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일기(23)- 역답사(부산의 <화명역>/<구포역>)
1. 한반도 동남쪽의 대표도시 ‘부산’으로 왔다. 양산 지역에도 몇 개의 역은 있지만, 시간 간격이 적절하지 않아 다음 번 답사로 미룬다. 양산과 경계를 이루는 북부에 위치한 <화명역>은 역 주변의 풍경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평범한 도시의 역이다. 하지만 조금 더 걸어 나가면 멋진 답사길이 열린다. 낙동강을 따라 만들어진 자전거길과 도보길이 끝없이 연결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농촌의 시골길과는 다른 맛이지만, 도심의 여유와 걷기의 편의성을 제공하는 코스라는 점에서 ‘걷기’에는 최상의 조건을 갖춘 역이라 할 수 있다. ‘걷기 좋은 역’ 목록에 올린다.
2. 현충일 휴일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일군의 사람들이 배낭에 채를 하나씩 넣고 움직이고 있었는데, 강가에 조성된 파크 골프장으로 가는 모습들이었다. 중장년의 남녀들이 모여서 파크 골프를 치는 모습은 이제 익숙한 강가나 공지의 풍경이 되었다. 햇빛은 뜨겁지만 습기가 적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약 4시간 가깝게 걸었다. 어제 5시간 답사 이후 연속으로 장시간 걸으니, 조금 피로하다. 하지만 기분 좋은 피로감이다. <구포역>에 가기 위해 기다리던 플랫폼 대기실에서 깜빡 잠이 들 정도로 피로가 밀려왔다.
3. <구포역>에 도착했다. <부산역> 다음으로 부산에서 이용객이 많다는 곳이다. 역 바로 앞에는 도시철도 <구포역>이 보였다. 특별한 시설이나 건물은 없고 조금 떨어진 곳에 고층의 건물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가볍게 산책하기에는 코스도 적절하지 않고, 몸도 피곤하여 저녁을 먹기로 했다. 걷기를 통해 체력소모가 많은 날에는 여전히 ‘생맥주’가 생각난다. 평소에는 별로 마시고 싶지 않은 맥주도,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몸이 맥주의 생생한 쾌감을 요구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맥주와 치킨을 먹었다. 술이 기분 좋게 들어가는 날은 조금 걱정이 된다. 술을 마실 때 얻게 되는 쾌감과 마시고 나서 닥쳐오는 다음 날의 불쾌감이 항상 대조를 이루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상 유혹의 힘이 더 크다.
4. 생맥주 3잔을 마시고 역 앞에 앉아 기차를 기다렸다. 몽롱한 기분으로 바람을 맞으며 역에서 들리는 소리와 풍경을 듣는다. 노숙자들의 알 수 없는 웅엉거림과 송별하는 사람들의 과장되고 즐거운 표정과 인사들이 보이고,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 기사들의 억센 경상도 사투리가 기분 좋게 들려온다. 바로 앞에 도시철도역이 있어서인지 택시 이용객이 다른 역보다 적다. 한무리의 손님들이 역바깥으로 나왔지만 택시는 줄어들지 않는다. 일상의 대부분 사람들은 역대합실 내에서 기차를 기다리지만, 역 앞의 공터에 나오면 기다림의 시간은 더욱 풍성해진다. 그곳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좀 더 생생하게 살아있다. 여기저기서 뿜어대는 담배 연기도 삶의 한 풍경을 보태고 있었다. 천안에는 밤 12시 가까이에 도착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쫓기지 않는 것이 기차여행의 묘미다. 기차역에 내리면 곧바로 숙소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차에서 내려 2시간 이상 또다시 고달픈(?) 귀가 여행을 해야 하는 상황과는 달라졌다는 점이 요즈음 천안 기차여행이 주는 즐거움의 핵심일 것이다.
첫댓글 - 새로운 풍경과의 만남이 또하나의 기억으로 남는다. 걸을 수 있을 때 걷고, 마실 수 있을 때 마시고, 느낄 수 있을 때 느낀다는 것은 의미 그 이상의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