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2장 20절 – 23절
신앙은 세상에서 운명이라고 여기는 것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은 갈데아 우르에서 우상쟁이 아들로서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아야 하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을 수 있는 직업을 포기하는 것을 뜻합니다.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은 경건의 모양은 있었으나 경건의 능력은 상실한 모양뿐인 신앙의 가정이었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런 집안의 모양을 따라 갈 수 밖에 없는 그런 인물이었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모든 것을 버려 두고서 하나님을 따라 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어디로 가라고 하시지 않으십니다. 단지 매순간 마다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따라 움직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도착해서 곧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잃어버립니다. 왜냐하면 그 땅에 기근이 진행중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직 미성숙한 아브라함은 세상의 관점을 따라 세상의 길로 방향을 정합니다. 바로 물이 풍부하고 곡식이 풍성한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애굽땅은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믿음의 조상이 이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라 판단하고 결정해서 애굽으로 내려 가는 것입니다. 문제는 아브라함이 매사에 어떤 결정을 하기 전에 하나님께 묻기를 잘했는데 이 상황에서는 하나님께 묻지 않습니다. 그저 세상의 관점에서 서서 세상의 길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그런 자들과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은 위기를 맞습니다. 아브라함의 속임으로 애굽의 바로의 가정은 어려움을 만납니다. 바로 이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라간 아브라함으로 인해서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아닌 바로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위기를 벗어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갑니다. 첫 출애굽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도, 하나님의 비전도 그리고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하는 자신도 모두 잃어버릴 수 있는 위기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위 믿는 자들이라고 말하면서 이 세상의 관점에서, 이 세상의 길로 행하며 그리고 애굽에서 번영을 추구하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갈급하심과 하나님의 개입하심 그리고 그런 애굽에서 믿는 자들로 수치를 당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골로새지역의 교회는 사도바울이 직접 전도하여 세운 교회가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전하는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고향에 교회를 세운 에바브로의 열정의 결과였습니다. 그런 교회가 사도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 세속화 되고 있다고 하는 소식을 듣습니다. 정결한 주의 신부로서 깨끗한 예복을 준비해서 신랑되신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기 위해 단장을 해야 하는 교회가 스스로를 더럽게 하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이 세상의 문화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동화된다면 더러워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날마다 순간마다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더러워진 옷자락을 깨끗하게 씻어야 하는데 씻기를 포기하면 더워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면서 더러워지지 않는 자가 될 수 있는 가 바로 의문에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의문은 이 세상의 법령을 말합니다. 이 법령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충돌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순종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순종이란 자발적인 것을 말합니다. 바로 고난을 두려워 하여 고난을 회피할 목적으로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일제말 신사참배도 한 예입니다. 교회는 고난을 회피하기 위해서 신사참배가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문제이기 때문에 순종해서 동참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기철목사님같은 분들은 매도를 당하고 출교를 당해야 했습니다. 당시 골로새교회에도 신사참배에 동참하는 자들과 같은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난을 피하기 위해 로마의 우상숭배에 순종하며 동참하면서 교회에서는 정결한 그리스도인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난을 피하기 위해 로마의 우상숭배에 참여하지 않는 소극적인 행동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행동까지 책망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경건한 자처럼 보이기 위해 금욕을 통해 사람들로부터 의롭다 함을 얻으려고 하는 자들을 또한 책망합니다. 이것은 바리새인들의 뒤를 좇는 것입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신앙이 바리새화 되는 것을 배격하고 뽑아 내어야 합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위기는 이 바리새화 된 것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