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논설실장 입력 2021.07.02 00:00 정보의 차단막이 둘러쳐진 청와대에서 비상식적이고 기이한 일들이 꼬리 물고 있다. 사진은 청와대 전경./조선DB 나는 병원 수술실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자는 법안에 반대한다. 의료진의 일탈을 감시한다는 긍정적 효과보다 그로 인해 벌어질 위험 요인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소극적 치료에 나설 것이라는 의료적 부작용은 차라리 부차적 문제에 불과하다. 나는 언젠가 수술대에 놓일지 모를 내 몸이 마취 상태로 카메라에 찍히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렇게 녹화된 동영상이 유출되기라도 한다면 끔찍한 일이다.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CCTV로 감시해야 할 만큼 의료진의 윤리 의식을 불신하면서 동영상을 악용할 의사·간호사, 병원 직원이 단 한 명도 없을 것임은 어떻게 확신한단 말인가. 그래도 꼭 해야 한다면 좋다. 이왕 하는 김에 평소 걱정스러웠던 다른 곳에도 카메라 설치를 고려하기를 바란다. 우선 음식점이다. 반찬 재활용이며 위생 불량 얘기가 나올 때마다 내가 다니는 식당들은 괜찮은지 불안해진다. 배달시켜 먹는 치킨·피자·족발도 제대로 된 조리 과정을 거치는지 걱정이다. 수술실 카메라와 똑같은 이유로 모든 음식점 주방에도 CCTV를 의무화해야 마땅하다. 어떤 특급 호텔에서 객실 변기 닦은 수세미로 물컵 세척하는 장면이 뉴스에 나왔다. 내가 여행 가서 묵는 호텔 방은 괜찮은지 겁난다. 객실 청소 과정을 CCTV로 녹화해놓고 투숙 고객이 동영상을 확인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 중국산 김치의 알몸 세척 영상을 본 이후로는 국산 김치도 불안해졌다. 전국의 김치 공장, 각종 반찬·식재료 공장에도 CCTV 설치가 요망된다. 개인 정보가 샐까 걱정되는 휴대전화 수리 센터, 제대로 된 부품을 쓰는지 궁금한 카센터도 마찬가지다. 나는 대다수 음식점과 호텔과 김치 공장들의 양심을 믿는다. 그러나 세상 어느 직종보다 철저하게 훈련받는 의사들의 직업 윤리를 불신하면서 다른 누구를 신뢰할 수 있단 말인가. 그중에서도 가장 시급하게 카메라를 달아야 할 곳이 있다. 청와대다. 불통(不通)의 커튼을 치고 첩첩산중에 들어앉은 청와대에서 기이하고 괴상한 일들이 꼬리 물고 있다. 문 대통령은 외신 인터뷰에서 김정은을 “솔직하고 열정적이며 결단력 있다”고 했다. 독재자 폭군을 성군(聖君)처럼 묘사하는 판단력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천하가 다 아는데 문 대통령은 비핵화 의지가 확고한 양 말해왔다. 문 대통령은 허황된 대북 정보를 어떤 경로로 입력받았을까. 이 국가적 수수께끼를 풀려면 청와대 집무실에 CCTV를 다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도대체 누구를 만나 무슨 얘기를 듣는지 스크린하자는 것이다. 대통령의 현실 인식은 비상식을 넘어 황당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참담한 일자리 참사에도 “고용의 양과 질 모두 개선”이라 하고, 서민 경제가 죽어 가는데 “정책 성과가 나고 있다”고 했다. 최악의 집값 급등 앞에서도 “부동산은 자신 있다”고 했다. 이런 말들을 대통령 혼자 상상으로 지어냈을 리 없다. 참모나 보좌진 누군가가 그렇게 보고했을 것이다. 누가 대통령 귀를 붙잡고 어떤 헛소리를 하고 있는지 감시해야 마땅하다. 인사는 코미디를 방불케 한다. 정의 담당 장관에 ‘아빠 찬스’의 조국, ‘엄마 찬스’의 추미애를 기용했고, 투기 의혹을 받는 90억원대 부동산 보유자를 반부패 비서관에 앉혔다. ‘위안부 장사’의 윤미향, 악덕 기업인의 전형인 이상직에게 의원 배지를 달아주었다. 국정 운영은 갈수록 불가사의해지고 있다. 북한·중국에 대한 끝없는 굴종, 한국형 원전을 죽이는 탈원전, 서민을 영원한 무주택자로 만드는 부동산 역주행, 못 사는 사람을 더 못살게 하는 소득 주도 성장 등등 국익과 민생을 해치는 정책이 계속되고 있다.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런 자해(自害)의 정책 결정을 하고 있단 말인가. 겹겹이 둘러친 장막을 비집고 권력의 틈새를 드러낸 것이 탈원전 감사였다. 대통령의 “월성 1호기 가동 중단” 질문이 탈원전 자해극의 시작이었음을 감사원이 밝혀냈다. 울산 시장 선거 때 대통령의 30년 지기를 당선시키려 청와대 조직 8개가 총동원된 사실도 드러났다. 이는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권력의 심장부에서 짐작조차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국익을 해치고 나라를 망치는 권력의 폭주를 그냥 눈감고 있어야 하나. ‘1984’의 감시 지옥을 만들자는 말이 아니다. 온갖 곳에 CCTV를 달자니, 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될 일이다. ‘청와대 CCTV’ 아이디어가 불통 정권에 대한 풍자이자 냉소적 야유임을 권력자들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국정은 이해 불가의 영역을 치닫는데 대통령과 참모들은 정보의 차단막을 치고 구중궁궐에 틀어박혀 있다. 수술실 카메라가 꼭 필요하다면, 청와대에도 CCTV를 달아야 할 이유가 그보다 몇십 배, 몇백 배 더 설득력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