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 - [홍사익](洪思翊,1889~1946)일본군 중장,일본 육군사관학교,일본육군대학 출신,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필리핀 연합국 전범재판에서 전범으로 처형당함.
남양홍씨 토홍계 26대 손
2대 - [홍국선] ?~1984와세다대학,광복 후 한국은행 근무,경기도 안성
[홍현선] ?~재미교포(로스앤젤러스)
홍사익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나 을사조약 체결 후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했다. 이 학교에 재학 중 능력을 인정 받아 1909년 이응준, 김석원과 함께 국비 유학생으로 뽑혔다. 영친왕이 일본 중앙유년학교로 유학을 떠나게 되면서 유학 동반자로 선발된 것이다.
그는 중앙유년학교를 거쳐 일본육군사관학교를 1914년 5월 28일 졸업(제26기)하고 임관했다. 함께 졸업한 한국인은 13명이었고, 이 가운데는 독립운동가 지청천과, 이응준, 신태영, 조철호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1941년 소장이 되었고 1944년에는 중장으로 진급했다.
엘리트 군간부를 양성하는 일본육군대학에서도 수학했는데, 일제 강점기 동안 육군대학에 입학한 조선인은 영친왕, 이건, 이우와 홍사익 네 명 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왕족이므로 평민 출신은 홍사익 한 명이었다.
태평양 전쟁 중에 중국에서 여단장으로 근무하다가, 1944년 필리핀에 주둔한 일본 남방군 총사령부의 병참총감에 임명되었고, 연합군 포로수용소 소장을 겸직했다. 이 때문에 종전 후에 필리핀에서 열린 전범 재판에 회부되어 포로 학대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은 뒤, 교수형에 처해졌다.
홍사익은 태평양 전쟁 종전 당시 B·C급 전범 가운데 유일하게 일본군 내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었던 한국인이었다.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1차 명단 중 군인 부문에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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