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은 내 발에 등입니다!
참고말씀: 창12:1,4; 출10:21-23; 삼상1:3,9; 2:17,22; 4:18; 시143:8; 행7:3; 엡4:18,19; 5:8-11; 히11:8
읽을말씀: 시119:105; 삼상3:1
주제말씀: 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첫째, 말씀이 없는 삶은 ‘빛이 없는 삶’과 같습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삼상3:1)
말씀이 없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즉 말씀과 담을 쌓고 지내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사무엘의 유년 시절을 통해 간단하게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을 당시를 한 마디로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잘 보이지 않는 세대입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삼상3:1)
이는 무엇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까? 당시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무관심(無關心)했는지 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당시에 성소가 없었습니까? 아니면 제사장이 없었습니까? 모세가 지은 성막이 실로에 버젓이 있었고, 그곳에는 엘리가 사사 겸 제사장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로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삼상1:3 상) /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삼상1:9) /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삼상4:18 하)
그런데도 왜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했습니까? 왜 하나님의 말씀 듣기가 매우 드물었던 것입니까?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무관심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예 관심조차도 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누가 단적인 예입니까? 엘리의 두 아들들입니다. 그들은 아버지와 함께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있었으면서도,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에 있었더라.”(삼상1:3 하) 하나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은 채 자기 멋대로 행동했으며,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삼상2:12) /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의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였음을 듣고.”(삼상2:22) 심지어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자체를 멸시했던 것입니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삼상2:17)
이처럼 말씀이 매우 드물고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는 세대를 흔히 무엇이라고 일컫습니까? 암흑기입니다. 어째서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곧 등불이자 빛인데,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말씀이 매우 드물고 잘 보이지 않으니, 세상은 어둡고 깜깜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혹 지금 우리도 어둡고 깜깜한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까? 혹 인생의 암흑 같은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혹 우리가 ‘말씀 없는 삶’을 살았기에 그런 것은 아닌지 점검하고 되돌아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말씀 앞으로’ 돌아가기를 원하고,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는 일’에 열심을 내기를 바랍니다.
둘째, 말씀 있는 삶은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삶’과 같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반면, 말씀이 있는 삶은 어떻습니까? 어둡고 캄캄한 삶이 아니라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삶과 같습니다. 어째서입니까? 아무리 캄캄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비춰주시기 때문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무슨 말입니까? 말씀을 멀리하면 어두움 속을 계속해서 헤매게 되지만, 말씀을 가까이하면 더 이상 헤매지 않고 똑바로 찾아갈 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즉 말씀을 멀리하면 영적으로 무감각하게 되어서 계속 어둠 속에서 살아가게 되지만,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엡4:18,19) /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엡5:11)
말씀을 가까이하면 무감각한 데서 벗어나서 빛의 자녀들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5:8,9)
비유컨대 하나님께서 흑암 재앙으로 애굽 사람들을 치실 때 애굽 사람들이 사는 곳은 온통 암흑천지였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사는 곳은 빛이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내밀어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매 캄캄한 흑암이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그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출10:21-23)
참고로,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엇에 비유하고 있습니까? 등불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우리의 발을 비춰주고,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시119:105 상) 우리의 길을 밝혀주기 때문입니다.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하)
재미있는 점은 이 등불이 우리의 삶 전체를 ‘한꺼번에’ 비추기보다는, 오히려 지금 우리의 발걸음을 비추고 현재의 길만을 ‘부분적으로’ 비춘다는 점입니다. 마치 한밤중에 손전등을 비추면 불과 몇 미터를 비추고, 자동차를 운전할 때 라이트를 켜면 전방 수십 미터만 비추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도 우리를 비추되 우리의 삶 전체를 한꺼번에 다 비춰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날그날 필요한 만큼만 비춰주신다는 점입니다. 말씀을 따라갔던 아브라함의 삶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는 분명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말씀을 따라간 삶입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창12:4 상) 하지만 그는 분명 무엇을 알지 못했습니까? 자신의 갈 바입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11:8) 어째서입니까? 하나님은 그에게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하셨지, 처음부터 특정한 지명을 말해주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창12:1) /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행7:3)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한꺼번에 우리의 삶 전체를 비추지 않고, 오히려 매일의 필요한 만큼만 비추신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기도는 항상 어떠해야 합니까? 우리가 매일 다닐 길을 알게 해달라고 입니다.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시14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