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景福34 제68차 文化遺産踏査; 昌德宮 熙政堂 벽화-國立古宮博物館
새해를 맞아 景福34回 戊戌年 첫 文化遺産踏査는 2018.01.09(火) 國立古宮博物館에서
특별전으로 전시하고 있는 <昌德宮 熙政堂 壁畵>를 관람하고 이어서 國立古宮博物館의
常設展示를 관람하였다.
10:30 국립고궁박물관 로비에 집결한 17명(부인 2명 포함)은 여전히 白九 同門의 안내와
해설로 文化遺産을 답사하고 中學洞에 있는 [한일관] ‘광화문 경복궁점’에서 午餐으로 답사를
마무리하였다.
國立古宮博物館에서는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內殿인 昌德宮 熙政堂(보물 815호)에 걸려 있던
朝鮮의 마지막 宮中裝飾畫 2점으로 熙政堂 좌우 벽에 걸려 있던 海岡 金圭鎭(1868~1933)의
<金剛山萬物肖勝景圖>와 <叢石亭絶景圖>가 보존처리를 마치고 97년만에 공개되고 있다.
두 작품은 朝鮮時代 眞景山水畵家들이 즐겨 그리던 소재인 金剛山을 화폭에 담았는데
金剛山萬物肖勝景圖는 화강암 봉우리가 모여 있는 강원도 高城의 萬物肖를,
叢石亭絶景圖는 關東八景 중 하나인 강원도 通川郡의 叢石亭을 그린 것이다.
*<창덕궁 희정당 벽화 특별전>은 지난 年末에 同窓會 홈페이지 <孤山코너>에 올린 바 있어
重複되지만 경복34회 제68차 문화유산답사의 일부를 省略할 수 없어
視角을 조금 다르게 하여 또 올리니 惠諒하여 주기 바라면서 사진을 올린다.
2018.01.12 孤 山 朴 春 慶
景福34 제68차 文化遺産踏査 國立古宮博物館(1): 昌德宮 熙政堂 壁畵
(01) 國立古宮博物館
(02) ‘先生님과 學生들’, 국립고궁박물관 로비에서
(03) 昌德宮 熙政堂 壁畵 포스터
전시기간: 2017.12.13(수)2018.03.04(일)
(04) 昌德宮 배치도, 熙政堂의 위치
(05) 昌德宮 熙政堂 -보물 제815호-
(06) 昌德宮 熙政堂
(07) 熙政堂, 大造殿, 景薰閣 벽화의 제작
(08) 熙政堂 벽화
(09) 大造殿 벽화
(10) 景薰閣 벽화
(11) 大衆에게 다가온 金剛山
(12) 金剛山과 江原道의 名勝
*關東八景
1. 通川 叢石亭 2. 高城 三日浦 3. 杆城 淸澗亭 4. 襄陽 落山寺
5. 江陵 鏡浦臺 6. 三陟 竹西樓 7. 蔚珍 望洋亭 8. 平海 越松亭
(13) 조선 금강산 사진첩[朝鮮 金剛山 寫眞帖] –도쿠다 도미지로[德田富次郞] 작
-도쿠다 사진관[德田寫眞館] 발행 –종이에 인쇄 -1913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1913년 德田寫眞館에서 金剛山 사진을 名所 別로 모아 발행한 사진첩이다.
叢石亭 사진은 水平構圖로 찍은 사진 4장을 연결하여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도록 收錄했는데,
당시 多樣한 사진첩이 간행되었으나 이렇게 叢石亭 전체를 표현한 예는 드물다.
바다에서 바라본 총석정 일대의 景觀으로, 돌기둥의 형태와 背景의 언덕까지 명료하게
볼 수 있다.
(14) 海岡 金圭鎭과 金剛山
海岡 金圭鎭
*金圭鎭(1868~1933) -平南 中和 출생 -號; 海岡∙白雲居士∙醉翁∙萬二千峯主人.
어려서부터 外三寸 李小南에게 글씨를 배우고 18세 때 淸나라에 유학하여 書畵의 名蹟을
연구하였다.
한국의 近代 書畵家로 篆書·隸書·楷書·行書·草書에 모두 妙境을 이루었으며 특히 大字를
잘 썼다.
山水畵·花鳥畵를 잘 그리고 특히 蘭竹은 절묘하였으며, 四君子도 즐겨 그렸다.
1896년 宮內府 外事課 主事로 임명되고, 이후 內藏院 주사, 禮式院 文書課長, 侍從院 侍從,
經理院 技師 등의 관직을 지냈으며 英親王 李垠에게 書法을 지도하는 書師에 임명되었다.
(*垠: 지경 은)
한국 최초로 사진술을 도입하고 御前寫眞師가 되었다.
著書에 <海岡蘭竹譜>∙<六體筆論>∙<書法眞訣>∙<金剛遊覽歌>, 작품으로는 글씨에
<起法菩薩>∙<天下奇絶>∙平壤 浮碧樓의 <錦繡江山>∙平壤 永明寺의 <大雄殿>∙
扶餘 <白馬長江>∙晋州 <矗石樓>∙陜川 海印寺의 <伽倻山海印寺>∙서울 鐘閣 <普信閣>∙
昌德宮 <熙政堂 大造殿>∙德壽宮 <太極殿>이 있으며, 그림은 昌德宮 熙政堂 壁畵
<外金剛萬物相圖>∙<瀟湘大竹圖>∙<大富貴吉祥圖>등이 있다.
(*訣: 이별할 결 *矗: 우거질 촉 *瀟: 맑고 깊을 소)
(15) 천하기절[天下奇絶] -金圭鎭 작 -20세기 초 –종이에 먹과 담채 –개인소장
금강산 萬物相 입구에 있는 三仙巖을 부채[扇面]에 그린 작품이다. (*扇: 부채 선)
乾燥하고 가는 筆致로 奇異하게 솟은 모양의 바위를 묘사하고 녹색이 살짝 도는 옅은
먹으로 渲染하였다. (*渲: 바림 선)
‘天下奇絶’이라는 제목을 쓰고 왼쪽에 ‘爲金剛飴龜屋主人(위금강이귀옥주인)/금강산을
그려 구옥주인에게 준다.’라고 썼다. (*飴: 엿 이)
*渲染: 東洋畵에서 畵面에 물을 칠하여 마르기 전에 붓을 대 몽롱하고 沈重한 妙味를
나타내는 技法.
(16) 총석정도[叢石亭圖] -海岡 金圭鎭 -20세기초 –비단에 먹과 채색 –개인소장
海岡 金圭鎭이 叢石亭 일대의 높게 솟은 돌기둥을 클로즈업하여 그린 작품이다.
돌기둥과 물결, 돌기둥 사이로 보이는 山의 윤곽선을 표현한 筆致와 彩色技法이
熙政堂 벽화 <叢石亭絶景圖>와 거의 비슷하며, 벽화가 제작된 1920년 또는
조금 뒤에 그린 것으로 보고 있다. (*叢: 모일 총)
화면 오른쪽 上端에는 七言詩를 적고 ‘萬二千峰主人’이라고 自號하였다.
(17) 叢石亭圖의 七言詩
七言詩
奇石怪岩千萬叢(기석괴암천만총) / 기이한돌과 바위 천만 겹이니
自然雕啄出天工(자연조탁출천공) /자연스러운 조탁은 하늘이 빚어낸 것이로다.
應是龍宮建築後(응시용궁건축후) / 응당 용궁을 지은 후에
更將餘者積波中(경장여자적파중) / 남은 것을 저 파도 속에 쌓은 것이라네.
-萬二千峰主人(만이천봉주인) 海岡(해강)이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다-
*彫(雕)啄: 보석과 같이 단단한 것을 새기거나 쫌. 문장이나 글 따위를 매끄럽게
다듬음. (*雕=彫: 새길 조 *啄: 쫄 탁)
(18) 海岡 金圭鎭과 金剛山 刻字
(19) [彌勒佛] 刻字. 九龍瀑布 옆 巖壁
*九龍瀑布: 폭포의 높이 74m, 너비 4m이며, 일명 衆香瀑布라고 한다.
구룡폭포는 雪嶽山의 大勝瀑布, 開城 大興山城의 朴淵瀑布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폭포 중 하나이다.
金剛山 十二瀑布∙飛鳳瀑布∙朝陽瀑布와 함께 금강산 4大 名瀑의 하나로
웅대하고 경치가 뛰어나 으뜸으로 꼽힌다.
폭포 위에는 여덟 개의 맑고 푸른 못이 層層으로 上八潭이 있으며, 이곳은
‘金剛山 八仙女’의 傳說로 유명한 곳이다.
폭포 앞 넓은 바위에는 ‘千丈白練 萬斛眞珠(천장백련 만곡진주)/
천길 흰 비단 드리웠는가 만 섬 진주 알을 흩뿌렸는가’라는 新羅 末
孤雲 崔致遠(857~?)의 詩句 刻字가 있고, 폭포 우측 바위 벽에는 海岡 金圭鎭이
1919년에 새긴 <彌勒佛> 刻字가 있다. (*斛: 휘 곡)
(20) [彌勒佛] 刻字 -海岡 金圭鎭의 글씨 -2007.09.19 촬영사진-
觀瀑亭에서 九龍淵 건너로 본 九龍瀑布 옆 巖壁 <彌勒佛> 刻字
(21) [釋迦牟尼佛] 刻字. 萬瀑洞 盤石
金剛山 表訓寺 주최로 萬瀑洞 盤石 위에 [釋迦牟尼佛] 큰 글씨로
다섯 글자를 새기고자 하여 海岡 金圭鎭 氏에게 請하여 썼다.
–每日申報 1920.07.02 記事-
(22) [天下奇絶] 刻字. 萬瀑洞 珍珠潭 盤石 -金圭鎭 작 -20세기 초
–종이에 먹과 담채 –개인소장
금강산 萬物相 입구에 있는 三仙巖을 부채[扇面]에 그린 작품이다. (*扇: 부채 선)
乾燥하고 가는 筆致로 奇異하게 솟은 모양의 바위를 묘사하고 녹색이
살짝 도는 옅은 먹으로 渲染하였다. (*渲: 바림 선)
‘天下奇絶’이라는 제목을 쓰고 왼쪽에 ‘爲金剛飴龜屋主人(의금강이귀옥주인)
/금강산을 그려 구옥주인에게 준다.’라고 썼다. (*飴: 엿 이)
*渲染: 東洋畵에서 畵面에 물을 칠하여 마르기 전에 붓을 대 몽롱하고
沈重한 妙味를 나타내는 技法.
(23) [法起菩薩] 刻字. -法起峰 주변 -每日申報 1920.04.23 기사
*法起菩薩 (*菩: 보살 보 *薩: 보살 상)
<華嚴經>에 따르면 법기보살은 金剛山 1만 2천 봉우리마다 머무르고는
菩薩들의 우두머리이다. <小品般若波羅蜜經>에는 금강산의 衆香城에
머문다고 했는데, 우리나라 금강산에는 실제로 법기보살에 얽힌 설화가 전한다.
고려 忠肅王 때 閔漬가 지은 <金剛山楡岾寺事蹟記>에는 신라의
高僧 義湘이 五臺山을 거쳐 金剛山을 찾았을 때 曇無竭菩薩이 나타나
“五臺山은 修行이 있는 사람들만 世間의 티끌을 벗어날 수 있는 땅이다.”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中國에서 法을 펴던 印度 승려 指空도 고려시대에 금강산에 들어와 함께
지냈다고 하며, 조선의 世祖도 죽기 전에 금강산에 올라 담무갈보살에게
참배를 했다고 전한다. (*漬: 담글 지 *曇: 흐릴 담 *竭: 다할 갈)
(24) 金圭鎭의 金剛遊覽歌 -김규진 –회동서관 발행 -1920년 –종이에 인쇄
–연세대학교 국학자료실 소장
<每日申報>에 1919.12~1920.01에 연재한 海岡 金圭鎭의 金剛山 紀行歌辭
<金剛遊覽歌>를 모아 單行本으로 匯東書館에서 출판하였다. (*匯: 물 돌아나갈 회)
금강산 名所에서 느끼는 감정을 空間과 時間의 이동에 따라 간결하게 敍述하였으며,
중간중간 금강산의 絶景에 대하여 讚嘆하는 漢詩를 삽입한 것이 특징이다.
紀行歌辭 외에도 探勝路程略圖와 스케치, 여행에 필요한 준비물 등을 수록하여 단순한
旅行記가 아닌 금강산 관광을 위한 案內書로 意圖했음을 알 수 있다.
(25) 要旨(요지)
本書의 要旨는 京城(漢陽)에서 기차로 출발하여 平康驛을 經由, 자동차로
長安寺에 처음 도착하여, 內金剛∙外金剛∙三日浦∙叢石亭의 絶景을 두루 보고,
돌아오는 길에 庫底港에서 배를 타고 출발하여 바다를 따라 元山港 內를
살펴보고 明沙十里의 아름다운 경치와 釋王寺의 뛰어난 자취를 한길로
지나며 본 歌詞인바….
(26) 외금강 만물초도[外金剛 萬物肖圖]
(27) 내금강 보덕암도[內金剛 普德庵圖]
*表訓寺 普德庵은 6세기 중엽인 고구려 安原王 때 승려 普德이 創建했다고
하며, 지금의 건물은 朝鮮 肅宗 元年(1675)에 건립하고, 純祖 8년(1808)에
重修 하였다.
보덕암에는 원래 자연동굴인 普德窟 앞을 막아 벼랑 벽에 세운 보덕암
本殿과 보덕암 위의 평평한 곳에 정면 3칸(6.49m), 측면 1칸(3.47m)의
요사채 判道房이 있었으나 판도방은 남아있지 않고, 보덕굴로 내려가는
층대만 있다.
보덕암은 보덕굴 앞 바위에 의지하면서 높이 20m가 넘는 절벽 중간에
7.3m의 구리기둥 하나로 받쳐 세운 정면 1칸, 측면 1칸의 건물이다.
(28) 金剛遊覽歌. 漢詩가 포함된 紀行歌辭
(29) 金剛山旅行 準備一覽表(왼쪽)-探勝路程 里數表
=金剛山旅行 準備一覽表: 금강산 여행의 준비물
=探勝路程 里數表: 出發地부터 到着地까지 각 지점간의 探勝距離
(30) 사진으로 보는 1920년대 金剛山旅行 -朝鮮金剛山交通大鳥瞰圖 (*瞰: 굽어볼 감)
–요시다 하츠사부로[吉田 初三郞] -1929년 –종이에 인쇄 –성균관대학교박물관 소장
밝은 圓으로 표시된 名所(왼쪽부터); 萬瀑洞∙普德窟–望軍臺-九龍淵∙八潭-萬物相-
海金剛-叢石亭
(31) 金剛山 萬物相 - 叢石亭
=萬物相: 外金剛 天仙溪에 있는 바위절벽으로 萬物의 형상을 다 갖추고 있다고 ‘萬物相’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하느님’이 萬物을 창조할 때 시험 삼아 초 잡아 보느라고 만든 것이
만물상이라고 일러오며 이로부터 일명 ‘萬物草’라고도 한다. 만물상은 천하명승
금강산의 절경들 중에서도 기묘한 바위들의 집결처로 이름나 있다.
=叢石亭: 江原 通川郡 庫底邑 叢石里 바닷가에 있는 樓亭으로, 바다 위에 빽빽이 솟아 있는
돌기둥[叢石] 위에 세워 총석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叢石 중 바다 가운데 있는 四石柱를 특히 四仙峰이라고 하는데, 新羅의 述郞∙永郞∙
安詳郞∙南郞의 네 仙徒(花郞徒)가 이곳에서 놀며 경관을 감상하였다는 전설에서
이름하였다고 전한다.
총석들은 玄武巖이 오랜 세월 비바람과 파도에 부딪혀 그 面이 갈려져 떨어지면서
6각형∙8각형 등 여러 가지 모양의 돌기둥들이 장관을 이룬다.
총석정은 關東八景의 하나로, 이곳의 절벽과 바위가 신기하고 아름다워 이곳을
‘通川金剛’이라고도 하며, 해돋이구경이 絶景이라고 하였다.
(32) 海金剛
外金剛 동쪽 東海岸에 있으며, ‘海金剛’이란 이름은 경치가 금강산을 닮았다고 하여
조선후기의 文臣 南宅夏가 지은 것이라고 한다. 三日浦와 南江 하류에서 북쪽으로는
金蘭窟·叢石亭 일대와 남쪽으로는 永郞湖·花津浦에 이르는 약 30㎞ 구간이다.
(33) 九龍淵 위 上八潭
*금강산 毘盧峰에서 동쪽의 九龍臺 아래는 화강암으로 된 계곡에 크고 작은 못(潭)들이
층층으로 여러 개 있는데 그 중에 큰 것 8개를 ‘八潭’이라고 하며, 九龍瀑布 의 웃골에
있기 때문에 妙香山 萬瀑洞의 八潭과 구별하기 위하여 上八潭이라고 부른다.
이곳의 경치가 신비로워’金剛山 八仙女’ 傳說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34) 普德窟
*보덕암에는 원래 자연동굴인 普德窟 앞을 막아 벼랑 벽에 세운 보덕암 本殿과 보덕암 위의
평평한 곳에 정면 3칸(6.49m), 측면 1칸(3.47m)의 요사채 判道房이 있었으나 판도방은
남아있지 않고, 보덕굴로 내려가는 층대만 있다.
보덕암은 보덕굴 앞 바위에 의지하면서 높이 20m가 넘는 절벽 중간에 7.3m의 구리기둥
하나로 받쳐 세운 정면 1칸, 측면 1칸의 건물이다.
(35) 萬瀑洞
*金剛門으로부터 火龍潭까지의 1.2km 구간으로 中生代 쥐라기에 貫入된
화강암이 新生代의 斷層運動 후 오랜 기간의 침식작용으로 형성되었다.
금강산 중에서도 계곡의 절경을 대표하는 구역으로 수많은 폭포와 沼들이
있다고 ‘萬瀑洞’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萬瀑洞의 폭포들은 각기 독특한 모양과 전설들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봄과 가을엔 꽃과 단풍이 어울려 더욱 아름다운 경치를 이룬다.
(36) 望軍臺 -높이 1,331m
전설에 의하면 敬順王의 太子가 父王의 명령대로 首王城을 쌓고 날마다 이 봉우리에 올라
삼억동에 주둔한 敵의 군사를 살폈는데 이 때문에 봉우리 이름을 ‘望軍臺’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전설에는 고려에 투항하는 敬順王을 따르지 않고 금강산에 들어온 麻衣太子가 자기를
잡으려고 삼억동에 온 高麗軍士들을 살피기 위하여 올랐던 봉우리이므로 ‘望軍臺’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봉우리가 매우 높다 하여 일명 ‘望高臺’라고도 부른다.
金剛山圖의 傳統
神秘로운 絶景으로 유명한 金剛山은 菩薩이 居하는 佛敎의 聖地이며 선비의 修養處로 오랜 세월
推仰 받으며 다양한 文學과 美術의 主題가 되었다.
金剛山圖는 高麗時代에는 禮拜圖로, 朝鮮中期 이후에는 紀行寫景圖로 많이 그렸다.
朝鮮後期 眞景山水畵의 주요 素材로 다양한 형식과 畵風의 金剛山圖가 등장하는데,
謙齋 鄭敾(1676~1759)은 금강산 그림의 典型을 創出했으며, 檀園 金弘道(1745~?)는
正祖의 命으로 금강산에 가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近代의 金剛山圖는 西歐的 寫生風景畵로 변모하게 되는데, 新∙舊畵法이 통합된 海岡 金圭鎭의
<叢石亭絶景圖>와 <金剛山萬物肖勝景圖>는 그 대표적인 例이다.
(37) 檀園 金弘道의 [叢石亭圖], ‘海山圖屛’ 중에서 -김규진 –회동서관 발행
-1920년 –종이에 인쇄 –연세대학교 국학자료실 소장
(38) 謙齋 鄭敾의 <叢石亭>, ‘辛卯年 楓嶽圖帖’ 중에서 -17~18세기 –비단에 채색
-37.8cm X 37.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39) 蕤堂 金夏鐘의 환선구지망 총석도[환선구之望 叢石圖] ‘海山圖帖’ 중에서 (*蕤: 꽃 유)
(40) 총석정 절경도[叢石亭 絶景圖] –등록문화재 제240호- -195cm×880cm
*1920년경 당대 최고의 書畵家 海崗 金圭鎭이 52세에 그린 山水畵 大作으로 熙政堂
동쪽 벽을 장식하였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와 海金剛을 바라본 광경을 그린 것으로, 畵幅 중앙의 산 언덕 위에
여러 그루의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叢石亭의 모습이 壯觀을 이룬다. 뒤로는 산봉우리를
배경으로 바다에 솟아 있는 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으며 圖案化된 방식으로 물결을
표현하였다.
그림의 좌측 상단에 ‘叢石亭絶景’이라 쓰고 이와 수직 방향으로 ‘金圭鎭 謹寫’라고 썼다.
(41) 叢石亭 絶景圖 중간(오른쪽)부분
(42) 叢石亭 絶景圖 중간(왼쪽)부분
(43) 금강산 만물초 승경도[金剛山 萬物肖 勝景圖] –등록문화재 제241호-
*1920년경 當代 최고의 書畵家 海崗 金圭鎭(1868~1933)이 52세에 그린 195cm×880cm
크기의 山水畵 大作으로 昌德宮 熙政堂 접견실의 서쪽 벽면에 그린 벽화로, 동쪽 벽의
<叢石亭絶景圖>와 함께 양쪽 壁을 장식하고 있다.
萬物肖는 各樣各色의 화강암 봉우리가 모인 奇巖怪石群으로 外金剛을 대표하는 絶景으로,
세상만물의 모양을 모두 담고 있는 것 같다고 명칭이 유래되었다.
純宗의 命으로 그린 그림으로 金剛山을 여행하면서 그린 草本을 바탕으로 금강산의 氣勢와
빼어난 絶景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옮기는 畵法으로 그렸으며 裝飾的 寫實主義에 충실했다.
금강산의 가을 모습을 毘盧峯을 중심으로 약간 위에서 내려다본 듯한 角度로 그린 것으로
金剛山 一萬二千峰을 모두 畵幅에 담고 있는 듯하다.
그림의 좌측 상단에 가로로 ‘金剛山萬物肖勝景’이라고 썼으며, 이 벽화와 <叢石亭絶景>에만
끝에 ‘金圭鎭 謹寫’라고 쓴 것을 보면 두 폭을 한 쌍처럼 생각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44) 金剛山 萬物肖 勝景圖 중간부분
(45) 海金剛 叢石圖 -金圭鎭 작 -1920년 –종이에 먹과 채색 -個人 所藏
1920년 여름 海岡 金圭鎭이 熙政堂 벽화제작을 의뢰 받고 이를 준비하기 위하여 금강산을
돌아보고 그린 작품이다.
題跋文의 내용대로 배를 타고 나가 바다 쪽에서 보이는 叢石亭의 全景을 수평으로 펼쳐
긴 화면에 그렸다. (*跋: 밟을 발)
簡潔한 筆線을 활용하고 넓은 바다를 餘白으로 처리한 점 등은 草本으로서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朝鮮 金剛山 寫眞帖>(1913)에 수록된 叢石亭 사진과 비교해 보면 돌기둥과 언덕,
나무 등 景物의 배치와 형태가 실제 景觀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6) 해금강 총석도[海金剛 叢石圖] (오른쪽부분부터 1)
(47) 해금강 총석도[海金剛 叢石圖] (부분 2)
(48) 해금강 총석도[海金剛 叢石圖] (부분 3)
(49) 해금강 총석도[海金剛 叢石圖] (부분 4)
(50) 해금강 총석도[海金剛 叢石圖] (왼쪽부분)
題跋文
庚申初夏 因昌德宮熙政堂壁畵事 奉命入金剛之路 經到通川庫底 登叢石亭
觀水石之天下絶勝 駕小舟寫其全景起草 轉向金剛周覽 名勝各處數幅
而歸家乃引伸模寫 此畵及萬物肖全景 進獻掛御壁 留此草本以 供後人之記念
-海岡- (*駕: 멍에 가 *掛: 걸 괘)
(경신초하 인창덕궁희정당벽화사 봉명입금강지로 경도통천고저 등총석정
관수석지천하절승 가소주사기전경기초 전향금강주람 명승각처수폭
이귀가내인신모사 차화급만물초전경 진헌괘어벽 유차초본이 공후인지기념
-해강-)
경신년 초여름 昌德宮 熙政堂 벽화 일로 인하여 명을 받들고 金剛山에 들어가는 길에
通川郡 庫底面에 이르러 총석정에 올라가 水石이 천하에 絶勝함을 보고 작은 배를 타고
그 全景을 그려 草本을 만들었다.
다시 금강산으로 향하여 그 名勝 各處를 돌아보고 몇 폭을 그려 집에 돌아와 이를 확대해
그렸다.
이 작품과 萬物相 全景을 나라에 바쳐 宮 안벽에 걸고 이 草本은 남겨 후세의 기념으로
한다 –해강-
-景福34 제68차 文化遺産踏査 國立古宮博物館 常設展示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