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움직였던 한 로맨틱한 사기꾼의 명언이다. 비록 남들은 그를 사기꾼이라 칭할지는 몰라도 나는 그를 현대의 마지막 로맨티시즘을 간직한 사업가로 기억하고 싶다. 사업이라는 것, 그것은 사기의 연속이다. 언론 플레이, 과장 광고, 허위 진술 등 가식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 가식의 허물도 더욱 진실한 원래의 가치에 근접하고자 벗어 던지는 그러한 과정의 발자취라고 볼 수 있다면 난 위대한 사기꾼이 되고 싶다. 다만 그가 입고 있었던 작위적 허물뿐 아니라 사람들은 집단 속에서 살아가며 자신의 허물을 만들어 입고 산다. 그러한 허물은 여러 가지 요인들에 의해 형성이 되며 필요에 따라 벗어 던질 수 있고 바꾸어 입을 수 있다. 특히나 환경이라는 그 외부적인 요인은 무작위적이며 무식한 영향력을 행사 한다. 그러한 여러 외부 요인들 앞에서 변화 무쌍하게 변화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진한 감동의 눈물을 자아내는 한 편의 희극과 같다.
그 한편의 희극에 있어 여러 배경들 속에서 연기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 진다는 것은 정말인지 흥미 진진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특히나 필자와 같은 인생 초보자에게는 형편없는 연기 실력을 조금이나 발전 시킬 수 있는 아주 소중한 기회이다. 나는 많은 나라를 돌아 다니지는 않았지만 외국에서 3년 반 정도 살 기회가 있었다. 그 기간 동안에 나는 참으로 많은 것들을 배웠고 느꼈고 또한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기회가 있었다. 캘리포니아에서의 3년 반은 나를 트윙키(twinky : 겉은 노란색 카스타드로 속에는 하얀 크림이 들은 케익, 황인종이며 백인처럼 사는 이들을 칭하는 비속어.)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렇다면 대륙에서의 3일은 도대체 나에게 어떠한 모습을 강요 할 것인가. 그 새로운 배역에 대한 벅찬 감동은 인천 국제 공항을 들어 서며 시작 되었다.
내가 보았던 그 인천 국제 공항, 그 첫 인상은 웅장하다 못해 장엄하였다. LAX와는 비교도 되지않을 만큼 깨끗하고 커보였다. 여러 수속을 마치고, 특히나 신분상 군인이었던 처지라 그 절차가 다른 이들에 비해 약간 복잡하였다. 허가증이 있어야 했고 그 허가를 받으러 다시 저기 작은 점으로 보이는 창구를 찾아 떠나야 했다. 그렇게 복잡한 수속을 마치고 오른 중국행 비행기는 큰 비행기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그러한 작은 크기 덕분에 관광버스를 타는 기분이 아닌 실제 비행을 하고 있다는 실감을 맛보게 해주었다. 잠깐 인천 앞바다가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구름 속에 휩싸였다. 뭉쳐진 그 기체 속을 가르는 날개를 보며 난 또 다른 황홀경으로 빠져든다. 구름 위에서 본 하늘은 바닥에서 보던 그 답답한 하늘이 아니었다. 이내 손에 잡힐 듯한 지축(?)의 거리에 바로 그 파아란 하늘이 있었다. 비행기를 자주 타볼 기회가 있었지만 이번처럼 업무상의 여행은 난생 처음이었다. 솔직히 출발 전날부터 난 그 여행에 대한 기대보다는 업무상 스트레스로 잠을 설쳤던 기억이 난다. 3박 4일의 중국 출장은 그렇게 시작이 되고 있었다. 기내에서도 난 파워 포인트 자료를 정리하고 준비한 샘플 프로그램과 연습한 코딩을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기술을 팔러 가는 개발자이지만 한가지 문제는 그들의 기술 수준을 하나도 모른다는 것이다. 무슨 건초 더미에서 바늘을 찾으러 가는 심정으로 우리 일행은 중국으로 향했던 것이다. 그들의 GIS(지리 정보학) 체제가 어떻게 구축이 되고 활용이 되고 있는지는 아무도 두 눈으로 확인한 사람도 없었을 뿐 더러 소문만 무성하였다. 기술력은 형편 없다, 위성영상이라는 것은 듣도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수치지도라는 것도 이제 만들기 시작했을 것이다라는 등등. 결국 중국에서 두 눈으로 확인한 바로는 그 소문은 정말 황당무계할 정도로 그들의 시스템은 완벽했다는 것을 미리 밝혀두고 싶다.
출발 3시간 후 북경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하고 있었을 때, 난 꼭 내가 한국의 지방 비행장에 착륙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었다. 정말 나는 중국에 도착한 것인가 라는 의심과 함께 나는 공항에서 내리고 있었고 내가 보았던 중국의 공항은 한국의 그것에 비하여 손색이 없었다. 나는 다시금 놀람을 금치 못했다. 일행과 공항에서 수속을 받던 중 유독 내 비자에만 무슨 문제가 있는지 군인들에 이리 저리 끌려 다녔다. 아마도 그 여권에 붙어 있던 사진이 인터폴에 의뢰된 중국 마피아 두목의 사진과 일치하였는지 모를 일이다.
턱수염 털이 한 올 한 올 다 보일 정도로 세밀하게 찍힌 디지털 사진, 정말 엽기 그 자체였다. 우여 곡절 끝에 우리는 “홀리데이 인 리도”로 향하기 시작했고 가는 길에서 처음 ‘번개’를 하게 된 중국이라는 나라는 공항에서 보았던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흡사 나는 폭탄을 만난듯한 그러한 불쾌감을 느끼며 지저분한 거리와 허름한 옷 차림의 사람들을 바라 보았다. 허물어진 벽과 건물들 그 사이로 지나다니는 고철 자전거의 행렬 게다가 길거리의 차들도 정말 한국의 70년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그러한 것들 이었고 아직도 굴러가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탄복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때부터 나는 중국을 얕잡아 보기 시작했다.
우리 일행은 “홀리데이 인 리도”의 Executive Club에서 묵었다. 5층 라운지의 이 호텔 최고급실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이곳에 묵으려 해서 묵은 것이 아니고 우리가 예약한 방이 잘못되어 호텔측에서 자신들의 실수를 무마하기 위한 하나의 궁여지책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최고급실에서 여장을 풀고 하루 동안 북경을 둘러 보기로 하였다. 물론 하루라는 시간은 턱없이 짧은 시간이다. 아니 실제 우리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5시간 정도 뿐, 관광이라고 해보아야 딱히 둘러 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내일의 업무에 대한 부담감만이 내 머리 속을 채우고 있었다. 결국 천안문과 자금성을 둘러 보기로 하고 호텔 택시를 타기 보다는 길거리에서 택시를 타보자는 의견이 나와 호텔 밖으로 향했다. 호텔 밖으로 나오자 모든 택시들은 빨간색의 조그맣고 허름한 국민 차였다. 게다가 택시 운전사들의 행색은 정말 가관이었다. 게다가 그 좁은 택시 안의 철조망은 재미있는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운전자의 모습과 행색이 유치장 안에 갇힌 노숙자의 모습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덜그덕 덜그덕 거리는 택시를 타고 1시간가량 중국 시내를 돌아 천안문에 도착했다. 그 와중에 나는 정말 중국에 차가 많다는 것을 느꼈고 질서 의식이라고는 양심도 없는 한국 운전자들의 그것보다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오는 길에 상당히 큰 빌딩들이 눈에 뛰었고 대부분은 호텔들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천안문 광장은 여의도의 그것과 흡사했다. 주변의 공산당 기념탑과 건물들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연을 날리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정확하게 한국의 그것을 모방하고 있는 듯 하였다. 하지만 특별히 그곳에서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간 사람은 분명 실망하였으리라. 나 또한 중국 혁명의 현장을 답사하러 가며 적지않은 기대에 차 있었지만 결국은 그 쭉정이 관광에 실망만 하고 말았다. 다만 한가지 얻은 수확이라면은 중국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각양 각색의 표정을 한 중국 사람들, 나의 눈에는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그들이었겠지만 모두들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듯 하였다. 그렇게 어슬렁거리기를 반시간여, 우리는 관광을 접고 허기를 때우기로 하였다. 모두들 중국에 왔으니 중국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어렵게 중국 음식점을 찾아 들어 갔다. 그곳에서 나는 차우면과 정체 불명의 고기 덮밥을 잘 먹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맥도날드로 가자며 나를 부추겼다. 정말 기름이 넘쳐 흐르는 음식이었지만 나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이 어디에 있으랴. 그 야릇한 음식들을 먹어 치운 후 우리는 다시 맥도날드를 찾아 헤맸다. 바로 근처에서 맥도날드를 발견했을 때 일행의 표정은 지금 생각해도 두 눈에 선하다. 식사 후 길거리를 돌며 사람들을 구경하다 한 떼의 자전거 무리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 수 많은 자전거들, 사람들. 여전히 나는 나의 배역을 망각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을 보며 무엇인가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역사적 건축물이나 유물들에서 느끼는 그런 식상한 경외심이 아닌 살아서 꿈틀거리는 그러한 힘을 말이다.
중국의 현재 상황은 꼭 한국의 70년대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하였다. 허물어진 건물들과 셀 수 없이 많은 공사 현장, 그리고 그와는 대조적으로 하늘을 찌르는 호텔 건물들과 아파트들. 흡사 ‘분노의 포도’에서의 배경을 연상케 하는 메마른 대지와 모래 바람, 그 틈새를 비집고 다니는 수많은 자전거와 자동차의 끝없는 행렬. 모두들 어디로 향하고 있지만 나는 도대체 그들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예측 할 수 없었다.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준비할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나는 특실 침대의 포근한 유혹으로 인하여 깊은 잠으로 빠져 들고 있었다. 새벽 3시 불현듯 나는 내일 큰 프로젝트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잠에서 깨어 났다. 다시 준비해온 자료들을 검토하고 대충 내일 어떠한 일들이 있을 것인지에 대한 가상 시나리오를 그렸다. 머리 속에는 여전히 중국인들에 대한 우월 의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솔직히 내가 그린 가상 시나리오 속에서는 내가 중국 기술자들에게 일장 훈계를 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곧 내 생각이 얼마나 짧은 것이었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날 아침 우리는 무한 측량 대학에 도착했다. 그곳은 공사가 한창인 한 변두리 근처에 위치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대학 크기도 우리 나라의 전문대학교 정도 였을 뿐 밖에서 보았을 때는 이곳이 중국 국토개발의 기초를 다지는 최고 전문가와 고위층 집단의 요람이라고 보기는 약간 무리가 있었다. 나는 곧 그 곳이 세 단체가 하나의 지붕 밑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선 NGCC라는 정부 산하의 측량과 지도에 관련된 부서가 있었고 Swei라는 기업이 있었다. 또한 그곳에는 오토 네비게이션 시스템을 위한 지도를 제작하는 작은 벤쳐 회사도 같이 자리하고 있었다. Swei라는 기업은 중국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공기업으로 항공 측량을 위한 항공기만 30여대를 가지고 있는 거대 기업이었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항공 측량기업은 2대의 항공기를 가지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며 규모 면에서는 우리 나라와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들은 주로 일본에서 많이 수주를 받아 항공 측량 자료들과 영상을 제공하고 그 데이터를 가공해 판매한다. 어떠한 측면에서는 그들의 기술력은 우리 나라보다 앞선다고 생각된다. 특히나 항공 영상 보정 기술은 외국 기술에 의존하지 않은 자체적 처리 기술이 있을 정도로 뛰어나다.
물론 사전 조사가 부족하여 아직 구체적으로 그들이 어떠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 판단하지 못한 상황에서 다행스럽게도 우리 일행의 발표는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내가 처음 ActiveX기반의 컴포넌트 기술에 대한 설명을 할 때는 청중들의 반응에 약간 실망하였다. 아니, 이미 그들은 알고 있는 사실을 내가 다시 한번 복습을 시켜주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중에 와서 안 사실이지만 그들은 기술적인 배경과 구조 보다는 실제적으로 그 기술이 어떻게 활용이 되며 어떻게 자신들의 제품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것만 관심이 있었다. 그들은 개발자가 아닌 관리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로부터 일단 관심을 끌어내기는 성공하였다. 회사 제품에 관한 열변을 토한 후, 마음속에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하고 있었다. 불현듯 나는 중국에 대하여 너무 과소 평가를 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나의 기술적인 발표가 끝나 후 우리는 점심 식사를 하러 갔다. 한 관동지방 요리 전문 중국 식당이었는데 나는 이곳에서 여러 가지 이상한 음식들을 먹게 되었다. 거머리 요리부터 시작하여 정체 불명의 새요리까지. 무엇인지 모르고 먹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요리의 주재료가 거머리인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기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식당에는 메뉴가 없고 재료들을 전시해 놓고 손님이 그 재료를 선택하는 형식이었다. 처음 들어 올 때는 몰랐지만 그곳에는 오리 머리, 두꺼비, 자라, 거머리 등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재료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 그렇게 부산스럽게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다시 무한 대학교로 돌아가 시찰을 할 기회가 있었다.
NGCC라는 중국 정부 기관의 시설을 둘러보고 느낀 점은 어지간한 시스템은 모두 최고급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40테라바이트의 저장공간과 그것을 관리하는 여러 개의 Sun서버들 그리고 대부분의 컴퓨터는 NT서버를 운영체제로 하고 있었고 영상 처리 기계들은 모두 Silicon Graphics의 SGI 기계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그 외 스캐너나 프린터 등의 제반 기자재들도 모두들 최고의 것들이었다. 또한 그들도 여러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이 개발한 소프트웨어들은 일반 직원들에게는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사용하기 불편했고 무엇보다 성능이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본다며 그들의 하드웨어나 응용 산업은 이제 어느 정도의 궤도에 올라 섰으나 여전히 소프트웨어 개발쪽에서는 보완되어야 할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오후의 발표는 약간 식상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가지고 간 영상 처리 기술들은 이미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이었고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었다.
두 번째의 위성 영상 처리와 지도 제작 과정에 대한 발표가 끝난 후 소프트웨어 개발 전문 인력들과 함께 우리들이 가지고 간 제품에 대하여 이야기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기술적인 토의가 오고 간 후 그들은 우리 제품에 상당한 관심을 표명 했으며 조금 전의 산만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전시의 긴장감이 맴돌았다. 모두들 조심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우리 제품이 타사의 제품과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우선 우리 회사 제품과 경쟁이 가능한 가장 유력한 제품중의 하나는 Map Object이다. 그들도 ActiveX기반의 기술이었고 이미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훌륭한 제품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제품에는 일정 수준 정도 개발을 하게 되면 더 이상 진보된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없는 정책적인 한계가 포함되어 있었다. 만약 그들이 제공하는 Map Object라는 라이브러리가 모든 기능들을 다 가지고 있다면 Map Info와 같은 프로그램들을 많은 개발자들이 상당히 쉽게 제작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Map Info는 시장성을 상실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Spatial Object는 처음 출시 될 때부터 개발자 전용의 라이브러리 였다. 즉, 아무런 한계가 존재 하지 않고 그 자체를 더욱 발전 시키고 싶다면 물론 가능하다. 단순히 제공되는 몇몇 기능들을 커스터마이즈하는 도구가 아닌 실질적인 개발 툴인 것이다. 또한 가격대도 상당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우리가 한 카피에 800 달러라고 불렀을 때 그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혹시나 가격대가 잘 못 된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뒤에서 사장님이 한 말 씀 하셨다.
‘한 카피 당 라이센스 10개를 제공한다고 말해.’
정확한 타이밍이었다. 막 전문가에 자문을 구하러 돌아 온 사람이 Map Object는 우리 제품 보다 쌌지만 개당 라이센스 비용이 120달러 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각각의 라이센스당 80달러 였기에 타사의 제품에 비하여 40달러 정도 쌌다. 우선 가격 경쟁력에서 우리가 우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쪽 실무자들도 상당히 만족한 모습을 보이며 마지막 조율을 한 후 그 미팅은 파하게 되었다.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흥정이었다. 끝나고 나서도 굳어진 얼굴을 펴기가 힘들었다. 모두들 인사를 하고 택시를 타고서야 모두들 기쁨에 들떠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한 흥정이 끝나고 나서 느끼는 희열이란 정말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이루어 내었다는 것에 대한 흥분, 물론 아직은 일렀다. 아직은 내일이 남아 있었기에 그 흥분을 조금은 아껴야 했다.
그날 저녁 일행 모두는 한국 음식점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하였다. 그제까지 나는 중국 음식들도 먹을 만 하다는 것이었다. 기름기가 많고 맛이 이상했지만 여전히 먹을 만 했다. 하지만 그날 저녁 김치찌개를 먹고 나서 정말 한국 음식이라는 것이 그렇게 맛있는 것인지 처음 느꼈다. 한국에서 였더라면 맛이 별로 없었을 그 김치찌개는 정말 꿀 맛이었다. 매일 기름에 절은 음식을 먹다 보니 콩나물 무침이나 김치와 같은 사소한 밑반찬에도 고마움을 느끼며 맛있게 먹었다. 그날 저녁 정말 피곤해서 인지 자리에 눕자 마자 꿈 속으로 빠져 들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일찍부터 중국의 실제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를 탐방했다. ‘이다’라는 회사였는데 그곳에서 하는 일은 땅의 활용 용도를 항공 사진을 이용하여 측정된 영상을 가지고 분석하는 일이었다. 그들이 보여준 프로그램은 Mapgis라는 중국산 프로그램에서 얻어진 벡터 데이터와 항공 영상을 중첩하여 색깔을 가지고 토지의 사용용도를 분석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썩 훌륭한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현재 그들은 50개의 현에 대하여 그 프로그램을 판매하였고 다시 이번 해에는 250여 개 정도의 현에 더 공급할 계획이 있다고 했다. 정부에서 시행하는 중요한 공사였기 때문에 제품의 완성도가 상당히 중요한 관건이었지만 여전히 이곳에서는 조금은 불안정하고 사용하기 어려운 제품만을 가지고 있었을 뿐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중국에는 2800여 개의 현이 있다. 만약 이곳에만 이라도 우리 제품의 라이센스 정책을 가지고 제품을 제작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우선은 시장을 선점하는데 일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장님은 만약 우리가 어플리케이션 제작에 중점을 두게 된다면 우리 제품의 라이센스 정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할 승산이 크다고 했다. 즉 어플리케이션을 직접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을 팔아 그들의 제품의 완성도를 끌어 올리는데 주력하는 편이 훨씬 현명한 방법일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해야지만 시장 속에서 우리 제품이 인정 받고 널리 활용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날도 ‘이다’사의 사장과 많은 의견을 교환하고 다시 점심 식사를 하러 ‘금지된 도시(the forbidden city)’라는 왕궁으로 갔다. 그곳에서는 청나라의 서태후가 좋아 하던 음식을 전문으로 요리하는 궁중 요리 전문점이었다. 그곳에서도 각각의 음식들마다 웨이트리스(?)가 역사를 설명해 주었다. 한가지 한가지의 음식마다 그런 의미를 알고 먹으니 더 뜻 깊은 것 같았다. 물론 그곳에서도 기묘한 재료를 주로 한 요리들이 있었다. 물론 이번에는 다른 음식들도 많았으니 그러한 것들 까지 먹을 수 있는 여유는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 사람들은 정말 다리 달린 것이라면 책상 빼놓고 다 먹을 수 있다는 말을 실감했다. 식사 후 다시 우리는 호텔로 향했고 그곳에서 계속 회의를 진행 하자고 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호텔에 돌아간 후 약간의 휴식을 취하고 다시 전쟁에 들어가게 된다.
그날 오후가 바로 절정이었다. NGCC에서는 프로그래밍 분야의 전문가가 직접 와서 우리 제품에 대하여 질문을 하고 비교 하였다. 그는 아주 작은 키에 동안을 가진 인물로 그렇게 똑똑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현재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프로그래머 였다. 이젠 그만 설득 시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다 한 것이었다. 열띤 토론과 질문 그리고 비교 분석 후 그는 드디어 우리 제품을 인정 할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가 두 눈으로 코딩하는 모습과 활용 예제 프로그램들 살펴본 후 그가 내린 결론은 다른 제품들에 비하여 우수하다는 것이었다. 사용하기 쉬운 점과 강력함 그리고 확장성이 타 제품에 비해 월등히 우수하였기 때문이었다. 물건을 팔면서 판매하는 제품이 그러한 절대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을 때는 세일즈맨이 그렇게 노력하지 않아도 팔린다. 하지만 이번 건에 대하여 우리들도 많은 노력을 하였고 게다가 제품도 완벽하였기 때문에 아주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고 본다. 그 회의가 끝난 후 우리는 다시 저녁 식사 때 모여 앉아 마지막 조율을 하게 된다. 우리가 찾은 식당은 유명한 한국 식당이었다. 상당히 비싼 곳이었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걸로 보아 한국음식의 인기를 실감 할 수 있었다. 마지막 저녁 식사 자리에서는 모두들 화기애애한 분위기 였다. 모두들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한 것에 대하여 웃고 있었고 여전히 마지막 조율할 부분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 했다. 모든 공식적인 일정이 끝이 나고 일행은 호텔로 돌아 왔다. 그날 밤에도 역시나 흥분해서 들떠 있는데 이팀장님이 한 마디 했다.
‘실제로 우리가 무엇인가를 이루어낸 것 같지만 실제로 우리가 이루어 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가도 그렇게 크게 바뀐 것은 없을 것이다. 모든 일들이 그렇게 빨리 성사되는 것은 아니거든.’
그렇다. 실제로 우리들이 무엇인가를 이루어 놓은 것 같았어도 정작 무엇을 가지고 돌아가는가. 약간은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중국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그리고 시장에 대한 가능성만을 타진한 것 만으로도 커다란 성과였다고 평가 한다.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술에 대한 우월성을 확인 할 수 있었다는 점 또한 나에게는 큰 것이었다.
중국에서의 3일은 나의 인생에 있어, 나의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 많은 영향을 준 것을 부정 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너무 짧은 시간에 게다가 너무나 국한된 지역 속에서 거대한 중국이라는 나라를 평가하기는 오류의 소지가 많다. 하지만 내가 간접적으로 보고 느끼고 생각하던 중국과는 확연히 다른 그 어떤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정리 하자면 중국이란 나라는 정말 세계 최대의 시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호락 호락하게 자기들의 시장을 외국 기업들에게 넘겨 주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중국에는 내가 NGCC에서 보았던 사람들처럼 뛰어난 인물들이 많이 있고 또한 깨어있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일반적인 정책은 미국 일본의 제품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가능성은 그들이 자신들의 제품을 개발 할 수 있도록 우리의 툴을 제공하는 것이다. 정확히 우리 제품의 목표에 부합하는 시장이며 우리 회사 제품은 특히나 커다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에 따른 구체적인 제반 상황은 먼저 제품에 대한 라이센스 정책의 확립이다. 그리고 제품 지원에 대한 국제화를 꾀하기 위하여 홈페이지를 적절하게 사용하여 기술 지원을 활성화 시켜야 하고 매뉴얼과 기타 문서 작업에 대한 국제화를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중국 정부와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 하면서 서로간에 이익을 볼 수 있도록 모든 일을 적절히 조절 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당장의 적은 손실을 감수 하더라도 시장 선점이라는 측면에서 가격 정책을 유연하게 설정하여야 할 것이다.
무표정하게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거리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 하늘을 찌르는 높은 빌딩들과 간판들. 이미 중국은 공산국가가 아닌 시장 경제체제의 마지막 미개척지로 이제 막 그 문을 우리들에게 열기 시작한 것이다. 그 꿈틀거리는 거대한 시장을 가만히 놓아두고 바라만 보기에는 너무나 매혹적인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