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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외부 행위이고, 벌은 내부에서 시작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을 많은 분들이 읽으셨겠지만 어렸을 때 읽은 이 소설을 좀 더 새로운 의식에서 인간의 심층심리에 초점을 두어 소설의 줄거리를 전개시켜 보았습니다. 편의상 평어체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이 소설은 살인 사건을 중심에 두고 있으나, 이 작품의 본질은 범죄 소설이 아니다. 인간의 의식 깊은 곳에서 벌어지는 죄책감, 자기 심판, 구원의 드라마로서 도스토예프스키는 한 인물이 사고의 오류에서 존재의 진정한 의미를 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이 소설을 통해서 보여준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범죄 이후에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범죄 이전부터 이미 “분열된 자아”라는 내적 형벌 속에 살고 있었다.
라스꼴리니프의 최초의 분열은 나는 특별한 인간인가라는 자기 의문에서 시작된다. 가난한 대학생으로서 그의 마음 속에는 두 가지 분열된 자아가 있다. 하나는 이상적이고 철학적인 자아로 나폴레옹처럼 비범한 인물이라면 일반 도덕 규범을 넘어서도 된다고 믿는 초인자아와 여동생 두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는 의지와 약자에게 마음이 움직이는 인간적이며 감수성과 연민을 품은 자아다. 그는 자신을 나폴레옹과 같은 초인의 범주에 포함시키면서도 내면의 대립하는 두 자아들 사이에서 계속적으로 갈등한다.
그의 범죄는 우발이 아니며 자신의 초인 이론을 시험하기 위한 자기만의 관문이었다. 가난한 전당포 노파를 죽이면 세상은 더 나아질 것이라는 가상의 이론을 통해 자신이 비범한 존재인지 시험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노파를 살해하기 전부터 서서히 무너진다. 그가 드디어 전당포 노파를 살해했을 때 그는 스스로 초인이자 비범인이라고 불렀던 자신에 대한 의지나 판단과는 전혀 달리 범죄 전부터 극도로 당황하고 긴장하여 범죄의 순간에 실수로 노파의 가련한 여동생 리자베따까지 살해해 버린다. 그는 당황해서 전당포에서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한 채 도망쳐버린다. 따라서 자신이 비범인임을 확인하고 자신의 초인철학을 증명하려는 이 범죄는 초인과 같은 비범한 상태가 아니라 무의식적 폭발과 같은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살인 이후에 라스꼴리니프의 멘탈은 완전히 붕괴되고 이때부터 그는 자기 몰락의 궤도를 걷기 시작한다. 살인 후 열병과 혼란 속을 헤매던 그는 어느 날 우연히 허름한 술집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그는 마르멜라도프라는 중년의 전직 관료를 만나게 되고, 그의 긴 넋두리를 듣는 동안 처음으로 소냐라는 딸의 존재를 알게 된다.
마르멜라도프는 본래 착하고 연민이 깊은 성격이었지만, 지독한 알코올 중독때문에 가정이 완전히 몰락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의 아내이자 딸 소냐의 새어머니인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결핵과 가난, 충격적인 생활고가 겹쳐 붕괴되어 가는 인물이다.
마르멜라도프는 아내의 잔소리와 절망을 감당하지 못해 도망치듯 술을 마시고, 다시 돌아가면 아내에게 두들겨 맞고 욕을 먹는 처지를 반복한다. 그러나 그가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통은 따로 있었다. 그의 딸 소냐가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의 구박을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마침내 몸을 팔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르멜라도프는 가족을 구하기 위해서 몸을 팔게 된 소냐에게마저 술값을 받아 술을 마셨다는 사실을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한다. 그는 자신의 비참함과 철면피같은 아버지의 모습을 스스로 자책하면서 소냐에 대한 애정과 자신의 비루함을 술냄새와 눈물에 뒤섞여 처절한 비참함으로 토로한다. 그는 희생을 떠 안는 딸에게 또 다시 상처를 주면서도 계속해서 술을 마시는 것이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보다 더 깊은 어둠 속에서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한 빈민의 절망스런 이야기를 통해, 비록 소냐를 직접 만나지 않았지만 그녀가 이미 어떤 사람인지를 인지하게 된다. 그리고 끝없는 붕괴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한 인간이 있음을 목격한다. 이렇게 마르멜라도프의 고백은 라스꼴리니프를 소냐의 세계로 이끄는 첫 관문이 된다.
한편 마르멜라도프의 고백이 그 자신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그는 또다시 술을 마시고 술집에서 나오는 길에 마차에 치어 숨지게 된다. 그리고 라스꼴리니프는 죽어가면서 자신의 딸 소냐를 부르는 마르멜라도프의 비참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살인 이후 극도의 자책과 혼란 속에 살고 있었던 라스꼴리니프에게 마르멜라도프의 비참함은 그동안 오만과 자기 위안으로 숨겨져 있었던 자신의 죄책감을 강하게 자극한다. 그래서 그의 무의식에서 악에 대한 대칭적 인식이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라스콜리니프는 전당포 노파를 사회에 쓸모없는 존재라고 규정했기 때문에 살인에 대해 어느정도 스스로를 정당하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멜라도프의 고백을 듣는 순간 그의 무의식은 이렇게 스스로를 일깨우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쓸모없다면서 한 노파를 죽였지만. 이 사람은 비록 사람을 죽이지 않았지만 스스로 쓸모없게 여기는 자신을 위하여 자신의 딸을 죽음보다 더 한 길로 내몰고 있다. 또한 소냐는 스스로 쓸모없다고 여기는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스스로 몸까지 팔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죽인 노파 역시 누군가를 위해 희생한 삶이 있었을지도 모르고 그를 사랑한 가족이 있었을지 모른다라는 깨달음이 그를 스쳤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라스꼴리니프는 마르멜라도프를 통해 처음으로 논리로 판단할 수 없는 인간적 현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에게 죄책감의 씨앗이 된다.
죄는 분열의 체험이며 고백은 이 분열을 통합하려는 영혼의 시도다.
라스꼴리니프는 왜 소냐에게 모든 사실을 고백하고 싶어했을까? 어둠도 빛을 추구하기 때문일까? 무의식이 카오스와 어둠으로 가득 차버릴 때 그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인간에게 심리적 분열과 괴로움, 병증, 신경증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그의 심리적 공간을 점점 잠식하고, 의식의 중심을 공격하며, 결국 죄가 자아의 핵심 정체성이 되어버린다. 이것은 죄책감이 인간을 좀먹는 방식이다. 죄는 분열의 체험이며 고백은 이 분열을 통합하려는 영혼의 시도다.
라스꼴리니프는 마침 자신의 무의식이 더 이상 포화를 견딜 수 없는 시점에 우연히 마르멜라도프를 만났고 그의 딸 소냐를 알게 된 것이다. 그는 마음 속에서 올라오는 연민과 죄책감 그리고 소냐에 대한 잠재적 이끌림으로 마르멜라도프의 장례비를 치뤘는데, 이 일을 통해 그녀와 마주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적 공명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왜 그녀를 찾아가는지 명확하게 의식하지 못했지만, 이끌리듯 소냐의 허름한 방으로 들어갔다.
라스꼴리니프와 소냐의 만남은 로맨스가 아니라 절망과 절망의 접촉이다. 둘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인간성의 가장 밑바닥을 겪고 있었으며, 그 만남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서로의 심연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소냐를 통해 나보다 더 불행한 타인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즉, 자기 고통의 절대성을 깨뜨릴 타인을 찾으러 간 것이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살인을 저지른 뒤 열병과 혼란에 빠진 상태이고 소냐는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몸을 팔아야 하는 절대적 희생의 상태에 놓여있다.
처음에 소냐는 그녀가 처한 특수한 사회적 불안으로 인해 라스콜리니코프라는 이 낯선 남자의 방문에 당황하고 두려워한다. 더욱이 라스꼴리니프가 범죄로 인해 겪고 있는 심리적 붕괴는 그의 분위기에 열병과 알 수 없는 무겁고 두려운 그림자를 드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금세 마음을 연다. 라스꼴리니프가 마르멜라도프의 장례비를 냈다는 사실을 알고 그의 냉혹한 눈빛 뒤에 숨은 연민의 층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소냐의 방은 작았다. 가난을 숨길 수 없을 정도로 작고,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작은 섬처럼 고요했다. 그 방에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소유물 몇 가지가 있었고,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낡은 성경 한 권이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성경을 보자마자 멈칫했다. 성경은 단순히 종교적 상징이 아니었다. 그의 무의식에 깊이 박힌 어떤 기억, 그가 잃어버린 세계, 그가 더 이상 거리를 두고 있을 수 없는 어떤 진실을 떠올리게 했다.
그 순간 소냐는 그를 위해 물 한 잔을 내놓으려다 그의 시선이 성경에 고정된 것을 알아차렸다. 소냐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히 성경을 꺼내 라스콜리니코프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라스콜리니코프는 갑자기 조용해졌고, 한참 동안 말을 고르지 못한 채 우울한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치 누군가가 그의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린 듯 낮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 책, 읽어줄 수 있소?”
그 요청은 계산된 것도, 머리로 만든 결단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왜 그런 말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소냐는 이해했다. 그녀는 그가 바라는 것이
지식으로서의 성경 내용이 아니라 잃어버린 인간성의 마지막 온기라는 것을 느꼈다.
소냐는 은은하게 떨리는 손으로 성경을 펼쳤다. 라스콜리니코프는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를 따라가다가 뜻밖의 장면을 보게 된다. 성경이 자연스럽게 열리는 곳, 가장 손때가 많이 묻은 곳은 바로 요한복음 11장, 라자로의 부활이었다. 그는 놀랐고, 동시에 찔렸다. 그 장면은 단순한 기적의 서사가 아니다. 그것은 죽었다고 여긴 존재가 다시 살아나는 이야기, 즉 절망한 영혼의 회복을 말하는 상징적 장면이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소냐는 그 구절을 읽기 시작했다. 이는 우연이 아니었다. 소냐가 평생 가장 많이 읽은 부분,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희망의 문장이 바로 그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2부 계속...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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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십대후반에 죄와벌을읽고 심리묘사에 충격을받은후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읽고는 최고의 작품으로 저에게 자리매김 됬었는데 오랜시간이 지나고 죄외벌을 다시보니 느낌이 새롭습니다 짧지않은글 쓰시느라 수고하셨고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