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은 산행의 피로보다는 음주가 더 영향을 미친다.
어제 산을 길게 돌았어도 술기운이 남았는지 8시가 되어서야 일어난다.
가지 않겠다던 한강이가 따라나서준다. 10시다.
오렌지 하나와 방울 토마토 몇개를 넣고 물을 채운다.
김밥을 세 줄 사고, 가는 길에 과자를 몇 개 산다.
벌교를 가려면 그 부근의 꽃피는 작은 산, 그래 일림산이 좋겠다.
어제 무등산에서 고운 철쭉을 보았으니 남쪽은 더 피었을거라
짐작하고 보성으로 향한다.
웅치에서 제암산 가는 길을 가다 언젠가 피서차 들렀던
용추에 가니 그 때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소나무 활엽수 마을 숲은 그대로인데 길은 넓어지고 온통 차들이
차지하고 있다. 차 사이를 비집고 올라가니 주차비를 받는다.
2,000원을 받는 이는 나의 아제같은데 농사보다는 이게 나을까?
가는 곳마다 돈의 냄새가 풀풀난다. 보러오는 이나 그들에게
돈을 뜯는 이나, 나도 거기에서 하나도 나아갈 수 없다.
11시 45분쯤, 잠자다 일어난 한강이를 무등 태우고 배낭을 매고
아스팔트를 오른다. 저수지 '보성'꽃글씨 아래 물넘이에
염소가 보이자 한강이가 내려온다.
나무 다리를 건너 삼나무 숲으로 들어선다.
숲은 넓고 길은 사방으로 열려있다. 사람 많이 가는 쪽으로 따라간다.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에 치인다.
한강이가 '칼'을 주워 결투를 하자해도 할 수가 없다.
그와 손을 잡고 가는 것조차 길을 막는다.
숲 아래엔 참외보다 더 큰 돌들이 굴러다닌다. 20여분 오르자
삼나무 숲이 끝나고 개울을 건넌다. 한강이는 그만 가자고 한다.
날은 덥고 하늘은 맑지 못하다.
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임도를 지나 잎갈나무 아래서 간식을 먹는다.
많은 사람이 지나간다. 관광버스를 타고 온 산악회원들은
산에 오르지 못하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주차장에서 보았던 전금자 원장선생님이 지나며, 배낭을 뒤적여
참외를 하나 주고 가신다.
골치에서 왼쪽으로 길을 잡아 오른다. 수많은 사람에 치인다.
아직 꽃이 피지 않은 이 곳에 왜 왔나? 꽃은 내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한강이는 '위로 해달라' 하는데 나도 날씨 때문에 해질해진다.
사람 많아 어렵다고 핑게를 대고 오른다.
정상을 앞에 두고 그만 멈춘다. 한강이가 꼭 가야되느냐고 한다.
가고 싶지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내려오면서 '이제는 따라오지 않겠구나'
'아니, 그래도 재미있어' 내가 강제할 것은 무엇일까?
한결이는 이맘때의 나이에 지리산 천왕봉에 섰는데---
주차장에 돌아와 차문을 여니 2시 반이다.
벌교에 들러 어머님 생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증광마을에서 율어로 복내로 문덕 지나와 혼자 목욕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