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열차에서 만난 여명
하노이에서 후에로 가는 야간열차.
13시간을 달린다.
NAMja는 NAM...^^
신역의 개찰구가 보인다.
저리 들어왔어도,
철도를 건너 짐을 찾을 수 있었는데...
4인 1실 침대칸 열차인데,
깨끗한 차량이었다.
그런데, 올해 이 기차를 탔던 친구는,
바퀴벌레 나오고 지저분해서 잠을 잘 수 없었다고...
우리가 운이 좋았던거다.
역사에서 길을 안내하겠다고 젊은이가 앞장섰는데,
객실에 도착하니 팁을 요구한다.
안내가 필요 없는 길이었는데.
괘씸한 놈~~
머리 맡엔 USB포트와 독서등이 있다.
건널목마다 늘어선 오토바이 구경하다가,
잠이 들었다.
동이 트기 전에 잠에서 깼다.
새벽 풍경이 아름답다.
셔터 소리로 같은 방 승객을 괴롭힐 것 같아서,
복도로 나왔다.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Recuerdos de la Alhambra
by Francisco Tárrega
연주 : Ana Vidovic
밝은 아침이 되면서,
모두 일어났다.
걸어서,
오토바이 타고,
자전고 타고,
일터로 가는 사람들...
건널목에는 오토바이가 모여들기 시작한다.
이렇게 풍요한 대지가 있는데,
가난하게 살았던 이유가 뭘까 ?
이런 자원을 노린 외세의 침략,
중국, 프랑스, 일본, 미국...
독립과 통일을 위한 전쟁이 계속되고,
(공동묘지)
그들의 끈기로 독립과 통일을 이뤘지만,
통일 이후의 내부 혼란과 외부와의 단절로
살기 어려웠을거란 생각이 든다.
거기에 캄보디아로 쳐들어가기까지 했으니...
일본 점령기에는 미곡수탈과 산업용 작물 생산을 강요한 정책,
홍수, 제방 파손으로 인해 심각한 기근이 발생했고,
북부 베트남 1천만 인구 중 2백만 명이 기아로 사망했다.
1975년 통일된 베트남은
캄보디아와 국경 문제로 전쟁을 하게 된다.
캄보디아를 지지하던 중국 공산당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주도로 무역이 금지되는 등,
베트남의 경제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이에 정부는 1986년,
개혁이라는 의미의 '도이 머이' 정책을 도입하여
경제를 개방하고 수출에 힘쓴다.
이후 무역 활동이 활발해지고
서구 국가들과의 관계도 정상화되었으며,
1995년에는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EAN),
1998년에는 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APEC)의 회원이 되어
급속한 발전을 이루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베트남의 역사
(베트남에서 보물찾기, 2009., 곰돌이 co., 강경효)
북한도 저런 것을 배워야하는데...
중간 역에 도착했다.
승무원이 아침 식사를 하며 숨을 돌린다.
우리는 기차에서 샌드위치를 주문해서 먹었다.
우리 농촌보다 살기 좋아 보인다.
뒤에 산맥이 보인다.
베트남은 3/4이 산악지대이고,
산맥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어서,
안데스산맥을 낀 칠레와 같이 남북이 긴 나라가 됐다.
자연히 서고동저의 땅이 됐고,
서에서 동으로 많은 강이 흘러서,
'물의 나라'라 부른다.
물이 많으니 논 농사가 활발하고,
쌀 수출국이 되었다.
베트남을 종단하면서,
창 밖의 비옥한 대지를 보고,
가난한 나라라는 선입견이 깨지고,
바쁘게 사진을 찍을 수 밖에 없었다.
늦게까지 잠을 자던
옆 침대 손님도 잠에서 깼다.
굿모닝~~^^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의 향수가 떠오르는 풍경이다.
향수
이동원 박인수
목욕하는 물소.
빠른 속도로 달리는 기차에서,
이런 순간을 포착하는 것은 어렵다.
미리 내다보고 있다가,
표적이 나타나면 조준을 하고 기다린다.
흔들림을 줄이기위해,
1/800초의 빠른 셔터스피드로~~^^
정말 물이 많은 나라다.
도시가 나오는걸 보니,
종착역이 가까워졌나보다.
뜨거운 물을 보니,
컵라면 생각이 난다...^^
후에역에 도착했다.
앞서가는 동료는
발목을 다친 상태로 여행을 와서 고생을 많이했다.
기차역에서 버스을 타고 '후에' 관광을 했다.
향강(Perfume River)에서의 보트투어
향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티엔무 사원(Thien Mu pagoda).
뒤에 보이는 7층 석탑은 베트남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탑의 각 단에는 불상을 모셨다.
베트남 전쟁 당시 독재 정권에 항의하며,
이곳의 스님이 분신자살 했다고한다.
특이한 모습의 열매가 보인다.
두리안과 비슷한데, 약간 다르다.
'잭 프루트(Jack Fruit)'
베트남에서 먹어야 할 과일 중 하나인데,
우리는 먹지 못했다...^^
향강과 티엔무 관광을 마치고,
황궁(Imperial Citadel)에 도착했다.
후에는 1802년부터 1945년까지 베트남의 수도였다.
1802년 자롱이 응우옌 왕조를 세우고
베트남 전역을 통치하게되면서,
후에는 베트남의 수도가 되었다.
1945년 황제 바오다이가 퇴위당하고
공산 정부가 출범하자
하노이가 수도로 승격된다.
1949년 프랑스와 합작한 황제가 복권을 시도했지만,
이미 민심은 황제를 떠난 후였다.
1968년 구정 대공세 때,
미군의 폭격으로 역사적인 유적이 파괴되고,
공산주의 세력에 의하여,
'후에 대학살'이 자행되면서 도시는 폐허가 됐다.
전쟁이 끝나고 난 뒤에도
상당 기간 동안 "봉건 시대의 유산"이라는 이유로,
잊혀진 도시로 방치되었다.
Nhã Nhạc cung đình Huế - Di sản văn hóa nhân loại
Lưu Thủy Kim Tiền - Xuân Phong Long Hổ - Ban Nhạc Trúc Xanh
‘후에 아악’ (Nhã nhạc cung đình Huế)
옛 응우옌 왕조의 궁에서 궁중음악이 연주되었지만,
제정의 폐지로 전통이 단절되었다가,
소수의 후계자가 살아있는 것이 알려지면서,
궁중음악 전승자 육성을 재개하였다.
2003년에 궁중음악과 전통무용이
‘후에 아악’(Nhã nhạc cung đình Huế)으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후에 투어를 마치고 호이안으로 향한다.
2018.08.07
첫댓글 역사까지 공부하고 여행하는구나.
처음 보면 궁금해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