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다음 공부 거리로(원종찬 선생 글입니다. 다운 받아서 읽어 오세요)

배반의 동심․동심의 배반 -이오덕 평론의 안과 밖- 1. 이오덕 평론과 ‘어린이’―아동 없는 아동문학 비판 이오덕 평론의 핵심어는 ‘어린이’다. 어린이(아동․아이)는 이오덕 평론을 읽는 동안 단 한순간도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는다. 아동문학 평론이니까 당연한 일이라고 이 문제를 가볍게 여겨서는 곤란하다. 이오덕 평론에서 어린이는 모든 논리의 시작이요 끝이다. 그런데 이토록 당연한 일이 아동 문단 한복판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오덕 평론은 어린이를 빼놓은 사이비 아동문학과 맞서는 데에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표 평론집 『시정신과 유희정신』의 첫 글을 보자. 이오덕 선생은 “아동이 읽지 않는 아동문학”이 아동문학의 위기를 초래했다면서, “동시고 동화고 대체로 시인과 작가의 자기만족으로 쓰는 데 그쳐 있고, 아동은 2차적 독자로 밀려나가고 혹은 애당초 독자의 대상으로 되지도 않고 있다”(『시정신과 유희정신』, 창작과비평사, 1977, 7면. 이하 같은 책일 경우는 면수만 표시)는 사실을 전제로 삼아 논리를 펼친다. 이런 ‘아동 없는 아동문학 비판’은 이오덕 평론 전체의 기본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첫째, 아동을 도구로 삼는 시인․작가의 ‘유아 취향’ 비판, 둘째, 말의 빈 껍질에 매달리는 ‘감각적 기교주의’ 비판으로 구체화된다. 유아 취향의 문제는 이른바 동심천사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동심천사주의란 아동을 떠나 어른 중심의 세계에서 아동을 한갓 도구로 삼아 안이한 유희를 즐기는”(263면) 태도다. 이는 아이들을 “살아 있는 생명으로 보지 않고, 어른에게 딸린 부속물로 인형으로 보아온 것”(166면)에서 비롯된다. “길을 잃어 버릴까봐/철로 위로만 다니지요./기차는 기차는 바아보.” “이렇게 어른이 어린애인 척하며 사물을 보고 그것을 재미있는 말로 나타낼 때, 이것을 읽는 아이들 역시 저보다 나이 어린 아이의 흉내를 낸 말놀이로 받아들이는 것이지, 결코 시로 느끼는 것이 아니다.”(167면) 이오덕 선생은 나이 어린 아이의 흉내를 낸 말놀이를 “동요적 발상”이라고도 했는데, 윤석중의 동요시에서 많이 드러나는 이런 문제점이 수많은 아류를 낳으면서 문단의 지배 흐름으로 자리 잡게 된 사정을 자세히 밝혀 놓았다. 감각적 기교주의의 문제는 이른바 난해 동시에 대한 비판이다. “실감이 따르지 않는 빈 말의 재주만을 부리는 난해 동시”(324면)도 아이들을 무시한 어른의 취미에서 비롯된 창작경향이다. “장대로 털어 놓은/겨울 햇살을/모두 모두/호주머니 속에 주워 담는다.” 이렇게 뚜렷한 내용도 없으면서 감각적 표현 기교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다보니, “진실이 없는 빈 말의 꾸밈으로 된 허상의 동시”(269면)가 만들어진다. 이런 작품은 “감동을 주려고 쓰여진 것이 아니라 동시인들의 말재주놀이 취미로 씌어진 것”(324면)이다. 동요적 발상을 극복한다면서 나타난 이 난해 동시는 박경용, 노원호, 이상현 등에 의해서 문단의 새로운 지배 흐름으로 자리 잡는다. 이오덕 선생은 이 또한 아동을 등지고 성립한 점에서 동심천사주의와 똑같은 관념 위에 지어진 것이라 보았다. 이오덕 선생이 동시의 문제를 누구보다 절박하게 제기하고 나선 데에는 까닭이 있었다. 우리 동시의 지배 흐름이 전체 아동교육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오덕 선생에게 교육과 문학은 둘이 아니고 하나지만, 논리 전개로 볼 때는 교육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동시 짓기에 대한 비판이 아동문학 평론보다 앞선다. 예컨대 『아동시론』(세종문화사, 1973)은 교육현장의 문제를 제기하는 성격의 저서로, 해방 후 아동 운문 교육을 대표해온 박목월의 『동시교실』(1956)에 대한 비판이고 대안이었다. 이 책에서 이미 동시의 현재는 ‘아동이 없는 동시’라는 표제 아래 ‘동요적 발상’과 ‘기교주의’ 두 가지로 요약되고 있다. 이오덕 선생은 이런 아동 없는 아동문학이 아동 글쓰기교육과 혼동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표본으로까지 되고 있는 현상을 힘주어 비판했다. 그리하여 성인이 아동을 위해 쓰는 동시와는 창작 과정과 표현이 다를 수밖에 없는 아동이 쓰는 시를 따로 ‘아동시’(어린이시)라 할 것을 제안하고 그 목표와 방법에 대해 자세하게 밝혀놓았다. 『아동시론』이 동시의 현재와 교육현장의 문제를 짚고 아동시의 방향을 제시한 아동교육론이라면, 『시정신과 유희정신』은 잘못된 동시 경향과 올바른 동시 경향을 가리고 따지면서 동시문학의 방향을 제시한 아동문학론이라고 할 수 있다. 동화의 문제점 또한 동요적 발상의 세계와 이어져 있다. 강소천 동화는 “동요적 발상의 세계가 동화에 나타나고 있는”(118면) 대표적인 사례다. 그것은 “한결같이 사회의 명랑하고 긍정적인 면만을 돋보이게 하여 주는 것이어서 미담가화로 되고 있다. (…)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지런히 일해 저축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그의 작품의 모든 주제는 허수아비 같은 아이들의 품행방정한 행동으로 하여 문학 작품으로 형상화되지 못하고 교훈만 노출시켜 놓고 있다.”(같은 곳) 그런데 “교과서의 교재에서 흔히 나올 것 같은, 부모에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착한 어린이의 모습”과 “어린이를 귀엽게만 보고, 상투적으로 미화해서 그려 보인 모습”은 똑같이 “어른의 눈과 생각으로 그려 놓은 어린이 모습”(『삶․문학․교육』, 종로서적, 1987, 105-106면)이다. 특히 공상동화로 창작된 것들은 동심주의 혐의가 짙다. “이 어린아이인 척하는 동심주의는 시의 감동을 지적 밑받침이 있는 상상에서 창조하지 않고, 환상과 공상에만 기대는 동화적인 세계에서 찾으려고” 하는데, “이것은 한국의 많은 공상동화가 지적인 것이나 현실성을 잃어버린 안이한 환상 속에 만들어지는 것”(『시정신과 유희정신』, 156면)과 같은 이치다. 이로써 ‘동요적 발상’의 동시든, ‘동화적 발상’의 동화든, 다 같이 동심주의라는 하나의 뿌리에 단단히 맺어져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동심주의는 동시와 동화를 넘나들면서 상투적인 표현들, 나아가 모방작과 표절작을 넘쳐나게 하는 아동문학의 대표적인 통념이었던 것이다. 결국 동화의 문제점도 ‘아동 없는 아동문학’에 걸려 있기 때문에, 동시에서의 ‘유아 취향’과 ‘감각적 기교주의’ 하고 비슷한 함정에 빠져 있다. 첫째, “일반적으로 아이들의 현실이 배제되거나 왜곡되어 있고, 혹은 은폐되거나 터무니없이 미화되어 있다.”(『어린이를 지키는 문학』, 백산서당, 1984, 86면) 둘째, “주제가 모호하다. (…) 할 말이 없는데도 무슨 얘기를 쓰자니 별난 구성과 문장의 기교를 부린다.”(87면) 동화 문장의 문제점으로는 “허식적인 문장”, “리얼리티가 없는 문장”, “경망한 느낌이 드는 호흡이 짧은 문장” 들이 지적되었다.(71-75면) 동화에 리얼리티와 필연성이 희박한 것도 “아이들이 읽는 것이라 하여 너무 얕보고 함부로 쓰기 때문”(87면)이다. 이와 같은 불성실함이 의인동화에서는 “동식물의 생태와 모습을 함부로 그릇되게 보여주는”(88면) 결과를 낳는다. 뻐꾸기가 3월에 우는가 하면, 조그만 곤충을 그리는 데 “손에는 금방 물집이 생겼습니다.” 한다든지, 물고기의 동작을 그리는 데 “코를 틀어쥐었습니다.”(117면) 하는 식이다. 2. 이오덕 평론과 리얼리즘―‘서민성’과 ‘현실성’ 그럼 ‘아동 없는 아동문학’이 지배 흐름으로 된 시대 배경과 이 흐름에 정면으로 맞서온 이오덕 선생의 문학적 관점은 무엇인가? 여기에 서민성과 현실성으로 요약되는 이오덕 평론의 리얼리즘 또는 민족문학적 성격이 자리 잡는다. 이오덕 평론이 두드러지게 모습을 드러낸 70년대는 한국문단 전체 구도에서 보자면 리얼리즘론과 민족문학론이 새로운 단계로 뛰어오른 시기였다. 이원수 아동문학론의 계승 발전이기도 한 이오덕 아동문학론은 70년대 리얼리즘론과 민족문학론의 하나로 펼쳐진 것이다. 이 시기의 주요 평론이 리얼리즘과 민족문학을 제창하고 나선 『창작과비평』에 주로 발표되고 있는 점, 그리고 이원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첨예한 대립의 구도를 만들면서 논쟁을 펼치고 있는 점 들은 이와 관련된다. ‘서민성’은 민족문학론의 ‘민중성’과 통하는 개념이다. 『시정신과 유희정신』에서 시기적으로 제일 앞서는 글인 「아동문학과 서민성」의 첫머리는 다음과 같다. 이 글은 서민성이란 시점에서 아동문학의 관념적 동심주의와 탐미적 독선 세계를 비판하고, 우리 아동문학에 나타난 서민성을 살펴봄으로써 민족문학 수립이란 과제에 이어진 아동문학의 건설이 서민성을 구현함으로써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다.(『시정신과 유희정신』, 105면) 이오덕 선생은 서민 아이들을 등진 동요적 발상의 기원을 『아까이도리』(赤の鳥 빨간새: 일본 대정기의 대표적인 아동문예지)의 기조를 이룬 동심주의에서 찾는다. “손에 손을 잡고 들길을 가면/모두들 귀여운 새가 되어/노래를 부르면 신발이 울려요./맑게 갠 하늘에 신발 소리 울려요.”(106면) 이와 같은 일본 동요를 식민지 아이들이 보통학교 창가 시간에 배워야 했는데, 우리 아동문학의 동요적 발상이 이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신발이 울려요” 하는 구절을 원문대로 하면 “구두가 울려요”다. 짚신을 신고 다니는 아이들한테 이런 감각은 당치도 않은 것일 텐데, 해방 이후까지 이처럼 욕된 문학이 당연시되어 왔다. 그리하여 “지금까지도 아동문학이라면 그 본질부터 현실을 기피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풍조”(107면)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동심주의 아동문학이 서민성을 외면한 것임은 아동에 대한 탐구로써도 증명된다. 먼저 아동을 “성장하는 존재”로 파악할 때, 유아 취향의 동심주의는 아이들의 정신 성장과 인식 발달을 방해하는 것밖에 아무 뜻이 없다. 그것은 다만 “지나가 버린 유치한 것에 관심”을 가지게 하여 “안이한 꿈나라에서만 놀게” 하거나 “현실 도피라는 극히 불건강한 정신”(113면)을 부추긴다. 다음으로 아동을 “사회적 존재”로 파악할 때, 동심주의는 아이들의 실제 현실을 덮어버리고 서민정신에 위배된 세계를 만들어낸다. “꽃놀이 달놀이 물놀이/봄놀이 산놀이 들놀이/엄마 아빠 손목을 잡고/들이나 산이나 놀러 가자.”(115면) 교실에서 부르는 아이들의 노래가 이러하지만, 이런 세계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극소수다. 이오덕 선생은 서민 아이가 쓴 시를 이와 대조시켜 보인다. “우리 어머니는/아기를 업고 가서/밭을 매요./내가 아기를/봐 주마 좋겠어요.” 이것이 “이 나라의 거의 모든 아이들의 참 모습”(116면)이다. 그러므로 “극소수의 귀족적인 아이들의 모습을 그려 그들에게 봉사하느냐, 아니면 대다수 서민의 아이들을 위해 쓰느냐” 하는 선택의 자리에서, “민족문학의 수립이란 과업을 앞에 둔 작가의 사명”과 “인간의 양심과 문학인 본연의 자세”(같은 곳)를 떠올린다면, 결론은 분명하다는 주장이다. 『아까이도리』의 기조를 모방하여 이 땅의 서민 아이들을 등지게 된 동심주의는 문학정신의 타락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의 근대 아동문학이 출발했던 때, 곧 방정환․마해송․이주홍․이원수 등이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적어도 아동문학에서 아동은 주인이 되어 있었고, 작가는 민족과 어린이를 위한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13면)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대부분의 작가들에서 이념을 찾기 힘들게 되었고, 이념이 사라진 자리를 차지한 것은 “물질적 이익과 입신양명에 대한 관심, 그리고 오락적 취미 같은 것”(같은 곳)이었다. 따지고 보면 서민성은 우리 민족의 현실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온 개념이다. 이오덕 선생은 “무엇을 써야 할까”의 문제를 두고도 “첫째는 우리 민족의 현실이고, 다음은 어린이의 삶의 현실”(『삶․문학․교육』, 126면)이라면서 “현실이야말로 문학 창조의 유일한 원천”(148면)임을 강조한다. 원천을 잃은 문학의 운명은 자명하다. 우리 아동문학에서 예술을 위한 예술을 표방하는 이들은 그들이 지향하는 가공적인 미의 세계조차 창조하지 못하고 말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런 땅에서는 그런 순수한 미의 꽃이 결코 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현실을 금기로 대한다는 것은 민족과 어린이를 배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불성실하고 인간답지 못한 유아독존의 정신이 순수한 미를 창조하는 것을 예술의 신은 결코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시정신과 유희정신』, 124면) 서민성과 현실성을 바탕으로 하는 리얼리즘 아동문학론은 “민족과 어린이를 배반”하는 동심천사주의 또는 감각적 기교주의 아동문학론과 정면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오덕 선생은 동심적 동요세계가 60년대에 들어서면서 감각적 기교주의로 이어지고 있는 현상을 두고 이재철 교수가 ‘비문학적 요소를 과감히 배격하고, 아동문학이 진정한 의미로서의 본격문학이라는 점을 자각했을 뿐만 아니라, 독자에게도 인식시켰다.’고 평가하자, 60년대 동시의 형식적 변화는 “그 내부의 진지한 창조적 고투”를 치른 참된 발전이 아니라, “외국의 작품이나 특히 성인시 영향” 같은 “단순한 외부적 영향”에서 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론을 펼쳤다. 또한 이상현 씨가 ‘현대시의 난해성, 어른을 위한 동시, 한정된 소수의 아동 독자’ 등을 들어서 동시의 난해성을 변호하니까, 그것은 ‘허상의 동시’를 변호하는 논리라 반박했고, 다시 이상현 씨가 ‘상상, 환상, 언어 미학’ 등의 개념을 동원하고 나오니까, 그런 것은 ‘아동문학 작가의 아동 기피’에 지나지 않음을 작품을 들어 낱낱이 증명해 보였다.(이들 논쟁에 대해서는 『시정신과 유희정신』에 실린 「부정의 동시」「진실과 허상」「아동문학 작가의 아동 기피 1․2」, 참조.) 3. 이오덕 평론의 계승과 발전―‘일하는 아이들’과 ‘유희정신’ 일제시대와 분단시대를 거쳐 오면서 한국 아동문학은 동심천사주의 흐름이 표면상 주류를 이루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이오덕 평론은 방정환과 이원수 문학의 핵심을 이어받아 민족문학과 리얼리즘 아동문학론을 이룩한 소중한 성과라고 평가된다. 철두철미 아동의 관점, 서민의 관점에 서 있는 이오덕 문학론을 어떻게 계승 발전시킬 것인가? 이때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야 할 사항은 역사적인 맥락이다. 특정한 시대 과제를 겨냥하고 특정한 시대 흐름에 개입하는 평론의 특성에서 보면 더욱 그러하다. 나는 얼마 전 이오덕 선생의 최근 평론집 두 권(『문학의 길 교육의 길』․『어린이책 이야기』, 한길사, 2002)을 검토하는 자리에서, 문단의 과제와 작품 평가를 두고 일부 견해를 달리하게 된 원인을 찾느라고 70년대의 대표 평론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당시 논리의 뼈대를 이룬 몇몇 개념을 오늘날에는 수정 또는 재조정해서 써야 할 것임을 밝혔다.(졸고, 「‘일하는 아이들’과 ‘유희정신’을 넘어서」, 『창비어린이』 창간호, 2003년 여름, 참조.) 그 첫째는 ‘일하는 아이들’이었고, 둘째는 ‘유희정신’이었으며, 이밖에도 ‘공상동화’와 ‘판타지’의 범주․리얼리티․평가기준에 관한 것들이 포함돼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어린이와 민족 현실을 등진 아동문학의 지배 흐름을 바꾸려는 이오덕 평론의 기본 줄기는 오늘의 문단 상황에 비추어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다면 이오덕 평론에 나오는 ‘일하는 아이들, ‘유희정신’, ‘공상동화’ 등의 개념을 문제 삼는 건 민족문학과 리얼리즘 아동문학론에서 벗어나는가?(이성인, 「갈피를 잡아야 할 어린이문학 비평」, 『어린이문학』, 2003년 8월호; 이주영, 「‘시정신과 유희정신’을 왜곡하지 말자」, 『창비어린이』 2호, 2003년 가을, 참조.) 이 문제는 단순히 자구 해석이나 개념 파악에만 매달려 논의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 시대를 달리하는 데 따른 문학의 과제 속에서 논의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다. 시대의 변화는 언제나 겹으로 진행된다. 과거의 문제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해서 새로운 시대의 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다. 90년대 이후에 이루어진 어린이와 민족 현실의 변화 부분을 다시 한번 주목해 보자. 본디 글쓰기교육의 주요 개념이었다지만 아동문학의 개념으로서도 큰 비중을 차지해온 ‘일하는 아이들’은 그 개념이 내포한 본질이나 목표 이전에 우선 현실의 변화에 조응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지닌다. 무엇보다도 일하면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생활과 감정과 꿈을 그들의 편이 되어 그릴 것이다.(이오덕, 위의 책, 138면) ‘참된 우리 아동문학이 모색하고 구현하려던 것’을 열 가지로 정리하는 가운데 첫 번째로 제시된 위의 항목에서 “일하면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더 이상 보편적인 현실의 아이들일 수 없다. 과거의 서민 아이들은 무엇보다 생존권 차원에서 일과 맺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오늘날에는 소수 예외가 아닌 다음에야 서민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이와는 다른 차원의 “생활과 감정과 꿈”을 지니고 살아간다. 이를테면 이원수 동시 「나무 간 언니」나 신현득 동시「옥중이」에 나오는 ‘나뭇짐 진 사내아이’라든지, 권정생 동화 『몽실 언니』의 표지그림으로 각인된 ‘아기 업은 여자아이’는 적어도 70년대까지는 자연스러운 아동 현실로 받아들여졌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작품이 잘 되고 못 되고를 떠나, “엄마 아빠 손목을 잡고/들이나 산이나 놀러 가자.” 하는 노래 속의 아이들을 가리켜서 “극소수의 귀족적인 아이들의 모습”이라고 강변할 수 없는 노릇이다. 유아 취향의 시인․작가들이 즐겨 쓴다고 호되게 비판한 ‘아빠’와 같은 호칭 문제도 더 이상 시비 거리가 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유아 취향 또는 감각적 기교주의와 관련해서 개념이 동원된 ‘유희정신’도 ‘일하는 아이들’과 짝을 이뤘던 것이므로 그 문맥에서 빠져나오면 의미 변화가 불가피하다. 요컨대 ‘유희정신’이라는 말을 ‘시정신’과 대척적인 자리에 놓고 부정적인 의미로만 쓰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이오덕 평론의 뼈대인 서민성을 용도폐기하자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서민성은 우리 아동 현실에 따른 문학의 과제에서 나온 개념이다. ‘유희정신’ 또한 마찬가지다. 다만 한 가지, 과거에는 미약했을지라도 오늘날 뚜렷한 존재감으로 떠오르는 아동 현실의 한 부분에 대해 유의하자. 이오덕 선생이 강조했듯이 아동문학은 독자의 나이가 중요한 고려의 대상이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 아동문학이 뿌리를 대온 아동 현실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과거에는 유아․유년의 존재가 예외일 수밖에 없었지만, 오늘날에는 소년과 똑같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하여 과거에는 아동 현실과 동떨어진 작가 시인의 ‘유아 취향’이 문제로 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유아․유년의 현실’이 중요한 탐구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유아․유년의 현실을 탐구하는 일은 동심천사주의 문학을 복권하려는 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동심주의 작가들이 이런 유아의 세계를 나타냈다고 말했지만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현실의 유아 세계를 그려낸 것이라기보다 그저 순진하고 귀엽고 재미있는 공상의 세계를 그려낸 것이 유아의 그것으로 되어 버렸다고 하는 것이 더 알맞을 것 같다.(112면) 아동문학의 대상이 유아․유년․소년․청소년 등으로 명실상부하게 확대해가는 추세에서는 “한 해만 지나도 엄청나게 다른 세계”(110면)가 되는 아이들 독자를 한층 섬세하게 고려하여 창작 활동을 벌일 필요가 있다. 아동의 나이란 것을 의식하지 않고 “그저 막연히 아동의 세계라는 생각으로 쓰는 태도는 작품의 내용과 형식이 서로 맞지 않는 결과”(같은 곳)를 가져온다. ‘공상동화’나 ‘판타지’에 대해서도 동일한 문제의식이 적용된다. 이오덕 선생은 “공상동화와 생활동화를 어린이들의 나이에 따라 읽게 되는 비율”을 다음과 같은 도표로 그려보였다.(『어린이를 지키는 문학』, 65면) 유아기 유년기 소년기 공 상 동 화 생 활 동 화 원칙이 이러함에도 이오덕 선생은 생활동화의 가치를 더 주목했다. 이는 당시의 독자 평균연령이 오늘날보다 훨씬 높았던 데다, 공상동화라고 나온 작품들이 동심적 동요와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었던 탓이다. 더욱이 “많은 동화작가들이 터무니없는 공상적 얘기를 황당하게 전개”(87면)해 보이면서도 “공상동화와 생활동화를 두고 그 중 어느 한쪽(‘공상동화’를 가리킴: 인용자)만을 동화의 본질인 것처럼”(『시정신과 유희정신』, 134면) 말하고 있었다. 이런 풍조는 김요섭의 판타지론에 근거하여 퍼져나갔다. 이오덕 선생이 19세기 후반 리얼리즘의 영향을 들어서 판타지의 리얼리티 문제를 밝히고 나선 것은 이런 논리에 대응하려는 의미였다.(「판타지와 리얼리티」, 『어린이를 지키는 문학』, 참조. 대상 연령과 서술방식의 상관관계를 고려해서 구분한 ‘공상동화’․‘생활동화’․‘판타지’․‘소년소설’ 등에 대해서는 졸고 「동화와 판타지 1」, 『어린이문학』, 2001년 7월호, 「‘일하는 아이들’과 ‘유희정신’을 넘어서」를 참조하기 바란다.) 따라서 문제의 초점은 ‘공상’이나 ‘환상’이 아니라 ‘아동 현실’임이 드러난다. 이오덕 평론에서 부정적으로 고착된 ‘유희정신’을 하나의 역사적 개념으로 자리매김하고, 이와 구별되는 ‘놀이정신’을 새로 검토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과거의 동요적 발상과 감각적 기교주의, 그리고 터무니없는 공상적 얘기는 시인․작가의 ‘유아 취향’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그와는 다른 차원에서 오늘의 동시가 해결할 문제로 구전동요의 말놀이 같은 데에서 드러나는 ‘노래성’을 다시 살피고,(졸고, 「동시를 살리는 길」, 『어린이문학』, 2002년 9월호, 참조.) 오늘의 동화가 해결할 문제로 ‘공상’이나 ‘환상’에 대해 다시 살피는 일은 민족문학과 리얼리즘 아동문학론을 계승 발전시키는 일과 어긋날 이유가 없다. 작가들마다 지향하는 바는 조금씩 다르더라도 채인선, 임정자, 김옥, 위기철 등의 작품에 나타난 공상의 세계를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검토해보는 일 또한 그러할 것이다. 이들의 작품세계는 그 바탕에서 보자면 이오덕 선생이 비판했던 과거의 공상동화처럼 유아 취향과 현실 도피에서가 아니라, 오늘의 아동 현실로 한발 다가서려는 지향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된다. 오늘의 아동문학이 개척해가고 있는 유아․유년 대상의 그림책, 동요시, 동화 영역에서 말놀이․유머․난센스․공상 또는 환상 등의 요소가 과거와 똑같은 비중일 수 있을까? 이런 요소들을 포함하는 유희정신(놀이정신)은 이오덕 평론의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어른의 유아 취향인가, 아니면 아동 현실에 대한 탐구인가에 따라 평가되어야 마땅하다(.나는 최근 아동문학의 새로운 경향을 살피면서 몇 가지 분별해야 것들을 분명히 드러내고자 편의상 ‘리얼리즘․반(反)리얼리즘․비(非)리얼리즘’이라는 말을 써본 바 있는데, 이런 방식의 설명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있었다. 리얼리즘은 정신이나 태도를 가리키는 경우와 기법을 가리키는 경우의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동심천사주의 경향의 작품은 정신이나 태도 면에서 리얼리즘과 대립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리얼리즘 anti-realism’이라 할 수 있고, 자연과 초자연이 뒤섞인 판타지 종류의 작품은 기법 면에서 리얼리즘과 구별되는 것이기 때문에 ‘비리얼리즘 non-realism’이라 할 수 있다. 영어권에서는 리얼리즘이라고 하면 판타지가 아닌 작품을 가리킨다. 이는 분명히 기법과 관련한 구분이다. 지금처럼 판타지에 대한 논의가 늘어나는 추세에서는 판타지와 리얼리즘의 관계를 잘 헤아려볼 필요가 있는데, 기법 면에서의 ‘비리얼리즘-판타지 종류’와 태도 면에서의 ‘반리얼리즘-동심천사주의 경향’은 일단 구별되어야 하는 것이다.) 4. 이오덕 평론의 한계와 문제점―‘동심성’과 ‘교육성’ 이오덕 평론 전체를 하나의 일관된 체계라 한다면, 공상동화가 아닌 생활동화(소년소설)와 관련해서도 검토해야 할 부분이 없지 않다. 이오덕 평론에 나타난 아동관과 문학관을 통해서 우리는 리얼리즘 아동문학의 지향과 평가기준에 걸친 문제점을 살필 수 있다. 아동관과 문학관은 아동문학의 주요 특성으로 간주되는 ‘동심성’과 ‘교육성’으로 이어진다. ‘동심’은 ‘어린이’와 더불어 이오덕 평론의 최고 지향점이요 주요 범주 가운데 하나다. 이오덕 평론이 출발에서부터 ‘아동 없는 아동문학’과 맞서온 활동임을 앞에서 확인했는바, ‘어린이’는 바로 ‘동심’으로 해서 아동문학의 목적이 되고 있다. 이오덕 선생은 동심의 참된 뜻을 동심천사주의에서 따로 떼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심이란 말이 정치주의자‧상업주의자 들에 의해 그 참된 핵심이라 할 것은 거세되고 무사상․무이념․무내용의 껍데기만이 그들에 의해 이용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을 조금도 기피할 필요도 없고 부정할 필요도 없다. 동심천사주의와 같은 부정의 뜻으로만 써야 할 까닭이 없다. 우리는 이 말의 참된 뜻을 찾아내어 밝혀야 하는 것이다.(『시정신과 유희정신』, 151면) 동심이란 낱말이 통속적으로 쓰이는 경우라면 모르지만 적어도 그것이 아동문학의 알맹이로 이념으로 쓰여져서 ‘동심의 문학’이라고 할 때 어찌 치졸한 어린애들의 소꿉놀이 세계가 되어 쓰겠는가.『어린이를 지키는 문학』, 60면) 위의 논리로 보아서 이오덕 평론의 동심은 방정환과 이원수 아동문학론으로부터 이어져온 주요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즉 일제시대의 계급주의 아동문학론자들에 의해 부정된 동심과, 리얼리즘에 대립해온 동심천사주의자들에 의해 오염된 동심으로부터 ‘참된 동심’을 구원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이오덕 선생의 평론집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동심론은 다음과 같다. 동심은 어른들의 장난감도 아니고, 옛날을 회상할 때 잠기는 늙은이들의 그리움의 세계도 아니다. 그것은 삶의 터전에서 온갖 부정과 역경과 싸우면서 끝내 지켜 나가는 순수한 인간정신이며, 끊임없이 자라나는 선의 마음 바탕이며, 온 민족의 어린이와 어른의 마음바다로 확대해갈 수 있는 정심이며, 문학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키워나갈 수 있는 인간의 본성인 것이다.(『시정신과 유희정신』, 151면) 동심이란 무엇인가? (…) 첫째는 허욕이 없는 마음이다. (…) 둘째는 정직성이다. (…) 셋째는 인간스런 감정의 풍부함이다. (…) 동심은 한 마디로 사심이 없는 마음이다. 이것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참(眞)과 착함(善)과 아름다움(美)의 세계다.(『어린이를 지키는 문학』, 60면) 저는 동심―곧 어린이 마음의 속성을 ①소박하고 정직함, ②계산하지 아니함, ③동정심―이 세 가지로 봅니다.(『삶․문학․교육』, 240면) 뭔가 ‘중심’이라고 할 것, ‘정심’(正心)이라 해야 하나, ‘단심’(丹心)이라고 해야 하나, (…) 또 달리 말하면 바로 ‘어린이 마음’이다.(『문학의 길 교육의 길』, 266면) 동심은 이렇게 하여 어른들이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도 배워야 할 바른 삶의 태도며, 선을 바탕으로 한 인간 본연의 마음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의 불순 불결을 일깨워주는 귀중한 인간정신의 바탕이 되고 창조의 원동력이 되어 아동문학의 밑뿌리 노릇을 하는 것이다.(『시정신과 유희정신』, 49면) 이렇듯 동심을 지고지순의 이념으로 끌어올린 이오덕 선생의 논리는 어린이를 지고지순의 존재로 보는 아동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타락한 동심주의와 평생 맞서온 이오덕 선생이야말로 일관된 사상체계를 지닌 본래적 의미에서의 동심주의자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오덕 선생의 아동관 자체만을 두고 볼 때는 동심주의의 기원을 이룬 『아까이도리』의 주요 작가, 곧 동시에서의 기타하라 하쿠슈(北原白秋)와 동화에서의 오가와 미메이(小川未明)와 크게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다.(이하 기타하라 하쿠슈와 오가와 미메이의 아동관과 동심에 대해서는 橫須賀薰, 「童心主義と兒童文學」, 日本兒童文學者會編, 『兒童文學の思想史․社會史』, 東京書籍, 1997을 참조했다.) “어린이야말로 참된 시인”이라는 말로 유명한 기타하라 하쿠슈는 ‘죄 많은 어른과 순진무구한 어린이’라는 도식 아래, 후자에 의해 전자가 구제받아야 한다는 사상을 표출했다. 그리고 초기 사회주의 문학운동에 관계한 오가와 미메이는 ‘강자인 어른과 약자인 어린이’라는 도식 아래, 학대받고 불행한 어린이를 대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쿠슈의 경우는 동심으로 돌아감으로써 더럽혀진 어른이 구원받는다고 생각했고(구제로서의 동심), 미메이의 경우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동심의 문학과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생각했다(정의로서의 동심). 이들에게서 어린이는 순진․천진․무구․반속(反俗)의 표상이다. 이오덕 선생은 “‘임금님은 벌거벗었다!’ 하고 정직하게 소리칠 수 있는 것이 순수하고 참된 동심”(『시정신과 유희정신』 49면)이라고 했는데, 이처럼 동심이 ‘상식을 깨는 용수철’로 인식되거나 ‘오점을 되비추는 거울’이 될 때는 일정한 의의를 지닌다. 하지만 여기에서 더 나아가, 어린이 마음의 특수성을 절대화함으로써 얻어진 동심 개념은 사뭇 위태롭다. ‘참된 동심’이라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동심은 그 말의 성립부터가 “어린이라는 존재의 미화이고, 아름다움이나 순수성의 상징이었던 것이고, 현실 생활 속의 어린이 그 자체와는 다르다.” 이런 의미에서 동심은 관념의 산물이었던 것이다.(이오덕 평론의 동심 개념이 지닌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성격에 대해서는 김상욱 교수도 지적한 바 있다. 『숲에서 어린이에게 길을 묻다』, 창작과비평사, 2002, 191면 참조.) 동심주의에도 나름대로 뜻이 있는 역사적 동심주의와, 우리의 경우처럼 아동문학을 타락시켜온 통념으로서의 그것이 있다. 일본에서는 동심주의라고 하면 흔히는 역사적인 것을 가리킨다. 서구에서는 동심에 꼭 들어맞는 어휘를 찾기 힘들고, 일본에서도 역사적인 개념을 가리킬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쓰지 않는데, 유독 우리만은 유파를 가리지 않고 동심이란 말을 자주 쓰고 있다. 왜 그럴까?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아동문학의 상식으로 통하는 동심천사주의 경향과, 그에 대해 반정립을 시도하는 리얼리즘 경향이 마주 부딪치고 있는 우리의 문단 현실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리얼리즘 경향을 대표하는 이오덕 선생에게도 기타하라 하쿠슈에게서처럼 “또 다른 의식과 동기”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그것은 이른바 ‘반문명의 표상’으로서의 동심 개념이다. 이오덕 선생의 논리 전개를 잘 살피면, ‘어린이와 어른’은 각각 ‘자연과 문명’이라는 구도 아래 ‘선과 악’으로 대응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런 논리는 사회 진보에 대한 이오덕 선생의 믿음이나 실천과는 관계없이, 자연과 인간을 극한대립으로 치닫게 하는 현대 문명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려는 데에서 비롯한다. 즉 인간과 자연이 평화롭게 어우러진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동심을 찾아가져야 하는 것이며, 어린이의 순수함이 현대 문명에 오염되지 않도록 교육과 문학이 함께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럴 때의 동심은 신념이요 세계관이자 이념이다. 어린이를 ‘인간 존재의 최초 자연형태’로 보거나 ‘미래의 은유’로 보는 관점은 널리 퍼져 있는 것이긴 하지만, 이런 관점으로 사회체제의 변혁논리를 뒷받침하려 든다면 그것은 아주 제한적으로만 유효할 뿐이다. 어린이의 심성을 인간 일반으로부터 분리하여 절대화하는 논리는 어린이와 어른 사이에 높은 장벽을 쌓는 동심천사주의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오덕 선생의 아동관을 일본 『아까이도리』의 아류라고 할 수는 없다. 20년대의 정지용만 하더라도 기타하라 하쿠슈에게 사숙한 바 있지만, 아무리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그는 정지용의 동시를 만들었다. 방정환 문학도 마찬가지였고, 이는 이원수와 이오덕 문학에도 해당한다. 나는 이를 한국 아동문학의 현실주의 성격이라 지적한 바 있거니와, 특히 70년대 이오덕 평론에 와서 민족문학과 리얼리즘 아동문학론이 일대 도약을 이룬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작가들은 어린이들을 사회와 격리된 별천지에서 꿈만 꾸는 존재로 알고 있고, 그래서 어린이들을 인형같이, 어른의 노리개같이 그려 보인다. 그리고는 그런 글을 두고 동심의 문학이라고 변명하고 있다. 이것은 아동문학을 한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어린이들을 모르고 있는가를 잘 말해주는 것이다. (…) 어린이들도 역사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삶․문학․교육』, 85-86면) 이오덕 선생이 힘써 비판하는 ‘동심의 문학’은 달리 말해 ‘반리얼리즘’이다. 따라서 이오덕 선생의 아동관만을 따로 떼어내어 엄격한 의미의 동심주의라 이름 붙인다면, 설사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뭔가 석연치 않고 헛갈리는 구석이 남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오덕 선생의 아동관을 리얼리즘론의 한 계기인 이상주의와 연결지어 보면 어떨까?(어린이의 순수성을 찬미하는 노스탤지어에 기대어 현실을 넘어서려는 지향을 보통은 낭만주의로 규정하지만, 이오덕 선생은 남다른 도덕적․금욕적 태도를 강조하는 편이기 때문에 이상주의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하다.) 어린이와 동심을 둘러싸고 이오덕 평론에서는 리얼리즘과 이상주의의 두 요소가 통합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분열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이상주의의 요소가 구체적인 현실을 건너뛰고 강한 신념으로만 표출될 때는 자기 논리 안에서도 리얼리즘의 요소와 충돌하고 마는 것이다. 문학의 자리에서 펼쳐진 이오덕 선생의 논리는 어린이와 동심을 매개로 해서 교육의 자리를 넘나든다. 이오덕 선생의 이론체계에서 아동교육론은 아동문학론에 선행한다고 했는데, 이점은 “문학성과 교육성은 아동문학에서 하나가 되고 공존하는 것”((『시정신과 유희정신』, 216면)이라는 정당한 표명에도 불구하고, 창작방법을 논할 때나 작품을 평가함에 있어 언제나 형식보다는 내용을 우선시하게끔 잡아당기는 요소다. 이오덕 선생이 창작방법이나 평가기준과 관련하여 정리 제시한 것들, 이를테면 ‘열등의식을 극복해야 할 작가의 창작 태도’ 7가지와 ‘열등의식을 조장하는 문학이 나타내는 모습’ 7가지(34-35면), ‘진실한 세계를 창조하여 온 작가들이 그 작품에서 모색하고 구현하려던 것’ 10가지(138면), ‘아동문학에서 다루어야 할 주제’ 10가지(『삶․문학․교육』, 128-130면) 등을 살펴보면 한결같이 교육적 가치와 관련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이오덕 평론은 한마디로 사회‧윤리적 비평의 성격을 띤다. 교육적 가치나 사회․윤리적 내용을 강조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닐 것이다. 이오덕 선생은 “아동문학의 윤리성은 인정하되 그것을 미적 가치보다 낮은 데”(『시정신과 유희정신』, 217면) 두려는 김동리의 논리를 비판하는 자리에서, 아동문학의 교육성과 문학성이 대립되지 않듯이 윤리성과 미적 가치 또한 하나라고 보았다. 따라서 교훈적인 내용이 날것으로 드러나는 작품은 좋은 작품이라 하지 않았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교육적인 내용을 전제로 하여 ‘형상화’를 말할 때, 이오덕 선생의 관심은 독자가 책에 얼마나 푹 빠져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느냐 하는 수용 과정에서의 ‘흥미성’으로 모아진다. 이런 태도는 세계관과 창작방법의 문제에서 주체와 객체가 함께 작용하는 변증법의 과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객체를 대상화하고 고정된 것으로 보는 형식논리에 가깝다. 이 때문에 이오덕 평론은 교육성과 문학성이 이따금 ‘긴장 속의 통일’을 잃어버리고 교육의 자리로 환원하는 특징을 보인다.(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라 자세히 살피지 못하지만, 이오덕 선생이 가장 많은 힘을 기울여 교육현장에 뿌리내린 ‘삶을 가꾸는 글쓰기교육’은, 방법 자체가 지배이데올로기의 반영인 주입식교육에 반대하여 대화식교육을 설파한 프레이리의 민중교육론처럼, 사상과 방법 사이에 간극이 없는 아동중심의 교육방법론이다. 이오덕 선생이 박경선의 『엉뚱이 뚱이』에 대해 말할 때, 이 작품을 읽고 쓴 아이의 독서감상문으로 교사와 학생이 함께 배워가는 수업 장면-박경선, ‘엉뚱이 뚱이 뒷이야기’-을 무엇보다 감동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어린이문학 무엇이 문제인가」, 『문학의 길 교육의 길』, 참조.) 그런데 교육론에서 볼 수 있는 이런 인식을 문학론에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박경선의 『엉뚱이 뚱이』와 박기범의 「김미선 선생님」, 김대영의 『아저씨의 화분』과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에 대해 각각 상반된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이 그 좋은 사례다. 『엉뚱이 뚱이』와 「김미선 선생님」은 둘 다 교사와 아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그런데 『엉뚱이 뚱이』를 두고는 “실제로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해서” 쓴 “참되고 사실성 있는 이야기”(『문학의 길 교육의 길』, 225-228면)라고 상찬하는 반면에, 비록 박기범의 작품집 전체에 대해서는 아주 높이 평가했을지라도, 「김미선 선생님」을 두고는 “교사들이 받는 돈봉투를 옹호하고 변명하는 작품”(『어린이책 이야기』, 46면)이라면서 남김없이 가혹하게 비판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평가에서는 굴절된 현실에 몸을 담그고 사는 인물의 내적 갈등과 고민이 들어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아저씨의 화분』은 “불행한 이웃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다운 마음을 심어 주려고 한 이야기”로서 “실제로 있었던 어떤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여 쓴 것”(「어린이문학상 심사평」, 『어린이문학』, 2002년 7월호, 45-46면) 같다고 말한 장편인데, 이런 지적은 『괭이부리말 아이들』에도 들어맞는다. 이오덕 선생은 두 작품이 모두 어른 조력자가 나타나 너무 쉽게 일이 풀리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아저씨의 화분』을 두고는 “이야기에 무리가 없고 재미있게 읽혔”(같은 곳)다면서 작가의 주관적 희망보다 작품의 개연성을 더 주목한 반면에,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두고는 그 반대를 더 주목한다. 그리하여 “절실한 이 삶의 이야기가 그저 좋은 이야기란 정도로 읽힐 뿐이고, 가슴 깊이 큰 울림으로 남지 않는다.”(『어린이책 이야기』, 89면)고 결론짓는다. 『아저씨의 화분』에 대한 평가의 말은 아주 짤막한 심사평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겠지만, 그렇더라도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생생한 사실성”보다 “작위성”을 더 많이 짚어내면서 부정적인 평가로 기울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수긍하기 어렵다. 이오덕 선생은 동수, 호영이, 숙희, 영호, 김명희 선생 등 『괭이부리말 아이들』에 나오는 거의 모든 등장인물이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보인다고 조목조목 비판하는데, 특히 아이들의 행동과 관련해서 교육적인 관점이 불거져 나온다. 요컨대 이들 네 작품의 성과를 보통 이상으로 격상시키거나 격하시켜 평가하는 기준에는 다름 아닌 교육적 가치가 깊숙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5. 마무리 아동문학은 동심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교육적 가치가 중요하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동심을 내세워 어린이를 배반하는 동심천사주의 경향은 교육적 가치 면에서도 퇴행적․보수적인 태도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식민지와 분단으로 얼룩져온 우리 민족의 앞날을 비추는 아동문학으로서의 자격을 잃는다. 이를 ‘배반의 동심’이라 이름 붙여 본다면, 이오덕 평론은 그 반대편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오덕 선생은 아동문학에 대한 일반 통념을 깨고 민족과 어린이라는 우리 아동문학의 지표를 뚜렷하게 세워놓았다. 사실 이오덕 선생의 사상과 활동은 아동교육자에서 겨레의 큰 스승으로 나아가는 전체 과정 속에서 들여다보고 평가해야 한다. 그런데 아동문학에 국한할 경우, 평론 활동은 특정 시기의 특정 과제와 맞물려 집중 전개된 것이므로,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한계를 끌어안고 있다. 특히 아동교육자로서 문학을 대하는 관점은 논란의 여지가 적지 않다고 생각된다. 어린이로부터 민족의 앞날을 가늠하고 인류의 운명을 내다보려는 태도는 우러름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오덕 평론이 지향했다고 보이는 리얼리즘의 원칙에 의거해 볼 때, 어린이에 대한 지나친 이상화는 현실성에 균열을 낼 수밖에 없고, 결국은 리얼리즘 아동문학론 자체를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 ‘어린이의 이상화’야말로 ‘동심’의 다른 이름일 텐데, 이것이 현실의 반작용으로 해서 ‘동심의 배반’과 마주치게 되는 것은 필연일 것이다. 이 경우에 ‘배반’이라는 표현은 ‘동심’ 개념이 내포한 일종의 모순성 곧 이율배반을 가리키는 것이지 실제 어린이들이 그렇게 반응할 것이라고 보는 건 아니다. 어린이는 그냥 작은 사람일 뿐이다. 진정으로 어린이를 소중히 여기는 어른이라면 이따금 현실의 어린이에게 느끼는 배반감 같은 건 기꺼이 감수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동문학에서 동심은 여전히 문제적인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