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은 청함의 날입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마태 7,7-8
벚꽃이 만발하였습니다. 만발한 벚꽃을 보면서 그 풍성한 아름다움에 즐거워합니다. 예전에는 사월 중 하순에 피었던 벚꽃이 사월 초순에 만발하였습니다. 기후 변화를 실감합니다. 그 변화 자연도 어쩔 수 없이 반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사람도 사회 변동과 그 환경에 맞게 반응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함께 살아가는 가운데, 공동의 선과 평화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공동선과 평화는 모두를 살리는, 모든 것이 함께 모여 더불어 살아가는 넓고 깊은 생명의 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청할 것이 있습니다. 그의 선한, 하느님께서 주신 은사와 재능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선물인데, 그와 모두의 복된 길에서 주셨습니다. 이것을 알고 깨달아야 합니다. 그 은사는 그 자신 것이기도 하지만 모두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갈릴래아 어부들을 부르셨습니다. 그 어부들은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서 일했고, 벌이를 했습니다. 그들은 조상부터 내려온 직업으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호수에서 그들이 고기잡이만을 하고 살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물을 던져 고기잡이로 살아가는 것을 넘어서, 더 큰 은사와 재능을 드러내기를 바랬습니다. 그것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위해서 사람들을 낚는 일꾼, 복음이 사도들이 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부르고, 그렇게 선발하고 파견했습니다.
인간의 재능과 기술을 복음의 은사와 탈렌트로 바꾸셨습니다. 뿐 만아니라, 유다 이스카리옷도 예수님의 제자로, 후에 예수님을 배반하기는 하였지만, 그는 제자단 회계의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세리도, 혁명당원, 일꾼까지 예수님은 복음의 은사와 재능의, 소질을 계발하여 복음의 기쁨을 위해서 쓰셨습니다.
우리는 종종 일과 활동, 직장과 직업에서, 교회 신심과 활동에서 주어져 있는 직분과 직위, 일과 그 업무에 따라 살고 그것에 오랫도안 매여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세상의 여러가지 일이 이런 조건과 환경에서 얼기설기 되어 있습니다. 자기 직업과 직분, 그 업무와 일에 매여있고, 그 신심과 봉사에 매여 있어서 더 큰 것을, 곧 복음의 선포와 그 일꾼들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기 신심과 활동과 봉사에 얽매여 있어서 복음과 말씀의 너른 전달과 양성, 복음의 기쁨의 본질과 선포에 미흡함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복음 선포를 위해서 제자를 뽑았고, 그들을 복음의 기쁨을 위해서 단순하게 파견하고 전달하고 가르치고, 치유와 회복에 초점을 맞추는 선포를 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무 복잡한 지침과 체계, 행정과 규정은 오히려 단순한 주님의 말씀 선포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합니다. 모두가 복음 선포자로 나서야 함에도 특정한 사람만이 지시하고 주도합니다. 모두는 지시를 받고 직원으로 학생으로 남아있습니다. 젊은 남여가 결혼을 하면 그들은 부모가 되고, 자녀를 기릅니다. 그들이 과거 결혼의 경험이 있다거나 아이들을 길러본적은 없습니다. 가정을 이루면 그들을 부모가 되어 자녀를 기르고 그곳에서 멋지고 훌륭한 이들이 길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청할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세상의 필요와 일과 신심과 자기 본위의 직책과 직업만 갖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기쁨, 하느님 나라의 길을 가도록 하는 그의 은사와 재능과 소질을 드러내는 것을 청해야 합니다. 그가 제자로서 사도로서 목자로서 걸어가도록 합니다. 그렇게 인도하는 데에 주님께 청하고 찾고 두드립니다.
월요일은 청함의 날입니다. 청함은 우리의 은사와 재능과 소질을 청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부르고 양성하여 파견하는 데 방향을 두고 그렇게 합니다.
주님, 오늘 저의 은사와 소질을 알게 하소서. 주님이 주신 그 재능을 통하여 복음의 길을 알게 하시고, 목자의 길을 걷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