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아름다운 사찰] 우이령길 걷다 만나는 숨은 암자, 오봉산 석굴암
기자명 유승혜
중부일보 기사 입력일 : 2021.05.24.
걸어야 좋은 석굴암 가는 길
부처를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열반한 성인’이라 일컫는다.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은 부처는 출가 후 맨발로 걸으며 수행했고 불법을 전했다. <염처경>에서 부처는 비구들에게 ‘걸을 때 걷는 것을 알고 서 있을 때 서 있는 것을 알라’고 했다. 걷는 것은 매우 단순한 신체 동작이지만 고도의 정신 활동이다. 불교에서 걷기는 좌선과 함께 대표적인 수행법이며 행선, 행도, 포행, 경행 등 다양한 단어로 칭한다.
‘걷기명상’은 불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지친 일상의 휴식법이자 다친 마음의 치유법으로 통한다. 굳이 명상까진 아니더라도 적당한 걷기 운동, 즉 산책은 일상에 활력을 주고 마음을 차분하게 안정시킨다. 그런데 걷기의 질은 장소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걸어서 나쁜 길을 꼽기는 어렵지만 걸어서 좋은 길은 분명히 있다. 걷기에 온전하게 집중할 수 있고 내 자신을 오롯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길이 좋은 길이다. 사실 아름답고 걷기 좋은 길은 손에 꼽을 수 없이 많다. 그 많은 길을 몇 가지의 카테고리로 분류한다면 그 중 하나는 반드시 ‘산사(山寺) 가는 길’이어야 할 것이다.
국내의 대부분 천년고찰이 산에 있다. 절로 향하는 길은 수세기에 거쳐 범부들이 걸어온 옛길이자 수도자들이 오간 구도의 길이며 피안(彼岸)의 세계로 드는 길이다.
오봉산 석굴암으로 걷는 길도 참 좋다. 신도라면 길 입구에서 신도증을 제시하고 사찰까지 자동차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길은 걸어야 제 맛이다.
40년간 폐쇄됐던 우이령의 숨은 암자
소의 귀처럼 길게 늘어진 모습이라고 해서 이름 붙여진 우이령(牛耳嶺)은 서울시 강북구 우이동과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 사이에 위치한 고개다. 북한산국립공원은 우이령을 중심으로 남쪽의 북한산 지역과 북쪽의 도봉산 지역으로 구분된다. 오봉산은 도봉산의 능선에 자리한, 다섯 개 봉우리로 솟은 산이다. 다섯 봉우리 아래 관음봉으로 불리는 산봉이 하나 더 있는데 석굴암은 이 관음봉 아래 위치한다. 석굴암으로 가기 위해선 우이령길을 지나야 한다. 교현 방면에서 진입하면 3km, 우이 방면에서 진입하면 5km 거리다. 길을 걷다가 석굴암삼거리가 나오면 오봉 방향으로 1km 정도 오른다. 교현 쪽으로 진입해 절에 들렀다가 우이 쪽으로 나가는 코스를 추천한다. 우이령길의 총 거리는 6.8km인데 절을 올라갔다 내려오면 총 8km가 넘는 길을 걷는 셈이다.
우이령길은 북한산국립공원에서 유일한 사전예약구간이다. 하루 탐방객 수를 1천명으로 제한하기 때문에 국립공원 홈페이지에서 예약 후 입장할 수 있다. 덕분에 언제가도 한가한 길이라 새소리, 물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린다. 반세기 전만해도 양주와 서울을 오가는 상인들이 보따리를 지고, 소달구지를 끌고 이 길을 오갔다. 한국전쟁 때는 미군 공병대가 작전도로로 쓰면서 차량통행이 가능할 정도로 길이 넓어졌다. 우이령길이 신작로처럼 넓고 평평한 까닭이 그 때문이다. 그러다 1968년 1·21 사태 때 무장공비가 이 길을 지나면서 민간인 출입이 전면 금지됐다. 북한산 하면 중장년층이 자주 떠올리는 ‘김신조 루트’다. 길이 다시 개방된 때는 지난 2009년이다. 40년 간 우이령길의 생태는 보존되었지만 동시에 오봉산 석굴암은 소수의 신도만이 아는 숨은 암자나 다름없었다.
인생 고락과도 같은 길, 끝내는 불이문 풍광에 감탄
우이령길은 북한산둘레길21구간으로 등산하는 길이 아니라 산책하는 길이다. 약간의 오르막도 있지만 숨이 찬 구간은 없다. 다리가 가벼워 걷는 내내 산뜻하다. 오봉전망대에 다다르면 공깃돌을 올려놓은 듯 특이한 오봉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눈이 즐겁다. 그러나 석굴암삼거리에서 석굴암으로 오르는 구간은 경사가 가파르다. 게다가 길 양쪽으로 군 시설이 자리하고 있어 몸과 마음이 살짝 경직되기도 한다. 산사로 향하는 길은 마치 인생의 고락(苦樂)과 같다. 석굴암 불이문은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걸음걸이가 더뎌질 즈음 등장한다. 그리고 이제까지 올라온 수고로움에 대한 보상을 준다. 일주문의 역할을 하는 석굴암 불이문은 관음봉과 오봉의 일부를 가장 근사하게 담아내는 액자이자 그 자체로 그림이 되는 풍경이다. 우이령 최고의 비경은 석굴암 불이문과 관음봉이 아닐까. 비탈을 올라 코너를 돌면 드라마틱하게 펼쳐지는 장관 앞에서 얼핏 불이(不二)의 세계를 엿본다. 길은 내내 한 길이었을 뿐인데 미혹한 중생은 불이문을 기준으로 수고로움과 즐거움을 나누고 있으니 절이 코앞이어도 갈 길은 멀기만 하다.
대적광전의 스마트폰 든 유쾌한 신중님
불이문을 통과해 가파른 길을 조금만 더 오르면 석굴암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름에서 연상되는 석굴이 얼른 보이지는 않고 석축을 쌓은 대지 위에 크고 작은 전각들이 보인다. 한국전쟁 때 모두 파괴되었던 도량은 1954년 절을 찾은 초안 스님에 의해 조금씩 복원되다가 1995년 도일 스님의 부임 후 그 규모를 확장해 현재에 이르렀다. 창건연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는데 신라 의상대사가 터를 잡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도량 초입에는 국내 사찰에서는 보기 드문 윤장대가 소나무들의 호위를 받으며 자리한다.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기 전, 마치 워밍업을 하듯 윤장대의 축을 힘으로 밀어 돌린다. 팔각형의 기둥 안에는 경전이 들어있어 한번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과 같고 업을 소멸시킨다는 의미가 있다. 윤장대 위로 보이는 전각들 중 시선이 먼저 가는 곳은 아무래도 건물 크기가 가장 큰 대적광전이다. 2017년 완공한 신축 법당인데 다른 절에선 볼 수 없는, 눈길을 끄는 요소들이 있다.
대적광전 내부로 들어서면 정면의 투명한 창밖으로 양각의 석불이 보인다. 비로자나불이다. 와이드창을 통해 마주하는 비로자나불이 법당의 분위기를 압도한다. 기세에 눌리는 느낌이 아니라 한순간에 석불에 몰입되는 느낌이다. 불상을 안이 아니라 밖에 조성했을 뿐인데 느낌의 차이가 크다. 조금 떨어져서 전체를 보면 불단 바로 위에 비로자나불이 앉아 있는 구도를 확인할 수 있다. 대적광전을 둘러싼 비로자나불 설법부조는 아직 불사가 진행 중이다. 완성된 비로자나불 양 옆으로 8명의 보살들이 더 조성될 예정인데 완성 후 모습이 어떨지 궁금하다.
불상을 바라보는 위치에서 불단 왼편에는 신중단 목각탱화가 조성되어 있다. 신중(神衆)은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선신인데 선신들의 모습을 자세히 보면 미소가 지어진다. 모두가 호쾌하게 웃고 있는 얼굴인데 그 중에는 오봉산을 상징하는 다섯 봉우리를 손으로 떠받친 신중님도 있고 무려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신중님도 있다. 오늘날의 흐름과 발맞춰 신중을 묘사한 센스가 돋보인다. 비록 오래된 역사문화재는 아니지만 사람들의 관심과 호감을 이끌어내는 법당 설계와 목각탱화를 보며 현대 사찰의 역할을 생각해보게 된다.
아는 사람만 간다는 오봉산 석굴암의 히든 스폿
대적광전을 등지고 서서 건물이 없는 오른편 산길을 2~3분만 오르면 삼각형 바위에 새긴 마애약사여래불이 있다. 개구리 모양의 자연석 옆에 최근에 조성한 불상이다. 마애약사여래불에 인사를 드리고 개구리 바위에 몸을 기대면 몸과 마음이 치유된다는 속설이 있다. 약사여래마애불 앞으로 넓게 데크 마루가 설치되어 있어 잠시 쉬어가기 좋은 오봉산 석굴암의 ‘히든 스폿’이다. 다시 대적광전으로 돌아와 법당 왼편으로 자리한 범종각을 지나면 석굴암이라는 이름의 기원이 된 석굴법당, 나한전이 있다. 외부 전면부는 깔끔하게 현대식으로 마감되었지만 내부로 들어서면 커다란 바위를 천장으로 삼은 자연동굴임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려말 나옹화상이 이 굴에서 정진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굴법당에 어울리는 모양새로, 돌로 빚은 나한상의 표정은 하나같이 무척 편안하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나한상의 미소가 석굴의 한기를 온기로 바꾸는 듯하다. 불자들에게는 기도 가피가 영험하기로 이름난 절이라는데, 그 원력이 이곳 나한전에서 발하지 않나 싶다.
나한전 옆에 단청이 빛바랜 법당은 대웅전이다. 한국전쟁 이후 복원불사한, 사찰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그 규모가 대적광전보다 작아서 먼저 눈에 띄진 않아도 도량의 전체 균형을 잡아주는 듯한 무게가 느껴진다. 도량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전각은 삼성각으로 금빛의 석조지장보살좌상이 모셔져 있다. 삼성각에 지장보살을 모시는 경우는 일반적이지 않은데 그 사정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굽어 살펴 주십사 꾸벅 인사를 드리고 지장보살님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시선을 두면 눈앞에 북한산 상장봉이 펼쳐진다. 상장봉의 상장은 고려시대 최고지휘관인 상장군을 의미한다. 문득 절을 오를 때 마주쳤던 군부대와 곳곳의 군사시설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면 오봉산 석굴암은 장군 봉우리가 보호하고 진짜 군인들이 입구를 지키는 사찰이어서 든든하고 안전하다. 비록 전쟁의 아팠던 과거가 있지만 앞으로는 내내 평안해서 수백 년 후, 토함산 석굴암과 같은 명성을 떨칠 지도 모른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오봉산 석굴암 위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