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도시의 행복한 미용사
어제는 시골도시의 작은 미용실로 머리를 깍으러 갔다. 사십대 중반쯤의 여성 혼자서 가게를 꾸려가는 것 같았다. 그녀가 가위를 들고 내 머리를 자르면서 말했다.
“의대가 증원되는 바람에 이 동해시에서 서울의대에 네명이나 합격했대요. 지난해에는 합격을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한장이었는데 이번 해에는 네 개나 붙었어요. 집에서 법정 드라마를 봤는데 법정에서 활약하는 변호사가 참 멋있어 보이더라구요. 우리 딸은 고등학교 2학년인데 성적이 변호사나 의사는 꿈도 못 꿔요.”
내 딸 또래인 미용사는 변호사나 의사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문득 이십년 전쯤 함부르크에서 택시를 타고 갈 때 기사가 하던 말이 떠올랐다. 그곳의 택시 기사 중에는 의사나 변호사 출신이 많다고 했었다. 우리나라도 어느덧 그런 시대의 물결이 도래했다. 나는 의사들의 파산절차를 진행해 주기도 했다. 병원의 화려한 인테리어와 속사정이 달랐다. 서초동에서 변호사인 친구가 십여년 전에 이런 말을 했었다.
“우리 직업도 종말이 오는 것 같아. 내가 있는 빌딩을 보면 일 년에 사건을 한두개 하고 있는 변호사들이 많아. 그 분들은 집에 있기 뭐해서 사무실로 나오는 거야.”
변호사도 되는 사람만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아이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의대나 로스쿨에 넣으려고 하는 것이다. 미용사가 말을 계속했다.
“저는 태백에서 자라나고 여기 동해에 와서 십칠년동안 이 작은 미용실을 하고 있죠. 저는 그냥 여기가 좋아요. 가끔 서울의 고급미용실에서 일한다고 자랑하는 미용사들을 보지만 부럽지 않아요. 나 혼자 몇 명의 단골을 예약제로 받아 머리를 하는 이 자리가 훨씬 편하고 행복해요.
제 남편이 소방관인데 저보다 더 행복한 것 같아요. 강원도는 산불 외에는 별로 화재가 없어요. 산불이 나도 헬기로 불을 끄지 소방차가 산으로 올라가지 않으니까 남편은 이 만한 직장이 없다고 만족하는 것 같아요. 소방관은 대기하는게 업무예요. 그 시간에 책도 읽고 공부도 하고 참 좋아 보인다니까요.
높은 계급이 아니면 근무지 이동도 거의 없어요. 참 좋아보이는 직업이 하나 더 있네요. 이 바닷가의 해양 경찰관은 소방관보다 월급을 조금 더 받는다고 하더라구요. 지금 대학입시 준비를 하는 우리 딸도 나같이 기술을 배우고 지방공무원을 하는 남편을 만나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평범한 말이지만 달관한 듯한 의미가 들어있는 것 같았다.
자신의 능력과 그 한계를 알고 그 범위 안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지혜다. 욕심이나 야망이 없다고 해서 소시민으로만 사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인간에게는 보이지 않는 숙명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한 젊은 소방관한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노량진 학원가에서 공무원시험 준비를 했었어요. 내가 바라고 원하던 길과 운명의 길이 다른 것 같았어요. 여러차례 공무원 시험을 봤다가 다 떨어졌는데 소방관 시험이 정원미달이라 합격했어요. 소방관을 해보니까 보람도 있고 좋아요. 이제 제 천직이었던 것 같아요.”
누룽지 만드는 기계를 만들어 대박을 터뜨린 중소기업이 방송에 소개되는 걸 봤었다. 그 기업의 여성 사장이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제 학력은 형편없어요. 일찍부터 공순이가 되어 안 다녀본 공장이 없어요. 어깨 넘어 기계들을 보면서 누룽지를 만드는 기계를 만들 수 없을까 생각했죠. 누룽지에 꽂혔어요.”
살아보니까 인간의 운명이란 알 수 없는 신비한 요소가 있다. 내가 더 신기한 건 수십만의 신도들이 따르는 대형교회의 목사들이었다. 변호사로 교회 사건을 다루다 보면 그들의 이면에 숨겨진 학력이나 경력이 변변치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도 우뚝 서서 수 많은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십만명이 넘는 신도들의 우상이 된 목사가 설교 중에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머리가 나쁘다고 왜 고민을 합니까? 내가 아니고 나를 만드신 하나님이 고민해야죠. 나는 학교도 좋은 데를 나오지 못하고 입시에서도 계속 떨어졌어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지게를 지고 다녔죠. 저는 이 사회의 줄세 우기에 설 수가 없었어요. 선다고 해도 꼴찌 쪽이었죠.
저는 성경을 봤습니다. 성경 속 진리를 알게 되면서 열등감을 극복하고 자존감을 가지게 됐죠. 나의 정체성이 변하고 인생의 패러다임이 바뀌게 됐죠.”
나이 먹은 요즈음에 와서야 잠에서 깨어난 듯 어떤 깨달음이 다가오는 것 같다. 나는 평생 꿈을 꾸어온 것 같다. 명문학교에 가고 좋은 직업을 얻는 꿈을 꾸었다.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얻고 돈을 많이 버는 꿈도 꾸었다. 사회적 지위를 얻어 많은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고 싶은 꿈도 꾸었다.
더러 옆에서 누군가 나의 영혼을 쿡쿡 쑤시면서 잠을 깨우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게 싫었다. 단꿈을 방해하지 말라고 하면서 거부하고 있었다. 다 늙은 이제야 잠에서 부시시 깨어난 것 같다. 꿈속에서 간구하던 것들이 풍화되어 희미한 흔적으로만 존재한다. 삶은 꿈이고 죽음이 깨어남이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지금도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출처] 시골도시의 행복한 미용사|작성자 소소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