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863) - 귀중한 성도의 본이 되신 목사님의 소천(召天)
7월 들어 예년보다 뒤늦은 장마가 시작되었다. 오늘도 새벽부터 큰비가 내린다는 안내문자가 뜨고 남녘에는 밤새 장대비가 내렸다. 일본에서는 엊그제 유례없는 폭우로 산사태가 일어나 수십 명이 목숨을 잃기도. 백신접종은 늘어나는데 코로나가 꺾이지 않고 기승을 부리누나. 아무쪼록 안전하고 평안한 날들이소서.
장마의 시작, 남녘에 드리운 먹구름이 아름답다
7월 첫날 오전, 아내가 잠긴 목소리로 슬픈 소식을 전한다. 평생을 올곧은 믿음가운데 겸손과 온유의 삶으로 일관하신 박세화 목사께서 88세를 일기로 새벽에 우리 곁을 떠나셨다는 부음, 어렴프시 예상한 일이 사실로 다가오니 가슴이 먹먹하다. 말년의 30여 년을 광주학동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시무하는 동안 고락을 함께하며 교회와 천혜경로원의 대소사를 지켜본 교우의 한 사람으로 목사님의 타계를 애도하며 하늘의 평화와 위로를 기원하는 마음이다. 금년 들어 목사님의 기력이 크게 쇠하여 요양원과 병원을 오가며 투병 중인 소식을 들었으나 이처럼 빨리 떠나시다니 너무나 아쉽고 슬픈 마음 가눌 길 없다. 최근 꿈결에 목사님과 함께 한 모습들을 자주 뵈면서 근황이 궁금하기도 하였는데. 아무쪼록 목사님의 소천이 하나님께 영광이요 남은 자들에게 은혜가 되기를 소망하며 삼가 애도와 존경의 뜻을 표한다.
부음을 접하자 곧바로 '겸손과 온유의 본이 되신 박세화 목사님, 의의 면류관 받으소서'라는 제목으로 추모의 글을 작성하여 카페 등에 올리고 이를 프린트하여 문상객들에게도 나눠드리도록 주변에 부탁하였다. 다음날 아내와 함께 광주로 향하였다. 장례식장은 30여년 섬기던 교회와 천혜경로원에서 가까운 곳, 먼저 경로원에 들러 오랜 지인과 함께 빈소를 찾아 영전에 꽃 한 송이 바치고 유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뜻을 표하였다. 목사님의 시신은 생전의 유지에 따라 조선대학병원에 기증, 장례일정은 3일째 오전에 호남지역의 목회자들이 주관하는 천국환송예배로 마무리하였다. 환송예배에서 살핀 성경구절(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시편 116편 15절)이 가슴에 꽂힌다. 목사님이 요양원 어른들의 장례 때 자주 인용하신 말씀, 이제 목사님이 하나님께서 귀중히 여기는 대상이 되셨구나. 사랑하는 박세화 목사님, 하늘이 주는 의의 면류관을 받으소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아는 모든 사람에게니라’(디모데 후서 4장 7~8절)
유지를 따라 조촐하게 가진 박세화 목사님의 천국환송예배 모습
* 추모의 글을 접한 이들 가운데 많은 분이 목사님의 별세를 애도하는 메시지를 올렸다. 그중 한두 개를 소개한다.
‘항상 밝은 미소를 머금은 목사님의 얼굴에는 예수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천국에서도 주님께서 천사들을 대동하시고 미소 짓는 박 목사님을 영접하실 것입니다.’(교계의 원로목사)
‘목사님은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칭찬받으실 분이지요. 하늘나라에서 뵙기를 바라며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렵니다.’(천혜경로원장 부부)
목사님께 바친 추모의 글에는 학동그리스도의 교회 봉직 20년을 맞아 목사님이 베푼 만찬 때 쓴 글(2009년 11월)이 들어 있다. 목사님의 인품을 살필 수 있는 내용의 요지.
목사님이 베푼 만찬
어제(2009년 11월 29일) 저녁에 박세화 목사님이 교인들을 초청하여 만찬을 베풀었다. 박세화 목사님은 1989년 11월 4일에 천혜경로원 안에 있는 학동그리스도의 교회에 부임, 금년 11월로 만 20년간 봉직하였다. 우리 교회는 이를 기려 지난 9일에 목사님의 20년 봉직을 감사하는 축하의 모임을 가졌다. 이때 교회가 목사님께 전한 감사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존경하는 박세화 목사님, 지난 20년간 학동그리스도의 교회를 섬기고 목회하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교회 모든 제직과 성도들은 목사님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리며 남은 때에 목사님과 온 가족에게 평강과 희락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어제의 만찬은 이에 대한 목사님의 답례이기도 한 셈이다. 이 자리에서 목사님은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저는 매우 행복합니다.’라고 간결하면서도 뜻 깊은 인사말씀을 하셨다. 우리는 목사님의 간단한 말씀을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내용을 함축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박수로 감사와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우리 교회는 양로원 안에 있는 특수한 교회이다. 교인의 다수가 연세 높은 양로원의 어른들이고 젊은 층의 비중이 낮아 활력이 부족한 편이었다. 그러나 목사님이 부임한 20여년 사이에 젊고 어린 자녀들이 장성하여 성인이 되었고 그들의 자녀가 다시 태어나고 성장하여 점점 활기 있고 짜임새가 있는 교회로 변모하였다. 목사님은 20년간 꾸준히 목회할 수 있는 원동력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한 것이라고 확신에 찬 소명을 피력하신바 있는데 나도 이에 동의한다.
2003년 1월, 터키여행 때 목사님께 편지형식의 여행기를 적어 책자로 전해드렸다. 그 글의 일부를 통하여 목사님의 인품과 목회하는 모습을 살펴본다.
‘존경하는 박세화 목사님, 이제 설도 쇠었으니 목사님의 연세가 70이 되셨고 저도 60세가 되었습니다. 저는 1988년부터 학동교회에 출석하였고 목사님께서는 1989년에 부임하시어 14~5년을 목회자와 재직으로 함께 지내는 동안 서로 간에 사랑과 우애를 변함없이 나누고 간직할 수 있음에 깊은 경의와 감사를 드립니다. 목사님께서 제직이나 교인들과 화목하고 편안하게 지내실 수 있는 것은 솔선수범과 겸손, 온유, 경건의 생활을 변함없이 실천해 오신 좋은 덕목을 지니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누구라도 완전할 수 없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양보하는 마음이 없이는 약하고 작은 교회가 이만큼 성장하고 봉사하는 교회로 변모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목사님, 70평생을 사시는 동안 얼마나 어려운 시련과 고난을 겪으셨는지요? 목사님께서 우리 교회에 부임하실 때 섬기던 교회와 집까지 모두 후임자에게 넘기시고 빈 몸으로 오시기로 결단하실 때 얼마나 고심하였나요? 그러나 힘겨운 결단을 내리신 후로 목사님과 가정, 교회와 경로원 모두 순탄하게 발전하고 성장하였으니 참으로 현명한 결정을 한 셈입니다. 제가 목사님께 서슴없이 존경한다는 표현을 쓴 것은 그와 같이 어려운 결단을 내리신 것, 또한 성도 섬기는 본을 보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시련과 고난을 이기시고 승리와 성공의 본을 보여주신 목사님의 귀한 삶의 모습을 온 성도들이 다 같이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제의 만찬에는 제직들뿐만 아니라 가까운 이웃에 살고 있는 아들, 딸, 사위, 며느리까지 합석하여 더 평화롭고 행복한 모임이 되었다. 손자와 손녀들이 어려서부터 목사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고 지금도 교회에서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성장하고 있음도 큰 보람과 기쁨이리라. 대부분의 동년배들이 현장에서 물러난 노년에 이르기까지 건강한 가운데 아름답고 행복한 목회의 삶을 이어 가시는 박세화 목사님, 내내 평안하고 행복하십시오.
2009년 여름, 성경 공부하는 어린이들과 함께 한 박세화 목사님(가운데 줄, 면류관을 받으신 듯 환하게 웃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