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1일(화) 요한이서 1:1-3 찬송 463장
1. 장로인 나는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2.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진리로 말미암음이로다
3.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개역 개정)
- 시작하는 말 -
요한이서는 요한일서의 축소판이라 할 정도로 그 성격과 내용에 있어서
요한일서와 유사한 서신으로 요한일서가 기록된 직후
요한일서의 내용을 보충하고 강조하기 위하여 기록된 서신이다.
따라서 본서는 요한일서와 그 배경을 같이하며
그 내용 역시 사랑의 실천에 대한 권면(4-6절)과
이단에 대한 경계(7-11절)로 요한일서와 일치한다.
다만 요한일서가 서신서의 전형적인 형식을 초월하여
논문적 형식을 취하고 있는 반면,
본서는 비록 13절로 이루어진 짧은 서신이지만 서신서의 전형적인 형식을
그대로 취하고 있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본서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본서의 발신자와 수신자를 밝히면서 수신자들에게 문안 인사를 하고 있다.
이러한 본문에서 다음 세 가지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잇다.
첫째는 요한이 자신의 사도적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단순히 ‘연장자’, 혹은 ‘영적 지도자’를 의미하는
‘장로(elder)’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요한이 적어도 본서의 수신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으며
존경과 신망을 받는 교회의 지도자였음을 시사한다.
둘째는 본서의 수신자들을 분명하게 언급하지 않고
단순히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로만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교회와 교회에 속한 성도들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다.
그리고 이는 성경에서 교회를 종종 그리스도의 신부로 묘사하는 것과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사62:5; 고후11:2; 계19:7; 21:2)
셋째는 ‘진리’와 ‘사랑’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본서를 통하여 전하고자 하는 바 사도 요한의 핵심 메시지와 연관된 것으로
성도간에는 사랑의 교제가 필연코 있어야 하되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에 기초한 것이어야 함을 보여 준다.
2절)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진리로 말미암음이로다」
서신의 발신자인 사도 요한이 수신자인 성도들을 사랑하는 것은
성령께서 주신 복음의 진리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는 성도간에 이루어지는 사랑의 교제는
어떤 인간적 감정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오직 복음의 진리와 성령의 역사에 기초하여 이루어져야 함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보면 실제로는 이와 거리가 먼 때가 종종 있다.
곧 성도들간의 교제가 복음의 진리와 성령의 역사를 기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 감정이나 어떤 세속적 기준을 따라 이루어질 때가 많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입으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인간적 감정으로 사람을 대함으로써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또 어떤 사람은 학연이나 지연 혹은 자기의 의견을
지지해 주는가 하는 것들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차별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도란 그 안에 성령이 내주해 있는 존재들이다.(고전6:19)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통해 이미 육신의 모든 것은
십자가에 못박아 죽었으며 오직 그리스도만이 살아있는 사람이다.(갈2:20)
그렇기에 성도는 자기 감정이 아니라 그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과
그리스도의 역사를 통해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만일 어느 누가 이처럼 육신적 감정이나 땅의 것을 기준으로
움직인다면 엄밀한 의미하에서 그는 참된 성도라 할 수 없다.
이와 동시에 교회가 성도들의 모임이라고 할 때
이러한 사람들이 모인 곳을 결코 건강한 교회라고 할 수 없다.
그러면 우리 자신은 어떠한 모습으로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대하고 있는가를 정직한 마음으로 되돌아보아야 한다.
또한 현재 우리 교회 안에서는 어떠한 모습으로
교제가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점검해 보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야고보 사도의 말처럼(약2:1-4) 재산이나, 지위, 미모,
학연, 지연 등으로 성도를 차별하며 인간적 감정을 앞세워
성도들을 대하고 있다면 이는 스스로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행위임을 알고 아픈 마음으로 회개해야 한다.
또한 교회 내에서 세속적 기준을 중심으로 친소(親疏)관계가 나누어져 있고
여러 분파가 이루어져 있다며 이 또한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를
인간의 집단으로 타락시키는 행위임을 알고
역시 두려운 마음으로 고쳐 나가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오직 차별 없고 다함 없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모든 사람들을 대함으로써
인간적 감정과 세속적 기준에 의해 무상하게 움직이고 있는
이 땅의 사람들에게 진정한 인간 관계가 무엇이며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가 과연 어떠한 곳인가를
분명히 증거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요일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