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난번 글에서 한국무협에서 나타나는 중화주의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 글에서는 2004년인 오늘날에도 잔존하고 있는 그러한 성향을 지닌 글에 대해 회원 여러분과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묵향은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 무대가 무협과 환타지 세계를 오가는 소설입니다.
해당서는 그 무대의 변화가 있어서인지 과거의 3대 노마 식 무협에 비해서는 그 색채가 약하지만 여전히 짚어봐야 할 점들이 없지 않습니다.
본문에서는 우선 그러한 점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하겠습니다.
물론 '치쿠쇼'를 '칙쇼'로 쓰는 등의 문제점을 언급하는 것은 여기서는 그만두기로 하겠습니다.(해당서 17권 26쪽)
1. 주인공의 별호 암흑마제(暗黑魔帝)
당시 시대 강호인들이 주인공인 마교의 교주 묵향의 악명(?)을 나타내기 위해서 붙인 별호(별명)이라지만[본서 17권 81쪽] 당시 북송 시기라는 상황으로 보아 이는 다분히 문제가 있는 작법입니다.
당시 화북(華北: 이른바 북중국이라 불리는) 지역 정세를 잘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북송 서쪽 지역의 탕구트 족이 세운 서하(西夏)라는 나라의 군주 이원호가 1028년 황제로 자신의 직위를 격상하자 북송 정부가 이에 즉각 반발하여 양국 사이에는 전쟁이 벌어졌지요.
그런데 해당서에 보면 이원호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는 채 묵향이 "악명"일지언정 또한 강호인의 '별호'일지언정 암흑마제라 불리고 있습니다.
설령 사파나 마도라 해도 '중화인'이 제(帝)로 불리는 것이 오랑캐 족속보다는 낫다라는 혐의가 없지 않습니다.
2. 중화주의는 역사를 초월한다?
소설상에서는 북송의 황제를 조종하는 재상 채경과 그 채경을 조종하는 환관 동관 그리고 그 동관을 조종하는 정파무림의 한 실력자인 무영문의 여성 태상문주인 옥화무제 매향옥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 옥화무제에게 북송의 안위에 대해서 무영문의 총관이 논의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옥화무제는 총관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몽고를 이용할 수는 없을까요? 몽고인들은 아주 용맹한 유목부족이니 그들을 이용해서 요의 서북부를 공격하게 하고, 남쪽에서부터 어림군이 치고 올라간다면 어쩌면 승산이 있지 않겠어요?"(해당서 17권 90쪽)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몽골'과 키타이 요제국이 정면으로 대결했던 일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굳이 몽골 고원(오늘날 몽골 인민공화국 지역)에서 전투가 있었다면 그것은 서기 920년에 키타이 요 제국이 당시 몽골 인민공화국 지역에 있었던 키르키즈를 공격하여 패배시킨(즉 요제국의 승리라는 말입니다) 정도 외에는 여타 부족들과 아무런 충돌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앞의 말은 작가가 일정부분 다음 말에서 수정을 하지만 다음 말이 더 유의하여 보실 부분입니다.
(무영문의) 총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북송의) 옥영진 대장군이 몽고를 정벌한 이래, 아직까지 몽고를 통일할만한 실력자가 나오지 못했습니다. 분열된 몽고의 힘으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전에 (북송의) 진길영 원수가 요를 침공할 때 동원했던 여진족의 예가 있지 않습니까? 여러 부족을 끌어들인 결과 30만이나 되는 여진족을 끌어모았었지만, 전력에 크게 보탬이 되지는 않았었다고 들었습니다."(해당서 17권 90쪽 옥화무제의 위 문장에 대한 즉각적인 답변에서)
저로서는 너무나 엄청난 대답입니다.
일단 '몽골'을 '몽고'라는 표현을 쓴 것이야 그렇다고 하지요.
당시로서는 이른바 '창업'조차도 온전하게 아니되었던 몽골 울루스를 북송이 무슨 힘과 까닭이 있다고 정벌을 했을까요?
감숙성과 중국 몽골 자치주 서부의 서하한테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북송의 사정을 감안하면 북위의 태무제나 명대의 성조 영락제도 성공하지 못했던 몽골 인민공화국 지역 원정을 갔었다는 것부터가 의문입니다.
더구나 몽골을 공격하려 했다면 중간에 키타이 요 제국과 서하를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데 당시 북송이 그 정도 국력이 되었을까도 의문입니다.
키타이 요제국은 크게 세 지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키타이 제국의 중핵지역.
이른바 북송과의 국경을 이루고 있는 연운 16주 외에 시라 무렌(무렌은 강이라는 뜻) 지역과 요동반도를 포함하는 지역으로 키타이 요제국의 심장부인데 북송이 몽골 본토를 치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지역입니다.
키타이 요 제국 사람들이 바보들만 모이지 않은 바에야 공짜로 통과시켜줄 리 만무한 지역입니다.
둘째로 키타이 제국의 속령
대표적으로 속하는 지역이 바로 여진지역입니다.
만슈리아 동북부와 연해주 그리고 한반도 북부를 포함한 지역이지요.
역사에는 여진족 10만이 모이자 70만의 키타이 요제국 군대가 간단할 정도로 격파되었습니다.
한데 중원지역으로 즉 화북지역으로 와서 군사를 규합한 것이 아닌데도 30만을 끌어모았는데 전력에 크게 보탬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
셋째로 키타이 요 제국의 영향권
이에 해당하는 부족들이 바로 몽골 인민공화국 지역의 여러 몽골계 혹은 투르크계의 족속들입니다.
제목 그대로 그 지역은 키타이 요 제국의 영향권에 속한 만큼 북송이 영향력을 행사할 부분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함에도 위와 같은 설명이 나온 것은 대체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요?
그런 뜻에서 옥화무제의 대사는 작가의 혐의를 발명할 수 없게끔 해줍니다.
"동관에게 전서구를 띄우세요. 채 재상에게 지시해서 비밀리에 금과 동맹을 맺으라고 말이예요. 그리고 몽고 쪽으로도 사람을 보내서 세력이 큰 부족들이 있으면 포섭하라고 하세요. 몽고, 금과 협공을 가한다면 요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같은 책 92쪽)
저자가 스스로 자신은 역사에 밝지 못하다고 천명한 적이 있기는 합니다만 이것은 다분히 의구심이 아니 들 수 없습니다.
3. 전동조 작가여, 발해인은 어디에?
"예, 태상문주님. 그가 바로 완옌(完顔) 아구다(阿骨打)라는 자입니다. 아주 용맹한 전사로서 고려의 북쪽 완옌부를 본거지로 삼아 세력을 규합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진길영 원수가 대군을 이끌고 요를 정벌했을 때, 그와 함께 싸우면서 전략과 전술을 배웠다고 합니다. 제법 세력이 커지자 아예 "금"이라는 칭호를 쓰며 황제로 등극했다고 합니다."(같은 책, 91쪽)
아쿠타 즉 금 태조가 제위에 오른 것은 1115년의 일입니다.
진길영 원수야 원래 실존인물이 아니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략과 전술은 꼭 '중원'의 '중앙정부 장수'에게만 배워야 능사가 아닙니다.
정작 거란의 통치권 밖에서 살아온 생여진 출신인 자신이 거란의 통치권 안에서 살아온 숙여진을 통합하여 여진을 통일하는 것이 이상이었던 그에게 '제국의 꿈'을 심어주고 중요한 참모 역할을 했던 사람은 다름아닌 발해인 양박(楊朴)입니다.
양박은 군사력을 갖춘 쥬센(여진) 금 제국에 예제 등 행정적인 부분을 보강해줌으로서 단순한 부족들의 집합체가 아닌 명실상부한 제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입니다.
정복왕조에서 늘 그렇듯이 행정력이 정주민에 의해 보강이 되면 유목종족의 전투력은 초기 건국 단계에서는 상승하면 상승했지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해 쥬센군을 강화시킨 사람은 허구의 중원인인 옥영진이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 20여 년 전 북경을 중심으로 벌어진 요와의 대회전에서 패배한 송은 수많은 우수한 장군을 잃어야만 했다.(중략) 그래서 요는 북경을 중심으로 하는 연운 16주를 집어삼키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같은 책 100쪽)
이 문장만 보면 저로서는 마치 중국정부의 역사가들을 대하는 기분이 듭니다.
묵향 본문에서 드러나는 해당 시기(본문으로 보아 1115년이나 못해도 1030년 시기)보다 20년 전에는 북송이 연운 16주를 영유했던 것으로 나오는데 그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연운 16주는 당이 멸망한 이후 5대 국가들 중 하나인 후진(後晋)의 군주 석경당으로부터 키타이 요 제국이 후당(後唐)을 멸망시키고 936년 할양 받은 땅으로 알고 있습니다.(제 지식이 틀릴 수도 있을지 모르나 대체로 맞을 것입니다.)
물론 키타이 요제국과 연운16주를 두고 국지적으로는 밀고 당기는 격전이 북송 바로 이전의 왕조인 후주와 북송에게도 있었지만 화북의 양국이 유주라 부르고 키타이 요제국이 남경이라고 부른 오늘날의 북경은 936년 영유한 이래 키타이 요제국이 북송에게만큼은 절대 빼앗겨본 적이 없는 땅이었습니다.
물론 북송군이 오늘날의 북경을 엄중히 포위한 적은 있었지만 그것도 키타이 요제국에게 대패해서 도주하는 신세가 되었지요.
그런데도 북송이 1030년 이전 혹은 1115년 이전까지 연운 16주 특히 오늘날의 북경을 차지했었다고 하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저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5. 아무리 악비(岳飛)가 중원지역 전설의 명장이라지만...
[그 말에 악비 대장군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는 현재 어림군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북동원수부의 부원수들 중 한 명이었다.] (같은 책 101쪽)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악비는 농민출신으로 북송이 쥬센 금제국에게 멸망할 무렵 의용군에 응모하여 전공을 쌓은 인물입니다.
대체 해당서의 저자는 인터넷 한 번 검색해보면 드러날 거짓말을 왜 한 것일까요?
마치 어느 분의 어느 책에서 나오는 국민윤리 선생님을 연상케 합니다.
물론 해당서의 저자를 앞의 3대 노마(老魔) 작가들과 동일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작가 나름대로는 비판을 피할 표현법도 쓰고 있으니까요. 가령 104쪽의 '고려 황제'라는 표현은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밖에 나름대로 공감할만한 대목으로는 정파도 사파도 아닌 진팔(捌)이라는 사람의 다음과 같은 대사입니다.
"내가 여태껏 경험한 바에 의하면, 정파라는 것들은 대부분 겉으로는 광명정대한 척하면서도 뒤로는 나쁜 짓을 하는 놈들이더군. 특히 문파의 이익이 관계된 것이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지."(같은 책, 110쪽)
"사파라는 놈들은 아예 대놓고 나쁜 짓을 하는 쓰레기들이야. 특히 그중에서 가장 질이 나쁜 놈들이 마교 놈들이구."(같은 책 110쪽)
그렇다해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문주라는 것은 부족장과도 같은 것입니다. 제가 듣기로는 문파라는 것이 작게는 수십, 크게는 수만의 문도를 거느린다고 합니다."(같은 책 58쪽)
"그렇다면 고도로 무술을 연마한 무사 수만 명을 거느린 자라면 그 힘은 웬만한 부족장보다 월등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만한 단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자금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 만큼 문주가 되기 위해 사활을 거는 것이겠지요."(같은 책 58쪽)
어느 코쟁이 나라 '대부' 이야기나 중원의 어느 이웃나라 '주먹'의 '큰형님'도 아닌데 당시 북송의 인구가 아무리 많은들 '수만'의 문도를 모을 수 있었을런지는 알 수 없습니다.
출처만 확실히 밝혀주시면 올리셔도 좋습니다. 어차피 제가 글을 쓴 목적이 책의 장점만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문제점도 제기하는 것이니까요. 물론 묵향의 작가님은 역사문제로는 시비를 걸지 말라고 엄명을 내리신 것으로 압니다만 이것은 역사문제 이전에 지나친 중화주의의 만연이라는 혐의 제기입니다.
무협소설에선 대부분의 경우 아직도 남성에 순종하는 여성상,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는 수하들, 가장의 한마디에 모든 것이 결정나는 가정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이 옳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왕에 픽션임을 작가가 밝히고 있는 이상 굳이 학문적으로 파고들 이유는 없다고...^^;
알움님께 말씀드립니다. 중국사람이 쓰는 무협소설이라면 문제제기 자체가 없을 것이고 한국 무협도 묵향과는 다른 장르들이 현실적으로 얼마든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중화주의만을 우선으로 나오는 책들이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사례 차원에서 제시한 것입니다.
첫댓글 제 친구들은 묵향을 즐겨 보는데...^^;; 이글 묵향 싸이트에 올릴 수 있나요?
출처만 확실히 밝혀주시면 올리셔도 좋습니다. 어차피 제가 글을 쓴 목적이 책의 장점만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문제점도 제기하는 것이니까요. 물론 묵향의 작가님은 역사문제로는 시비를 걸지 말라고 엄명을 내리신 것으로 압니다만 이것은 역사문제 이전에 지나친 중화주의의 만연이라는 혐의 제기입니다.
소견입니다만...무협이라는 장르자체가 중원대륙이라는 배경... 이른바 고대소설의 특징으로 꼽히는 중국배경의 스토리 전개라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전 무협을 오랫동안 읽어왔는데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대화내용, 사상 등은 한결같이 지금의 것이 아닙니다.
무협소설에선 대부분의 경우 아직도 남성에 순종하는 여성상,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는 수하들, 가장의 한마디에 모든 것이 결정나는 가정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이 옳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왕에 픽션임을 작가가 밝히고 있는 이상 굳이 학문적으로 파고들 이유는 없다고...^^;
무협이라는 장르자체가 중원대륙이라는 배경... 이른바 고대소설의 특징으로 꼽히는 중국배경의 스토리 전개라는 특징 <- 꼭 그렇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알움님께 말씀드립니다. 중국사람이 쓰는 무협소설이라면 문제제기 자체가 없을 것이고 한국 무협도 묵향과는 다른 장르들이 현실적으로 얼마든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중화주의만을 우선으로 나오는 책들이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사례 차원에서 제시한 것입니다.
보잘 것 없는 소견이었습니다. 의도는 충분히 이해했구요...저 역시 단점을 옹호하려는 입장은 아니었습니다. 오해 없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