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현대미술은 뒤샹의 변기작품 '샘'
하얀색 남성용 소변기에 작가의 사인이 들어갔을 뿐인
미술작품 마르셀 뒤샹의 '샘'이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미술 작품으로 선정됐다.
영국에서 지난달 29일 열린 올해의 터너상 시상식에 참여한 미술계 인사 500명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미술 작품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뒤샹의 샘이 1위를 차지했다고
BBC 인터넷판은 1일 전했다.
뒤샹의 이 변기 작품은 1917년 발표 당시 예술가의 독창성이 발휘되지 않은
변기에 불과할 뿐이라는 이유로
전시회 장소에서 쫓겨날 정도로 기성 미술계를 충격에 빠뜨린 작품이다.
이어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1907년)이 2위,
앤디 워홀의 마릴린 몬로 사진(1962년)이 3위,
피카소의 '게르니카'(1937년)가 4위,
마티스의 '붉은 화실'(1911년)이 5위를 차지했다.
미술 전문가인 사이먼 윌슨은 "뒤샹의 작품이 피카소와 마티스의 작품을 앞섰다는 것은 약간 충격"이라며
"작품을 만드는 창조적 과정이 중요하며, 작품 자체는 어떤 형태를 띨 수도 있고,
어떤 재료로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아이디어와 오늘날 미술의 역동적인 성격을 반영하는 결과"라고
말했다.
뒤샹은 자신의 침대를 미술관에 옮겨놓은 영국의 트레이시 에민을 비롯해 많은 현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연합뉴스]

▶ 마르셀 뒤샹의 변기작품 '샘'

▶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기존에 많이 다루어졌던 여신의 이미지로서의 여성이 아닌 사회에서 소외받던 창녀들이 주인공이 되어 문명화된 사회를 향해 울부짖는 분노와 슬픔을 표현하였다. 자연이 가지고 있는 3차원의 세계 즉 평면적 관점이 아닌 '원뿔, 원기둥, 구'로 상징되는 입체적 관점으로 처리하여 세잔의 회화적 비전을 현실화했으며 복잡한 다원적 공간을 아주 단순하고 축소된 기하학적인 그림으로 만들어 내어 당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 작품은 몇 달간 수백 장의 데생과 습작 끝에 그의 나이26세 늦여름에 발표한 작품이다.

▶ 앤디워홀의 '마릴린몬로'
마리릴린 먼로는 당시 코카콜라와 다름없는 대중적인 이미지인 동시에 인기 있는 하나의 소비품일 뿐 이었다.
워홀이 보여준 그녀의 이미지는 헐리우드의 배우나 대중 스타가 생산되고 유통되는 과정을 상징 하는 듯 하다.
먼로의 얼굴은 단순화 시키고, 입술, 머리 결, 눈을 강조하거나, 사용된 색채들을 조작하고 과장되게 표현함으로서 스타가 제조되는 과정을 가시화 한다고 할 수 있다.
먼로의 얼굴은 헐리우드 여배우의 화려하고 성적인 매력을 강조한 상투적 도상이며, 스타성이라는 소비적 이미지의 제조방식과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매이매일 매체를 통해 지루하리만큼 자주 생산되는 먼로의 이미지와 그녀에 대한 기사들로 컨베어벨트 위에서 조립되는 제품만큼이나 동일하고 기계적이다.
또, 반복적으로 여러 번 등장하는 이미지는 마치 신문이나 잡지 등에 찍힌 그녀의 얼굴 같다.
개인의 개성이 한 사회 안에서 상품이자 편의를 위한 소모품으로 전환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 피카소의 '게르니카'
에스파냐내란을 주제로 전쟁의 비극성을 표현한 피카소의 대표작.(782×351cm)
에스파냐의 소피아왕비 미술센터 소장. 게르니카는 에스파냐 바스크지방의 작은 도시로, 1937년 에스파냐내란 중 프랑코를 지원하는 독일의 무차별 폭격에 의하여 폐허가 되었습니다.
마침 그 해에 열리기로 예정된 파리만국박람회의 에스파냐관 벽화제작을 의뢰받고 있던 피카소는 이 조국의 비보에 접하자, 한 달 반 만에 대벽화를 완성, 게르니카라고 이름붙였습니다.
이 작품은 파리만국박람회를 비롯하여 구미 여러 나라에서 순회전을 가졌으나 에스파냐가 프랑코 체제가 되자, 공화파 지지자였던 피카소는 그림반입을 거부하고, 1939년 에스파냐의 민주주의와 자유의 회복 후 반드시 프라도에 전시할 것 등의 조건으로 이 작품을 뉴욕 근대미술관에 무기한 대여형식으로 빌려주었습니다.
프랑코의 독재가 계속되는 한 조국과 화해할 수 없다고 한 피카소의 신념으로 인해 1981년에야 에스파냐에 반환되어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에 소장되었다가, 일부 정치인과 예술가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보관상의 문제로 1992년 소피아왕비 미술센터로 옮겨졌습니다.
비극성과 상징성에 찬 복잡한 구성 가운데 전쟁의 무서움, 민중의 분노와 슬픔을 격정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상처입은 말, 버티고 선 소는 피카소가 즐겨 다루는 투우의 테마를 연상케 하며, 흰색·검정색·황토색으로 압축한 단색화에 가까운 배색이 처절한 비극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극적인 구도와 흑백의 교묘하고 치밀한 대비효과에 의해 죽음의 테마를 응결시켜 20세기의 기념비적 회화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 마티스의 '붉은 화실'
마티스의 화실 풍경이다. 온통 빨간색인 것은 순전히 회화적인 효과를 위한 것이다. 앞서 본 <붉은 조화>가 생각날 것이다. 거기서와 마찬가지로 이 그림에서도 어디까지가 벽인지 바닥인지 얼핏봐서는 잘 알 수가 없다. 물론 방의 3차원적 구조와 식탁의 존재를 암시하는 어렴풋한 선이 있어서 방의 구조를 알아보는 것이 어렵진 않다. 벽에는 온통 마티스의 그림이 있다. 조각도 더러 보인다. 마티스는 자신의 그림에 나오는 것과 비슷한 인물들을 조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아래의 조각을 보라. 마티스의 화실 오른쪽 구석에 있는 청동 조각처럼 보이지 않는가? 식탁위엔 도자화도 보인다. 이런 모든 대상들이 마치 하나의 붉은 색 평면 위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티스는 이런 순수한 공간의 유희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