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方[4084]부설거사(浮雪居士)- 팔죽시(八竹詩)
부설거사浮雪居士 이야기
◆ 부설거사浮雪居士
출가사문의 길을 걷다가
세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돌연히 환속을 결심한 이는 바로 부설입니다.
재가 불자로서 도를 닦아 성불한 그는
인도의 유마거사, 중국의 방거사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재가 불자이기도 합니다.
부설거사의 성은 진陳,
이름은 광세光世,
부설浮雪은 법명입니다.
경주 출신으로 신라 28대 선덕여왕 때 태어났으며,
어려서 출가해 경주 불국사에서
원정스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당시 불국사에는 부설과 함께 출가한
영희靈熙와 영조靈照라는 두 도반이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출가수행자의 길을 함께 걷게 된
세 스님의 수행인연은 부설거사가 입적에 들 때까지 이어집니다.
어느 때 부설스님은
영희, 영조스님과 문수도량을 순례하기 위해 만행을 시작했습니다.
오대산으로 향하는 길에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군 만경들이 있는
두릉杜陵에 도착하자 날이 저물고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쉴 곳을 찾던 스님들은 구무원의 집에서 유숙을 하게 됩니다.
독실한 불자인 구씨는
부설스님의 일행이 머무른 동안 밤새는 줄 모르고 법담을 나눕니다.
한편, 구무원에게는 묘화妙花라는 18세의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묘화는 나면서부터 벙어리였습니다.
그녀는 멀리서 세 스님이 자신의 집을 찾아오는 것을 보고
사랑채로 가서 스님들과 아비가 나누는 대화를 엿듣게 됩니다.
묘화는 깨달음에 대해 설명하는
스님의 법문을 듣고 갑자기 말문이 트였습니다.
입을 연 묘화는 부모에게
“부설스님과 저는
전생에도 인연이 있고 현생에도 인연이 있으니
이 인과의 도리를 따르는 것이 바로 불법”이라면서
“삼생연분을 이제야 만났으니 죽기를 맹세하고
부설스님을 남편으로 섬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무남독녀 외동딸이 죽기를 각오하고
부설스님과 부부의 연을 맺겠다고 말하자
구씨는 용기를 내어 부설스님을 찾아갔습니다.
“소승은 일대사인연을 이루기 위해 출가한 수행자입니다.
주인어른과 따님의 심정은 이해할 수 있으나
청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하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러자 묘화는 죽기를 한하면서
부부의 인연을 맺기를 간청하게 됩니다.
이에 부설스님은
“모든 보살의 자비는
중생을 인연 따라 제도하는 것”이라며
묘화와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
영희와 영조 두 도반은
“수행을 게을리 하지 말 것”을
당부하며 오대산으로 떠났습니다.
재가자로서의 부설거사의 삶이 시작됐습니다.
어느덧 등운登雲과 월명月明 두 남매의 아버지가 된
부설의 생활은 수행자 때와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농사를 지을 때도 화두에 열중했으며,
동네 사람들에게 불법을 설하고
참선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부설은 묘화부인과 15년을 살던 어느 날,
두 아이들을 부인에게 맡기고
지금의 전라북도 변산에
토굴을 지어 두문불출 수행에만 전념했습니다.
5년이란 시간 동안 외부와 소식을 끊고
정진한 부설은 마침내 무명無明의 탈을 벗었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부설은
오대산을 내려온 영희, 영조스님과 해후하게 됩니다.
세 사람은 그간 공부를 시험했습니다.
질그릇 병 세 개를 달아놓고 각자 하나씩 쳤습니다.
영희와 영조의 병은 깨어지면서 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러나 부설의 병은 깨졌지만
물은 그대로 공중에 달려 있었습니다.
속세에 머물러 수행한
부설의 깨달음이 출가 수행자를 앞질렀던 것입니다.
부설은 참된 법신에
생사가 없다는 것을 밝히는 설법을 한 뒤 입적했습니다.
부설의 입적 후 부인과 아들 등운, 딸 월명은
각자 일생동안 수도생활에 정진했습니다.
변산반도의 월명암月明庵은
부설의 딸 월명의 이름 따서 지은 암자로
이곳에는 부설거사의 성도담成道談을 소설화한
《부설전》필사본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부설거사의 삶은
오늘날 재가불자들에게도
한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환속했다고 해서
세속의 인연에 묻히지 않고 수
행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묘화부인과
등운, 월명 두 자녀에게도
깨달음의 길을 안내했습니다.
세속의 삶에서 권력과 부귀영화를 쫓는
중생들에게 부설은 다음과 같은 게송을 남겼습니다.
목무소견무분별目無所見無分別
눈으로 보는 바가 없으니 분별할 것이 없고
이청무성절시비耳聽無聲絶是非
귀에 소리 없는 소식 들으니 시비가 끊인다.
분별시비도방하分別是非都放下
사량, 분별, 시비를 모두 놓아버리고
단간심불자귀의但看心佛自歸依
단지 마음의 부처를 보면서 귀의를 하소.
◆ 부설거사 팔죽시浮雪居士八竹詩
차죽피죽화거죽此竹彼竹化去竹
이러면 이런대로 저러면 저런대로 되어 가는대로
풍타지죽랑타죽風打之竹浪打竹
바람불면 부는대로 물결치면 치는대로
죽죽반반생차죽粥粥飯飯生此竹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사는 형편대로
시시비비간피죽是是非非看彼竹
옳으면 옳은대로 그르면 그른대로 보이는 그대로
빈객접대가세죽貧客接待家勢竹
손님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시정매매세월죽市政買賣歲月竹
세상물건 사는대로 파는대로 그때 시세대로
만사불여오심죽萬事不如吾心竹
세상만사 내맘대로 안되면 안되는대로
연연연세과연죽然然然世過然竹
그러면 그런대로 그렇다면 그런대로 세상따라 살자.
부설거사의 팔죽시를 네자로 줄이면?
허허실실(虛虛實實)이다.
허허실실(虛虛實實)이란
"되면 좋고 안되어도 그만인 식으로"의 뜻이다.
어찌 생각하면 허허(虛虛)롭게 생각 될 수가 있다.
허나 절대로 세상을 포기 하고 살라 하는 것이 아니다.
억지로 세상을 살려 하지 말고
진리와 순리에 마추어 살라는 의미이다.
비 온다고 걱정 한 들 비가 그치지는 않는다.
눈 온다 걱정 한 들 눈이 그칠리 없다.
그러면 비 오면 비 오는대로
눈내리면 눈 내리는 대로
순응하고 살라 하는 것이다.
허세 부리고 살지 말라 하는 것이다.
잘 나갈 때 고급 승용차를 탔으나
명퇘하고 수입 없으면
좀 저가 자동차 탔다고 슬퍼 하거나
부끄러워 하지 말라 하는 것이다.
쥐 구멍에 볕 들날 있다고
낙담하며 살지 말라 하는 것이다.
한 숨 쉬지 말고 자동차 안에
연탄불 피우지 말라 하는 것이다.
사람 한 평생 짧디 짧지만
그 안에도 우여곡절(迂餘-曲折 )이 많다.
그때 그때 마다 평상심을 잃지 말라 하는 것이다.
꽃 핀다 즐거워 말고
낙엽진다 서러워 말라 하는 것이다.
분수대로 살다 보면 즐겁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목숨을 스스로 끊을땐
왜 그만한 이유와 아픔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인생은 허허실실(虛虛實實)이다.
남 위해 사는 인생이 아니다.
그러니 남 눈치보며 사는 인생이 아니다.
우주의 삼라만상(森羅-萬象) 모두가
내가 있어 존재 하는 것이다.
당연히 우주의 중심은 나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그게 '나'인것을....
신라 제28대 진덕여왕 때 경주에서 부설(浮雪)은 스님으로 태어나 부설거사(浮雪居士)가 되었다.
부설의 성은 진(陳)씨요, 이름은 광세(光世), 자는 의상(宜祥)이다. 부설이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불국사 원부선사를 찾아 가 수행하던 차에 영조(靈照), 영희(靈熙) 두 스님과 함께 문수도량을 순례하기 위해 오대산으로 들어가던 중 만경 근처 두릉(杜陵) 이라는 곳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날이 저물어 부득이 구무원(仇無寃)이라는 사람 집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다. 그에게는 묘화(妙花)라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날 때부터 말 못하는 벙어리로 태어났다. 그런데 그녀는 전생에 부처님 곁에 있는 연꽃 한 송이를 꺾은 인과응보로 벙어리가 되어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했다.
그러나 20년 동안이나 벙어리로 살아온 묘화가 부설거사를 보자마자 갑자기 말문이 열려 하는 말이 “부설스님과는 삼생(三生)에 걸쳐 인연이 있는 배필” 이라며 혼인하여 줄 것을 간청하였다. 그러나 부설거사는 “나는 수행자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며 거절했다. 하룻밤을 묵고 일행 떠나려 할 때 묘화는 칼을 들고나와 “불도를 닦아 중생을 구제하려 하는 분이 제 한 목숨을 구하지 못한다면 장차 큰 뜻을 편다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하며 죽기로 결심했다. 부설거사는 묘화와의 인연을 거스를 수 없음을 깨닫고, 영조·영희 두 스님에게 생사를 해탈하여 자신도 구제하여 줄 것을 부탁하고, 묘화아가씨와 혼인을 했다. 부설거사가 사는 마을 하늘에는 하얀 눈이 떠돌아 다녔다. 그래서 두릉리를 부설촌(浮雪村)이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부설거사의 법명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했다. 어느덧 세월이 15년이 흘러 어느 날 오대산으로 공부하러 갔던 두 도승이 찾아왔다. “우리는 공부를 마치고 왔으나 거사님을 묘화와 혼인하여 낙오자가 되었으니 안타깝다.”고 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묘화부인이 말하기를 : 그렇다면 내 남편과 스님들과 누가 더 깊은 수행을 하였는지 도력(道力)을 겨루어 보시지요. “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병 세 개에다 물을 가득 채어 벽에 걸어놓고 두 스님들에게 방망이로 병을 쳐보라고 했다. 병이 깨어지면서 병 속에 물이 쏟아져 바닥에 흥건했다. 이어 부설거사가 세 번째 치니 병은 캐어지고 물은 그대로 굳어서 벽에 매달려 있는 게 아닌가! 이를 본 두 스님은 아무 말도 못하고 부끄러워했다. 부설은 조용히 말했다. “허깨비 같은 몸뚱이가 생멸(生滅)을 따라 가는 것은 병이 부서지는 거와 같고 불성(佛性)은 본래 생명이 없어 상주(常住)하는 것은 물이 허공에 매달린 것과 같습니다.”라고 했다. 방안에는 그윽한 향내가 진동하고 하늘에서 우담바라(상상의 꽃) 꽃비가 내렸다.
그때 부설거사는 다음과 같은 팔죽시(八竹詩)를 읊어 두 스님을 깨우쳤다.
차죽피죽화거죽(此竹彼竹化去竹) 풍타지죽창랑죽(風打之竹浪打竹) / 죽죽반반생타죽(粥粥飯飯生打竹) / 시시비비간피죽(是是非非看彼竹) / 객객접대가세죽(客客接待家勢竹) / 시정매매세월죽(市井賣買歲月竹) / 만사불여오심죽(萬事不如吾心竹)/ 연연연세과연죽(然然然歲過然竹) -해석
이러면 이런대로 저러면 저런대로 되어가는대로/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생기는 대로 /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고 저런대로 보고 / 손님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 시정 물건 사고파는 것은 세월대로 / 세상만사 내 마음 대로 되지 않아도 / 그렇고 그렇고 그런 세상 지나가는대로 / 살다보면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은 가난대로 살아 갈 때에 무궁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지 않겠는가 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