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을 잊은 당간 지주
현성 김수호
거리엔 차가운 바람이 분다.
오라 하지 않아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시간의 묘, 서산에 해지면 동산에 해 떠오를 것을 의심하지 않음과 같이 계절도 법문을 한다.
삶 그 외로운 글자 하나, 긴 여정이라 생각하였지만, 뒤 돌아보니 찰나였다.
참선이라는 글자, 그 길에 선지도 40여 년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어릴 적 죽음이란 무엇인가에서 나는 누구인가로 전환된 여정이 서로 손잡고 마주하며 웃고 있다.
낙엽이 쌓여만 가는데 바람은 나뭇가지를 흔들고 봄을 노래하며 차가움을 안고 지나간다.
여기저기 숲은 색색으로 단장하고 시새움 속 뒹구는 낙엽의 속삭임만 사그락사그락,
"그날에 만남을 위해"
너와 나는 가을 짙은 이별가 부르지
하늘 깊은 곳 메아리 되어 흩어지고
흰 구름 이런저런 모습으로 춤추네
어둠이 내린 빛에 세상은 고요하게
맴도는 나에 마음 눈가에 앉았는데
별이 내려앉아 영롱한 이슬방울로
우리 함께 손을 잡고 별에 노래하자
떠나고 없는 그 자리에 심어놓은 너
깊은 겨울이 오기 전 우리 노래하자
뒤돌아올 환생을 다짐하며 부르자
어느 날 만날 너와 나는 미소를 짓자
아이로 미소 짓고 백발에 웃음 짓는 오늘 이 순간, 입동 지난날 차가움은 옷깃을 파고들고 불러 새운 지나간 시간이 고스란히 쌓여 삶의 여정을 노래하지.
느티나무 아래 부지런한 또 다른 시간이 시간을 덮고 쓸고 뒤엉킨 시간은 또 다른 공간 속에 갇혀버린 나는 길을 걷는다.
누구라도 옳다 옳다 찬탄하며 축복으로 기뻐하자, 노래 부르고 이 순간에 사랑을 수놓았다.
너와 내가 기쁨이니 슬퍼하지 말아야 해,
이 길은 축복으로 빛나고 향기 가득하지
안과 밖 그대 모습 펼쳐놓았나니 기쁨이야
우리는 언제나 미소 짓는 길을 걸어가리
깃발을 세워야 해. 그대가 놓친 순간들
이제 바람결 춤추는 깃발이 되어야 하지
둥둥 북을 울려야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