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여러분의 고견을 듣고 싶었으나 아무도 나서지 않아, 13회는 수록을 포기하려고 생각했다. 원고 수집은 25(월)로 마감되었다. 그러다 뒤늦게 이러면 않되겠다, 평생 후회할 일이 될 듯도 싶어 분현히 채희문의 필력을 빌어 아래와 같이 작성했으니, 첨삭할 것을 10/27(수) 오전 까지 알려주기 바란다.
13회 중 유명인, 화제의 인물(50년사에 인물정보 수록할)
1. 이영하-우리나라 스피드스케이팅의 1세대 스타
2. 채희문-198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부문에 당선되었고, 그 전 해에 발표한 중편 ‘철탑’은 19세기 말에서 우리 시대에 이르는 근 백년간의 소설 작품을 국문학자, 문학비평가들의 조언과 문학사적인 평가를 토대로 100권으로 간추려 엮은 ‘한국소설문학대계’에 올리는 등, 끊임없이 작품활동을 하고 있슴
3. 김철-활주로의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휘버스의 ‘그대로 그렇게’ 등 히트곡 등이 발표된, 1978년 제1회 해변가요제에서 ‘장남들’이라는 그룹사운드의 리드보칼로 나서서 장려상으로 입상한 ‘바람과 구름’이라는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을 남김
4. 설정선-정보통신부 1급 공무원
5. 최영규-차세대 리더를 위한 고급 경영정보 메거진 에콘브레인 발행인
경희고등학교 13회 소개글(50년사에 수록할)
채희문이 바쁜 와중에도 초안을 잡아 주는 수고를 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무려 11.1대 1(10.8대 1로 아는데?)이라는 미증유의 입시경쟁률을 뚫고 경희고등학교에 입학한 우리 동기생들은 필연적으로 성공할 수밖에 없는 자질과 특성을 이미 품고 있었습니다. 계란은 남이 껍질을 깨어주면 프라이가 되고 말지만, 스스로 깨면 병아리가 되듯이 우리 동기생들은 1972학년도 전국 최고의 입시경쟁이란 껍질을 스스로 깨고나온 단단한 부리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그 후 3년, 전광석화처럼 지나간 세월이지만 우리들은 뜨겁게 불타오르고, 갈망하고, 사유하던 기간이었습니다. 사상에 굶주리고 지식에 목말라 하면서도 점점 부드러워지는 심장을 저마다 가슴 속에 품고 지내왔습니다.
철이 없어서 고추장, 곶감으로 통칭했던 김병운 교장선생님, 그리고 김원세 교감선생님의 가르침이야말로 이제 생각하니 홀로 창공에 이를 수 있도록 날개를 펴게 된 자양분이었습니다. 그뿐인가요? 안재중, 유홍식, 전용일, 김일기, 조진래, 백원기, 이종권, 조이준, 홍화식, 김기순, 한용근, 임문규, 송용직, 김명빈, 유창열, 정달몽, 박규하, 장병길, 박종순, 박만규, 김동현, 홍종인, 안석중, 최병인, 박영준, 강욱, 전상국, 김창진, 오만녕 선생님 등(우리 가르친 선생님 중 빠진 분 있으면 추가하게 알려줘!), 우리 철부지들을 위해 함께 웃고, 함께 고민하며 암흑 속에서 등잔의 심지를 높여주신 여러 은사님들을 우리는 일일이 그리고 영원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레바논의 시인 ‘칼릴 지브란’이 말했듯이 목소리란 자기를 날려 보내는 혀와 입술까지 끌고 갈 수는 없기에 스스로 깨달으라는 묵시의 교훈을 주신 분들이건만, 이제야 우리는 고개 숙여 깊은 뜻을 헤아리고 있습니다.
물론 소림사의 무술 스님이 연상될 만큼, 엄한 스승님들로부터 사랑의 매도 많이 맞았습니다. 하지만 무술(?)이 겸비된 도량이기에 소림사가 신비로운 것 아닐까요? 따지고 보면 열혈 청년들을 담금질해주시던 편달이야말로 비밀스럽게 가려져 있던 신비로운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사랑은 우리들의 굳건한 날개로서 훈장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전국을 제패한 자유교양경시대회, 꿈과 용기를 심어주었던 아이스하키부, 이영하라는 불후의 선수를 키워낸 빙상부, 대통령배를 휘날리던 축구부, 체조부… 당시에는 가늠할 수 없었던 그 응집력이 이금은 13회 졸업생들의 자긍심이 되어 숨 쉬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경희고등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공부하고, 일하고, 삶을 사랑하고, 남들과 함께 발맞추어 나가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견고하게 지어진 집, 우리들 마음속에 단단히 자리 잡은 집이 있기에 우리 13회는 세상이라는 드넓은 강을 헤엄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강물의 흐름에 막연히 떠내려가지 않고 때론 강물을 거스르며, 혹은 앞을 가로막은 댐을 뛰어넘으며 나아가는 것은 우리들 마음속에 경희고등학교라는 초당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는 이미 강물을 빠져나와 바다에 닿은 13회 동기들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들이 대양에 이를 때까지 동기회를 아우르느라, 1975년 2월 졸업 후 조홍건과 변경호가 회장과 총무를 교차로 맡으며 뿔뿔히 흩어져 제 갈 길로 간 동기들의 구심점이 되어 오던 때를 1기로 친다면, 2기 회장 홍준영 총무 양기환, 3기 회장 변경호 총무 방진우, 4기 회장 민경희, 5기 회장 김진수, 6기 회장 방진우 등이 애쓴 보람으로, 현재의 7기 회장 박성택과 4기부터의 총무 유치열을 중심으로, 골프동호회 회장 박영준 총무 김영덕을 비롯, 등산, 싸이클 등 동호회, 포항, 경남지부 회장 서정만을 비롯, 2007년에는 카나다 등 미주지역에서 비행기 타고 LA에 모여 3일간 함께 어울렸던 고태웅 등 10여명, 지난 2005년 홈커밍 데이 때 회모임 명의로 거금을 찬조한 일송회 등 소그룹 별, 동호회별, 지역별로 반가운 모임들을 갖고 있습니다.
13회 동기생들의 활약상을 살펴보면 레미콘 업계의 입지전적인 인물로서 울란바토르에 '남양주스트리트' 라는 도로명이 생길 정도로 몽골의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한 (밑줄 부분은 메일에서는 없었던 것으로, 이하 같음) 박성택이 2011년 총동창회 회장으로 헌신할 예정인 것을 필두로, 강희경 교수 등 학계에 10여명 , 우리나라 스피드스케이팅의 1세대 스타 이영하 등 체육인 10여명, 198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부문에 당선되었고, 그 전 해에 발표한 중편 ‘철탑’은 19세기 말에서 우리 시대에 이르는 근 백년간의 소설 작품을 국문학자, 문학비평가들의 조언과 문학사적인 평가를 토대로 100권으로 간추려 엮은 ‘한국소설문학대계’에 올리는 등, 끊임없이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채희문, 아동문학계의 권위자 김용희, 제천에서 향토화가로 활동하는 이종원, 클라리넷 주자로 출발 현재는 위튜티 윈드오케스트라 지휘자로 활동하는 유동휘 등 문예인 10여명, 활주로의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휘버스의 ‘그대로 그렇게’ 등 히트곡 등이 발표된, 1978년 제1회 해변가요제에 기타를 들고 ‘장남들’이라는 그룹사운드의 보칼로 나서서 장려상으로 입상한 ‘바람과 구름’이라는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을 남긴 김철 등 연예인, 삼성그룹 부사장 성인희 등 대기업 임직원 20여명, 정보통신부 1급 공무원 설정선 등 공직자 20여명, 최근 일본이 중국에 꼬리를 내린 희토류로 미세진동소자를 생산하는 중소기업이지만 글로벌기업체 사장 김유철 등 중소기업인 30여명, 제일은행 상무 신설호 등 금융계 10여명, 미얀마에서 사업을 하며 그 나라에 큰 홍수가 날 때 제일 먼저 팔을 걷어 붙이고 구제에 나섰던 김정한, 폴포트 정권에 의해 모든 지식인 등 씨를 말려 버린 킬링필드의 캄보디아에서 교수들을 모아 놓고 지식을 전수하고 있는 김수봉 등 국위선양 중인 해외거주자 30여명, 차세대 리더를 위한 고급 경영정보 메거진 '에콘브레인' 발행인 최영규 등 언론인, 세계공용 의학용어인 화병(hwabyung)의 이론가 조홍건, 모발 생성제를 개발한 이해민 등 유독 한의학박사가 많이 배출되었고, 양평 국수리의 국수교회 김일현 목사, 동래온천교회 정동준 목사 등 종교인, 동문들의 문제를 도맡아 해결하는 변호사 한석훈, 세무사 김영덕, 법무사 유치열 등 자격사,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서서, 직업을 새로 찾아 나서기도 해야 할 55세 무렵의 연륜이지만 그 연륜을 사회에 되돌려 준다는 차원에서 '한국 인체조직 기증 지원본부' 사무국장에 취임한 송윤호 등 아직도 여러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50주년을 기해 조성했던 모교 장학기금에 146명이 기꺼이 참여한 우리 13회 동기들은 같은 날, 함께 경희고등학교에 입학했으므로 영원히 함께 있을 것입니다. 동기들의 사랑을 마음속에 품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우정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 13회의 영원한 발전을 기원하는 바입니다.
첫댓글 내가 급히 작성한 초안이어서 불안했는데 유치열 님의 글이 합해지니 많이 좋아졌네.
하지만 문맥 통일, 오자 수정 등을 위해서라도 마지막에 다시 한번 손봐야 할듯... 채희문
세계공용 의학용어인 화병(hwabyung)의 이론가 경원대학교 조홍건교수, 모발 생성제를 개발한 이해민원장을 비롯 최두균원장, 박대혁원장, 장경훈원장, 김형준원장, 김경진원장 등 유독 한의학박사가 많이 배출되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