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 강하고 수비는 약한 지명타자 한동훈
“9회말 2아웃 2스트라이크면 원하는 공이 들어오지 않아도 후회 없이 휘둘러야 한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총선 판에 들어서며 이같이 말했다. 김영삼(YS), 김대중(DJ) 전 대통령처럼 정치인을 이니셜로 부르는 문화가 사라졌지만 한 위원장의 등장은 그의 이니셜 DH와 어울렸다. 야구에서 DH는 지명타자(Designated Hitter)를 뜻한다. 수비는 하지 않고 투수 대신 타격을 담당하는 포지션이다. 보통 야구에선 강타자지만 상대적으로 수비력이 약한 선수가 맡는다.
한 위원장이 타석에 들어선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는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취임 첫날부터 ‘운동권 특권 정치 청산’을 내세워 더불어민주당을 ‘공격’했다. 협치 대상인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중대 범죄자’로 규정하고 “중대 범죄자가 법에 따라 처벌받는 걸 막는 게 지상목표인 다수당이 나라의 미래를 망치는 걸 막아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한 위원장이 국회에서 법무부 장관 신분으로 이 대표의 체포동의 요청 설명을 읽던 모습이 떠올랐다.
한 위원장은 선수 구성도 공격력에 치중했다. ‘운동권 저격수’엔 주사파 이론가에서 ‘86세대’ 운동권 비판가로 변신한 시민단체 대표를, ‘이재명 저격수’엔 이 대표의 대장동 특혜 의혹을 분석한 변호사, 이 대표의 단식을 공개 비판했던 의사를 배치했다. 공격력에 초점을 맞추면서 검증에 소홀했던 탓일까. 시민단체 대표는 ‘노인 폄하’ 발언 논란으로 임명 하루 만에 퇴장했다. 여당 관계자는 “한 위원장은 절대 실수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는데 조금 흔들린다”고 했다.
한 위원장의 수비력을 보자. 민주당은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고리로 올해 총선 주도권을 쥐겠다고 벼르고 있다. 동아일보 신년 여론조사에선 김건희 특검법에 찬성하는 여론이 많았고,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에는 반대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여론을 등에 업은 민주당의 특검 공세를 수비하기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정치인은 공격 때도 수비 때도 말이 무기다. 그런데 수비에선 주춤하는 모양새다. 그는 장관 시절 김건희 특검 질문에 “법 앞에 예외가 없다”는 메시지를 냈다. 비대위원장이 되더니 “특검은 총선용 악법”이라고 했다. 특검이 국회에서 통과된 당일엔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한 위원장은 새해 첫날엔 ‘김건희 특검’ 대신 ‘도이치 특검’이라고 표현했다. 다음 날엔 김건희 특검과 관련해 ‘윤 대통령에게 용기와 헌신을 요구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한 위원장은 “그런 악법을 가지고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겠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게 어떻게 용기와 헌신이냐”고도 했다.
지난해 12월 국민의힘 비공개 의원총회에선 ‘한동훈 삼고초려’ 추대론 대 ‘윤석열 아바타’론이 맞붙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명된 데는 감독인 윤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스포츠 명언 중 공격은 팬을 부르지만 수비는 우승컵을 가져다 준다는 말이 있다. 롯데는 ‘조선의 4번 타자’ 지명타자 이대호를 보유하고도 우승에 실패했다. 한 위원장은 ‘조선제일검’으로도 불린다. 여론은 칼로 벨 수 없다. 시선을 멀리 생각이 다른 ‘동료 시민’도 바라봐야 할 때다.
박훈상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