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 18.
어제 일 가운데 빼놓은 게 있어서 잠시 적고
오늘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어제 새벽 잠에서 깬 다음 돌아오면서
빼놓고 온 것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만년필이었고, 다른 하나는 거의 달고 다니는 물컵이었습니다.
그것을 확인하는 것은 표면이고
안에 담으려고 한 것은 다른 내 마음이었는데
평소 마음을 나누는 사무실 식구 변미경 씨에게 전화를 하여
만년필과 물컵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나는 압니다.
누군가가 두 가지 다 챙겨뒀을 것임을
통화를 하면서
“내가 요즘 마음이 많이 바빠.
그리고 무엇인가를 투정하고 싶기도 하거든.”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
“알고 있지요.”
그에 이은 말
“컵은 보았는데, 만년필은 못 보았어요.
누군가 챙겨 뒀겠지요.”
그런 이야기가 남아 있었습니다.
스물일곱 해 동안 달려온 내 걸음들
그리고 곧 내가 물러난 뒤, 남은 이들이 풀어낼 그들의 삶과 운동
이런 것들이 요즘 나를 바쁘게 한다는 말이었고
거기서 회한(悔恨)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남아있다는 말까지...
오늘은 새벽부터 마음이 바빴습니다.
조금 이른 시간의 하루를 시작하는 산책,
내가 데리고 있는, 그래서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우리집 개,
내 아침 산책에 언제나 함께 하는 녀석의 이름은 ‘산’입니다.
지난 11월 11일로 여섯 살이 된 ‘산’이는
아직도 철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개들이 서너 살만 되면 젊잖아지는데
얘는 웬일인지 여섯 살이나 되었음에도 여전히 철부지입니다.
아직도 힘이 넘치고,
다른 짐승의 냄새만 맡으면 잡거나 싸우고 싶어서
숨소리 거칠어지고, 걸음이 바쁩니다.
그 동안 잡은 고양이만도 여러 마리
고라니나 꿩, 그리고 고양이나 다른 덩치 큰 개의 냄새만 맡으면
그저 내달으려고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말해 줍니다.
“걔네들 알고 보면 불쌍한 생명들이야.
우리가 나온 건, 너는 똥오줌 싸고, 나는 운동 하고
먹는 건 네가 잡지 않아도 내가 해결해 주고
이 세상 것들 중 네 것이나 내 것은 하나도 없는데
너는 네 영역 안에 있는 것들을 하나도 용납하지 못하니
아직도 철이 없는 거지.”
그러거나 말거나 녀석은 아랑곳 없습니다.
오늘 새벽에도 다른 개 한 마리가 근처에 있음을 느끼고
숨소리 거칠어지며 발걸음 바빠졌는데
그런 녀석을 제어하느라 힘을 쓰면서 산책 다녀왔고
늘 하던 아침 냉수욕을 마친 뒤
밥 먹고 길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보은에 가서 배영도 목사와 합류하여 충주로 향하였고
보은에서 미원 거쳐, 괴산, 그리고 충주에 있는
충주노회 유지재단 사무실까지 가는
두 시간 정도 되는 길을 운전하며
그 사이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는데
사람으로 산다는 것, 그리고 목사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도착해 보니 이미 재판이 시작되어 있었고
탐욕으로 일그러진 인간됨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재판 현장
보는 것만으로도 온갖 감정이 뒤섞이며 용오름을 하는 자리
그렇게 내 증언과 배영도 목사의 증언 후 점심 먹었고
배목사가 다른 일들로 마음이 바쁜 것 같아
재판 끝나는 걸 못 보고 되짚어 돌아오는 길
충주로 가던 그 길을 되짚어 돌아오면서
배목사의 사모가 만두를 좋아한다고 하여
괴산 대사리 만두집에 들러 만두를 사서 들려주고
보은에 도착하여 커피 한 잔 마신 뒤
사무실로 돌아오니 다섯 시 가까이 되었습니다.
사무실 식구들 얼굴 보고,
앉아 잠시 책을 보다가 일어나 퇴근하는 길
농협 물류센터 근처에 있다는 아내에게 거기서 만나자고 한 뒤
거기 들러 장을 보고
돌아와 저녁 먹은 다음 마늘 찧어 놓으니
온 몸으로 밀려드는 나른함
그렇게 또 하루를 보냈습니다.
내일은 손녀딸이 태어나기로 한 날,
아이가 거꾸로 있어야 하는데
웬 일인지 바로 서서 나올 자세와는 거꾸로 서서
그걸 고집하고 있고,
할 수 없이 수술하여 꺼낼 수밖에 없다고 하여
잡은 수술 날짜가 바로 내일입니다.
그동안 아이에게 붙여 줄 적지 않은 이름들을 떠올렸고
아이가 내일 나온다고 하는데도
아직까지 이름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올 아이의 아비 때도 그랬습니다.
내 아버지가 그렇게도 기다렸지만
끝내 못 보고 삶을 접었던 아버지,
그 뒤에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어떻게 지어야 어울릴지 몰라서
망설이며 지내다 보니 출생신고 할 날을 넘겼고
겨우 만들어낸 이름이 제 어미의 이름에서 한 글자, 내 이름에서 한 글자
그것이 그의 이름이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아들의 생일이 셋이 되었습니다.
저 태어난 날을 양력으로 보았을 때의 날
음력 생일에 맞춘 날
그리고 주민등록상의 생일,
그러다 보니 여기 맞추면 되지, 거기 맞추면 되지
그러다가 생일을 못 챙겨 준 일도 적지 않았던 우리 막내
그것도 아이에게는 작지 않은 마음의 상처가 되었던 것 같은데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손녀딸의 이름이 비로소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도 같습니다.
‘김 밀’
은하수라는 말인 ‘미르’를 줄이면 ‘밀’이 될 터
미루지 말라는 말도 되고
은하수처럼 그렇게 살라는 ‘미르’라는 말도 될 터이니
언뜻 낯설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하자는 제안을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오늘의 이름을 ‘밀’이라고 붙여봅니다.
날마다 좋은 날!!!
- 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