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선 여성부장관에 대해 전격해부에 보겠습니다.
1966년생 조윤선 장관은 세화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외교학과로 진학했습니다. 대학교 1학년때 서울대 도서관에서 당시 법대 3학년 박성엽( 現 김앤장 변호사) 씨를 만났고 수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했고, 딸 둘을 낳았다고 합니다.
제 1막. 김앤장 최초의 여자변호사
원래 외교관이 꿈이었던 조윤선 장관은 어느 날 부터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박 변호사와 결혼 후 사법고시를 준비하여 합격하게 됩니다. ( 당시 남편인 박 변호사는 재학 중 일찌감치 사시를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수석 졸업하여 김앤장에서 근무 중이었다네요.) 사법연수원 또한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하고, 대한민국 최고의 로펌 (변호사 여럿이 모여서 일하는 법률회사) 김앤장에 최초의 여자변호사로 입사하게됩니다. 다시 말해, 조변호사 입사 이전에는 법률사무소 김앤장에는 여자 변호사가 없었다는 말이죠.
여기서 법률사무소 김앤장에 대해 약간의 부연 설명을 하자면, 김앤장은 대한민국 최고의 로펌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일일 평균 근무시간이 20시간 내외입니다. 대신 월급이 많습니다: 변호사들 초봉이 1억이고, 연봉이 일년에 몇 십프로씩 뛰는건 기본입니다. 그래서 지금 공정거래법 분야에서 대한민국 최고로 평가받고 있는 박성엽(윤선찡 남편) 변호사의 연봉은 20억이 넘는다고 합니다.(조윤선 장관 부부의 재산 50억은 변호사로서 일을 잘하고, 또한 일을 하루종일 하기 때문에 연봉이 많고, 또한 그것만 모았기때문에 가능한 재산입니다. 전혀 문제가될 일이 아니랄까요?)
다음은 씨티은행 부행장 당시의 인터뷰 입니다: (...) 조 부행장의 오늘의 성공은 거저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 김&장에 입사해서 조 부행장이 굳게 다짐한 것은 일은 튀게 하되 동료나 선후배에게는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전 사법연수원 출신의 첫 여성이었어요.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남성 선후배 동료 사이에서 어떻게 적응하며 생존하느냐가 관건이었죠. 전 결심했어요. 제게 일을 맡기면 완벽하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일을 튀게 하자고요. 또 동료들로 하여금 제가 여성이라는 사실도 잊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야근이나 험한 일을 자발적으로 나서서 하고 무거운 파일을 나를 때도 동료들이 도와주겠다고 하면 거절했어요. 여성이라는 이유로 보호받기 시작하면 오히려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믿었거든요. 하지만 힘들 때 조언을 구할 여자선배가 없는 것은 아쉬웠어요. 또 동성동료가 없어 직장생활을 재미있게 하지 못한 안타까움도 있지요.” (...)
어찌보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여기서 정정당당히 경쟁하여 자신의 현재 위치를 일군 조변호사의 철학과 여성관이 돋보입니다. 조변호사는 여기서 10년동안 일해서 훌륭한 변호사로 성장하였고, 김앤장이 5~6년차 정도의 변호사들을 제도적으로 보내주는 해외 유학 프로그램을 통해 콜럼비아 대학으로가게됩니다. 언제 또 보스턴에 살아보나란 생각에 매일 오페라를 관람했다고 하네요. 여기서 쌓은 경험이 밑거름이 되어 나중에 오페라 관련 서적 2권의 저자도 됩니다. 하여튼, 그 후, 조변호사는 글로벌 금융그룹 씨티은행 한국지사의 부행장 겸 법무본부장으로 스카우트되며 몇년후 정계에 전격 발탁됩니다.
2막. 법&경제&문화&외교&언론의 고수. 팔방미인 정치인
2002년 조윤선 변호사는 이회창 대선 캠프의 대변인으로 정계에 데뷔하며 몇년 후 한나라당 대변인으로 발탁됩니다. 최근 박근혜 캠프의 대변인으로서 활동한 경력까지 합쳐 한나라당/새누리당 최장 기간 활동한 대변인이라는 타이틀을 얻습니다 ^^ 그리고는 제 18대 국회의원 선거에 비례대표로 당선이 됩니다. 실력과 미모를 겸비한 정치인으로서, 많은 관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네요.
예쁘고 옷도 잘 입어서 정계 베스트 드레서 상도 받았다고 인터뷰에서 말했었는데, 그건 프로필에 안나왔네요 ㅋㅋㅋㅋ
국회의원으로서 상반기는 정무위, 하반기는 문방위에서 활동하셨는데, 정무위에서는 금융계 경험이있는 변호사로서 자기 전공을 (법/경제) 살려 엄청난 활약을 했고, 문방위에서도 대한민국 문화계의 든든한 후원자로 일하며, 관련 책도 두권이나 쓰고, G20 정상회의 때 오페라 선율을 국악으로 재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셨습니다. 그 외 외교학과 출신 변호사 답게, 타국 의원들과의 외교에서도 큰 활약을 하셨다고 하네요. 한국 전쟁기념재단 설립에도 참여하셨다고 합니다.
한가지 재미난 사실은, 2012년까지도 조윤선 변호사는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으로서 친박,친이 중 뚜렷한 노선을 택하지 않았다네요.
쓸데없는 정쟁에 휘말리지않고 묵묵히 입법가로서의 일을 한것이라 생각됩니다. 아래는 조윤선 장관 홈피에서 참고차 보았던 의정보고서 일부를 가져온 것입니다. 스크린 압박 주의!!!
3막.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 조윤선
주관적인 견해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 조윤선이 아닐까 합니다. '정치인'이 아닌 '사람'이라는것에 주목하시죠....... 박근혜 대통령과는 단순한 상하관계가 아닌, 서로 마음을 나눴다는 그런 순수하고 인간적인 관계라는 말입니다. 사실 2012년 초까지 조윤선 장관은 친박계도 아니었고, 친이계도 아니었습니다. 굳이 위치를 정하자면 열심히 일하는 국회의원이자, 당을 위해 헌신하는 당원이었죠. 그런 조윤선 의원은 18대에 이어, 2012년 19대 국회의원 선거에도 도전을 하는데, 이번엔 비례대표가 아니라, 종로에서 민주당 정세균 후보에 맞서고자 출사표를 던집니다. 아직 당차원에서 공천 여부가 확정이 되지 않았지만, 조윤선 의원은 열심히 선거운동을 벌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조윤선 의원에게 한나라당은 종로구 공천을 주지 않고, 공천 탈락에 따른 상실감이 너무나도 컸던 조의원은 영원히 정계를 떠날 생각으로 정치인이 아닌 자연인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한나라당이 제안한 종로구 외의 다른 지역에 대한 전략공천을 사양하면서, 조윤선 의원은 한달여 동안 열심히 뛰었던 종로구의 발전을 진심으로 기원하는 담화문을 발표하고는 정계를 떠나게됩니다. 수많은 국민들과 언론사들은 그녀의 아름다운 뒷모습에 무한한 찬사를 보냈다. 이렇게 조윤선 의원의 정치인생은 끝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떠나보내기에는 조윤선 의원이 너무도 아까운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 사람이 있으니..
바로 박근혜 의원입니다.
4·11총선에서 선대위 대변인을 맡았던 조윤선 의원은 차분하고 논리적인 화술로 대변인역할을 무리없이 수행한 점을 인정받아 당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주목받습니다. 2012년 7월,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후보는 칩거하던 조윤선 전 의원에게 대선캠프의 대변인이 되어달라고 도움을 요청하게되고. 박 후보의 간곡한 부탁에서 진심을 느낀 조윤선 전 의원은 다시 정계로 돌아옵니다.
5개월 여의 대선 기간동안, 조윤선 대변인은 유세 현장을 일일이 동행하면서 적절한 조언을 통해 박근혜 후보에게 눈도장을 받았으며, 당선후 박근혜 대통령당선인은 조윤선 대변인을 인수위원회 대변인으로 임명하여 향후 5년간의 국정 운영의 기초를 마련하는 20여일 간의 인수위 기간동안 조윤선 대변인과 많은 것을 논의하였고, 의지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윤선 인수위 대변인은 여성가족부 장관에 임명받게 됩니다 ^^
2012.12.30
2010.12.20
2012.03.21
2012.08.07
2012.12.07
2012.12.09
2012.12.30
2012.11.29
개인적으로는 단발머리보다 미디움 기장의 현재 머리가 더 잘 어울리는 듯 하네요. 이상 조윤선 장관 포스팅이였습니다. 재미있게 보셨다면 덧글 꼭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