
한숨을 푹- 쉬어대며 여차저차 뚫고가는 그의 눈에 띄인 다른 남자.
연락이 그토록 되지않았던 그의 친구이자, 나련의 고객인 희성이었다.
가게 안에서 뭘 그렇게 고르는지, 그가 옆에 얼쩡거려도 나몰라라- 관심 밖이다.
"뭘 그리 고르시나"
"…………… 헉!!!! 세… 세진이 안녕. 아하하하하"
"참 오랜만이다 친구야"
"그… 그렇네 친구야"
"할 얘기가 참 많단다. 토킹어바웃 좀 해볼까?"
"토… 토킹어바웃… 안해도 되는데…. 우왁!! 야야야, 이것 좀 놓고가!! 임세진!!!! 쿨럭"
작은 키도 아닌 두 사람.
착할 것 만 같은 남자가 조금은 귀엽게 생긴 남자를 우왁스럽게 끌고가는 모습이라니….
직접 보지 않는 한 상상하기는 힘들정도다.
억지웃음을 지으며 희성을 끌고 택시에 올라탄 세진.
그제서야 표정이 굳은 세진과, 그런 세진의 옆에서 주눅들어있는 희성.
택시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 까지 둘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온 집은 역시나 어두웠다.
외투를 벗고, 가방을 던져놓고는 소파에 털썩 앉아 희성을 째려보는 세진.
세진의 째림에 외투를 벗는 희성의 손이 괜히 느려졌다.
"왜 여태 문자, 전화 씹었는지 사정 좀 듣자"
"친구야 내가 말야……………"
"구구절절 필요없고, 간단하게 말해"
"…………… 좀… 바빴다. 새 컬렉션도 내야됐고, 해외도 다녀와야됐고…"
"마지막은 한나련이겠지"
"……… 뭐…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아무리 바빠도 나련이 안보면 미칠 거 같은데 어쩌냐…"
"미친놈. 그건 한나련이 좋아서가 아니라 니 욕구불만이 문젠거겠지"
"그러니까, 그래서 미치겠다고 임마. 에씨, 그래 씹어서 미안하다!!!"
"하. 한나련이 내 얘기 안해? 얼마 전에 만났는데"
"길에서? 그냥 길에서? 사적으로? 니가 왜?"
"응 길에서. 우연히.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만났다"
"…………………"
부럽다는 눈이었다.
호텔 외의 곳에서는 마주치기조차 힘든 나련을 봤다는 세진이 마냥 부러운 희성.
평범한 나련의 모습이 어떨지… 친구들과는 어떻게 노는지 궁금해하는 남자들은 많았다.
침대 위에선 색스러운 여자였고, 침대 위가 아니어도 매력을 끄는 여자였으니까.
한 번 쯤은… 아니, 그 이상으로 관심가져볼 만 한 상대가 나련이었다.
우연히라도 길에서 마주치면 '운명'을 거론하며 어떻게 해 보려는 남자가 수두룩 하건만…
나련에게 별 관심없는 세진이 하필 그 '운명'을 거론해야 할 남자라니.
아무리 친구여도 배아프겠지.
정말… 별 관심 없는 건 아니었다.
성숙해진 나련을 보고 관심없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어렷던 고3이 아닌, 스물한살의 어엿한 여자.
조금은 후회하고 있었다.
그녀의 처음을 가지지 못한 것이.
조금이 아닌… 꽤나 많이 후회하고 있었다.
*
감기에 골골대는 그녀의 룸메 진아때문에 집에만 박혀있는 나련.
감기덕분에 일도 못하는 자신을 탓하기만 하는 진아를 그저 웃으며 바라볼 뿐이었다.
몸에 열이 39도까지 올라갔는데 일걱정이라니….
조금은 슬프다고나 할까.
돈에 찌들어버린 이 죽여버릴 세상이 말이다.
아픈 진아에게는 미안한 말이겠지만, 그런 진아덕에 심심하게 밖에서 시간을 떼우지 않아도 됐다.
진아는 나련과는 달리, 일찍부터 남자와 만나 호텔까지 가는 타입이었으니…
혼자 집에 있기 심심했겠지.
근데 지금은 아픈 몸 탓에 집에 꼼짝없이 누워있는 꼴이었으니까, 나련은 그저 속으로 좋아할 뿐이었다.
아픈사람 앞에 두고 대놓고 좋아할 순 없으니까.
'드르르르르륵'
"………? 여보세요"
-"한나련!!!!!!!!!!!!!!!!!!!!!!!!!!!!!!!!!! 왜 임세진 만났다는 말 안했어!!!!"
"윽, 귀야. 굳이 말 할 필요 없잖아요"
-"아씨…"
"일부러 연락 씹었던거니까, 벌 받은 셈 쳐요. 아저씨 시간 많으면 먹을 거 들고 안올래요?"
-"…………………… 난 방학따위 없는 회사원이다"
"아, 그럼 수고해요"
반찬 해 먹을 게 없어 먹을 거 들고 오라했건만, 회사란다.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가볍게 죽을 끓이는 나련.
아픈사람한테 무턱대고 밥을 먹일 순 없으니 말이다.
걸쭉해 질 때 까지 천천히 젓던 나련의 눈이 멍- 해졌다.
다시 생각난 남자, 임세진.
처음을 주려했던… 자신의 처음을 거부했던 첫 남자.
피식하고 웃음이 세어나올 뿐이었다.
이제와서 그의 생각을 하고있는 자신이 웃겨서, 한심해서.
아프다는 진아는 핸드폰을 부여잡고 깔깔대느라 바빴다.
그녀의 비밀남과의 문자에, 한창 바쁜 그녀의 동생 해진의 문자까지….
아픈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만큼 회복력이 뛰어났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자신이 아픈걸 잊었다고 해야할까.
그래도 깔깔대는 진아의 웃음소리가 썩 나쁘진 않은지 빙그레 웃고만 있는 나련이었다.
그런 진아를 뒤에 두고 컴퓨터를 켜, 그녀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는 나련.
그녀가 클릭한 게시판에는 온통 남자의 간단한 신상정보들.
new 뜬 것 부터 차례차례 클릭해보는 나련의 얼굴에 지루함이 가득했다.
늘 올라오는 사진만. 새로운 얼굴은 보이질 않는다.
한 번 거절한 사람들이 죽어라 또 올리고, 또 올리고.
턱을 괴고 멀뚱히 마우스만 움직이던 나련의 손짓이 멈춰섰다.
놀란 눈으로 쳐다본 모니터엔… 그녀의 첫상대가 될 뻔 했던 세진의 얼굴이 자리잡고있었다.
"아, 잘생겼다"
"뭐야, 언제부터 보고있었어?"
"음? 음… 오크사진 나왔을 때 부터? 헉. 이 얼굴에 서른이야? 말도안돼"
"희성아저씨 친구야"
"직업도 빵빵하네. 거절할 만한 조건은 없는데?"
"있어. 날 한 번 걷어찬 남자라는 것 자체로도 거절할 만 해"
"걷어차다니?"
"내 처음을… 아주 멋지게 걷어차고 간 남자. 근데 왜 이제와서…"
"니가 탐났나부지~ 처음을 걷어찼다면 더더욱 관심가지. 아쉬워하면서, 지금이라도 안고싶겠지. 그게 남자야"
"………………"
사진속에서 웃고있는 이 남자가 짜증난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멍때리면서 생각한 남자였건만… 이젠 역겨워졌다.
똑같은 남자.
한나련이라는 여자가 탐스러워 안아보고 싶어 안달난, 똑같은 남자.
역겹다.
임세진이라는 이 남자가 역겹다 생각한 그녀였는데, 왜 모니터는 그의 사진을 내보이고 있는건지.
무슨심보였을까.
번호없이 그에게 '24일 L호텔 1623호 밤10시'라고 적힌 문자를 덜컥 보내버렸다.
다 똑같은 남자라면, 항상 그랬듯 똑같이 남자들에게 다가가면 되는 거였다.
똑같이 다가가서, 긁어먹을 대로 긁어먹고 버려버리는, 지독한 여자로 있는 것 뿐이었다.
여자 한나련이 아닌, 몸파는한나련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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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잼있어요..^^*
다음편도 빨리여 ㅎㅎㅎ 기대댐 ㅎㅎ
★끙..ㅠㅠ여자가 불쌍해요...ㅠ_ㅠ힝힝힝....얼른 정착해야할텐뎅..ㅠㅠ정말정말 재밌구여~~^^다음편도 기다리고 있을꼐여~~
세진이랑 나련이랑 만나면 스파크 장난아닐꺼 같은데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