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재자 투표, 반드시 해서 선거혁명 이룹시다!!
8.15 민족해방 이후 일제 앞잡이 노릇을 한 민족 반역자들에 대한 준엄한 역사적 심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결과, 매년 민족반역자 청산문제가 항상 도마위에 올라왔지만 별다른 진척이 없어 무기력감에 빠져들게 했다. 민족 반역자들이 해방 후 미군정에 빌붙더니 어느새 반공주의자가 됐다. 이들은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한 좌-우 민족주의자들, 사회주의자들을 빨갱이로 내 몰아서는 자신들의 반민족 반역질을 자행한 만행들을 은폐시키고 도리어 독립운동가로 자처했다. 이것이 가능토록 한 이승만 독재정권과 민족반역세력들에 대한 역사적 청산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일제의 침략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1935년-1944년 10년 시기에 경상도 어디선가에서 면장질을 했다는 애비가 다른 이유가 아닌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면장을 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애비에 대한 친일진상조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친일후예에게서 어떻게 민족의 정기를 되살리길 기대하겠는가. 민족반역자들과 그 후예들이 아직도 이 사회에서 지배적 권력을 가지고 있는 현실적 상황을 타파하지 않고서는 매년 3.1절마다 반민족 매국 행위를 자행한 반역자들에 대한 역사적 청산요구는 반복될 것이다.
변절자, 기회주의자, 간신은 사실 같은 말이다. '간'과 '거짓'은 직접적, 본질적, 필연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다. '간' 자체가 거짓을 포함하고 있으며, 거짓은 또 몸을 돌려 '간'을 위해 봉사하기 때문이다. '간'은 '거짓'의 핵심이며, '거짓'은 '간'의 외피가 되는 것이다. 간신배, 소인배 치고 거짓행위를 하지 않는 자는 하나도 없다. 거짓스러움에 익숙해져 있는 자들이다.
기회주의자들은 오로지 이익을 위해 일을 꾀하며, 권력을 목숨처럼 소중하게 생각하며 권력만을 탐할 뿐이다. 즉 기회주의자들의 철학이나 정치적 이상의 궁극적인 토대는 바로 사리사욕에서 출발한다. 기회주의자와 민족 반역자들은 본시 변절자로서 일신의 사리사욕과 가족의 영광을 위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민족과 공화국의 시민들의 이익을 외면하고 오로지 자신의 목적달성만 추구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광수, 최남선, 서정주 등과 같은 변절한 지식인들은 역사의 기회주의자로서 자신의 문학적 천재성에 깃들인 영혼을 팔아 치우면서까지 조선의 청년학도들을 제국의 군대에 학도병으로 나갈 것을 앞장서서 선전선동했다. 또한 가난한 조선의 딸들을 일본 군대의 위안부로 강제로 보내는데 앞장섰다. 이와 같은 행동은 오직 자신의 이익과 권력만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사리사욕에 눈이 먼 기회주의자들은 염치없고 부끄러움조차 모른다. 정신병자처럼 권력만을 쫒고 권력을 가지지 못하면 늘 조바심을 낸다. 이들 기회주의자의 영혼에는 이성과 의리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면 사리사욕과 권력을 위해서 영혼을 팔아먹었기 때문이다.
1937년 이후 일제는 우리민족에 대한 황국신민화 정책을 더욱 노골화했다. 일제는 이광수를 비롯한 온건하고 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을 용도폐기하기 위해 온건론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했다. 1941년 고등법원 상고심에서 무죄로 풀려 나올 당시에 이광수는 공판정에서 눈물을 좔좔 흘리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로 '나는 천황폐하의 赤子이다'라고 진술하였는데, 이 말에 놀라버린 일본인 검사왈
'이놈아! 네가 어째서 일본 천황폐하의 적자란 말인가. 러시아 사람 앞에서는 공산주의자라고 하겠지, 이놈아! 너는 이때까지 민족주의자로 행세하지 않았느냐. 네가 그렇게 지도한 청년들에 대한 책임으로 보더라도 어떻게 뻔뻔스럽게 천황폐하의 적자라고 하느냐'라고 면박을 주었다니 참으로 웃지 못 할 광경이었던 것 같다.
이 과정에서 이광수는 눈물을 흘리며 몇 번이고 자신은 천황폐하의 적자라고 되뇌였는데 이 모습을 방청석에 보고 있던 그의 숭배자들은 환멸과 비애를 느꼈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친일로 전향한 덕택에 2심에서 5년형을 받은 이광수는 고등법원 상고심에서 무죄를 받은 주요한과 함께 무죄방면되었다. 당연히 무죄의 대가는 친일서약이었음은 안 봐도 비디오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광수가 무죄방면된 후에 자신의 서재 머리 위에 일장기를 걸어놓고 아침저녁으로 묵례를 하였다고 한다. 또한 남대문을 지날 때는 두 손을 합장하며 조선신궁을 향해 묵도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 천황이 화제에 오를 때에는 아주 경건한 태도로 무릎을 꿇었고 정좌를 하였다는 일화들이 있다.
<유후론(유후론)>중에서 천하의 용기있는 이들에게 소동파가 내린 주석을 보면 '옛부터 지금까지 호걸들에게는 반드시 남다른 절개와 용기가 있었다. 필부는 모욕을 당하면 칼을 빼들고 달려들어 온 몸으로써 싸우는 데, 이는 용기라 할 수 없다. 천하에 용기있는 자는 의연하여 놀라지 않으며 아무 까닭없이 화를 내지 않는다. 이는 그의 속마음과 생각이 깊고 아주 멀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은 기회주의자 내지 변절자들의 본질적인 속성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변절은 기회주의자의 기본적인 덕목이자 원칙이다. 본시 기회주의자들은 변절을 통해서 생존의 법칙을 터득하기에 변절의 덕목을 갖추지 않고서는 기회주의자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이광수가 창씨 개명한 경위를 보면 일반 조선민중들과는 너무도 다르다. 조선민중들이 일제의 총칼이 무서워 마지못해 창씨개명을 하고 있을 때 이광수는 '창씨와 나'라는 글속에서
'지금으로부터 2천 6백 년 전 진무천황께서 어랑위(御郞位)를 하신 곳이 강원인데 이곳에 있는 산이 향구산입니다. 뜻 깊은 이 산 이름을 따로 삼아 향산이라고 한 것인데 그 밑에다 광수의 광자를 붙이고 '수'자는 내지(內地)(내지란 일본본토를 말함)식의 '랑'으로 고쳐 향산광랑(香山光郞)으로 한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광수는 이미 골수에까지 친일정신이 박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름대로 총명한 재주와 지능을 갖고 있는 이광수와 같은 기회주의자들이 이 사회에 끼치는 해악은 너무나도 크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나라당 김용균의 父가 1935년에서 1944년까지 면장질을 10년이나 한 시기는 민족주의자로 자처한 이광수가 두 번씩이나 확고한 친일로 거듭나는 변절을 한 시기와 같다. 천하의 이광수가 일제에게 충성을 다짐하고 나는 천황폐하의 적자라고 하였는데 일본인도 아니면서 식민지 식민으로서 면장을 10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친일주의자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다.
친일을 한 민족반역자들이 조선민중과 민족을 위해 헌신하기 위해서라고 항변하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다. 친일행각을 자행한 자들이 늘어놓는 변들의 공통점은 민족을 위한 행위였다는 것이다. 허나 악독한 일제의 만행이 최고조로 달한 10년간 면장질을 한 것은 이광수와 같이 '나는 천황폐하의 신민이며 적자이다'고 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즉 친일을 한 민족반역자들은 자신과 자신 가족을 위해 사리사욕에 위해서 친일을 한 것이지 결코 민족과 면민들을 위해서 친일을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친일 반역자들이나 그 후예들은 현실적 상황을 논하면서 친일은 불가피한 것이고 그 당시 조선민중 모두가 친일이 아니냐는 몰염치하고 뻔뻔스럽기 그지없는 변명은 정당화될 수 없다. 친일에 의한 민족반역행위 자체가 정당한 것이 아닌데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겠는가.
백범 김구 선생께선 이런 말을 하셨다. '우리는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正道냐 邪道냐가 생명이라는 것을 명기해야 한다. 비록 구절양장(九折羊腸)일지라도 그것이 정도라면 그 길을 택하여야 하는 것이오. 우리가 망명 생활을 30년이나 한 것도 가장 비현실적인 줄 알면서도 민족의 지상명령이기 때문에 그 길을 택한 것이다. 과거의 일진회도 현실적인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백범 김구 선생의 이 한마디는 지도자의 자세, 그 사회를 이끌어가는 자들의 길이란 어떤 것인가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친일 반역자들은 백범 김구 선생의 올바른 비현실적인 길을 걸어간 것과 정반대로 항상 잘못된 길인 현실적인 것만을 걸으면서 그것이 민족의 길이요 그 당시의 지도자의 길인 양 주장했다. 그렇게 邪道의 길인 현실적인 길만을 걸으면서 민족이란 말을 팔며 철저히 자신의 사리사욕과 권력만 추구한 것이다. 이들에게는 민족이란 있을 수 없다. 있다면, 시대의 방향에 따라 변절과 배신의 덕목만으로 점철된 기회주의만 있을 뿐이다.
지도자의 보람은 민족의 길을 옳게 그리고 훌륭하게 앞장서서 개척해 나가는데 있는 것이다.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권력과 이권을 가지는데 성공한 것이 지도자로서 성공한 것이 아니다. 이승만은 부귀영화를 누렸을지 모르지만 지도자로선 역사가 존재하는 한 비판을 받아야 한다. 반면에 백범 김구 선생은 한을 품고 쓰러졌으나 오늘날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로서 추앙받고 있다.
이광수 스스로가 조선 청년들에게 '생명의 위험도 변절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말했듯이 자신이 조선민족의 지도자로 자처하고 있었다면 '나는 천황폐하의 적자'라고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민중은 지도자가 아무리 위험하고 빈곤한 처지에 놓여 있다고 할지라도 지도자의 변절을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아무리 지도자가 굶주려도 결코 그를 돕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그의 변절을 가혹하게 규탄하는 것이 민중이다. 민중은 지도자에게 차라리 굶어 죽을 것을, 차라리 형장의 이슬이 될 것을 기대하지 변절은 생각지 않는다. 지도자의 변절은 그 어떠한 이유로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일 반민족행위를 한 민족반역자들의 친일의 변을 보면 자신들의 친일을 정당화하기에 급급하다. '일정 때 세금을 바치고 호적을 하고 법률에 복종하고 일장기를 달고 '황국신민서사'를 부르고 신사에 참배하고 국방헌금을 내고 관공립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한 것이 모두 일본에의 협력이다. 더 엄격하게 말하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도 협력이다. 왜 그런고 하면 그가 협력을 안 하였던들 죽었거나 옥에 갇혔겠기 때문이다~~~'.
'우리는 3천만 민족 전체로서 홍제원 목욕을 하고 다시는 죽더라도 타민족의 지배를 받지 말자고 서약하는 것이 옳기도 하고 효과적이기도 할 것이다'는 식으로 친일의 변을 늘어놓은 이광수와 같이 반민족적 행위를 한 민족반역자들의 참회 없는 자기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
3천만 동포가 다 친일파인데 어떻게 누구는 친일파고 누구는 친일파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는 주장이다. 3천만 전체가 다 친일파라는 주장 속에 자기의 살길을 찾아보자는 음흉하고 교활한 궤변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친일파 처단을 주장하는 것이 3천만을 다 숙청하자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친일파들만 제외하고 다 아는 사실이다.
살기 위해서 소극적으로 시키는 대로 움직인 조선민중들을 친일파라고 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제 하의 3천만 모두가 친일파라는 식으로 물타기를 하는 것이 바로 친일파들에 대한 청산을 막기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민족의 지도층에 있었던 자로서 조선민족을 말살하는데 앞장서 주장하면서 친일을 솔선수범하고 친일을 설득하고 권유하는 것을 직업처럼 삼으면서 일신영달을 위해 부귀와 영화를 누린 자들이 친일파로서 처단되어야 한다.
김용균이 자신의 父는 친일파가 아니라고 항변하는 것은 극히 상식선에서 바라보더라도 개가 웃을 소리다. 이광수의 친일의 궤변 중 '고등관이라 하여 특별히 죄를 많이 주어야 할 이유는 없고 도리어 일본인과 경쟁하여 그렇게 불리한 조건 밑에서 그만큼 올라갔으니 참을성도 솜씨도 있고 경험이 있는 능력자라고 믿을 수가 있을 것이다' 운운하면서 친일고등관을 대변하였다.
일제하에서 조선인으로서 고등관이 된 자들의 능력과 경험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일제가 조선인을 고등관으로 쓸 때는 능력보다도 일제에 대한 충성심이 기준이 됐다는 사실을 이광수는 외면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1935년부터 1944년간 면장질을 한 김용균의 父가 능력이 있어서 면장직에 10년간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어느 누구보다도 일제에 충성심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10년간 면장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상황-현실을 무시하고는 살기가 힘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상황의 논리에 추종하는 것은 일반 민중들이며 사회를 끌고 가는 지도층은 역사의 논리에 따라야 한다. 이에 따라 상황의 논리에 저항할 신념과 용기와 자기희생의 각오가 서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광수 류와 같은 친일 민족반역자들은 철저한 상황추종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 때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것에 적응하는 기회주의자로서의 삶을 누린 것이지 올바른 길 즉 비현실적이지만 正道를 걷는 지도자다운 일관된 신념이 결여되었다. 그 때문에 친일 민족반역자로서 역사적 청산이 이루어져야만 하는 시대적 요청이자 부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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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수아빠 |
2004년 03월 01일 (19시 06분) | |
1 등 |
처벌은 차지하라도 사실은 규명되어야 되는것이라 생각되오만... 사실의 규명만으로도, 그 기록을 남기는것으로도 의미는 있다고 생각되오. 반드시 해야할 일이오... 더 이상 부끄럽지않으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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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 |
2004년 03월 01일 (19시 08분) | |
2 등 |
반민특위의 재판이 되지 않길 간곡히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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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리불 |
2004년 03월 01일 (19시 14분) | |
3 등 |
어 이런 행운이 등수안에 들다니.....^^ 감사,,,, 친일파 척결은 너무 늦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해야 합니다. 민족의 정기를 위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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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ksha |
2004년 03월 01일 (19시 16분) | |
4 등 |
1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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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사니? |
2004년 03월 01일 (19시 24분) | |
5 등 |
즈 애비의 친일 매국행위가 잘못인지 알기는 아는 모양이네....끝까지 숨길러고 용을 쓰는걸 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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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나무 시암 |
2004년 03월 01일 (19시 30분) | |
6 등 |
친일파들은 뻔뻔하오. 특히 TV앞에선 개기름이 더욱 빛나오. 일전에 본 면장 자식인 김의원은 더욱 빛나는 이마를 가졌다 하오. 그 어려운 시기에 면장질 했음을 능력이 있다 강변하는 그의 모습은 차라리 씁쓸하오. 대환난의 민국의 시대의 풍랑속에서 국회의원이란 벼슬을 하고 있음을 자랑하는 개기름 흐르는 눈가아래 비치는 처연함을 나는 보았다오. 백여년전 자결하던 날 아침 매천은 어떤 마음으로 하늘의 해를 바라보았을까? 아! 우리는 언제까지 저같이 비열한 인간들을 모시고 살아가야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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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하늘 |
2004년 03월 01일 (19시 34분) | |
7 등 |
지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꼭 친일 매국자들을 규명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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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피우자 |
2004년 03월 01일 (19시 38분) | |
8 등 |
향좀 누가 좀 준비하세요 ..사과 몇조각하고 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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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 |
2004년 03월 01일 (19시 53분) | |
9 등 |
미국은 남조선을 일본에 즉시 반환하라!!
남조선은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나 엄연한 대 일본제국의 영토이다.
이것은 세계의 모든 역사 학자들이 인정하는 것이며 미국학자들 조차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이러함에도 미국은 대 일본제국의 영토인 남조선을 60년간 불법 점유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남조선의 주인은 대 일본제국 천황폐하이시다!!
남조선 인민들은 천황폐하의 개(犬)다!!
미국은 당장 대 일본 제국의 영토인 남조선을 일본에 즉시 반환하라!!!
반환하라!! 반환하라!!
김용균의원 만세!!
대 일본제국 만세!!!
천황폐하 만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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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아빠 |
2004년 03월 01일 (19시 56분) | |
10 등 |
언제 이 지긋지긋한 친일 반민족 매국노들을 처단할 수 있을까요? 독립투사 및 그 자손들의 어려운 삶을 볼 때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분노가 치밀어옵니다.
이 땅에 정의가 찾아올 때 진정한 독립이 오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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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 |
2004년 03월 01일 (20시 07분) | |
11 등 |
위글 쓴이는 임진왜란때 왜구에 강간당한 조선여인의 몸에서 태어난 쪽바리 족속이 아니라는걸 증명할수 있나? 직계이던지 방계이던지. 그럴수도 있고 안그럴수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건 그런사람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처리 하였으면 좋겠는가? 아니면 그들의 대한인으로써의 정당성은 있는가 없는가? 만약에 단죄하여야 한다면 그 권리는 어디로부터 연유하는가? 그 많은 한나라당 국회의원중에 한명 그것도 군수도 못되고 면장도 직책이라고 그걸 한나라당 친일파와 연관시켜 비분강개 하면서 그분이 면장할때는 사람구실은 커녕 정자 구실도 못했으면서 그렇게 분통이 터지고 억울한가? 그 분노의 권리는 어디에서 획득했는가? 무슨권리로 친일파에 대하여 개거품을 물을수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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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
2004년 03월 01일 (20시 12분) | |
12 등 |
조선민족과 민중은 뭐요? 민족이랑 민중은 틀린거요? 민족주의자들은 민중을 들먹거리지 마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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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리눈 |
2004년 03월 01일 (20시 17분) | |
13 등 |
무량/너같은 쓰레기들이 문제인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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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란 |
2004년 03월 01일 (20시 17분) | |
14 등 |
김용균 최연희 심규철 이런 종자들은 참으로 재수없다.. 애매한 시절에 법제사위 위원으로 친일청산법거시기 한다고 고생이 많으리라.. 고생보다는 속앓이 많이 할끼라... 다가오는 총선이 눈앞인데 전국민이 친일파 후손이란 비밀을 다 알아버렸으니... 그러고도 17대에 다시 의원으로 국회에 등원된다면 난 자결?해야하나.... ㅋㅋㅋ 각설하고 혹시 남정철 남작이라고 아시는지? 일제에게서 남작이란 칭호를 받은 남정철 남작의 손자가 국회의원이라는 첩보가 있던데.. 딴나라당 소장파중에 남씨가 아마 그 손자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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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 |
2004년 03월 01일 (20시 22분) | |
15 등 |
누란아~애매가 어느나라 말이게~ 일본말이지롱~ 빙신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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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 |
2004년 03월 01일 (20시 29분) | |
16 등 |
계속- 그당시에 김용균씨 아버님을 주위에서 친일파라고 손가락질 하고 해방후 친일파 라고 동네사람들이 침한번 이라도 그사람한테 뱉은적 있다고 확인해줄수 있는가? 이사람아, 설사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제는 우리 잊자라고 말해야 하는게 우리 후대사람들이 해야할 몫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다시는 그런 치욕스런 역사를 갖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따위짓 하다가 서로가 분열되어 힘이 약해지면 그런세상 다시오지 않겠는가? 현재 우리나라 국력이 일본의 칠분의 일 수준인데 그들을 다시는 불러오지 않는게 진정 무었인가 다시한번 생각해보라. 당신이 김용균 보다 더 대한사람일 이유가 하나라도 있으면 대보라. 이미 고인이 되신 피맺힌 독립투사가 봐도 다시 분열을 부추키는 당신이 김용균보다 훨씬더 매국노 스럽다. |